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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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만나는 스무 살 철학 ~ !!

 

나를 만난다라~! 나는 스무 살 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무 살의 내가 궁금해서 던진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책읽기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질문을 시작했던 때부터 내 안에 존재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 독서는 이미 이 질문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매번 보았던 이 책의 표지로부터 나는 먼저 내 스무 살의 이야기를 읽었다. 스무 살의 아픔, 방황, 고민들 중 어떤 것이 있었을까 먼저 그 시기를 살아온 내 과거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라니, 정말 상상이 안 가는 때, 그러나 눈만 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가슴 시리도록 아쉽고 안타깝고 설익은 아름다움이 있던 때!!

그 아름다웠던 때부터 그 아름다움이 퇴색해버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참 어떻게 살아왔을까. 지금 그 이야기를 풀어내보려 한다. 

 

스무 살의 나는 철학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던 아이였다. 아니, 철학이란 단어조차 알지 못했던 아이였다. 단순히 하루하루의 즐거움만을 추구했던, 그러나 너무도 소심했던 그런 아이... 그런 아이가 바로 나였다. 만약 나에게 스무 살이란 시간이 다시 존재한다면 절대로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을 만큼 그랬던 나이가 바로 스무 살이었다. 대학을 갓 들어가고, 그 대학이 성에 차지 못해 대학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나서 대학 외적인 것에 재미를 붙여 나름 보람차게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항상 혼자는 불안해 어떤 것에 대한 중독에 빠져있었던 때가 바로 그 때였다. 홀로 나를 마주 대하면서 내 고민을 돌아보고 내가 하고 있는 방황을 보듬는 시간을 갖지 못했던, 아니 그런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글픈....또 서글프도록 아름답던 그 시간...

 

그런 시간을 다 지나고 나서 지금에서야 철학이 무엇인지, 철학이 왜 재미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스무 살 철학』을 펴든다.

막연히 딱딱하고 막막하고 머리 아플 것 같은 철학이란 학문을 한꺼풀 벗겨내보면, 그 안에는 이제껏 내가 했던 고민과 방황을 적나라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해보았던,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수많은 선()인들이 존재했다. 이름하여 명철학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이 만들어주었다는 본질을 거부하고 자신의 실존을 항변했던 사르트르나,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사람들에 대하여, 마땅한 동기로, 마땅한 태도로”정념을 느끼는 것이 참된 정념이라고 친절하게 일러준 아리스토텔레스도 있고, 유교의 주요 경전인 『대학』에서는 “지지이후유정”(그침을 알게 된 이후에 안정될 수 있다)라고 말해준다. 또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 니체와, “나는 나의 고통이 의미 없어질 때가 가장 두렵다”고 고백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고통에 의미를 두면 우리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고통이나 실존이란 의미보다는 새로 만든 이메일 계정이나 채팅으로 수다를 떠는 것에 더 의미를 두었던 스무 살에겐 조금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대학에 들어가니 공짜로 준다는 한메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무심결에 만든 그 때 그 아이디로 아직까지 쓰고 있는데, 그렇게 처음 알게 된 인터넷 세상은 정말 놀라웠다. 먼저 PC통신으로 채팅이나 넷상을 경험한 친구들은 능숙하게 자판을 치며 넷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겠지만 그 때 인터넷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에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하루하루를 인터넷과 함께 한, 절대로 혼자서는 있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그 시간을 돌아보면 너무 허무하고 아무 소용없던 일들이지만 그 땐 왜 그리 인터넷이 달콤하던지... 여기 이런 우리의 모습에게도 선인들은 말한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홀로 있음은 우리 안에 있는 원래성,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무서운 아름다움과 그리고 시를 탄생하게 한다”고~. 아무리 현대인들이 홀로 있지 못하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지만, 우리가 우리를 이기고 무언가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만들어내려면 고독을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뜻으로, ‘솔리튜드’라고 부르는데, 가장 왕성한 성장기인 대학생 때 이런 자세를 가지면 조금은 고통이 달콤하지 않을까.

