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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 굿바이 쇼핑
카드 결제액이 정말 많이 나왔던 어느 날, 나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정말 많이 나왔다고 해도 내 또래 사람들의 한달 용돈 정도이거나 그보다 적겠지만 뭐 번듯한 무언가 하나를 질러서 많이 나왔던 것도 아닌데 내 상상을 초과해서 나왔던 것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못했다. 그때 보게 된 이 책은 거의 구원자였다. 보통 쓰는 물건들은 대부분 아끼지만 제가 인정하는 품질의 물건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돈을 쏟아붓는 그저 보통의 소비자인 주디스 러바인이 바로 나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가기만 하면 별것도 안 샀는데 찔끔찔금 돈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사라지는 돈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오고 가는 동안에 먹을 음료나 간식에 자꾸만 돈이 들어가니, 사라지는 돈이 상상을 초월했다. 돈을 아예 안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참~ 생각해보니 이제껏 계획했던 지출보다 초과한 액수는 모두 먹을거리에 사용되었다. 엥겔 지수가 지극히 높은 가정 경제를 꾸리는 것에 지친 나는 돈을 쓰지 않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난 돈을 많이 쓰진 않는다. 머리를 자주 하기를 하나, 옷을 자주 바꾸길 하나, 질러봤자 맘 먹고 지르는 것은 책 한 두권이 고작인데, 왜 항상 카드 값이 치솟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에는 헌책방에 가서 열 권씩 사들고 오는 것도 자제하고 있는 중인데, 왜 이리 돈이 더 들어가는지 참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날, 월마트에서 잔뜩 물건을 사들고 가는 도중 떨어진 물건을 주우려다 월마트의 종이봉투가 젖어서 샀던 물건이 진창으로 우르르 쏟아진 것을 계기로 1년 동안 생필품을 제외한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던 주디스 러바인도 카드 한도까지 다 써버리고 나서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쇼핑을 하는 것은 필요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쇼핑을 위해 사는 것처럼 꼭 끌려다니고 있으니...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쇼핑에 미친 사람처럼 폭주했다. 1년 동안 생필품 외에 아무것도 안 사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거 돈을 써버렸으니.
그래도 점차 생활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생필품과 사치품을 구별하는 것부터 설왕설래하느라 정신없고 마음이 불안하고 무언가 억울하기도 했었는데 점차적으로 그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결단코. 고작 몇 센트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연도, 영화도, 뮤지컬도 갈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받은 공연티켓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으니. 하지만 점차적으로 책을 안 사고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영화관 안 가고 공공기관에서의 무료 혹은 자선 공연으로 대체하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그것을 즐기는 등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시간을 보내는 훌륭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아는 지인들에게서 받은 선물 공세는 또한 난감했다. 꼭 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이 그렇게 사람들은 주디스와 폴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했다. 영화표도 대신 내주고 싶어했고, 커피나 케익도 사주고 싶어했으며, 일을 하는데 필요한 고속열차 차비까지도 대신 내주고 싶어할 정도였다. 그녀는 점점 소비사회에서 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차차 돈이 갖는 위력을 깨달아갔다. 내가 쉽게 돈을 써버리는, 꼭 돈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처럼 써버리는 상황 속에 숨겨진 그 비밀을.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물건을 사는 것으로써 자신의 힘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욕구 때문일 뿐. 꼭 명품을 사는 것이 그 품질 뿐만 아니라 그 명성 때문에 사는 것처럼. 집에 오는 길에 꼭 들르게 되는 편의점도 내겐 그 중의 한 곳이다. 기분이 우울하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사면서 내 구매력을 확인하고 제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땐 꼭 백화점에서만 파는 고급품이 아니여도 된다. 그저 무언가를 사는 행위만 하기만 하면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정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사는 행위로써 자신이 그 정도의 힘은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과시하고 보상받고 싶어할 것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싸한 설명이긴 하지만, 내 자신의 자존감이 그런 외적인 행위로 인해 채워진다는 것은 조금은 충격이다. 심정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이성적으로는 왠지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쇼핑은 단순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한, 두 사람이 일년 동안 쇼핑을 줄였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는 것도, 새로운 정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감과 깨달음을 조금 받을 수 있을 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힌트를 조금 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정도? 내가 어떤 정당을, 어떤 단체를 지지한다고 하면 그저 후원금만 보내면 된다. 물건을 사려고 해도 그저 카드 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받을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외롭게 자기 일을 하고 돈만 오고가는 시대가 요즘 시대인 것이다. 정치까지도 후원금을 많이 낸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니 할 말은 다했다. 최상류층들로만 구성된 부시의 지지자들은 최상류층의 세금 면제를 위해 70억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부어대니 누가 정치를 살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아무런 생각없이 돈을 쓰라고 부추기고 그를 위해 일을 더 많이 하라고 몰아대는 사회 시스템을 꿰뚫어봤다면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은 것이다. 또한 물건을 보면 본능적으로 돈을 꺼냈던 일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현금을 꺼내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쇼핑을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는 것과 폴과 싸우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것일 것이다.
쇼핑 중독, 요즘 이런 말을 많이 쓴다. 실제로 쇼핑을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나만 해도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풀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 자기합리화의 공식에 따라 이 정도는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고 자위해버리고 마니 결코 쇼핑의 올가미를 빠져나올 수는 없다. 아예 쇼핑에서 멀어지지 않는 한. 그러니 주디스처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한 항목에 한해서 쇼핑에 굿바이하는 경험을 해볼 만하다. 돈을 무작정 안 쓸 순 없지만 쇼핑의 노예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