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킹 IDEA 쏘스북
김재헌 지음 / 두앤비컨텐츠(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영어를 못해서 할말이 없는 건지... 할말이 없어서 영어를 못하는 것인지... 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것 같아진다. 그저 영어를 못한다는...말 하나로 통일하고 싶은데... 이 책은 영어를 그다지 못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 단어를 배열해서 전달해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나타났다. 8년 동안 유년기를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국가에서 보낸 저자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가슴으로 이해했기에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영어를 접한 사람들의 고민을 충분히 해결해줄 만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슈들은 우리가 한 번쯤은 친구랑 또는 지인이랑 잡담처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스피킹 시험을 위한 입시책이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서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될 것이다. 그리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도 충분히 볼 정도의 수준이기에 그다지 어렵거나 하지 않다.

 

두 파트로 나뉘는데, 하나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을 엮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찬성과 반대로 나올 수 있는 질문을 엮어냈다. 이를테면, 전자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처럼 수다, 독서나 운동 등의 여러가지의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고, 후자는 「게이 결혼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와 같이 찬성과 반대가 뚜렷하게 구분지어질 수 있는 질문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읽다가 보니 간혹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질문, 즉 별로 궁금하지 않은 질문들도 있어서 먼저 읽고 싶고 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질문을 먼저 보기도 했다. 안그래도 영어가 그리 쉽게 느껴지지 않는데 뻔한 대답이 나올 만한 질문은 영어공부하는데 적절한 자극을 주지 못했기에 어디까지나 즐겁고 흥미로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그러니까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왜 그럴까?」와 같은 질문은 너무 뻔해서 그냥 훑어만 봤고, 「소비자들이 명품에 끌려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심리는 뭘까?」와 같은 질문은 내심 파고들면서 볼 수 있었다. 특히 두 번째 질문은 평소에 생각해왔던 내 생각과 비교해볼 수 있었기에 더 즐거운 공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견이나 영어 표현도 새롭게 알아가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내가 관심있었던 질문들이나 시사적인 질문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흥미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서 궁금증이 들면 어렵지 않게 책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좋았던 점이 또 하나 더 있다. 우선 하나의 질문이 나오고 나서 예시 문장을 한국어와 영어로 같이 나오고 바로 밑에서 몇 가지 구문을 가려두고 다시 생각해보게 하고는 다른 의견이 몇 가지 더 나오고, 마지막에 「1분 스피치」라고 해서 제대로 된 한 문단의 글을 예시해준다. 그런데 내가 좋았던 점은 여기에 있다. 앞서 예시로 나왔던 표현과 다르게 「1분 스피치」에서는 뜻은 같지만 다른 표현을 많이 들어주었던 점이다. 실제로 말을 하다가 보면, 같은 단어를 계속 쓰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영어가 짧은 사람에게는 뜻은 같지만 다른 표현을 순간적으로 찾아내기가 어렵다. 사실 영어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당혹스러운데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알아서 반복적으로 다른 표현을 들어준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란 질문에서 ‘친구랑 만나서’란 표현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get together 로 또 한 번은 hook up 로 다르게 표현해준 것은 정말 세심한 마음씀씀이라고 생각된다. 영어를 외국어로만 접하는 사람들이 영어로 말을 할 때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주었다고나 할까. 그 외에도 매번 동의표현이 나오니까 읽으면서 중얼거리면서 저절로 익힐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 말을 어떻게 순서를 나열해야 하는지, 이럴 땐 어떤 숙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해서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해둔 여러 숙어와 다양한 표현들을 끄집어 낸다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영어는 저멀리에 있지만 이 책으로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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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터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존 칼린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 빅터스!!

