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김규항.지승호 지음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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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진보와 영성

 

이제껏 진보니, 보수니, 개혁이니 하는, 어쩌면 운동권 구세대들의 유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 어휘들을 거의 접한 적이 없었다. 얼마나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으면 ‘반동’이란 단어가 이해되지 않아서 사전을 찾아보기까지 했겠나. 어떤 문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또 어떤 문장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아예 포스트 잇을 붙여놓고 사전에서 찾아 뜻풀이를 달아두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보면서 사전을 이용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간혹 사전을 찾게 하는 사회 관련 책들이 언제나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무언가를 향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탓인지, 이런 책을 만나면 항상 즐겁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내용 자체가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것이라 신선하고, 의식을 깨는 강렬하고도 위급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보니 배우기에도 즐겁다. 책을 읽을 때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동력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려줄 때가 아닌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입 아프게 늘려서 중복하는 책만큼 지루한 것은 없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절대 지루할 일이 없을 것이다.

 

지승호 씨가 질문을 하시고 어떤 인물이 나와 대답을 하는 식의 인터뷰를 모은 책은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박원순 변호사를 인터뷰한 희망을 심다를 보곤, 많은 것을 느꼈는데 이번에도 좋은 책을 보게 되어 기뻤다. 더 기뻤던 것은 이번에 본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란 책으로 인권 변호사로 유명하고 존경을 받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를 비판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시민이나 진중권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경할 만한 분들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새롭게 느껴졌다. 사실 그분들의 행보는 대중에게 꽤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는 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새로웠고, 그분들을 비판하는 데 들이댔던 처음 들어보는 잣대를 알게 된 것도 좋았다. 막말로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절대 악은 아니지 않는가. 그 분들의 인격에 대해 뭐라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들의 행보가 진보의 입장에서는 좌시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니까. 사실 읽으면서 가장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진보의 입장에서 여러 개혁 세력들이 등장하면 대중들은 신자유주의가 어느 정도는 살만한 사조이구나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진보를 가로막는 역할을 개혁 세력이 톡톡히 해내고 있다니, 정말 새로운 관점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니 아예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촛불시위를 보면서 우리 민중의 시민 의식이 저렇게 성숙했구나 감탄도 한 반면 나는 내 생활이 바빠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촛불시위의 이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찬찬히 돌아보니까 같은 현상을 두고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민중이 그렇게 높은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좋지도, 싫지도 않다. 좀 알았다면 인간적으로는 깊이 교류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이렇다 할 의견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기에 이 책은 사회에 대해 이렇게 무지한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교본이 될 듯 하다. 내가 아무것도 몰라 수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규항 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조금은 알겠으니 말이다. 옛날 운동권 세력은 뭔가 무섭다 생각했다.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진 않지만 잡으러 다니고 쫓기고 하는 삶이 너무 힘겨워보였으니까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자기의 왕년 행적으로 드러내놓고 자랑하면서 지금은 그저 자유주의가 좋사옵니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건 뭔가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과거 386세대가 화염병 던지며 외쳤던 구호는 한낱 구호일 뿐이고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악랄하게 아르바이트생을 착취한다니 진정 부끄럽지 않을까.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사교육에 바람이 불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부르짖어놓고선 집에다 전화해서는 아이에게 학원은 빼먹지 말고 갔다왔냐고 말하는 인사들은 또 어디 누군가.