 

또한 우리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그런 모습을 남들과 같은 욕망으로 투사시키지 말라고도 충고한다. 그러니까 욕망을 다양화시키라고 말이다.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태적 지위를 같이하는 두 종류는 동일한 환경에서는 공존하지 못한다는 원리를 ‘경쟁 배제의 원리’라고 하는데, 개와 소가 서로 다투지 않는 것은 서로 먹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너무나 똑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스마트폰, 좋은 옷.... 『폭력과 성스러움』을 쓴 르네 지라르는 이렇게 욕망의 ‘차이 없음’, 즉 차이의 상실이 폭력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서로 같은 것을 갖고 싶어하니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서로 뺐을 수 밖에. 그러니 인간이 사는 사회는 항상 폭력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 발화만 시켜주면 언제든지 터져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그렇다면 이런 폭력을 대비하는 방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은 ‘희생제의’란 종교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누군가 때문에 일이 어그러졌다고 탓을 할 수만 있다면 분노의 에너지를 모두 그에게 쏟아부을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마녀재판도 일어났고, 반유대주의도 일어났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 가해자는들은 자신의 명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 정신, 내 것이 옳다는 확신에는 바로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내가 옳으니까 너는 무조건 맞아야 돼! 이 만큼 독단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직 스무 살은 해야 할 일도 많고, 가봐야 할 일도 많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좌절해야 조금은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시간이나 돈이 너무 부족하다. 그럴 땐 이렇게 철학책도 좋고, 문학책도 좋고, 훌쩍 떠나보고싶을 만큼 청명한 사진을 담은 사진첩도 좋으니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런 만남은 이 모든 경험을 다 하고 남을 만큼의 깨달음을 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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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 - 옛 지도에 담긴 중세인의 우주관
E. 에드슨.E. 새비지 스미스 지음, 이정아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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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중세시대 우주관의 모든 것

 

중세 시대라고 하면 신의 지배 아래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이 부정되는 그런 암흑의 시대로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그것은 근대인의 오만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우주관을 이야기할 때면 심심치않게 대두되는 이야기가 중세인들은 지구를 평평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잘못 와전된 이야기일 뿐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플라톤이 이미 둥근 지구를 전제로 한 우주론을 주장했고, 철학자이자 가톨릭 수사였던 베이컨은 그의 저서에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더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다’고도 적었다. 또한 가톨릭 사제였던 오렘 역시 그의 저서 첫머리에 ‘지구는 공처럼 둥글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중세 교회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고, 사람들에게 평평한 지구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중세인들은 평평한 지구를 믿었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어떻게해서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20세기의 잘난 근대인이었던 워싱턴 어빙이 콜럼버스의 전기를 쓰면서 중세인들이 지구가 평평해서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소설을 썼고, 우리 대다수가 이 허구를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중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였지 않았을까.

 

중세인들이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구를 둥글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늘과 우주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중세의 우주는 “빛이 있으라”는 신의 한 마디로 탄생했으니, 오늘날의 신성함이 결여된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론과는 상당히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중세인들이 그린 세계지도나 지방별 지도에는 실제로는 찾을 수도, 혹은 있지도 않은 「에덴동산」이니 「알렉산더 대왕의 곡과 마곡을 가두어둔 벽」이니 하는 것들이 그려져있다. 전체적인 육지의 크기를 모르니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땅의 모습은 물론이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나 종족의 모습이 나타나있기도 한다. 또한 세심함이 요구되는 해양도에도 육지도와 마찬가지로 실제와는 다른 신학적, 철학적인 관념들이 많이 표시가 되어있는데, 그 당시의 지도가 실제로 사용되기보다는 집에서 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되어질 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중세인들에게 세계지도는 단순히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이 아니라 신이 친히 만들어놓으신 세계를 축소해놓은, 하나의 예배의 도구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중세 때의 이슬람 세계의 지도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슬람 세계와 중세 유럽은 서로 다른 문화적인 전통 위에서 성장했는데,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플라톤의 저작들은 직접 중세 유럽에 전해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먼저 이슬람 세계로 유입이 되었다가 12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유럽쪽으로 전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인 사상이 중세 유럽 세계에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아예 전달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참 의아한 일이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신 중심적인 플라톤의 사상 대신에 체계적이고 학구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지도에 있어서도 실용적인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데 실용적인 목적에서 쓰이긴했던 이슬람의 지도에는 중세 유럽의 지도처럼 엉뚱하게 성경에 나온 장소가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지도이다 보니, 전체적인 육지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게 세계지도라고 할 수 없는 지도가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던 양쪽 세계의 지도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는 부단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중세 유럽의 지도도 사실적인 모습을 드러내주기까지 이르렀다. 