 

넬슨 만델라, 그 위대한 이름... 이 소설을 보면 '만델라'라는 이름을 예사로 보아 넘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델라가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정말로 인간 안에 숨겨져 있는 숭고함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가장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면은 있다고 했던가. 감옥 밖의 세상에서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남아공을 통치한 막강한 백인의 지지자, P. W. 보타 대통령이 1985년 중반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남아공 방위군 3만 5천 명에게 흑인지구로 밀고 들어가라고 했던 그 시점에서, P. W. 보타 대통령은 감옥을 관리 감독하는 교정부와 법무부를 함께 책임지는 쿠치에에게 ANC(아프리카민족회의)의 수장인 만델라를 비밀리에 만나고 오라고 했다. 서로 극악무도한 적이라고만 믿고 있던 ANC와 아프리카너(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덜란드계 백인)의 만남이 비밀스런 만남이었다. 이것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감옥 밖 세상은 더 미쳐날 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만났던 것이 만델라가 수술을 하러 병원에 잠깐 와 있던 때였다. 감옥이 아닌 곳에서 만나기 위해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얼마나 떨렸을까, 또한 얼마나 극적이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진다. 그들은 과연 그 자신이 20세기의 역사를 바꾼다는 것을 의식했을까.

 

두렵던 첫만남을 마치고 쿠치에는 무얼 느꼈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국가정보국장 닐 바르나드와의 만남...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법률로 악명을 떨친 P. W. 보타 대통령까지 그 만남이 이어진 것을 본다면 분명 그 쿠치에로부터 시작한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첫만남에서 모두들 만델라를 아주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기분이 느껴졌다고. 그것은 감옥에 있으면서 아프리카너 언어와 역사를 배우려고 노력했던 만델라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말이 되겠다. 적을 사로잡는 기술은 폭력이 아니라 오로지 대화와 존중과 배려 뿐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과거 폭력의 선두에 섰던 만델라는 감옥의 시간을 그렇게 포용과 화합의 시간으로 바꾸어냈다. 그 결과 몇 년 간의 비밀 만남 이후 1990년 2월 11일,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머물렀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임기가 다 되어 화합을 이루어낸 그 모든 영광을 P. W. 보타 대통령의 뒤를 이은 F. W. 데클레르크 대통령에게로 돌아갔지만(1993년 넬슨 만델라와 F. W.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일단 그 첫발을 내딛었던 사람은 넬슨 만델라와 P. W. 보타이다. 흑인과 백인 모두 인종에 따라 열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살아온 환경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것. 만약 흑인이 백인을 지배했었더라면, 역사가 다르게 흘러가서 그러했더라면 이제까지 극악한 환경에 흑인을 가두었던 것만큼 흑인도 백인을 그렇게 대우했을 것이다.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른채 그렇게ㅡ. 그것을 알았기에 만델라는 자신을 감옥에 가둔 저 반대편을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델라가 감옥을 나와서도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백인 아프리카너측은 그들대로 자신의 특혜가 보장받지 못할까봐 우려하고, 흑인은 흑인대로 과단성있고 보복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우려를 했다. 게다가 총선거, 흑인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하는 총선거를 앞두고 내전의 기운이 감돌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만델라 다음으로 흑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지도자인 크리스 하니의 암살사건이 일어난 것!! 어쩌면 사상 최악의 내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 만델라의 호소가 전국민들에게 방영이 되었다. 흑인지도자가 공영방송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전세는 만델라 쪽으로 기울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어쨌든 만델라는 마음은 아프지만 이런 일로 내란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아픔과 갈등을 폭력으로 풀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선 하니를 죽인 암살범을 신고한 한 아프리카너 백인 여성을 칭찬하는 연설로 모든 아프리카너의 마음을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그 때 만델라가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남아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루어진 만델라와 민중전선의 대표 콘스탄드 필옌 장군과의 비밀 회담이 이루어졌고, 서로를 인정하진 못해도 그래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어 결국 총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그 결과,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고 남아공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항상 흑인들을 예의주시하는 백인들의 숨죽인 시선들을 자유롭게 해주려면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럭비였다. 아프리카너라면 생명 같이 여기는 럭비 월드컵을 14년만에 남아공에서 치를 수 있도록 유치하는 것, 그것으로 민족적 분열을 해결하고자 했다. 스포츠에는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만델라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이었다. 그래서 14년만에 국제무대에 나간 남아공의 스프링복스팀이 세계 최강인 뉴질랜드의 올 블랙스 팀을 누르고 우승을 하면 남아공의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남아공을 응원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백인들의 압제의 상징인 '스프링복스'의 팀명과 유니폼 색깔을 그대로 둠으로써 백인들에게 그들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스프링복스 팀은 국가로 채택된 두 곡 중에서 흑인들의 민중가인 <응코시 시키렐레>를 배워서 따라부르는 노력을 통해 한 나라임을 일깨우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믿기 힘든 장면이었을 것이다. <응코시 시키렐레>를 부르면서 치유되는 마음과 우리는 하나라는 화합이 생겼다는 것을... 눈물이 울컥 솟아나는 그 감동을... 그 결과는 다들 알 것이다. 극적인 기적의 순간!!! 결단코 인간의 힘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났다. 어떤 스포츠 중계인의 말처럼 "주님이 하시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그런 일" 바로 그런 일이 남아공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그들이 한 나라로 태어난 것이다.