 

또한 신기할 만큼 새로웠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것만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개혁 세력들이 그런 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진보세력마저 그런 식으로 한다면 그렇게 비판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저항한 것을 착각할 수 있게 되기에 금물이라는 것이다. 입이 근질하지만 무턱대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반동으로 갈 수 있는 세력을 하나씩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도 좋고, 촛불 시위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이런 행동이 단지 감정에 휘말려서 진행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당시에는 얼마나 비판이 거셌나. 그런데 자살하셨다고 해서 그의 모든 잘못을 감싸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중에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적도 꼼꼼하게 평가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진보다. 그런데 한 가지 빼놓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신자유주의라는 것!!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려는 세력은 보수 세력, 그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진보 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들은 바가 있어서 ‘진보’라고 하면 ‘빨갱이’가 연상되어 좀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어느 시대나 꼭 필요한 말이었다. 진보가 없다면 그 시대는 발전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이 인상깊다.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미리 나온 말인데, 마음에 울림이 온다.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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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없는 세상 - 얼음의 역사부터 지구의 미래까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
헨리 폴락 지음, 선세갑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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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얼음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북극해와 남극해의 모양만 변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 지구가 간빙기와 빙기를 번갈아 진행되면서 여러 생물체가 멸종까지 되었던 과거의 역사를 지켜볼 때, 현 인류에게 얼음은 생존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현재의 모습을 묵과할 수 없었던 세계적인 지구물리학자인 헨리 폴락이 나섰다. 40년 동안 극지방을 오가며 이제까지 인류보다 앞서 살아왔던 얼음을 연구하고 그 변화된 모습을 책에다가 담아왔다. 단지 얼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말해주기 위해서...

 

