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슬라이딩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8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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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청소년ㆍ아동문학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받은 저자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는 어떤 사람일까? 왜냐하면 나는 좋아하기는커녕 좀 하는 구기종목 하나 없는데 그녀는 어떻게 야구를 소재 청소년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여자이면서도(약간은 성차별적인 말이지만) 야구에 열렬한 팬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작가의 말에서도 그녀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는 없었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 수는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녀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련다. 그나저나 난 왜 공을 무서워하는 걸까. 평범하게 걸어도 발목을 삐끗하는 나로선 공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그것도 여자가!!) 이해되지 않지만 제도적으로 거부된 일에 대해서 한 조그만 소녀가 나서서 변혁을 일으킨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이 청소년 소설을 보게 되었다. 책을 잡고 아주 금방 읽을 수 있는 이 책에는, 열둘 살 남짓 한 소녀가 등장한다. 실제로 야구를 하도록 허락받지 못한 소녀가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곤 주인공 조엘을 창조해냈는데 이 소녀는 열렬한 야구 추종자이다.

 

워낙에 야구 붐이 엄청 일고 있는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아주 특수한 경우라 생각되지만, 방과 후 특별활동 중에서 여자는 소프트볼, 남자는 야구로 딱 나뉘어진 그린데일로 이사 온 날, 조엘 커닝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미니애폴리스에서만 살았다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 즉 여자가 야구를 한다는 것은 그린데일에 와서야 문제로 불거져나왔다. 여자와 남자에게 운동프로그램을 지원할 때 지원금이 중복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자는 소프트볼로, 남자는 야구로 제한을 했던 아주 합리적인 교육시스템 덕분에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그리고 가족 대대로 야구에 헌신해왔던 조엘은 황당한 말을 들었다. 바로 야구와 소프트볼이 같으니까 소프트볼을 하라는 것~! 나무로 만들었고, 더블리드이라고 해서 바순과 오보에가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야구와 소프트볼은 엄연히 다른 운동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나 들으며 있어야 하다니!!! 조엘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둥지가 되어주었던 오빠도 미니애폴리스에서 대학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같이 이 난관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오빠가 던져준 말 한 마디에 조엘은 힌트를 얻었다. 야구 코치에게 부탁해도 안 된다고 하고, 교장과 교육감에게 말해봐도 통하지가 않으니 이젠 신문에다가 편지를 쓰는 수 밖에. 그 편지 하나로 인해 조엘은 여러 지지와 여러 비난을 한꺼번에 받아야 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도 말도 안되는 비난과 눈초리를 받아야 했고 그나마 지지해주었던 칼라일 코치의 아들인 라이언은 말 한 마디도 걸지 않았으니까.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갔고, 이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쁜 일만 일어나란 법은 없는 법. 조엘이 쓴 편지로 인해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러 여자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각기 학교는 다르지만 진짜 야구를 하고 싶었던 여자아이들을. 그린데일이라고 해서 왜 여자 아이들도 야구를 하기 싫어겠는가. 그저 시스템에 순종했을 뿐.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 순간, 조엘에게 떠오른 생각은 훨씬 큰 것이었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그것. 바로 여자만의 야구리그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은 맹랑해보였지만 끝은 아니였다. 일단 관심있는 사람들을 다 모으기 위해 포스터를 붙이고 결전의 날에 모인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처음엔 몇 명 안 모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선수로 뛸 여자 아이부터 그들을 지지해줄 가족들과 어른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었다. 가장 대단했던 사람은 1940년대 전미 여자 프로야구리그 선수였던 할머니의 동생이었는데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많은 도움을 약속해주셨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조그만 소녀의 고집이 큰 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하고 싶다면 누구든지 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주어진 길에서 머무르지 않고 개척해내는 그 정신. 아마도 그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처음 아메리카에 정착했을 때 발휘되었던 프론티어 정신이 아니었을까. 때와 장소는 다르지만 그들의 후손답게 조엘은 그 일을 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배우고, 자신과 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오해하지 않는 방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책의 매력은 그런 소소한 것에 있지 않을까. 여자 아이에게 야구가 허락되지 않는 곳에 여자만의 야구리그를 만드는 개척 정신도 대단하지만, 조엘 또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는 것이나,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 더욱 대단한 성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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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빈의 조선사 - 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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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의 저자 이윤우라면 들어본 기억이 났다. ‘날로 먹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싸이월드에 칼럼을 연재했다니, 적어도 싸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보니 드라마가 한창일 때 『제중원 박서양』 이란 책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 때는 처음 접하고 소재가 나랑 맞지 않아서 아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번에 만난 『최숙빈의 조선사』라는 책은 또 달랐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역사를 아주 쉽고 재미나게 정리해주어 그 때 그 저자인가 고민이 되었을 정도였다. 역사서이다 보니 사료가 가장 중요한데, 조선왕조실록의 숙종 편을 증거로 제시해주고 옛날 말로 쓰여진 모호한 구문을 다시 풀어주면서 쉬우면서도 흥미있게 전달해주었다. 이제까지 여러 역사서를 읽어봤지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도와준 책은 처음인 듯 싶다.
 
