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
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이희수 옮김 / 알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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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 :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

 

이 책은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사스 등 수많은 고병원성 변종 전염병뿐만 아니라 종의 서식지 이전으로 인해 유발되는 생물학적 침입자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서술해준 책이다. 저자 앤드류 니키포룩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3년에 걸쳐서 3,000권 이상의 책과 기사를 참조해야했다. 그로써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 전부터 이 생물학적 폭탄에 대해 위험을 경고한 학자나 논문, 혹은 서적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단지 각종 끔찍한 전염병을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변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골치아픈 황소개구리처럼 외래종이 서식지를 이전해서 새로운 생태계의 무법자가 되는 경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들... 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만 아니라 이유후전신성소모성증후군, 청설바이러스, 양두, 소결핵 등 헤아릴 것은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이 지구에 인간이 없다면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왠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기대되지 않는가. 아름답진 않더라도 야성적인 자연이 남아있다고만 해도 상당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워진 인간이 이 지구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위협한다니 그야말로 낯부끄러울 일이지만 실제로 지금 이순간도 자행되고 있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다지 미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 일로 우리는 매주 두 가지 중 하나꼴로 수백 년의 종자 개량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동물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을까. 이렇게 사라진 종은 다시 돌이킬 수조차 없다. 인간이 쉽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필요없으면 죽였다가 필요할 것 같으면 다른 과학 기술로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런지. 생명은 그렇게 간단하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인데.

 

우리에게 이런 동물 전염병이 친숙해진 이유가 바로 그것의 원인이다. 우리가 친숙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물론 이런 동물성 전염병이 16세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각기 지역마다 발생하는 여러 전염병이 있었고, 그에 따라 현명하게 처리하는 대처 방법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역과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바이러스도 서로 교환하고 변종을 만들어내다 보니까 이렇게 인간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는 변종 바이러스가 드글거리게 된 것이다. 지구촌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동안 사스로 심각할 정도의 사람들을 죽어나갔다. 내가 사는 지역만 해도 그럴 일이 없었는데 휴교령이 한동안 계속될 정도로 크게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사스도 처음엔 특별한 병이 아니였다고 한다. 사스는 인간에게 감염되는 속도가 아주 느린, 평범한 저병원성 전염병일 뿐인데 이것이 다른 환경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면서 희한하게 변종이 생겨난 것이 요즘 전염병의 무서운 점이란다.

 

또 얼마 전엔 구제역으로 한동안 국가가 앓아누었다. 그러나 이런 구제역도 처음에는 안전한 축에 속한 전염병이었다. 처음 동물에게 발견된 구제역은 19세기만 해도 죽음을 안겨주기보단 약간의 고통을 주는 정도로 고열이 나고 동물의 발과 입에 수포가 생겨 잘 먹지 못하고 절뚝거리는 경우이지, 특별히 약하지 않은 이상 죽지는 않는 치료가 가능한 병이었단다. 다만 이 구제역은 포유동물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전염성이 빠른 바이러스여서 후에는 각 나라의 생물무기 개발자들이 주목했던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바이러스가 국가 관리 가축 전염병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영국에서였다. 처음에 이 바이러스가 발병하면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막고 따뜻한 죽과 부드러운 건초를 먹이고 깔짚을 깔아주고 수포를 치료해주면 금방 나았던 것을 영국은 정치적, 경제적, 통상적 이익이 얼키설키 뒤엉킨 탓에 이것을 무조건 살처분하는 날조된 유행병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반응도 늦게 해서 오히려 병을 키운 탓도 있었다.