우리는 보통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지방의 얼음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이 해수면의 상승으로 연결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그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다. 더불어 저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지구온난화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사실은 그리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내 세대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안이함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행동으로 나설 수 있을까? 헨리 폴락처럼 40년이나 시간을 들여서 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얼음의 감소가 우리에게 어떤 위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단순한 상식으로 치부해놓고 자신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쩜, 우리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얻어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행동이 그렇게나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삼백만 년 동안 스무 번이나 빙하기에서 얼음이 지구에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때로 오락가락해왔다. 그런 모든 변화가 인간이 생각하고 가늠할 수 있는 세월을 훨씬 뛰어넘어버리기에 우리는 그 추이를 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저지른 배기가스 말고도 많은 이유로 가속화되고 있다. 지표를 덮고 있는 얼음이 줄어들면 지표면이 점점 검어지고, 반사율이 줄면 더 많은 태양 에너지가 흡수되어 지표가 더 따뜻해지며, 전보다 얼음이 더 잘 녹게 되어 온난화에 가속이 붙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순간부터 각 나라는 미적이지 말고 앞으로 기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다양한 이유와 반론의 여지가 있는 계획이기에 반발이 물론 많이 생기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일으킬 재앙들이 단순히 땅이 사라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요 근래 일어났던 기상 이상 현상들이 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북극해의 온난화가 서부 유럽에 혹한을 몰고 온다는 결론은 얼핏 볼 때는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럽이 캐나다 중부나 중앙아시아처럼 매우 추운 기후대와 거의 같은 위도란 것을 두고 볼 때 이 현상은 말이 된다. 그동안 유럽이 따뜻했던 것은 멕시코 만류가 품고 온 열 덕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멕시코 만류가 느려지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으면 서부 유럽은 급격하게 추워질 것이다. 1만 2700년 전 소빙하기에 이 난류가 방해를 받았을 때 유럽의 온도가 5도 이상 하강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고위도 북극해의 바닷물에서 시작된 국지적 현상이 전체 대서양과 유럽 기후의 순환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문제가 심각하다.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의 드넓은 영구동토대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 영구동토대가 해빙되면 캐나다 서부의 매켄지 강, 북부 아시아에서 흘러나오는 레나 강, 예니세이 강, 오비 강을 통해 북극해에서 더 많은 담수해가 흘러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추가로 들어온 담수로 인해 북극해 해류의 부력은 훨씬 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온난화와 담수화가 북극해의 물이 바다 아래쪽으로 가라앉는 것을 방해해, 결국 멕시코 만류의 흐름을 느리게 만드는 것이다. 또 영구동토대의 해빙은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가스를 대기에 방출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당장의 내 행동에 영향을 주진 못하더라도 이것이 하나의 상식이 되어,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상식이 되어 우리에게 박히게 된다면 단지 그저 알고 넘어가는 사실이 되지 않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선 뭔가의 심각성을 알아야 그에 대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있으니 먼저 읽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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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선생님이 된 CEO - 성공한 CEO, 빈민가 교사가 되다
토머스 M. 블로크 지음, 권오열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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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으로 100만 달러를 받던 한 세무회사 CEO가 자신의 소명을 찾아 빈민가 공립학교의 선생님이 된 이야기를 글로 써서 세상에 내놨다. 누가 봐도 독특하고 주목할 만한 내용이라 나도 솔깃했다. 특히나 교육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내가 주목한 점은 교실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학습 흥미도를 키워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라고는 짧은 몇몇 순간일 뿐인 한 사업가가 가문의 기업을 내려놓고 빈민가 학생들을 위한 열혈교사가 되기까지의 여러 시행착오와 그 진행 과정을 낱낱히 밝히고 있는 이 책은, 현재 교사가 아닌 사람이 교직에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투신할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려준다고 보면 좋을 듯 싶다. 그러니까 좀 더 잘 가르치고 좀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굳이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 그 외 더 좋은 책이 많을 테니까. 다만 자신의 소명이 단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빈민가 아이들에게 좀 더 체계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즉 관리 차원에서의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되겠다. 한국이랑 사정이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여러 주의 다양한 제도를 나열해가면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과 행정체계가 유동적이고 교육비가 무료인 공립 차터 스쿨 설립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 토마스는 아버지가 설립해서 세무업계에서 알아주는 회사로 성장시킨 H&R 블록의 CEO였다. 어릴 적부터 회사의 로비 걸레질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18년 동안 근무했고, 35살에 CEO으로 취임하여 5년 동안 사장 노릇을 했다. 그것도 충분히 잘해냈다. 그는 연봉으로 100만 달러를 받는데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일해도 받아볼 수 없는 금액이라면 남 부러울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이다. 물론 그는 제 사무실에서 틀어박혀 있느라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끊임없이 회사가 위기가 될 것이라고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고 세금신고기간이 아이들의 농구 시합과 겹쳐서 제대로 된 아빠 노릇도 하지 못하는 것이 그에겐 삶에서의 깊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어릴 적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책상에 앉아 일하길 꿈꿨던 아주 소박한 사람이라 돈을 많이 벌어도 불편하지 않은 평범한 집에서 살고, 낡고 추레한 양복을 입고, 가장 싼 운동화를 신는 그로서는 어쩌면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단 열망이 생겨났을까? 아주 옛날에 누군가를 가르쳤던 경험이 내적인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놀라시고 아내가 중년의 위기라고 표현하기도 했어도, 그래서 자신의 결정에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옳은 일을 향해, 자신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고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과감하게 나섰다. 처음에는 놀랐던 그의 아버지가 기조연설 때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 이야기한 것만 봐도 토마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윤리적인 결정에는 항상 두려움이 수반됩니다. 어떤 일이 그 결과를 두려워할 정도로 중대할 때, 심지어 명예로운 선택마저도 피해나 손실 또는 슬픔을 초래할 수 있을 때, 그 때가 바로 윤리가 개입되는 순간입니다. 리더에게 있어 그것은 매일 직면하는 대부분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 제 가족과 회사와 관련된 힘들었던 결정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아버지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이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저는 톰이 윤리적인 결정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되고 싶어 했던 톰 블로크는 아이들에게 인생과 대학교육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수학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차터 스쿨은 대기중인 학생 수가 1,000명이나 됩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믿고 행복해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뭔가 달라지게 하고 있다는 그의 생각입니다. 저는 제 아들과 그의 선택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 p. 299~301


 

