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종기 지음 / 책장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무대로 한반도 고대사의 원형 찾기

 

이 책을 만난 건 즐겨 찾던 헌책방에서 『잃어버린 왕국 대가야』와 함께였다. 다름없이 이 책이 더 솔깃했었지만, 원래 맛있는 것은 뒀다 아껴먹는 이상한 심보라 이 책,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를 이제서야 개봉했다. 아,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흥미진진한 고대사 탐험의 여정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일본, 중국, 저 멀리 인도에 다다르는 여정을 저자 이종기 선생은 그 까마득한 옛날인 1974년부터 다녀오셨다. 인도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다른 경로를 통해 겨우 초청장을 발급받아 갔다오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감수하면서 절벽과 동굴과 산골짝이나 들판까지 고대사의 유흔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녀오셨다. 이 책은 이종기 선생의 사후 10주기(1929~1995)를 맞아 가락국 탐사 관련 유고를 정리한 것인데, 그전에 먼저 일본에서 1976년에 출판되었던 책이다. 그 당시 일본은 최초의 여왕국을 찾아내는 ‘히미코 열풍’이 몰아쳤던 때인지라 그의 책도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정상적으로 출판만 되었다면 말이다. 초판 1만부를 서점에 내놓았던 시점에 출판사에서 회사사정이라는 말로, 인세며 체류비, 그 외 제작비, 교정비, 기타 경비 등의 그 모든 결손을 감수하며 자진 회수했기 때문이다. 윗선에서 누군가 압력을 줬다고밖엔 표현하지 못하는 이 일은,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반증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엔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가야 공주가 일본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

 

우리의 빛나는 역사 중에서 대단한 세력을 규합하고 철 생산의 선봉을 맡아 주관했고 가락국이라고도 불리던 가야왕국을 기억할 것이다. 그 중 금관가야의  수로왕과 혼인한 허왕후 이야기를 아는가. 어떤 책에라도 빠짐없이 들어가있는 그 설화 같아 보이는 이야기, 인도에서 아유타국 공주가 배를 타고 와서 결국 수로왕과 혼인했다는 그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실려있다. 어떠한 이야기가 전설이나 신화로 전해 2000년이 넘도록 내려오는 것은 그 이야기에 일말의 진실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군신화’를 우리가 그래로 믿지 않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의 이야기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도 그런 사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 전제에서라면 정말로 아유타국이라는 곳이 인도에 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수로왕과 혼인 약조를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 만약 인도에 아유타국이 있었다면 허왕후가 정말 인도에서 온 공주이고 그녀와 수로왕이 혼인한 것도 사실로 봐야할 것이다. 정말 믿고 싶은 이유는 수로왕릉에 있는 납릉정문의 장식판의 그림이 인도의 문양과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런 문양인 활 모양, 코끼리, 물고기, 하얀 탑, 연꽃 한 송이가 그려진 문양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수로왕릉 옆에 서 있는 바사석탑도 우리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재질로 된 납이나 은이 섞여있는 돌이었다는 것도 허왕후가 뱃길로 우리나라로 올 때 가벼운 배의 중심을 잡기 위해 돌을 나누어 실어 바닥짐으로 사용했던 돌일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불교사전》의 운허는 미지로 남아있는 ‘아유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중인도의 나라 이름. 아유차, 아유타라 음역, 또는 난승성, 불가전국이라 번역하며 인도 고대문명의 중심지. 부처님이 출현한 후에는 영지라 하여 여러 승도들이 모여 들던 곳. 현장의 《대당서역기》 제 5권에 있는 나라 이름. 곡녀성 남방, 항하 서안에 있는 나라. 범어로는 ‘아요디아’라 한 것을 한자음으로는 阿踰陀로 옮기기도 했다.」 또한 인도의 지도에서도 갠지스강 상류에 옛 이름 아요디아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아유타국이란 곳은 분명 존재하긴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인도에 가서 인도 고고연구청의 데세판테 박사에게 수로왕릉 정문에 세워진 장식판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활은 활의 명수였던 위대한 라마 왕을 상징하고 연꽃 봉오리 안쪽에 맞물려 그려진 문양은 코끼리 두 마리를 나타낸다고 한다. 인도에는 강이 자주 범람했었는데 그 때 물고기가 자주 들어오는 터라 물고기가 집안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었단다. 그리고 허왕후가 가락국에 왔을 때 달았던 검붉은 깃발은 인도에서 축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니,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아요디아가 지금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변 문명권을 잇는 태양신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태양을 따라 동진을 계속해 온 태양왕조의 후예들은 갠지스가 시작되는 아요디아에 불멸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인도인의 영원한 구주인 라마 왕도 그 후예의 한 사람인데 그들의 동진이 그곳에서 멈췄다는 근거는 없다고 하니, 그들의 후예가 동진이 일본까지도 갔을 것이라 추측해도 되지 않을까.

 

바로 그 인물이 히미코, 비미호, 모켄상으로 불리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가 아닐까. 바로 그러한 유흔들이 일본의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기서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의 동물로 알고 있었던 ‘갓파’가 바로 가락국, 그러니까 가야왕국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상상의 동물. 수륙 양편에 살며 머리에는 접시처럼 패인 요부가 있는데, 거기에 물이 있는 동안에는 힘이 세어 다른 동물을 수중으로 끌어넣는다고 한다. 그들은 오이를 즐겨 먹는다.」 비미호 여왕의 무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쓰시로 주민들에게는 ‘갓파’가 ‘가랏파’로 불리는데 그 말 중 ‘ㅅ파’는 강하게 발음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하니까 ‘가랏파’는 바로 가라국의 주민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미호 여왕이 가락국 사람 삼천명과 함께 왔던 것을 ‘갓파’라는 상상의 동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아~~~ 이렇게 역사를 추적할 수 있구나. ‘갓파’들이 청했다고 하는 축제 이름도 ‘오래오래데라이다’라고 하는데 완전히 한국어가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와서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가락국 사람들이 떠오른다.

 

비미호 여왕은 일본에서 어떻게 세력을 잡았을까 생각해보면, 바로 가야왕국의 유명한 신소재, 철기가 떠오른다. 아마도 가야에서 가져온 철광석을 제련해서 만든 철기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철기는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그것도 저자는 찾아냈다. 시라누이 해안의 가장 깊숙한 곳 마쯔바시에서 동북쪽 내륙으로 가다보면 ‘쿠마노쇼’라는 옛 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궁원 미야바루를 발견하고 올라가보니 한 노인이 아난도상이 있는 동굴 하나를 알려주셨다. 그 동굴은 절벽을 끼고 있어서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 뿐이고, 연기를 뺄 수 있는 굴뚝도 있는데다가 안에 있는 인물상의 옷이 가락국의 의복이랑 흡사했던 사실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쇠덩어리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곳이 비밀리에 제조했던 비미호 여왕의 제련소가 맞을 것이다.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가야공주는 분명 일본에서 첫 번째 일왕으로 군림했다.

 

물론 나중에 비미호 여왕이 다스린 시기가 지나가고 도리어 여왕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이름까지 바뀐 채로 이제까지 내려왔지만, 많은 유흔들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2,000년 전의 역사가 무슨 유익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그렇기에 후대인들로서 우리는 선대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전할 의무가 있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역사는 정당한 외교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하신 이종기 선생의 말씀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