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형수 - 오늘도 살았으니 내일도 살고 싶습니다
김용제.조성애 지음 / 형설라이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마지막 사형수』라는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일단 암울한 이야기다. 김용제라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건 얼마나 참회를 했건 간에 그는 이미 1997년에 사형을 당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그저 어두운 이야기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감옥에서 지은 죄값을 다 치르고 그 어려운 처지를 이겨내어 다시금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 평생의 일생 동안을 열심히 살아볼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평생의 삶을 아픔과 상실과 분노와 방황으로 채워진 채로 그렇게 죽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읽을까? 아마도 그건 누구에게나 숨겨진 상처가 있고,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돌아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게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 내가 가진 많은 혜택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혹은 그의 범죄는 용서할 수 없을지라도 그는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란 어쭙잖은 생각으로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용서'란 것도 그럴 만한 그릇이 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만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다. 1991년 10월 19일 오후 4시경, 여의도 광장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한 대의 승용차가 돌진해 자전거를 타던 어린이 2명이 숨지고 21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절대 잊지 못하는 날이겠지만, 사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었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시절에 일어난 아주 황당하고도 끔찍한 그 사건의 가해자가 바로 마지막 사형수 김용제 씨다.

 

그 사건으로 죽은 한 어린이의 할머님께서 김용제 씨를 면회가서 돈도 넣어주고, 옷도 넣어주고, "용서했다"고 울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땐,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저지른 사건 자체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가 이제까지 저질렀지만 발각되지 않았던 많은 범죄만 봐도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연히 줘야 할 빚에 대해서 받으러 오는 친구에게 짜증을 부린다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 있는 사람의 돈을 훔쳐서 유흥비로 써버린다거나 일을 못해서 해고하는 사장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돈을 주지 않는다고 강도짓을 한다거나 한 번 거절당했다고 사람을 찌른다거나, 일일히 열거하기가 귀찮을 정도로 그가 부린 패악은 끝이 없었다. 사실은 보는 내내 역겨워서 힘들었다. 나와는 생각 자체가 다른 사람을 처음 봐서, 어떻게 참을성이 하나도 없이 그렇게 막 나갈까 싶은 그를 볼 땐 그 영혼에 회생 가능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이것은 내게 있는 독특한 버릇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현상에 꼭 논리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할 땐 저래서 그런 거야", "이 사람이 흉폭해진 것은 어릴 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야", "어릴 때 경험한 나쁜 성(姓)적인 경험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거야" 등의 경우다. 그런데 김용제 씨는 그렇게 흉폭하거나 못나거나 좌절감이 힘한 사람으론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정에 약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며 의지력이 약한 그저 보통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렇게나 쉽사리 극단적인 방법 - 폭력, 방화, 강도 - 을 쓰는 것이 내게는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건 그가 쓴 두서없는 일기에게선 그런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전문 작가가 이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눈물겹고도 절절한 스토리가 나왔을 테지만, 김용제 씨에게는 그런 말주변은 없을 테니까. 아, 이제서야 조금은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그가 툭툭 던져주듯 말해주었던 어린 시절의 사건 사건들이 사실은 그가 부르짖고 싶었던 아픈 기억들이었다는 것을. 아마도 가장 큰 사건은 어머니의 가출이었을 것이다. 무슨 형벌인지 아버지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인데다가 어머니 또한 시력이 무척이나 나빴으니, 그 가정이 단단하게 결속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가정 형편이라도 나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도 않고 성당을 다니는 어머니와는 다르게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았을리도 없었을 테니,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것은 어쩜 인지상정이었는지도. 하지만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곤 같이 살자고 매달리는 용제 씨에게 "넌 이젠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매몰차게 말하는 어머니라니~! 어느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머니의 가출과 어머니에게서 버림 받은 기억 때문에 지독하게 이를 악물고 성공한다는 놀랄만치 쉽고 간단한 스토리를 들려주는데, 역시 현실은 이렇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어머니의 따스한 보살핌도 없이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어린 사내에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으니까. 게다가 일을 하려 해도 선천적으로 눈이 나빠 검사를 해도 시력을 찾을 수가 없는 그에겐 그마저도 사치였다. 