 

다 읽고서도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과연 이것이 인간이 해낸 일인지 의아한 기분이 들 만큼..!! 아마 영화로 봐도 대단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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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의 비밀
댄 버스틴.아르네 드 케이저 지음, 김홍래.황혜숙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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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스트 심벌의 비밀 : 원작보다 충격적인 또 하나의 원작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정말 유례없는 베스트셀러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소설의 가장 큰 특권인 허구성을 마구마구 사용해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던 점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다지 곱게 보이진 않았다. 좀 더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보면서 가치관의 혼란이라도 일으킬까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소설에 그다지 관심이 두지 않았던 것은 댄 브라운의 소설이 내겐 시시껄렁한 삼류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탓이다. 남의 중병보다 제 고뿔이 더 중하다고 내게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은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은 맘은 없었다. 내가 믿는 기독교에선 절대 있을리 없는, 입 열어봐야 입만 아픈 거짓말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책이 사실은 『성혈과 성배』라는 소설에서 상당 부분 이상을 베껴와서 그것을 댄 브라운이 흥미롭게 꾸며낸 것이란 것과,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원저자가 댄 브라운을 고소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흥미로운 소재를 상당 부분 따와서 제 소설인 양 펴낸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지만, 예전에 나왔던 주목받지 못했던 소설의 부분을 따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만 놓고 본다면 댄 브라운이란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책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보고 한눈에 반해 저자가 사용한 여러 사상들이나 단체들에 대해서 연구해서 『다빈치 코드의 비밀』이란 책을 펴낸 댄 버스틴의 책으로, 작년에 나온 『로스트 심벌』에 대한 해설서이다. 소설 『로스트 심벌』이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를 함의하고 있기에 이 책에서 펜대를 잡은 사람들의 분야도 상당히 다양한데, 역사학자, 종교이론가, 과학자, 철학자, 기호학자, 암호 전문가, 미술사가 등이 참여해주었다. 그들 중에는 소설 『로스트 심벌』의 근본 배경 사상인 프리메이슨에 대해서 말해줄 프리메이슨들도 있었다. 실제 프리메이슨이 알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쉽게 이해가 되었고 쓸데없이 무지에서 오는 불안이 덜 생겼다. 사실  『다빈치 코드』를 보면서 템플기사단이니 장미기사단, 시온수도회 등의 이름모를 여러 단체들을 우후죽순 쏟아져나오니까 무슨 목적을 위해 만든 단체인가 싶어서 불안스럽기도 하고 음모론의 냄새가 나기도 해서 그다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였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부분에 프리메이슨에 대해 설명나온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반프리메이슨 입장에서처럼, 프리메이슨이 이 세계를 정복하려고 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 공동체의 목적인 '모든 인간 안에 잠재된 신성한 가능성을 찬미하게 만든다'는 것이 왠지 하나님께 반기를 드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히 거슬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거대한 책이 쉽게 읽히지 않았는가 모르겠다.

