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빈의 조선사 - 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
이윤우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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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지켜낸 어머니 최숙빈, 그녀를 둘러싼 여섯 남녀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의 저자 이윤우라면 들어본 기억이 났다. ‘날로 먹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싸이월드에 칼럼을 연재했다니, 적어도 싸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보니 드라마가 한창일 때 『제중원 박서양』 이란 책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 때는 처음 접하고 소재가 나랑 맞지 않아서 아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번에 만난 『최숙빈의 조선사』라는 책은 또 달랐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역사를 아주 쉽고 재미나게 정리해주어 그 때 그 저자인가 고민이 되었을 정도였다. 역사서이다 보니 사료가 가장 중요한데, 조선왕조실록의 숙종 편을 증거로 제시해주고 옛날 말로 쓰여진 모호한 구문을 다시 풀어주면서 쉬우면서도 흥미있게 전달해주었다. 이제까지 여러 역사서를 읽어봤지만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도와준 책은 처음인 듯 싶다.
 
최숙빈, 숙빈 최씨는 누구나 알듯이 영조의 어머니이다. 천인이라든지 무수리라든지 하는 여러 풍문의 주인공이기도 하는 그녀는 역사서에 기록이 거의 없어 항상 그렇게 모호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역사서에 여성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모가 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바짝 엎드려서 상황을 잘 읽어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그랬기에 인현왕후가 폐비되고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그런 모진 궁에서 정1품의 지위인 빈의 자리에 올라 49세의 나이로 제 천수를 다 누리다가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역사서에서도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에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 자신이 ‘근신’하고 ‘조심’했기에 그의 아들인 영조 또한 ‘근신’하고 ‘조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왕후 자리에까지 오른 여자의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는데 그 자리를 밀어내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실제로 영조는 제 어머니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데, 그녀의 품성을 자연히 유추할 수 있겠다.



사친께서는 평소 조심스런 마음으로 근신하셨으니 - 영조 즉위년(1724년) 11월 20일

내가 모든 일에 있어서 사친을 따르려는 소심한 뜻을 되도록 제약함을 힘써 따르고 있는데 - 영조 2년(1726년) 11월 8일

내가 어렸을 적 사친이 항상 조심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도 마음에 새겨 행하고 있다. - 영조 13년(1737년) 1월 2일

이런 기록 외에 최씨의 신도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최씨의 성품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근신’과 ‘조심’이었다. 첫째 아이가 죽고 상심이 클 때 바로 둘째 아들을 생산해내어 숙종의 은총을 입었지만 그렇다고 염탐을 하거나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그저 중요한 때 몇 마디 흘리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다 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시대의 숙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숙빈 최씨는 유일무일한 존재가 아니였을까. 남인의 미인계였던 희빈 장씨를 제거하고 서인 세력에 힘을 보태서 아들의 지지세력을 만든 것조차 그녀의 작품이다. 태풍은 모조리 날려버린다지만 그 정점은 고요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태풍같이 몰아쳤던 숙종을 거의 유일하게 제어했던 사람이 바로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던 숙빈 최씨였을 것이다. 그녀의 올바른 사리판단과 침착한 성품이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시기이 영조와 정조 시대의 초석을 다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왕권과 신권의 치열하게 다투었던 숙종 시대에 주변을 잘 다루었다.
 
숙종 때의 역사는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의 연적 간의 대결 구도로만 인식했던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남인 세력과 서인 세력의 대결이었다는 것, 그리고 여러 사화조차 왕이 제 권력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두뇌 싸움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왕이 제 힘으로 서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이 책은 잘 그리고 있다. 열넷에 왕이 되어 46년을 왕으로 산 숙종이 그리 모자란 왕이 아니였음을, 여색만 밝히면서 나랏일을 게을리했던 왕이 아니였음도 알게 되어 기쁘다. 덧붙여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가 숙종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여론을 몰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신기했다. 그동안 역사서는 체질에 맞지 않아 못 읽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이 책은 주저말고 읽어도 참 재미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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