마르코 폴로나 이븐 바투타 같은 세계를 여행한 상인, 여행가들이 점차 많아지고 그 경험이 지도에 반영되면서 지도는 점차적으로 실용적으로 변해갔다. 지금 보아도 깜짝 놀랄만큼 아름답고 자세하다. 하지만 근대의 지도가 아름답고 실용적이라고 해서 중세의 지도를 무시해선 안될 것이다. 이렇게 지도 산업이 발달하긴 위해서는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에서부터 매튜 패리스, 베스콘테의 중세인들의 지식이 층층히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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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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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란 작품을 옛날부터 들어는 왔는데,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원래 있었던 작품은 '라스페'란 사람이 썼던 것이고, 독일 지방 이야기가 타국에서 그것도 영국인에게서 쓰인 것을 발견한 뷔르거가 뺄 것은 빼고 덧붙일 것은 더해서 만들어나온 것이 바로 이 책,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이라는 것이다. 이 책말고도 다른 책으로도 명성을 얻었던 뷔르거이긴 하지만, 익명으로 출판해 모든 권한을 출판인 디터리히에게 넘겼던 이 책으로 기존의 작품보다 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독일 지방에서 구전되었던 이야기들과 그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잘 머무려서 구성한 이 소설은 참 독특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나열해놓으면서도 그것이 꼭!! 진실임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 바보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아니면 청자를 바보로 아는가하고 화가 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한편으론,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점차 어리석어지고 있는 민중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혹 나는 어떤 기사에 혹해서 덮어놓고 믿었던 적은, 혹 나는 어떤 광고에 혹해서 덮어놓고 물건을 사들였던 적은 없었던가...?

 

많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소설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여향가로, 군인으로, 영주로 존경받고 있는 뮌히하우젠이 술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를 한 토막씩 꺼내 들려주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한겨울에 러시아로 여행갔던 사연, 오리와 메추라기와 흑여우와 멧돼지와 곰과 늑대와 토끼를 사냥했던 사연, 명마를 얻었던 사연, 터키 군대랑 싸운 사연, 포탄에 타고 날아올랐던 사연, 도끼를 달에다 던진 사연 등과 같은 육지에서 일어난 모험들과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한 나무가 뽑혔다가 추장이 죽은 사연, 바다에서 배를 부셔버리는 괴물 고래를 만난 사연, 커다란 물고기 안에 들어갔던 사연, 몇날 며칠 날고 있던 열기구를 구해준 사연, 재주 많은 하인을 구한 사연, 술탄과 내기한 사연, 곰 가죽에 들어가 곰 한 부대를 다 전멸한 사연 등 바다에서 벌어진 모험들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이야기 중에는 구전되어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더 독특했던 것은 성경의 인물들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윗과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이야기도 얼핏 흘러나오는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의 기독교적인 사회 모습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뮌히하우젠 남작은 사람도 몇 죽였는데 그것은 하나같이 포탄에 실려 날려가거나 어떤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의해서 발생된다. 그런데 꼭 죽은 사람들은 악독한 추장이거나 농부이고, 그들의 행위를 꼬집어 비판하기를 대놓고 하는데 자기 고향 사람들을 용병으로 돈 받고 팔아넘겼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그 당시의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이 간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 걔중에 참신한 생각도 있긴 하지만 - 언제까지 읽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이렇게 풍자기법으로 기득권자들을 대놓고 조롱하는 것을 보니까 이 책이 출판되었을 당시에 불티나게 팔렸던 것이 이해가 간다. 지금과는 접목이 되는 사건이 별로 없는 데다가 1780년에 발표된 작품이니만큼 시대적인 착오가 뭉텅뭉텅 눈에 띄는 터라 개연성이 너무 없는 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18세기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과히 나쁘진 않은 작품이다. 사실 개연성이 너무 없어서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던 탓에 썩 좋은 평가가 나오진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편파적이란 생각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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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 베이직 잉글리시 레벨 1 - 케로조의 영문법입문
이시자키 히데호 지음, 송상엽 옮김, Enjc 스터디 감수 / 랭컴(Lancom)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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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어려운 영문법 책은 가라~~! 이제, 백 투 더 베이직의 시대가 오리니....

 