최숙빈, 숙빈 최씨는 누구나 알듯이 영조의 어머니이다. 천인이라든지 무수리라든지 하는 여러 풍문의 주인공이기도 하는 그녀는 역사서에 기록이 거의 없어 항상 그렇게 모호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역사서에 여성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모가 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바짝 엎드려서 상황을 잘 읽어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그랬기에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그런 모진 궁에서 정1품의 지위인 빈의 자리에 올라 49세의 나이로 제 천수를 다 누리다가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서에서도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에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 자신이 ‘근신’하고 ‘조심’했기에 그의 아들인 영조 또한 ‘근신’하고 ‘조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왕후 자리에까지 오른 여자의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는데 그 자리를 밀어내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실제로 영조는 제 어머니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데, 그녀의 품성을 자연히 유추할 수 있겠다.



사친께서는 평소 조심스런 마음으로 근신하셨으니 - 영조 즉위년(1724년) 11월 20일

내가 모든 일에 있어서 사친을 따르려는 소심한 뜻을 되도록 제약함을 힘써 따르고 있는데 - 영조 2년(1726년) 11월 8일

내가 어렸을 적 사친이 항상 조심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도 마음에 새겨 행하고 있다. - 영조 13년(1737년) 1월 2일

이런 기록 외에 최씨의 신도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최씨의 성품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근신’과 ‘조심’이었다. 첫째 아이가 죽고 상심이 클 때 바로 둘째 아들을 생산해내어 숙종의 은총을 입었지만 그렇다고 염탐을 하거나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그저 중요한 때 몇 마디 흘리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다 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시대의 숙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숙빈 최씨는 유일무일한 존재가 아니였을까. 남인의 미인계였던 희빈 장씨를 제거하고 서인 세력에 힘을 보태서 아들의 지지세력을 만든 것조차 그녀의 작품이다. 태풍은 모조리 날려버린다지만 그 정점은 고요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태풍같이 몰아쳤던 숙종을 거의 유일하게 제어했던 사람이 바로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던 숙빈 최씨였을 것이다. 그녀의 올바른 사리판단과 침착한 성품이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시기이 영조와 정조 시대의 초석을 다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왕권과 신권의 치열하게 다투었던 숙종 시대에 주변을 잘 다루었다.
 
숙종 때의 역사는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연적 간의 대결 구도로만 인식했던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남인 세력과 서인 세력의 대결이었다는 것, 그리고 여러 사화조차 왕이 제 권력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왕이 제 힘으로 서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이 책은 잘 그리고 있다. 열넷에 왕이 되어 46년을 왕으로 산 숙종이 그리 모자란 왕이 아니였음을, 여색만 밝히면서 나랏일을 게을리했던 왕이 아니였음도 알게 되어 기쁘다. 덧붙여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가 숙종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론을 몰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신기했다. 그동안 역사서는 체질에 맞지 않아 못 읽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이 책은 주저말고 읽어도 참 재미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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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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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 굿바이 쇼핑

 