글씨를 읽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의 구별조차 안 되고, 종업원 노릇을 해도 물 따라 주는 것도 쉽지 않으니 그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그의 눈이 멀쩡해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성실하게 하고 그런 그를 인정해주는 좋은 사장을 만났다면 어머니에게 버림 받고 어머니가 개같이 느껴질 만큼 더러워보였던 그 지난 상처를 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눈 때문에 일을 못하니 밥 먹듯이 해고당하고, 해고당할 때마다 월급을 제때 못 받고, 그러면 분풀이로 강도짓을 하거나 공장에 불을 지르거나 금고를 터는 악순환이 계속 되니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어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자살도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법. 워낙에 마음이 여린 그에겐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자살미수가 계속 되는 상황에서 나는 그가 너무 불쌍해서 그게 이루어지길 바랐다. 정말 인간으로서 못할 생각인데, 그에겐 너무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생각지 못했다. 최극빈자 생활을 했던 용제 씨이기에 그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도 살기 어렵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공장에 돈이 없어 밀린 월급을 못 줄수도 있었을 것이고, 밀린 방세를 안 낸다고 고소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그들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것이었을 테니까.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당하는 용제 씨가 더욱 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은 간과했던 것 뿐!! 사실 그럴 때마다 - 어쩌면 억울하거나 아니면 당연한 요구를 당할 때마다 - 용제 씨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했다. 그래서 아주 극단적인 방화나 강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지 모르겠다만, 이제보니 그가 이제껏 세상에서 받은 모든 아픔을 그곳에다가 쏟아부었는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자아가 미처 자라지도 못했을 때부터 사회로부터 상처와 무시만 당해왔으니 쌓아놓은 분노가 폭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마도 용제 씨는 감옥에 갈 것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제 안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든 상처와 분노를 쏟아냈다면 그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사고가 났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때도 안 묻은 어린이를 죽였기에 아마도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내 동생이나 내 아이가 그렇게 죽었다면 나도 같이 비난을 했을 것이고, 사형 당해야 마땅하다고 울부짖었을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서자(사회적 약자)를 이제껏 팽개쳤던 정부가 적자(사회적 강자)의 심기를 달래주기 위해 서자를 죽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김용제 씨 하나만 죽으면 뒷처리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많은 성범죄자들, 특히 여성 지적장애인을 피해자로 삼는 성범죄자들의 처벌이 솜방방이 수준이라는 기사를 오늘 읽었다. 여성 피해자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강압적인 검사의 심문에 말을 이리저리 바꾼다고 아예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성범죄 전력이 있는 가해자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성범죄에는 관대하게 대처하는 정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어쩜 이렇게 강경 대응을 했는지, 도대체 생각은 제대로 하고 판결을 했는지 묻고 싶다. 김용제 씨가 한 행동은 쓰레기였지만 그렇다고 김용제 씨가 쓰레기는 아니였기에 하는 말이다. 가슴이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연애술 - 그를 내 남자로 만드는 긴자의 법칙 133 악마의 연애술 1
나비 지음, 신현정 옮김 / 새움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마의 연애술'이라고 해서 뭔가 타락스럽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었는데, 읽어보니 이 책은 여자로서 행복하고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물론이다. 저기 악마 분장을 하고 위험스레 유혹하는 띠지의 여인네의 모습이 어색하리만치 말이다. 사실 '긴자'니 '클럽'이니 하는 단어를 들으면 그다지 썩 호감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게다. 그저 돈을 받고 접대하는 아주 저급한 종족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이 책을 쓴 나비 씨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까 오히려 남녀 관계나 남녀 심리에 대해서는 정통할 만큼 조예가 깊었다. 그런데도 더 독특한 것은 그런 모든 노하우가 아주 특별하고 새로워서 따라하기 어렵게만 느껴지는 방법이 아니라 남녀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해 봤을 때 당연히 따라옴직한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것이 어디 쉽나~. 나만 해도 글로 접하게 되는 책에서는 '음~음, 아주 좋은 이야기야, 맞아!!'하고 동의할 수 있는데,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자니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남자 친구가 있는대로 끊임없이 남성들에게서 대시를 받는 여자들의 공통점은 '본인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p. 13)'을 들어 주었다. 듣고 보니, 본인 스스로 자신이 남성들에게서 인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해야 더욱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나비 씨의 말은 자명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다니는지를 생각해보면 영 아니었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겁을 내는 편이라 그런 모임이 생겨도 핑계를 대서라도 안 가는 편이기에 정말 할 말이 없다. 정말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까운 '연애'는 멀고도 어려운 것인지...