앙증맞고도 실속있는 영어책이 나왔다. 바로 『백 투 더 베이직 잉글리시』시리즈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영어를 가르치던 강사가 학생들의 불만을 성심성의껏 받아들이면서 만들어낸 학생 눈높이에 맞춘 영어책이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담아내야 하기에 아직까지도 완성은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르치자, 모르겠다는 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상륙하게 된 것이다. 일어도 우리와 같은 어순으로 되어 있기에 아무래도 영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한국인들이 어려워하는 영어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고 할 수 있어 사실 받아보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던 책이다. 그런데 역시나~ 받아보니 그러한 기대가 무색할 만큼 너무나도 쉽고 너무나도 간단한 단어를 사용해서 영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려운 단어는 다 퇴출되고 쉽고 이해가 빠른 일상언어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특히나 영어책이니까 영어만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기 쉽상인데,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기 전에는 영어보단 우리말로 어순을 설명하는 것이 더 많이 나와 아주 편리하다. 특히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영문법 책보다 손쉽게 영어에 대한 재미를 붙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을 볼 때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우선 이해하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나선 암기해야 할 것이라고 나온 부분의 내용은 암기하면 되는데 먼저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암기하는데도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처음부터 암기할 것을 걱정하느라 신경쓰기보단 처음에는 찬찬히 훑어보면서 무슨 의미인지만 알아두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암기하도록 하면 되기에 확실히 다른 영어책으로 공부할 때보단 심적인 부담이 적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케로조’나 ‘폰타로’, 그 외 여러 동물들이 자유롭게 나와서 영어를 전달해주니, 어렵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긴 처음부터 워낙에 어려운 내용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의 기초답게 「레벨 1」에서는 주어가 뭔지, 동사가 뭔지, 보어가 무엇인지 우리말에서의 주어, 목적어, 동사, 보어 등의 역할부터 알려주기 시작하니까 영어의 구문보다 우리말을 더 먼저 자세히 이해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나니까 영어도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레벨 1」에서는 1, 2, 3형식 문장과 현재·과거·미래형의 문장을 알려주고 명사, 형용사, 조동사 등등의 기초 품사에 대해서 현재진행과 현재분사의 형용사적 용법 등을 간략하게 알려준다. 우리가 영문법 책에서 지긋지긋하게 봤던 관계대명사나 부정사의 부사적 용법 등은 「레벨 3」에서 나오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때까지는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니까 외우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니까.

 
사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합이 10년을 했다고는 하는데 이렇게 영어 앞에서만 서면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기까지 한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선 안되는 것인데, 이미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부끄럼을 가지고 있으니 영어 공부가 더 어려웠던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는 모든 자책과 후회를 내려놓고 이 책으로 오로지 영어 공부에만 집중한다면 이전보다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확신한다. 이제껏 많은 영어책을 접하진 못했지만 내가 접했던 영어책 중에서 이 책이야말로 영어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온 책이라고 말이다. 안 그랬다면 영어라면 십리라도 도망가는 우리 언니가 이렇게까지 이 책에 탐을 낼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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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종기 지음 / 책장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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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 책을 만난 건 즐겨 찾던 헌책방에서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와 함께였다. 다름없이 이 책이 더 솔깃했었지만, 원래 맛있는 것은 뒀다 아껴먹는 이상한 심보라 이 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를 이제서야 개봉했다. 아,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흥미진진한 고대사 탐험의 여정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일본, 중국, 저 멀리 인도에 다다르는 여정을 저자 이종기 선생은 그 까마득한 옛날인 1974년부터 다녀오셨다. 인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다른 경로를 통해 겨우 초청장을 발급받아 갔다오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감수하면서 절벽과 동굴과 산골짝이나 들판까지 고대사의 유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녀오셨다. 이 책은 이종기 선생의 사후 10주기(1929~1995)를 맞아 가락국 탐사 관련 유고를 정리한 것인데, 그전에 먼저 일본에서 1976년에 출판되었던 책이다. 그 당시 일본은 최초의 여왕국을 찾아내는 ‘히미코 열풍’이 몰아쳤던 때인지라 그의 책도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정상적으로 출판만 되었다면 말이다. 초판 1만부를 서점에 내놓았던 시점에 출판사에서 회사사정이라는 말로, 인세며 체류비, 그 외 제작비, 교정비, 기타 경비 등의 그 모든 결손을 감수하며 자진 회수했기 때문이다. 윗선에서 누군가 압력을 줬다고밖엔 표현하지 못하는 이 일은,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반증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엔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가야 공주가 일본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

 