 

또한 우리나에서 촛불시위운동을 일으켰던 광우병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병이었다. 죽은 짐승을 재활용하기 위해 개발한 렌더링 시스템의 발명으로 카니발리즘, 즉 동물이 자기 종족을 먹는 행위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소의 뇌가 구멍이 뚫려가며 죽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유사한 예로 죽은 사람을 먹는 포어족들이 발작을 하고 웃다가 죽는 병에 걸리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의 뇌를 보니 그들의 뇌도 구멍이 뚫려서 죽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 광우병은 400도가 넘는 고열에도 죽지 않고, 냉동 상태에서도 살아나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토양도 오염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광우병이 걸린 소가 있었던 자리에서 건강한 소가 풀을 뜯어도 전염이 된다. 또한 이 병원체의 잠복기는 무시무시하게 길어서 40년 전에 먹었던 것으로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수 있으니 인간은 이제 갈곳이 없어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시무시할 만큼 파괴력이 큰 이런 전염병은 과거에도 분명 존재했으나 지금만큼 크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그것은 지역 간의 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모습 때문이다. 이런 모든 전염병의 변종과 생물학적 침입자들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세계를 유람하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모든 것을 살상해버린다. 유럽에서 실은 화물선의 선박평형수 속에 들여온 박테리아나 콜레라 병균, 조개류가 북아메리카의 오대호에 들어차 몇 년 안되어서 호수를 점령해버리는 것은 이미 예삿일이 되어 버렸다. 요즘 세계화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생존에 큰 위협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화를 잡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전염병의 위협을 안고 살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혼란이 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몇 번만 더 이런 국가적인 위기가 닥쳐온다면 아마 국가의 전복도 예상치 못할 일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가만히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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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 쉽게 풀어 쓴 로마서
조성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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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서 1~8장을 강해하고 있다. 사실 강해서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처음 들기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 같은 신앙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저자 조성기의 편안한 문장들은 나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바울 서신 중의 최고의 역작이라는 로마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이제껏 깨닫지 못해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게 했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하나님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로마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수년에 걸친 조성기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3년 동안의 목회 내용과 신앙공동체와의 고민 속에서 얻어냈던 소중한 그의 깨달음을 일상에 지치고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안내한다. 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그 안의 진리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항상 난해하게 느껴지는 로마서이기에,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쓴 그의 서신 중 백미이기에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꼭 읽기를 강권하게 된다. 읽고 나면 잔잔히 전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테니까.

 

로마서는 1장에서 8장까지와 9장부터 16장까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도 무방할 만큼 내용이 명확하게 나뉜다. 9장부터 16장까지는 바울의 조국인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 구체적인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 계획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1장에서 8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도리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로마서 강해서를 1장에서 8장까지만 다루었던 것이다. 이를 총 6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서론과 후기까지 붙어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 서론만 읽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로마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특별히 로마서를 묵상한다거나 강해서를 따로 챙겨보진 않았던 나였기에 서론에서 말하는 로마서의 특징만으로도 내 안의 약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오면서 특별한 이변을 겪지 않고 나름 축복을 받으며 잔잔한 인생을 영위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나에 대한 기대를 접었었다. 한없이 훌륭하게만 보이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인생에는 이런 영화로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짓을 했던 것조차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로마서가 어거스틴과 마틴 루터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그와 똑같은 일이 지금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에 큰 도전을 받았다.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감을 품고 읽을 수 있었다.

 

처음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준다. 이 부분에선 자아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자아인식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어떤 가문, 어떤 교육을 받은 자로 생각하지 않고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명확히 서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낮게 생각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자존감에 대해서 똑같지만 생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난이라고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자신의 얼굴과 태도와 인생을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땐 누군가 뒷통수를 치는 것처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감당하기엔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쏙쏙 떠오르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종속되기 마련인데, 정말 그렇다면 이왕 노예가 되는 것 하나님께 종 노릇하는 것이 수지맞는 일이 아닐런지.

 

2장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란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순 없지만 무언가로 인해 하나님을 알 수 있기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무척 공감되었다. 나는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믿도록 교육받았기에 불신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누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이상한 모양새를 많이 느낀다. 절대적인 주권자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부인하려고 하는 것 같이 말이다. 불신자 중에서도 선한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사람 속에 숨겨진 선한 양심이 바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다. 인간이 벌이는 모든 죄악들을 생각하면 인간에게선 도저히 그런 선함이 나오지 못할 것도 같은데, 세상은 오묘하게도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묘하게 수긍이 되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은혜로웠던 것은 3장의 「당신의 의로움 속으로 데려가소서」편이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깨달았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나도 새롭게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껏 나를 괴롭히고 있던 죄책감이란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행위의 결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행위 이전에 먼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나서

그 다음 행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 p. 208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선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항상 실패하고,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의로운 행동을 하지 못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의인이기에 의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내 의로운 행위로써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연히 구원을 받았고 내가 의인이기에, 앞으로 지을 모든 죄도 또한 죄사함을 받았기에 앞으로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오해를 또 할 수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5장 「누가 나를 건저내랴」에서 규명해주셨다.