 

나비 씨가 말하는 연애관은 일단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누가 평안감사 자리를 주어도 마다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자신이 최고이고, 자신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자각을 항상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녀의 연애는 즐거울 수 밖에. 그리고 나면 그녀는 남성들에게 무엇이 어필되어도 어필된다고 한다. 소위 노린 남자는 100% 공략하고 만다는 여성들을 살펴 보면, 의외로 스타일이나 미모가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기 때문에, 또한 남자들도 완벽한 미인에게는 동물적인 욕망을 느끼기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에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쳐있고, 그래서 섹시해 보이는 그런 여성들에게 끌리기 마련이라니, 절대 남자가 없는 것을 못생긴 얼굴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종족에게 어떤 매력 포인트가 있을지에 대해서 연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멋진 각선미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가슴과 곡선미이거나 목덜미나 뒷모습, 손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발굴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만남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이득이 없다면 - 기분이 유쾌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위로를 받고 싶거나 등등 - 그 만남을 지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단 남녀 관계에서만이 아닐 텐데, 그렇기 때문에 나비 씨는 남성을 만나더라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의 힘든 일을 절대 말하기 않거나 말하더라도 약간은 투정하는 식으로 애교스럽게 하고 넘어간단다. 그러면 만나는 남자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져서 좋다는지 하는 칭찬을 한다고~. 나도 어렸을 때는 그런 아부성 멘트를 많이 들었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된 건지. 사실 나는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대 아닌데^^; - 심각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진짜 많이 느낀 점은 남성과 사귀고 싶다면 남성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사귀지는 않더라도 그런 모임을 통해 자신을 긴장시키고, 대화 기술을 기르고,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언제든 공략하고 싶은 남성을 만났을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비 씨는 "여배우 효과"라고 불렀는데, 감탄 어린 남성들의 많은 시선을 받고, 질투어린 여성들의 많은 시선을 받으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라, 정말 탁월한 표현력이라 생각했다. 긴장하고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어떤 일을 겪어도 금방 처리해낼 수 있는 것을 몸소 체험해봤기 때문에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갈무리해 둔 그녀는 정말 남녀관계에서만큼은 예리한 관찰력의 소유자가 아닌가 한다. 남녀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 전반에서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약간은 재미로, 약간은 진지하게 읽어본다면 누구에게나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년 지구멸망
나미키 신이치로 지음, 오경화 옮김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란 대재앙 영화가 한창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 책은 아마도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된 책일 텐데, 그 영화의 인기로 더불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2012년 12월 22일이 지구 멸망의 날이라는 고대 마야, 이집트, 수메르 예언에 대해 여러 천문학적인 근거를 총망라한 책이다. 실제로 이 책을 보면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진짜 3년 뒤에는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신빙성이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아직 인간의 지식으로는 완전히 밝혀낼 수는 없지만, 요즘 드러나는 증거들로부터 추측되어지는 내용을 나열했는데 그 내용은 과학적인 관찰과 이론적인 계산에 의해 증명된 것이기에 믿을 만한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마야나 이집트에 나타난 예언이 이미 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이 비논리적인 부분이었는데, 가만 보면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 '덜' 설명한 부분으로 보인다. 물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지식적 한계를 넘어버렸기 때문에 설명해줘도 못 이해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엔 '덜' 설명해주었기에 내가 '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흡한 설명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이 책이 나온 연도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책에서 말하길 행성 X가 출몰하든 플라즈마가 방출되든 2010~2012년에 실질적인 지구 멸망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려면 2009년에는 그 징조가 나타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실제로 2009년에 이상기온 현상은 좀 일어났고, 그것을 책에도 설명해주었지만 그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우주적인 이상 현상은 발견되지 않은 듯 싶어서 하는 말이다. 