카드 결제액이 정말 많이 나왔던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정말 많이 나왔다고 해도 내 또래 사람들의 한달 용돈 정도이거나 그보다 적겠지만 뭐 번듯한 무언가 하나를 질러서 많이 나왔던 것도 아닌데 내 상상을 초과해서 나왔던 것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못했다. 그때 보게 된 이 책은 거의 구원자였다. 보통 쓰는 물건들은 대부분 아끼지만 제가 인정하는 품질의 물건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돈을 쏟아붓는 그저 보통의 소비자인 주디스 러바인이 바로 나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가기만 하면 별것도 안 샀는데 찔끔찔금 돈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사라지는 돈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오고 가는 동안에 먹을 음료나 간식에 자꾸만 돈이 들어가니, 사라지는 돈이 상상을 초월했다. 돈을 아예 안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참~ 생각해보니 이제껏 계획했던 지출보다 초과한 액수는 모두 먹을거리에 사용되었다. 엥겔 지수가 지극히 높은 가정 경제를 꾸리는 것에 지친 나는 돈을 쓰지 않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난 돈을 많이 쓰진 않는다. 머리를 자주 하기를 하나, 옷을 자주 바꾸길 하나, 질러봤자 맘 먹고 지르는 것은 책 한 두권이 고작인데, 왜 항상 카드 값이 치솟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에는 헌책방에 가서 열 권씩 사들고 오는 것도 자제하고 있는 중인데, 왜 이리 돈이 더 들어가는지 참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 월마트에서 잔뜩 물건을 사들고 가는 도중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다 월마트의 종이봉투가 젖어서 샀던 물건이 진창으로 우르르 쏟아진 것을 계기로 1년 동안 생필품을 제외한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던 주디스 러바인도 카드 한도까지 다 써버리고 나서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쇼핑을 하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쇼핑을 위해 사는 것처럼 꼭 끌려다니고 있으니...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쇼핑에 미친 사람처럼 폭주했다. 1년 동안 생필품 외에 아무것도 안 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거 돈을 써버렸으니.

 

그래도 점차 생활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생필품과 사치품을 구별하는 것부터 설왕설래하느라 정신없고 마음이 불안하고 무언가 억울하기도 했었는데 점차적으로 그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결단코. 고작 몇 센트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연도, 영화도, 뮤지컬도 갈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받은 공연티켓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으니. 하지만 점차적으로 책을 안 사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영화관 안 가고 공공기관에서의 무료 혹은 자선 공연으로 대체하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그것을 즐기는 등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아는 지인들에게서 받은 선물 공세는 또한 난감했다. 꼭 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이 그렇게 사람들은 주디스와 폴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했다. 영화표도 대신 내주고 싶어했고, 커피나 케익도 사주고 싶어했으며, 일을 하는데 필요한 고속열차 차비까지도 대신 내주고 싶어할 정도였다. 그녀는 점점 소비사회에서 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차차 돈이 갖는 위력을 깨달아갔다. 내가 쉽게 돈을 써버리는, 꼭 돈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처럼 써버리는 상황 속에 숨겨진 그 비밀을.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물건을 사는 것으로써 자신의 힘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욕구 때문일 뿐. 꼭 명품을 사는 것이 그 품질 뿐만 아니라 그 명성 때문에 사는 것처럼. 집에 오는 길에 꼭 들르게 되는 편의점도 내겐 그 중의 한 곳이다. 기분이 우울하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사면서 내 구매력을 확인하고 제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땐 꼭 백화점에서만 파는 고급품이 아니여도 된다. 그저 무언가를 사는 행위만 하기만 하면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정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사는 행위로써 자신이 그 정도의 힘은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과시하고 보상받고 싶어할 것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싸한 설명이긴 하지만, 내 자신의 자존감이 그런 외적인 행위로 인해 채워진다는 것은 조금은 충격이다. 심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이성적으로는 왠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쇼핑은 단순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한, 두 사람이 일년 동안 쇼핑을 줄였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는 것도, 새로운 정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감과 깨달음을 조금 받을 수 있을 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힌트를 조금 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정도? 내가 어떤 정당을, 어떤 단체를 지지한다고 하면 그저 후원금만 보내면 된다. 물건을 사려고 해도 그저 카드 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외롭게 자기 일을 하고 돈만 오고가는 시대가 요즘 시대인 것이다. 정치까지도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니 할 말은 다했다. 최상류층들로만 구성된 부시의 지지자들은 최상류층의 세금 면제를 위해 70억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부어대니 누가 정치를 살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아무런 생각없이 돈을 쓰라고 부추기고 그를 위해 일을 더 많이 하라고 몰아대는 사회 시스템을 꿰뚫어봤다면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은 것이다. 또한 물건을 보면 본능적으로 돈을 꺼냈던 일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현금을 꺼내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쇼핑을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과 폴과 싸우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일 것이다.