 

로마서는 논증적이기에 실제로 성경만 가지고 이해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든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재미있게 로마서를 읽었을 때도 한쪽에는 주석 성경,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현대인의 성경까지 구비를 한 상태에서 읽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깊이있는 이해는 역부족이었단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로마서가 편찬되게 된 것부터가 많은 죄악 속에서 더한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실현시켜 주신 하나님의 재치에 놀라면서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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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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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사랑합니다~


 

띠지에 붙어있는 이 말은 너무나 웃기면서도 사랑스럽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야 물론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게 사랑하게 된 계기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문장, 젠장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싶어서 혹은 사랑을 느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바이러스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라면 이렇게 말해도 부당하진 않겠다. 이럴 땐 아주 좋은 것이,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장 후회하더라도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바람에 고백을 하더라도 제 진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자기를 변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상대방의 처분만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저리는지, 그 시간을 그 바이러스로 인해 행복하게 지나갈 수만 있다면 이 변종 바이러스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뭐, 적절한 처방을 못 받으면 바로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질병이긴 하지만.

 

이름도 독특한 옥택선은 서른 중반의 재능 없는 작가로, 오랜 만에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과학자를 하나 소개받았다. 한눈에 반할 만한 인간이 소개팅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제 인생에서 남자가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저 변화나 주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나간 자리였다. 하지만 별 특징도 없이 금방 자리를 떠야 하는 남수필을 보곤 그저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특이한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뜬금없이 자기 이름도 모를 거라 여겼던 그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선 그녀가 사는 곳까지 오겠다는 것이 아닌가. 설마 진심이랴 싶어 알려준 집주소에 맞게 찾아와 쉴새없이 제 어린 시절 이야기나 실컷 떠들게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이야기로 하룻밤을 센 후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그를 보냈는데 뜬금없이 그가 죽었다고 하질 않는가. 장난이라 치부하기엔 바이러스재난구조협회라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큰일은 그녀에게도 이상 발열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괜시리 기분이 좋기도 하고, 환상이 여럿 보이기도 하고... 그녀도 격리해서 치료해야 하는데 G-10 바이러스의 변종이라는 이 놈은 기존의 처방제로서는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약이라도 먹으면 그대로 가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다급히 보내온 남수필의 문자는 보건국 사람들을 믿지 말라는 음모론적인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경고와 제 친구라는 동료과학자 이균을 찾으라는 힌트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기묘한 동거 관계, 이균과 옥택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삐딱선을 타는듯한 그의 태도가 화가 나고 분통이 터서 사사건건 맞서게 택선이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도와주는 이균을 믿고 성 교수의 연구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 병의 증상은 딱 사랑에 빠진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갑자기 고백을 해버리고 싶어지는 것인데, 처음부터 아니꼬웠던 이균을 상대로 택선을 그만 사랑을 느끼고 만 것이다!!!

 

젠장, 사랑합니다.

아이고, 염병할, 사랑한다고요. 앗, 죄송해라. 욕을 했네.

내가 이균 씨를 사랑한다니까요. 제길.

웃기죠? 황당하죠? 전 오죽하겠어요. (...)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렇게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요! (p. 187~188)

 