우주 이상 현상들이 좀 더 첨부되었다면 더 논리적인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지구과학적인 상식이 좀더 풍부하다면, 아니면 하다못해 계산이라도 좀 밝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마야 예언에 나타난 공식(?)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 부분은 반복적으로 읽어도 결국 포기할 정도로 너무 독특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마야인들은 두 가지 달력이 있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365일로 된 태양력의 1년을 365.2420일로 산출할 정도로 대단한 천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260일을 1년으로 하는 종교력을 가지고 있었던 데에서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더니 순환되는 시간 단위들을 놓고 계산하는데 왜 136만 6040일이란 숫자가 도출될 수 있었는지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엔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을 다 설명하려면 이렇게 단행본으로 달랑 나올 것이 아니라 주석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붙인 백과사전류의 책이 나올 것 같아서 그렇게 축약을 한 듯 싶은데 이해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거나 그 마야 예언설에서 나온 결론은 「콰우티틀란연대기」에서 '5번째 태양의 시대'란 것이 기원전 3113년부터 시작되어 5128년이 경과된 2012년에 끝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고, 아즈텍 예언에서도 그와 유사하게 4번의 시대가 지났다고 구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태양의 흑점 운동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여, 연륜연대학(수목의 나이테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연대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 견지에서 과거 태양의 연동에 따라 지구의 온도, 빙상 형성, 그리고 문명의 흥망이 좌우되었던 사실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갑작스럽게 사라진 민족이나 자연의 대이변의 현상들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적이 많았는데 그것이 모두 태양의 흑점 때문이라니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더욱 더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흔히 배기가스나 온실가스가 주범이라고 생각했던 지구온난화가 태양 때문이었다는 이론이었다. 과거에도 비정상적으로 지구의 온도가 높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과, 현재 화산 폭발을 하면 지구의 온도가 낮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200도 정도 더 높아지고 있다는 멕시코 지질학자의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미국이 2001년 '교토 의정서'에서 일방적으로 일탈하겠다고 한 것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대안은 '프로젝트 노아'로 지하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모든 인류를 구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재앙은 행성X에 근거한다. 천왕성과 해왕성을 찾게 된 것은 실제 관측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궤도에서 인지된 섭동(궤도가 다른 천체의 영향을 받아 연동하는 것)따라 계산으로 찾아낸 것인데, 이 행성X도 그렇게 존재해왔다. 다만 요즘에 드러나는 것은 행성X의 이론적인 실제 뿐 아니라 실체까지라 더욱 놀라울 뿐이다. 1915년, 1930년, 1981년, 1982년, 1988년, 1999년, 2001년에 여러 근거를 들어 다양한 천문학자들이 10번째 행성을 점치고 있다. 그 행성의 크기는 지구의 7배이거나 4~5배 혹은 목성의 4배, 공전 주기는 280~290년이거나 1000년 이상일 거라는 예측, 갈색왜성이거나 고리가 달린 행성일 거라는 다양한 관측과 이론이 난무하고 있는데 어느 것이 정확히 10번째 행성일지는 모르지만, 예언서에 보면 그것이 '나비루'라는 지구 멸망을 불러오는 행성이라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태양계의 궤도와 수직으로 만나는 궤도 때문에 부딪치지는 않아도 근접해서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인공위성이 죄다 지구로 떨어지기만 해도 얼마나 큰 참사가 일어나겠는가 말이다. 이것만 보고도 어이없고 대단한 힘든데 이 말고도 우주가 '빅뱅이론'이 아니라 '플라즈마 상태로 이루어져있다는 이론'이 나타나서 다른 형태의 지구 멸망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양의 폭발 현상을 야기하기에 지구의 생존율을 떨어뜨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이번의 세계가 5번째의 시대라면 그 이후의 세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플라즈마를 쏘인 인간들이 어떻게 될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도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다 새까맣게 타서 죽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인류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예측이다. 멸망이 있다면 생성도 있다고 조금은 희망을 점치고 있는데, 그 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주저앉아 멸망만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는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던 것처럼, 너무 불안에 떨지 않고 너무 자포자기하지 않고 너무 비관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사람이 암을 선고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직 내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기억이 없다. 