 

쇼핑 중독, 요즘 이런 말을 많이 쓴다. 실제로 쇼핑을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나만 해도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풀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자기합리화의 공식에 따라 이 정도는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자위해버리고 마니 결코 쇼핑의 올가미를 빠져나올 수는 없다. 아예 쇼핑에서 멀어지지 않는 한. 그러니 주디스처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한 항목에 한해서 쇼핑에 굿바이하는 경험을 해볼 만하다. 돈을 무작정 안 쓸 순 없지만 쇼핑의 노예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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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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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자신이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 하지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어 할까, 아니면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매달리게 될까.
서른 해 남짓 살아온 나로선 아직 어느 것도 선택을 내리기가 어렵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배우자도, 자식도, 애인도 없으니까.
만약 살아갈 수 있는 나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더 힘들까. 못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더 힘들까.
기억에 남을 찬란한 기억들이 무수한 사람이 더 힘들까... 아니면 별다른 일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 더 힘들까....
이런 찬란한 기억을 다시금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에 사무칠지... 아니면 그런 기억조차 가지지 못한 자신의 삶이 더 사무칠지...
이 물음에도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건 죽음을 문턱에 놓아둔 자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일 테니까.
 
이 소설은 채 쉰 살도 되지 않은 남성이 6개월 남짓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자신의 삶을 갈무리지어가는 이야기다. 남은 6개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기 위해 만나지 못했던 옛 기억 속의 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고백도 해보지 못했던 첫사랑의 그녀, 고등학교 때 절교한 친구, 매정하게 뿌리쳤던 전 애인, 실수했던 직장 동료, 원한을 산 전 회사 사장까지 만나보고 나름의 유서를 남기고 돌아서는 그에겐 어쩜 더 잘 살지 못했던 회한이 남았겠다.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거라 여겨 실수해놓고서도 되돌리지 않았던 지난 날의 후회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어쩜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게다. 꼭 내일이 있을 거라고, 내 잘못은 다음에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무심히 넘겨버렸던 많고 많았던 시간들... 그 시간의 부재가 주는 회환과 감동이 그를, 그리고 나를 울렸다.
 
아름다운 아내와 대학생의 아들, 고등학생의 딸을 하나씩 둔 48세의 샐러리맨인 후지야마 유키히로는 부동산회사에서 사장에게 신임을 받고 부하직원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신만만한 사내다. 어디 가서도 싫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 않은 그는, 사나이다운 패기와 열정, 그리고 애인에게도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 애정도 한껏 갖춘 미워도 밉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패기로 기준과 이상을 놓지 않은,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만한 그런 멋진 사내. 어느 정도는 고집이 있어 실수도 할 수 있지만, 언제나 그런 실수 정도는 애교로 보아 넘겨줄 수 있는 그런 매력을 가진 사람, 자상한 아버지, 부드러운 남편이었다. 어쩜, 48년의 시간이 너무도 짧게만 느껴질 그런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한창 일할 나이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자신이 평가하는 자신과 남이 보는 자신은 분명한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망나니짓을 한 사람도 그 자신은 합리화하니... 그런 그에게 남아있던 6개월의 시간은 자신이 한심한 인간이었음을 보게 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남자였음을 똑똑히 제 눈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그에게 남겨진 것은 이제껏 자신이 받은 넘칠 만큼의 사랑의 기쁨과 감격!! 그것 뿐이었다. 제것만 챙겼던 그에게 무한히 베풀어주기만 한 아내의 무한한 헌신과 든든하게 자라준 아들의 존경심, 쾌활하고 자신감있게 자라준 딸의 애정, 불륜을 들키지 않게 갈무리한 애인의 배려심까지 그는 무한정 받기만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하지만... 인간에게 제 죽을 날을 미리 아는 것은 형벌일까, 축복일까?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릴 기회는 없지만 제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진다면, 어쩜 미리 아는 것은 축복일 수 있겠다. 암, 그렇고말고.
 