 

프리메이슨이란 단체가 다양한 종교의 전통을 인정해서 지구촌에 사는 하나의 형제로서 우애를 다지고 그 안에서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목적을 가지는 것은 얼핏 들으면 거슬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더 칭찬받아야 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제 형제에게 총을 겨누는 팔레스타인만 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기독교에서 이단이라고 규정한 영지주의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했을 무렵, 사도 베드로가 편지를 보냈을 무렵에 한창 영지주의가 판을 쳤었다. 육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같이 부인하는 영지주의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였다. 그럼에도 프리메이슨은 그러한 종교의 가르침도 받아들일 만한 좋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영지주의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카발라, 이슬람교나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그리고 기독교나 수많은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말씀과 지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 프리메이슨이란 단체이다. 신과 믿음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거부하고, 일반화된 신의 개념을 인정하는 철학적 사상의 집합체이자 관용, 수많은 종교적 전통에 대한 존중, 믿음의 다양성과, 도덕성, 진보, 개인적 발전, 지적 계몽, 공산주의적 가치를 강조하지만 특정 종교적 신념을 강조하기는 않는 것이 프리메이슨이라 회원끼리도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는 토론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면서 곁들이는 말이 기독교는 프리메이슨과 모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의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16세기 때부터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결단코 진리가 아니다. 어쨌거나 이번에 나온 댄 브라운의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프리메이슨에 대한 찬양이다. 미국의 건국시기부터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숨겨진 많은 흥미로운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들이 드러나기에 이 책을 들고, 또한 『로스트 심벌』을 들고 워싱턴에 관광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대충 읽으면 그저 암호를 푸어가는 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소설로, 깊게 읽으면 고대 수수께끼가 암호화되어 있는 신비한 소설로 이해되어질 『로스트 심벌』 옆에는 아마도 이 책이 있어야 그 깊이가 제대로 나타날 게다. 그 내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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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60분 부모 : 성장 발달 편
EBS 60분 부모 제작팀 지음. 김수연 책임감수 / 지식채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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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육아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져 육아에 대한 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라 육아에 대한 여러 진리는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다. 그 중 영유아들에게는 육아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저 한 번의 끄덕거림으로 동의를 하고 마는 것이 태반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서구에 알려지기까지는 고작 10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양육지침들이 난무하다 보니까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독이 되기도 한다. 정보가 너무 많아 한 가지 양육방침을 정하기가 어렵고,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해 아이가 돌출행동이라도 보일라치면 '이렇게 정보가 많은 세상에서 엄마는 뭐하나~' 식의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이 엄마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엄마'가 가장 중요한 양육환경인 것은 맞지만, 양육환경엔 '엄마'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엄마'인 아빠는 당연하고 친정 부모님과 시댁 부모님도 물론 포함되고 마지막엔 사회까지도 그 중요한 양육환경에 속한다. 즉 엄마가 편안한 마음과 안정된 체력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아빠와 양가 부모님과 사회는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가 신경쓸 필요도 없이 대가족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시부모님과 시댁 식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아이가 잘못될 이유도 없고 혹여 잘못 키워지더라도 그 비난이 엄마에게만 편중될 위험을 막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사회'도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게 선진국만큼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EBS팀이 나선 것이다. 일요일 오전 10시마다 방영하는 「EBS 60분 부모」가 바로 그 대안이다. 다양한 사례를 가진 엄마와 아이들이 직접 출연하여 토로하는 고충을,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많은 새내기 엄마들과 아빠들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그 시간에 TV를 시청할 여건이 되지 않는 많은 새내기 부모들을 위해 이렇게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다. 책이니만큼 좀 더 체계적으로 다듬고 더 넣을 것은 넣고 해서 아주 예쁘게 나왔다. 처음에 이 표지가 어쩐지 세련되지 못하다고 구박을 했었던 나는, 보면 볼수록 애착이 가고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유용하고 착한 명해설이 나오니 구박했던 표지조차도 너무 사랑스러워만 보인다. 표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처음엔 『아이의 사생활』보다는 촌스럽다고 느낀 것이 사실이다. 그 책은 연령대는 다르지만 어쨌든 양육에 대한 내용이라 세련되고 아름답던 표지인 것이 이 책이랑 비교는 되었었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기만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스스로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맞벌이 하는 엄마들은 더욱 그러한데, 그런 자신없음과 죄의식은 양육기술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말 못하는 아이일수록 본능적인 감은 아주 강하기 마련이라, 자신의 생존을 쥐고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죄의식에 사로잡혀있다거나 불안해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성장을 제쳐두고 엄마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도 반응하지 않고 옹알이도 하지 않고 엄마 곁에만 붙어 않으니 아이의 행동 발달이나 언어 발달이 늦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엄마는 언제나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할 것이고,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기운을 북돋워주고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아이에게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이 더 나은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만드는 길이다. 그리고 아이를 잘 관찰해서 혹여 자신의 이상한 버릇이나 잘못된 행동을 따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가며, 좀 더 좋은 부모, 좀 더 행복한 인간이 되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엄마 그 스스로가 행복하고 안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배울 테니까 말이다.

