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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의 이야기....그것도 백혈병으로....
책의 중간 중간을 보면서 휴지에 팽 코를 풀어가며 읽어가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또 후드득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게 어젯밤과 오늘 아침 일이다. 보통은 밤늦게 책을 읽으면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점심 때에서야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의 눈물 바람에 눈이 부은 탓에 저절로 깰 순 없었지만 동생의 방문을 받으며 맛난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일찍 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젯밤에 너무 늦게 자 몸을 상하게 할까봐 방에 들어와 불을 딱 끄고 가신 엄마 덕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전혀 관심도 없는 채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로 나만의 고치에 틀어박혀 있었던 하루하루였다.
아,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오늘은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리도 원하고 바랐던 그 하루인 것을ㅡ.
스무 살의 나이로, 2년 4개월 간의 백혈병 투병 시간을 견디고 하늘나라로 떠난 서연 양을 바라보며 나는 감탄에, 또 감탄을 거듭했다.
아직은 엄마가 되어 보지 않아서 딸을 먼저 보낸 그 아픔을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남겨진 자의 슬픔보다는 백혈병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당사자의 아픔과 인내와 마음가짐이 나에겐 더욱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험하지 않은 그 어떤 감정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냉소적인 내겐 애끓는 엄마의 심정을 상상해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본 서연이는 좀 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위 말하는 모범생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과 다른 부류에 대해서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그녀는 천성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서연이를 보내고 나서도 훨씬 나중에 그의 엄마가 했던 자기합리화 비슷한 말이 생각난다. 서연이 세상에 베풀어야 할 사랑의 몫이 다했기 때문에 스무 살까지가 서연이에게 허락된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그 말도 안되지만 왠지 수긍하게 되는 말이ㅡ.
100년도 넘는 전통을 가진 자신의 학교를 자랑스러워 하면서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했던 천상 범생이 서연은 자신을 위해, 학생인 신분을 위해, 반장으로서 자기 학급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녔다. 학교에서 집으로, 또다시 학원과 독서실로 바쁘게 공부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했던 맑고 맑은 서연이였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뿐만 아니라 생전 출석 한 번 하지 않았던 교회 목사님까지도 서연이 이야기를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전해들었을 정도로 자신의 삶에 한 치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 때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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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가 그동안 어른보다도 더 잘 살았더군요. |
한 번은 학원을 빠지고 엄마랑 대판 싸웠었는데, 그 이유가 소위 말하는 문제아 같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고선 엄마는 더 화가 났다. 평소에 약게 행동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고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에게, 특히 학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서연이가 못내 불안했던 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서연의 말은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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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 행동은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마음까지 잘못된 그런 애 아니야. 걘 나한테 먼저 다가와서 자기 얘길 다 했어. 부모님 이혼하고 자기가 동생 데리고 혼자 살고 있는 것까지. 그런 얘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먼저 털어놓는 거 쉬운 일 아니거든. 그건 나한테 기대고 싶다는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먼전 연 친구, 내가 챙겨주고 위로해주고 얘기 들어주고, 그게 뭐가 나빠? (...) 엄마는 도대체 글을 쓴다는 사람이 왜 그래? 이런 애, 저런 애, 사람을 겉만 보고 분류나 하고. |
18년밖에 살지 않은 서연이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성숙하기보단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길 바랐던 자신의 허위가 들통났음에 당황했다. 그러면서 반성했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딸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많은 추악한 것을 듣고 보고 깨닫기보다는 그저 밝고 맑고 사랑스럽게만 살아주기 바랐던 것은 한낱 미련스런 꿈이었음을 말이다. 그렇게 자식이면서도 먼저 이끌어주고 웃어주고 인내하는 딸을 가진 저자로서는 이 병이 형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자신이 자기의 꿈을 위해 달려가느라고 가정에, 자식에게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하는 죄책감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형벌 같은 일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평소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던 청소나 빨래, 식사준비가 이제 살균 소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서연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되어버리자, 그 허드렛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는 일 중에는 쓸모없는 일은 없다.
하물며 생명을 말해 무엇하랴.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태어난 것은 없다. 누구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투병실에서, 무균실에서 지옥 같은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을 수많은 암환자들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고 그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 면역력이 0인 상태까지 가는 백혈병 환자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뇌막염이나 위암으로 사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 보면 인간의 삶은 너무도 허무하고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진리가 너무도 많다. 그저 단순히 보이는 것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선 안 되는 것이다. 서연은 그렇게 갔다. 수차례 골수 이식을 하고도 몸에서 암이 제거되지가 않아 나중에는 아무런 처치도 못한 채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어찌보면 하나님을 원망해도 될 법한 상황으로 보인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아이를 왜 데려가시냐고 그렇게 어미 가슴에 못을 박아야 되겠느냐고 울부짖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시지 않았던가. 그 분은.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인해 하늘나라에 좀 더 일찍 데려가신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에 따르는 고통도 당연히 서연과 그의 가족,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 뿐이다. 그 고통 속에는 인내와 단련과 가족의 화합과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대가로 주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 책을 읽었던 나처럼 이 책을 읽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무언가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ㅡ. 우리도, 그러니까 당신도, 또한 나도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앞에 마주할 죽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서연처럼 “어른보다 더 잘 살았네요.”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과연? 기억하자, 오늘은 어제 죽었던 그 사람이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