이제 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나면 인류는 제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하는 혼란이 올 것이다. 멀쩡한 가정이 깨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진정으로 제 감정을 믿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질 것이다. 그런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택선, 그녀의 바이러스를 길들여야한다. 그런데... 혹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바이러스가 과연 그렇게 절망적이기만 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감정이 어떤 대상에게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제 과거에 있었던 추억의 시간이 누구나 꼭 좋으리란 법도 없지만, 죽는 그 마지막에까지 행복해하면서 죽을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끊임없는 가난과 힘든 노동과 손자의 우윳값도 못 내는 서러움만 안겨주는 무정한 인생을 뜨겁게 껴안으려고 했던 어떤 할머니처럼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오래 살든 운 나쁘게 일찍 죽든 그 가치는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과거의 강렬한 기억을 다시 체험하면서 인생에 대해 다시 숙고해볼 시간을 얻게 되어 더 훌륭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일런지도...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불행일까? 행복일까? 아픔도 젊은 아픔이 더 센 것처럼, 이 바이러스도 젊을 때 크게 아프고 나면 인생에 대해 더 폭넓게 살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젠장맞게도 이균을 사랑하게 된 택선이는 그 사랑을 치료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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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6-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 우리 시대 명장 11인의 뜨거운 인생
김서령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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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인 김서령이 우리 시대 명장 11인을 만나 뜨거운 인생을 조금 나눠받은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각각 30여 페이지마다 할애된 각 명장들의 이야기가 그리 많은 것을 전달해주진 못하겠지만, 이 책은 이 세상에 이렇게 활기차고 행복하게 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그런 울림을 알려준다. 사실 여기 나타나있는 많은 인물 중에서 소설가 최인호와 시골의사 박경철말고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사람도 대략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도 뿐이지, 그의 인생 역정이나 그가 낸 책 목록조차도 다 꿰고 있지 못했다. 실은 여기 나온 11명은 소설가, 소리꾼, 의사, 화가, 화랑의 오너, 사진가, 목수, 건축가, 요리사, 작곡가, 서예가까지 각 분야의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분들인데, 내가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곤 너무 놀랬다. 세상을 거의 알지 못하고 살았다 싶어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는 좀 많이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모든 분들을 다 알진 못할 테니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처음에 이 책은 어떤 인간이든 작은 것이나마 배울 것은 누구에게든 있다 싶어서 보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의 명장이라는 말을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고른 탓이다. 아주 작은 하나라도 한평생 그 분야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살아온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금 훔쳐보면 내 삶의 무게가 그리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골랐던 책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필부필부들만의 이름 없는 이야기라도 감사히 받았을진대 내게 주신 것은 엄청나게 값진 다이아몬드였으니까. 축 가라앉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독서가 흥미진진한 모험이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예기치 않았던 모험과 기쁨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감사할까.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적인 인생을 듣고 있노라면 그다지 와닿지도 않고 자괴감에만 빠져들던 내 옛날 모습과는 다르게 이 책을 읽을 때는 확실히 신기하기만 했다. 젊은 작가들을 키우기 위해 매달 보통 직업의 월급 정도 되는 돈을 아무런 조건없이 지원하는 화랑 주인이라니, 그림을 그리기 위해 쉬지 않고 매일 두 시간씩 글씨 연습을 한다니, 아프다가도 노래만 부르기 시작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제 일을 사랑한다니, 의사라는 본업말고도 끊임없이 외부 칼럼을 쓰고 외부 강의도 나가고 게다가 취미삼아 첼로도 배운다니!!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사람들과 일을 하면 제 마음 같지 않아서 마음도 상하고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 가장 힘든 것은 인간 관계라고 딱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경험도 없는지, 누구는 유명한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는 어떻게 누구를 도와주었으며 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럴 때 드는 생각... 유유상종... 나는 내가 대단하지 못해서 대단하지 못한 사람들만 만나는 것일까 싶은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만큼 인생의 세월을 지나왔을 때는 나보다 더한 시련을 맛보고 사람에게 진저리치도록 배신도 당해봤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역시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이 그들은 나랑은 다른 인종이란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미술은 개뿔 아는 것은 없어도 이중섭 같은 불우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꼭 젊은 예술가들에게 마음 놓고 편히 작품을 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졌었는데 실제로 그런 식으로 지원했다는 가나아트 회장 이호재를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 파리와 뉴욕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한 점씩 사주고 작가들을 지원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니... 참 큰 사람이다.