 



 

이 책에는 아이들의 발달이 지체될 때마다 불안해하는 엄마들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세심하게 관찰해서 아이가 늦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우선 너무 걱정하지 않는 마음을 먹는 것도 필요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36개월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다가 다다닥하고 쏟아내는 아이도 있고, 걷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18개월이 되도록 하지 않다가 한 번에 우뚝 서서 걸어다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아이가 완벽하게 해내려는 기질이 있을 경우에, 특히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너무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그 시기만 지나면 눈 녹듯 사라져버릴 그런 고민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양육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고 참고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도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양육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아니 자신의 맘에만 안 차게 하면 너무 화를 내며 때리는 경우도 사실은 아이가 자기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좋은 양육자란 조금은 한 발자국 물러서서 자신의 아이가 어떤 기질을 타고 났는지, 어떤 성격의 아이일지를 파악하고 그 중 부정적인 부분을 긍정적으로 고쳐주는 것에만 손길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까 자식은 내가 못 다한 삶을 대신 살아주는 내 분신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나와는 별개의 인격체임을 인식만 한다면 양육하는 데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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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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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이야기....그것도 백혈병으로....

책의 중간 중간을 보면서 휴지에 팽 코를 풀어가며 읽어가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또 후드득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게 어젯밤과 오늘 아침 일이다. 보통은 밤늦게 책을 읽으면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점심 때에서야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의 눈물 바람에 눈이 부은 탓에 저절로 깰 순 없었지만 동생의 방문을 받으며 맛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일찍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젯밤에 너무 늦게 자 몸을 상하게 할까봐 방에 들어와 불을 딱 끄고 가신 엄마 덕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전혀 관심도 없는 채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로 나만의 고치에 틀어박혀 있었던 하루하루였다.

 

아,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오늘은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리도 원하고 바랐던 그 하루인 것을ㅡ.

 

스무 살의 나이로, 2년 4개월 간의 백혈병 투병 시간을 견디고 하늘나라로 떠난 서연 양을 바라보며 나는 감탄에, 또 감탄을 거듭했다.

아직은 엄마가 되어 보지 않아서 딸을 먼저 보낸 그 아픔을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남겨진 자의 슬픔보다는 백혈병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당사자의 아픔과 인내와 마음가짐이 나에겐 더욱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험하지 않은 그 어떤 감정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냉소적인 내겐 애끓는 엄마의 심정을 상상해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본 서연이는 좀 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위 말하는 모범생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과 다른 부류에 대해서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그녀는 천성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서연이를 보내고 나서도 훨씬 나중에 그의 엄마가 했던 자기합리화 비슷한 말이 생각난다. 서연이 세상에 베풀어야 할 사랑의 몫이 다했기 때문에 스무 살까지가 서연이에게 허락된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그 말도 안되지만 왠지 수긍하게 되는 말이ㅡ.