내 일생에 통틀어서 열 번 만날까 말까하는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장례식조차 없으니, 내겐 죽음은 아직 먼 이야기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의 엄마의 울부짖음이었으나 그 때도 내겐 실체로 와닿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고보다도 더 안타깝고 사람을 힘겹게 하는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아닐까? 그 길고도 모진 암투병과 확신없음과 답답함을 같이 싸워하는 상황이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얻는 것이니, 어쩜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봐야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더 크고 아플 것이다. 이 소설은 레이 클룬이 유방암으로 아내를 잃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사랑이 떠나가도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랑 뿐이라는 걸, 그런 크나큰 감동을 준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내가 아직 인생의 반쪽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가 암투병 환자의 적나라한 현실이 감당키 어려웠다. 특히나 암에 걸린 아내가 집에 있는데도 끊임없이 밖에서 온갖 외도를 벌이고 다니는 남편이라니... 이럴수가!!! 이것은 내 장미빛 결혼 환상에는 위배되는 일이다.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남주인공 댄이 독특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사고를 친다. 결혼 생활 중에 스무 번이나 넘게 외도를 했다니까 할 말이 없다. 그것도 동료 여직원과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도 이루어지는 외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런 내 비난에 처음부터 변명거리라도 만들어두고 싶었던지, 서두에서 자신이 '고독공포증(모노포비아 - 고독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으로 충동적인 성적 욕구를 갖게 되는 심리 증상)'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럼, 결혼하지 말던가.

 

자신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지, 뭐하러 결혼해서 그런 생고생을 시키는지. 카르멘은 암과의 결투도 모자라서 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온갖 상상으로 자신을 괴롭혀야 하지 않나 말이다. 흐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으면 암이 생긴다는데 혹시 그 암 댄 때문에 생긴 것 아니야? 어쨌거나 그런 댄도 사실은 카르멘을 사랑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카르멘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길 때조차도, 그가 아내를 사랑했음은 믿는다. 그것은 그의 외도 상대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불안하고 방황되고 암에 걸린 카르멘을 마음 속에서는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과도하게 일어난 성욕 현상이라는 것을. 어쩌면 말이다, 그런 외도를 했기 때문에 카르멘 곁에서 안정적으로 보살펴 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노라의 말처럼!!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유부남의 외도는 물론 잘못이지만 어느 정도의 외도는 당연하다는 것을, 내가 너무 이상적인 모습으로, 장미빛으로만 결혼을 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된 장면이 있다. 카르멘이 유방절제술을 받고서도 암이 계속 진행된 후에 갖는 무플 모임에서 말하기를, 아내가 유방암을 걸렸을 때 이혼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유일하게 댄과 카르멘 부부가 합심해서 병원에 같이 가서 치료를 받는다니, 어쩜 인간들은 아주 이기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서글프다. 사랑한다고 믿어서 결혼하고 같이 살았는데, 병에 걸렸다고, 그것이 감당키 어렵다고 그렇게나 외면해버리다니 그럴 수가 있는 걸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면 결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참 좋았다. 카르멘이 혼자 거동조차 힘들어 할 때가 되었을 때, 꾸준히 만나온 불륜 상대가 있었음에도 카르멘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댄의 모습은 멋졌다. 카르멘이 마지막을 할 수 있게 아주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가서 혼자서 단장하고, 카르멘의 수발을 들어주고, 그녀의 모든 기록을 정리해서 딸에게 줄 것을 남겨두고, 그녀를 목욕시켜주고, 구토할 때 곁에 있어주고, 마지막으로 대화까지.... 그렇게나 서로에게 미안해하면서 어색해하면서 지긋지긋해하면서 살아왔던 기억이 무색하게 그렇게나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일로 댄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댄은 이제껏 카르멘에게서 받아왔던 사랑을 다시 되돌려줄 수 있게 되었고, 카르멘은 아름답고 안정감 있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서른여섯 살, 죽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나이이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서,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려서 서로에게 아주 값진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