후지야마 유키히로. 그는 갔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남았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그가 바라고 원했던 것은 그것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지는 것.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알고 갈 수 있었던 그는 아마도 큰 축복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딸이 결혼하는 것도,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도 못보고 가는 하잘 것 없는 인생이지만 그 자신의 기억만은 오롯이 가져갈 수 있었을 테니까. 아마 무섭도록 두렵고 슬플테지만 아마 그래서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은 무섭도록 재미있다. 방송 작가, 작사가, 음악 · 텔레비전 · 영화 프로듀서, 극작가, 영화감독, 만화 원작자, 텔런트, 이제 작가까지 손을 뻗은 다재다능한 아키모토 야스시의 이름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23년 동안 살아온 아내가 있으면서 5년 동안 애인을 곁에 둔 파렴치한 남자주인공을 만들어내고도 그런 주인공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그는 정말 천부적인 작가답다. 단순히 인생의 의미를 알려하지 않아도 재미를 찾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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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그리다 - 화가들이 사랑한 '나의 어머니'
줄리엣 헤슬우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아트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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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그리다...

 

화가에게 어머니란 대상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화가뿐이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화가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머니란 존재는 신(神) 다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 지지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화가란 직업이 특별히 돈 잘 버는 직업이 아니여서 어머니 자신이 특별히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그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면 자식이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할 때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을 법도 한데, 이 책에 나오는 화가들 중에는 어머니가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불안한 미래를 두고 항상 인정해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한 화가에게는 항상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크고도 강렬하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

 

사실 처음에 잔뜩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열었을 때, 조금은 실망했었다. 많은 거장들에게 영감을 준 어머니라는 존재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을 것만 같아서 봤지만, 실은 화가의 '어머니'에 대해 몇 장 할애되지 않는 이야기가 내겐 부족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들여다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화가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화가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데는 처음에 등장한 알브레히트 뒤러, 귀도 레니, 렘브란트 판 레인, 이아생트 리고, 앙투안 라스팔, 존 컨스터블까지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울리지 못한 탓도 있을테지만, 처음에 등장한 화가들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애틋하다기보단 독특하다고 느껴질 만한 에피소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머니에게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고, 어머니가 그림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셨으며, 어머니으로부터 그림에 대한 영감을 받았으니 아마도 위대한 화가의 시작은 어머니로부터라고 단언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헨리크 로다코프스키는 어머니의 초상으로 일류라는 칭송을 받았고, 오스트레일리아 화가 에릭 윌슨은 어머니를 그려서 뉴사우스웨일스 여행 미술 장학금을 타기까지 했으니 화가에게 어머니는 최고의 뮤즈였을 것이다.
 


찾아보면 아버지에게서 그런 영향을 받은 화가들도 몇몇 있겠지만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런 영광스런 영예를 차지한 데에는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세대의 아버지가 으레 그러했듯이, 돈에만 관심있고 아들의 미술적 재능을 무시했던 많은 아버지로부터 자식의 재능을 보호하고 키워준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찍 과부가 되어버린 많은 어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힘겹게 일을 하면서도 아들의 재능을 믿고 키워주려고 노력했던 모습은 화가의 가슴 속에 영원한 불씨를 지퍼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독립하지 않고 어머니 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다. 범인(凡人)들은 그런 무능력한 아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정녕 위대한 화가의 위대한 어머니들은 그런 생각 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위대한 화가의 절반 쯤은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같은 평범한 인간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감사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데 나보다 더한 감성을 지닌 화가들에겐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으리란 깨달음이 불현듯 든다. 아아, 처음에 이 책을 들여다보곤 실망했던 내 얄팍한 감성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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