한번 사업가는 영원히 사업가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 현재 미국의 공립학교의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데, 그것을 개선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아이들에게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단순히 그렇게, 좋은 교사로서만 존재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본능적인 사업 아이디어는 대학입학준비학교로써 「유니버시티 아카데미」 차터 스쿨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차터 스쿨이란 한 집단의 선생님들에게 새로운 기법과 아이디어를 실행해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자유롭게 운영되는 학교이다. 일면 대안학교와 비슷할 수 있는데 다른 학교에서 적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비전에 알맞게 교칙을 세우고 높은 학습수준을 유지하는 학교인데다가 전액 무료인 공립학교여서 교육비를 지출할 수 없는 빈민가들을 위한 아주 훌륭한 제도이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시정이 가능하도록 교육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아 개방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토마스도 자신이 머물고 있는 학교를 차터 스쿨로 바꾸고자 하였지만 반대에 부딪쳐 새로운 학교를 설립한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로 인해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교육의 가장 중요한 재원인 좋은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성장했다. 특히나 가장 큰 어려움은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학교이다 보니까 기초학력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행동거지조차 바르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를 벌떼처럼 쑤셔놓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토마스에게 영감을 받은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개적으로 고맙다고 편지와 선물도 보내주는 등 여러 고무적인 성과도 있었다.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야 하는 차터 스쿨이지만 이만 하면 멋진 변신이 아닐까. 재정적인 부분에서 전혀 이득이 되지 않았어도 마음만큼은 충분히 부자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한국에 차터 스쿨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대단한 후원자가 필요할 듯 하지만, 우선적으로 인식의 변화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요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업가들 중에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할 만큼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제 기업을 팔아서 교육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귀한 인재가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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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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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정말 이해하기에 난해하다. 그저 떠오르는 물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를 가지고 소설을 만들었던 것일까. 소설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자유자재로 고체와 액체와 기체의 모습으로 변형 가능한 물에서 따왔겠지만 그 외 다른 성분과 광물의 이미지도 일부 차용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대상은 물, 불, 소금, 금, 공기....그리고 납까지... 이런 여러 성분들을 인간으로 형상화해냈다. 그러나 한낱 성분일 뿐인 것으로 인간을 형상화한 그것이 내게는 쉽게 와닿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도 구별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모호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던 처음보다는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 전에 봤던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을』이란 소설도 나를 충분히 혼란스럽게 했지만, 그래도 그 소설은 내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었다. 허나 이 소설은... 모호하다. 나는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보통은 한 번에 읽어야 하는 소설을 두 번에 나누어서 읽었던 탓도 있을 수 있지만, 읽으면서 머리가 아파지는 소설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소금인 나는 이기적인 남편 혀와 이혼을 하고 어머니인 물에게로 돌아온다. 더불어 아버지 불이 삼백만 톤의 물을 몰아내고 지은 집으로 돌아왔다. 소금이 돌아온 이후에 떠났던 아버지도 돌아와서 금인 둘째와 공기인 셋째까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만물의 근원이지만 불을 소멸시키는 물과, 물에서는 찬란하게 빛나지만 불에게서는 변형이 되는 금, 물과 불에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기, 물과 있으면 각(角)이 누그러들지만 불과 있으면 단단한 암염이 될 수 있는 소금까지 다섯 식구의 복잡다단한 모습은 각기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 투영시켜도 좋을 듯 하다. 소금으로서는 아버지인 불과 같이 있는 것이 순수한 소금 결정체로 남는데 있어 도움이 되겠지만 금을 편애하는 불의 행동 때문에 물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공기는 소금을 지나치게 싫어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는데, 이것을 가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물을 포기하지 못했던 아버지 불의 선택이 어쩜 이런 불편한 관계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모든 것을 즉, 나와 구별되는 특성들까지도 포용해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원체 저수지이었던 곳에서 물을 몰아내고 이룩한 집이다 보니, 집은 불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었다. 그래서 물인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질 수 밖에 없고, 물 자신도 자신이 희생해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처음부터 서로에게 독이 될 것을 알았기에 결혼을 반대했던 형제들, 친구들, 지인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했던 결혼인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루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하긴 처음부터 물은 불을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가정을 꾸린 이상 성실하게 서로에게 대하야 할 것인데, 물은 그저 수동적으로 행동했으니 그것 또한 문제다. 그렇다면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까. 나와 다른 특성을 이해해주고 안아줄 수 있는 것. 공기는 공기대로, 금은 금대로, 소금은 소금대로,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인정해줄 수 있다면 치명적인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테다.

