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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죽었다 ㅣ 담쟁이 문고
박영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이 이상한 제목 때문에 정말 그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고 놀라면서 읽게 된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이 나온 때 이 책을 보았다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이란 얼마 전에 서거하신 고 노무현 전대통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 박두환 전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때가 1970년 말 즈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시대의 이야기!! 요즘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외환위기 때가 다섯 살이라거나 미취학 아동이었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세월이 그렇게나 빠르고 세대가 그렇게나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그런데 내가 나이로만 보면 이 소설 속의 수형이를 이해 못하지 않는 나이여야 하는 것이 맞는데, 어떨 땐 그의 상황이 완벽하게 이해되어질 땐 그와 나의 거리가 20년이나 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나 시대가 많이 변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은 어떤 시대가 배경이라도 그 이야기 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풍부하다 싶다. 부마사태라든지 김영삼 총재 제명 사건이라든지 하는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여러 사태가 일어나는 것에 상관없이 내 마음은 주인공 수형의 마음과 같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까막득한 박정희 정권 때 인심 흉흉한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데도 우민한 백성들은 그저 자기 눈 앞에 있는 것들에 취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을 보니까 지금이랑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21세기에도(이렇게 부르니까 정말 대단한 발전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전혀 아닌데... ^^;;)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무자비하게 청소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정부가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강경 진압하고, 사람들을 데려다가 고문을 하지는 않는다지만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등이 독재가 지금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같이 여겼던 용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고, 순수하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가시는 길에 배웅하는 장소를 무뢰배들이 점거하는 장소로 다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예전엔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났던 여러 비화들을 들으면서 개화되지 못했던 우매한 시민들만이 당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아하니 지금의 우리도 그 때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도 그런 정부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운하를 만든다거나 영어몰입교육을 시킨다거나 하는 등의 중요한 정책을 시민들의 여론 수렴을 거치지 않고 마구 밀어부치는 정부를 지척에 두고도 사실 나부터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도 아니고, 그런 아이들을 양육하는 학부모도 아니여서 그럴까,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내 가까이에 있지 않아서 그럴까, 정말 정치에 관한 내 무관심은 세계 최고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이 소설을 보니까 그 시대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 신문배달원일 뿐인 수형이와 한국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죽음은 큰 틀에서 보면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 사건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되는 것을 보노라니까 한 인간의 삶은 정치와 별개가 아니구나 하는 것... 그 중요한 사실을 느꼈다.
개인의 삶은 그 나라의 정치적인 상황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 소설은 여기에 나온 역사적인 정치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정말 재미있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솔깃하게 할 만큼 말이다. 내가 생각할 때 아마도 그 이유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소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주인공 수형은 작가의 분신이 녹아든 인물이었기에 그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 당시의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이 바른 것일까 정답을 알지 못하고 우물쭈물 움직이더라도 감정이입이 충분히 잘 된다. 혼자서 돈을 벌며 공부를 하는 고학생이라는 그의 처지가 나와는 전혀 다르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무지몽매했던 그가 스승인 영환이 형의 도움을 받아 점차 이 사회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땐 내 의식이 바뀌고 내 생각이 성장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박영희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있는 소설이어서 그럴까, 앞으로 미래가 미완성으로 남은 수형의 마지막 모습에서 그가 크게 성장할 것이 기대돼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