 

물론 사람을 능력으로만 평가할 순 없겠지만, 조금은 괴리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한 사람의 천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땅과 하늘, 자연과 인적 환경이 잘 도와야하겠지만 그는 왜 저리 천재일까 하는 의문은 들지 않겠나. 여의도 개발, 서울역 광장, 관악산 서울대 캠퍼스 계획, 예술의 전당까지 건설했던 건축가 김석철은 어려서부터 대단한 교육을 받았더랬다. 우리나라 양대 거목들에게 사사받기도 전에 조부께 한글보다도 한자를 배우면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고, 항상 겉보기보단 인생의 충만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쳐주신 어머니 아래서 자랐으니 사람이 대단할 수 밖에 없는 뿌리를 지녔다고 봐야 한다. 그의 형제 중 반 이상이 미술에 관련된 일을 한다니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능도 무시 못 하니까 말이다. 하여튼 이 책은 나를 의기소침했다가 부러워했다가 깨달음을 주었다가 재미도 안겼다가 뒤죽박죽 다양함을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더 멋지고 행복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적어도 11명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고, 세상은 미쳐돌아가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도 싶어지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을 찾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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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유머 테라피
박영만 엮음 / 프리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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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유머를 엮은 것이다. 사실 '크리스천'이란 단어 붙어있길래 특별히 신앙인들을 위한 유머집인 줄 알고 있었는데 모든 유머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유머가 신앙인을 소재로 한 것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머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처음 접한 것 같은 유머도 많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5장에 있는 유머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 촌철살인의 미학을 보여주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기독교적인 요소가 유머의 키워드로 많이 제공되고 있어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은 싱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자인 나로선 두고두고 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책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해야겠다. 처음 생각했을 때는 크리스천을 위한 건전한 유머집을 바랐다. 그런데 노란색의 자극적인 표지에, 가장 앞에 있던 1장의 유머가 그리 썩 재미있지가 않아서, 어쩌면 저급하다고 표현할 만큼 건강한 웃음을 주지 않아서 솔직히 실망했다. 몇 년 전에 시중에 나와있는 유머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혹시 그것이랑 비슷할까 봐 조금 걱정도 되었다. 조잡한 디자인에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던 책이라 안 읽을까 하다가 빌려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 몇 장면만 읽고 돌려주었는데 성적인 암시가 은연중 드러나는 것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 책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았을 때 우려가 되었던 것은 그 때 봤던 시중 유머집처럼 성적인 것만 나열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대개 밝고 건강한 유머를 담고 있었다. 전에 봤던 시중 유머집도 사실 읽다 보면 뒤로 갈수록 내용 중에는 조금은 쓸만한 것도 찾아볼 수가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끝까지 읽었더니 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든가 부부의 대화편이나 명쾌한 판단을 내려주는 베드로 이야기, 목사님과 할머니의 대화편, 어린 아이들의 기도 이야기 등 정말 킥킥 웃게 되는 유머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 중 목사님과 할머니의 대화는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말장난 수준도 있지만 할머니들의 답변 중에는 생활에서 오는 지혜가 담뿍 담겨있기도 한다. 사실 할머니는 시류에 밝지 못하고 약간 어눌한 듯이 등장하지만 실은 깊은 내공의 지혜를 가진 인물로 묘사될 때가 많다. 그에 비해 많이 배운 목사님들이 대답 못하고 쩔쩔 매다가 끝이 나는 경우가 있으니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런데 역시 가장 웃긴 것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유머이다. 순진한 아이들이나 동네 아이들간의 대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 아니면 학교에 간 나발이야기들로 구성된다. 나발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데, 현명한 아내 아비가일의 남편으로 무식하게도 다윗에게 맞서려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화를 당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항상 시험에 빵점을 맞거나 답을 찍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부모님께 엉뚱한 소리나 곧잘 해대는 인물로 그려져도 조금도 미안하지가 않다. 나발이 등장하는 유머 중에 진짜 압권이었던 것은 학교에 불이 나서 아이들을 대피시키는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번들에게 선생님이 빨리 나오라고 말을 하려는데, 선생님보다 먼저 나발이 대뜸 "한 명만 남고 빨리 나와!"했던 것~. 진짜 상황 판단 못하는 재미를 준다. 이해만 할 수 있다면 다들 꼭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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