우리의 빛나는 역사 중에서 대단한 세력을 규합하고 철 생산의 선봉을 맡아 주관했고 가락국이라고도 불리던 가야왕국을 기억할 것이다. 그 중 금관가야의  수로왕과 혼인한 허왕후 이야기를 아는가. 어떤 책에라도 빠짐없이 들어가있는 그 설화 같아 보이는 이야기, 인도에서 아유타국 공주가 배를 타고 와서 결국 수로왕과 혼인했다는 그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려있다. 어떠한 이야기가 전설이나 신화로 전해 2000년이 넘도록 내려오는 것은 그 이야기에 일말의 진실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군신화’를 우리가 그래로 믿지 않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의 이야기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그런 사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 전제에서라면 정말로 아유타국이라는 곳이 인도에 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수로왕과 혼인 약조를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만약 인도에 아유타국이 있었다면 허왕후가 정말 인도에서 온 공주이고 그녀와 수로왕이 혼인한 것도 사실로 봐야할 것이다. 정말 믿고 싶은 이유는 수로왕릉에 있는 납릉정문의 장식판의 그림이 인도의 문양과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런 문양인 활 모양, 코끼리, 물고기, 하얀 탑, 연꽃 한 송이가 그려진 문양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수로왕릉 옆에 서 있는 바사석탑도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재질로 된 납이나 은이 섞여있는 돌이었다는 것도 허왕후가 뱃길로 우리나라로 올 때 가벼운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돌을 나누어 실어 바닥짐으로 사용했던 돌일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불교사전》의 운허는 미지로 남아있는 ‘아유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중인도의 나라 이름. 아유차, 아유타라 음역, 또는 난승성, 불가전국이라 번역하며 인도 고대문명의 중심지. 부처님이 출현한 후에는 영지라 하여 여러 승도들이 모여 들던 곳. 현장의 《대당서역기》 제 5권에 있는 나라 이름. 곡녀성 남방, 항하 서안에 있는 나라. 범어로는 ‘아요디아’라 한 것을 한자음으로는 阿踰陀로 옮기기도 했다.」 또한 인도의 지도에서도 갠지스강 상류에 옛 이름 아요디아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아유타국이란 곳은 분명 존재하긴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인도에 가서 인도 고고연구청의 데세판테 박사에게 수로왕릉 정문에 세워진 장식판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활은 활의 명수였던 위대한 라마 왕을 상징하고 연꽃 봉오리 안쪽에 맞물려 그려진 문양은 코끼리 두 마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인도에는 강이 자주 범람했었는데 그 때 물고기가 자주 들어오는 터라 물고기가 집안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었단다. 그리고 허왕후가 가락국에 왔을 때 달았던 검붉은 깃발은 인도에서 축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니,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아요디아가 지금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변 문명권을 잇는 태양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태양을 따라 동진을 계속해 온 태양왕조의 후예들은 갠지스가 시작되는 아요디아에 불멸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인도인의 영원한 구주인 라마 왕도 그 후예의 한 사람인데 그들의 동진이 그곳에서 멈췄다는 근거는 없다고 하니, 그들의 후예가 동진이 일본까지도 갔을 것이라 추측해도 되지 않을까.

 

바로 그 인물이 히미코, 비미호, 모켄상으로 불리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가 아닐까. 바로 그러한 유흔들이 일본의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기서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의 동물로 알고 있었던 ‘갓파’가 바로 가락국, 그러니까 가야왕국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상상의 동물. 수륙 양편에 살며 머리에는 접시처럼 패인 요부가 있는데, 거기에 물이 있는 동안에는 힘이 세어 다른 동물을 수중으로 끌어넣는다고 한다. 그들은 오이를 즐겨 먹는다.」 비미호 여왕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쓰시로 주민들에게는 ‘갓파’가 ‘가랏파’로 불리는데 그 말 중 ‘ㅅ파’는 강하게 발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하니까 ‘가랏파’는 바로 가라국의 주민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미호 여왕이 가락국 사람 삼천명과 함께 왔던 것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아~~~ 이렇게 역사를 추적할 수 있구나. ‘갓파’들이 청했다고 하는 축제 이름도 ‘오래오래데라이다’라고 하는데 완전히 한국어가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와서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가락국 사람들이 떠오른다.

 

비미호 여왕은 일본에서 어떻게 세력을 잡았을까 생각해보면, 바로 가야왕국의 유명한 신소재, 철기가 떠오른다. 아마도 가야에서 가져온 철광석을 제련해서 만든 철기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철기는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그것도 저자는 찾아냈다. 시라누이 해안의 가장 깊숙한 곳 마쯔바시에서 동북쪽 내륙으로 가다보면 ‘쿠마노쇼’라는 옛 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궁원 미야바루를 발견하고 올라가보니 한 노인이 아난도상이 있는 동굴 하나를 알려주셨다. 그 동굴은 절벽을 끼고 있어서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 뿐이고, 연기를 뺄 수 있는 굴뚝도 있는데다가 안에 있는 인물상의 옷이 가락국의 의복이랑 흡사했던 사실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쇠덩어리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밀리에 제조했던 비미호 여왕의 제련소가 맞을 것이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가야공주는 분명 일본에서 첫 번째 일왕으로 군림했다.

 

물론 나중에 비미호 여왕이 다스린 시기가 지나가고 도리어 여왕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이름까지 바뀐 채로 이제까지 내려왔지만, 많은 유흔들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2,000년 전의 역사가 무슨 유익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그렇기에 후대인들로서 우리는 선대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할 의무가 있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역사는 정당한 외교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신 이종기 선생의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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