 

100년도 넘는 전통을 가진 자신의 학교를 자랑스러워 하면서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했던 천상 범생이 서연은 자신을 위해, 학생인 신분을 위해, 반장으로서 자기 학급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녔다. 학교에서 집으로, 또다시 학원과 독서실로 바쁘게 공부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했던 맑고 맑은 서연이였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뿐만 아니라 생전 출석 한 번 하지 않았던 교회 목사님까지도 서연이 이야기를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전해들었을 정도로 자신의 삶에 한 치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 때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생생하다.

 


   서연이가 그동안 어른보다도 더 잘 살았더군요.

 

한 번은 학원을 빠지고 엄마랑 대판 싸웠었는데, 그 이유가 소위 말하는 문제아 같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고선 엄마는 더 화가 났다. 평소에 약게 행동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고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에게, 특히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서연이가 못내 불안했던 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서연의 말은 당당하다. 

 


   걔 행동은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마음까지 잘못된 그런 애 아니야. 걘 나한테 먼저 다가와서 자기 얘길 다 했어. 부모님 이혼하고 자기가 동생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것까지. 그런 얘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먼저 털어놓는 거 쉬운 일 아니거든. 그건 나한테 기대고 싶다는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먼전 연 친구, 내가 챙겨주고 위로해주고 얘기 들어주고, 그게 뭐가 나빠? (...) 엄마는 도대체 글을 쓴다는 사람이 왜 그래? 이런 애, 저런 애, 사람을 겉만 보고 분류나 하고.

 

18년밖에 살지 않은 서연이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성숙하기보단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길 바랐던 자신의 허위가 들통났음에 당황했다. 그러면서 반성했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딸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많은 추악한 것을 듣고 보고 깨닫기보다는 그저 밝고 맑고 사랑스럽게만 살아주기 바랐던 것은 한낱 미련스런 꿈이었음을 말이다. 그렇게 자식이면서도 먼저 이끌어주고 웃어주고 인내하는 딸을 가진 저자로서는 이 병이 형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자신이 자기의 꿈을 위해 달려가느라고 가정에, 자식에게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하는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형벌 같은 일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평소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던 청소나 빨래, 식사준비가 이제 살균 소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서연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리자, 그 허드렛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 중에는 쓸모없는 일은 없다.

 

하물며 생명을 말해 무엇하랴.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태어난 것은 없다. 누구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투병실에서, 무균실에서 지옥 같은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을 수많은 암환자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고 그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 면역력이 0인 상태까지 가는 백혈병 환자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뇌막염이나 위암으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 보면 인간의 삶은 너무도 허무하고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진리가 너무도 많다. 그저 단순히 보이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선 안 되는 것이다. 서연은 그렇게 갔다. 수차례 골수 이식을 하고도 몸에서 암이 제거되지가 않아 나중에는 아무런 처치도 못한 채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찌보면 하나님을 원망해도 될 법한 상황으로 보인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아이를 왜 데려가시냐고 그렇게 어미 가슴에 못을 박아야 되겠느냐고 울부짖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시지 않았던가. 그 분은.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인해 하늘나라에 좀 더 일찍 데려가신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에 따르는 고통도 당연히 서연과 그의 가족,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그 고통 속에는 인내와 단련과 가족의 화합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대가로 주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을 읽었던 나처럼 이 책을 읽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무언가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ㅡ. 우리도, 그러니까 당신도, 또한 나도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앞에 마주할 죽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연처럼 “어른보다 더 잘 살았네요.”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과연? 기억하자, 오늘은 어제 죽었던 그 사람이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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