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 - 옛 지도에 담긴 중세인의 우주관
E. 에드슨.E. 새비지 스미스 지음, 이정아 옮김 / 이른아침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중세시대 우주관의 모든 것

 

중세 시대라고 하면 신의 지배 아래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이 부정되는 그런 암흑의 시대로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그것은 근대인의 오만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우주관을 이야기할 때면 심심치않게 대두되는 이야기가 중세인들은 지구를 평평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잘못 와전된 이야기일 뿐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플라톤이 이미 둥근 지구를 전제로 한 우주론을 주장했고, 철학자이자 가톨릭 수사였던 베이컨은 그의 저서에서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더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다’고도 적었다. 또한 가톨릭 사제였던 오렘 역시 그의 저서 첫머리에 ‘지구는 공처럼 둥글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중세 교회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고, 사람들에게 평평한 지구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중세인들은 평평한 지구를 믿었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어떻게해서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20세기의 잘난 근대인이었던 워싱턴 어빙이 콜럼버스의 전기를 쓰면서 중세인들이 지구가 평평해서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소설을 썼고, 우리 대다수가 이 허구를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중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식의 발로였지 않았을까.

 

중세인들이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구를 둥글다고는 생각했지만, 역시나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늘과 우주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중세의 우주는 “빛이 있으라”는 신의 한 마디로 탄생했으니, 오늘날의 신성함이 결여된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론과는 상당히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중세인들이 그린 세계지도나 지방별 지도에는 실제로는 찾을 수도, 혹은 있지도 않은 「에덴동산」이니 「알렉산더 대왕의 곡과 마곡을 가두어둔 벽」이니 하는 것들이 그려져있다. 전체적인 육지의 크기를 모르니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땅의 모습은 물론이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나 종족의 모습이 나타나있기도 한다. 또한 세심함이 요구되는 해양도에도 육지도와 마찬가지로 실제와는 다른 신학적, 철학적인 관념들이 많이 표시가 되어있는데, 그 당시의 지도가 실제로 사용되기보다는 집에서 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충분히 이해되어질 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중세인들에게 세계지도는 단순히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이 아니라 신이 친히 만들어놓으신 세계를 축소해놓은, 하나의 예배의 도구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중세 때의 이슬람 세계의 지도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슬람 세계와 중세 유럽은 서로 다른 문화적인 전통 위에서 성장했는데,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플라톤의 저작들은 직접 중세 유럽에 전해졌지만, 어찌된 일인지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먼저 이슬람 세계로 유입이 되었다가 12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유럽쪽으로 전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신론적인 사상이 중세 유럽 세계에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아예 전달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참 의아한 일이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에서는 신 중심적인 플라톤의 사상 대신에 체계적이고 학구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지도에 있어서도 실용적인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데 실용적인 목적에서 쓰이긴했던 이슬람의 지도에는 중세 유럽의 지도처럼 엉뚱하게 성경에 나온 장소가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지도이다 보니, 전체적인 육지의 모습이 왜곡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게 세계지도라고 할 수 없는 지도가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던 양쪽 세계의 지도가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는 부단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어 중세 유럽의 지도도 사실적인 모습을 드러내주기까지 이르렀다. 


마르코 폴로나 이븐 바투타 같은 세계를 여행한 상인, 여행가들이 점차 많아지고 그 경험이 지도에 반영되면서 지도는 점차적으로 실용적으로 변해갔다. 지금 보아도 깜짝 놀랄만큼 아름답고 자세하다. 하지만 근대의 지도가 아름답고 실용적이라고 해서 중세의 지도를 무시해선 안될 것이다. 이렇게 지도 산업이 발달하긴 위해서는 고대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에서부터 매튜 패리스, 베스콘테의 중세인들의 지식이 층층히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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