 

물론 이 소설의 결말이 치명적인 비극이라곤 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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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Sex & Sensibility
한승억 지음 / Socks Puppets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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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특하다.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자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에세이라고 보면 무방할까. 그것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여성의 성(性)이다. 여자를 위한, 여자에 의한 성(性)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저자 한승억 씨가 성(性)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기에 이렇게 성에 대해 뻔뻔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보지 못하였던 화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에서만큼은 환영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성(性)에 대해서는 어쩌면 보수적일지 모를 내게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일단 여성으로서 여성을 우대해주는 이 책이 그리 싫지 않았다. 이 책 속에 등장한 이야기에 대해서 모두 긍정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지만 이런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책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적 표현들이 난무하는 책을 처음 봤을 때는 놀랍기도 했었지만 그 의미가 나름 상식적이라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마음가짐, 살아가는 태도, 좋은 남자를 고르는 방법, 제대로 성(性)을 즐기는 방법 등에 대해 다채로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단 여성에게만 보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좋은 연인, 배우자감을 고를 만한 나이, 즉 20대 후반 정도되는 남자이라면 여자보다도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성(性)을 잘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고 남자를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어떻게 여성을 즐겁게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서 남자들이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말한다. 남자는 성은 몰라야 하고, 여자는 성을 알아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남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여자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고 처음 생각해봤는데 나름의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과거에 비해 현재 일어나는 성폭력의 유형 중에 어린 남자들이 벌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과 한 소녀를 여럿이 강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우는데 조금은 수긍이 갔다. 물론 그런 사건들이 단순히 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보다는 무분별하게 보급되는 포르노가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저자가 취하는 성(性)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방식은 참 놀랍다. 모르긴 해도 나보다 연배가 되시는 분이 쓰셨을 텐데, 이렇게나 개방적으로 성(性)을 논할 수 있다니!! 심각하게만 아니라면 여성끼리 성(性)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다니, 남녀 간에 세 번 정도 만나고 나서는 두 번 정도 관계를 맺어보고 나서 관계를 결정하라니, 솔직히 내 사고방식으로는 너무나 파격적인 생각이다. 성(性)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야 나도 바라는 바다. 누구나 부부생활에서는 재미난 성(性)생활을 기대하지 않는가. 그러나 꼭 혼전에 관계를 가져서 깊게 사귈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평가해봐야 하는 것일까. 결혼 한 후에 남녀 간의 배려와 노력을 통해 재미나게 성(性)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런 가정을 제외하고 성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라고 조언하는 파격은 좀 감당하기가 버겁다. 또 제대로 된 남자를 못 만났다면 격이 떨어지는 남자를 만나 인생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동성 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성(性)도 같이 즐기라고 충고하는 것이 너무 새로웠다. 격세지감인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올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진 것인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파격적인 다른 모든 이야기도 많았지만, 곧이 듣고 수용할 부분도 많았다. 여러 모로 신선함을 안겨준 책이기에 결혼을 했거나 앞으로 할 예비 신부들이 꼭 신랑, 예비 신랑과 함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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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s 2010-04-30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저자입니다.
이견의 덩어리인 [여자]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고의 노력을 보여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성 자체만은 물리적이기에 여기엔 박사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성의 주체격인 사랑에는 박사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합니다.
사랑은 감정과 감성 및 사고의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여자]가 제 사고의 틀을 부셔서 저에게 기존하는 사고의 실체를 볼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진솔한 서평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