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인생 입문 - 잉여청춘을 위한 심리 테라피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요시노 사쿠미 그림, 황선희 옮김 / 미래의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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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제목이 '잉여 청춘을 위한 심리 테라피'라 되어 있어 첫 인상이 그리 상큼발랄하지는 않다. 어떤 분야이든 장르이든 "잉여"란 단어를 붙이는 순간, 그 내용의 말로는 암울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 앞에 달려있는 책날개에 붙어있는 "처음인데도 익숙한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처럼 이 책은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지나치리만큼 익숙하고도 당연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 그렇게 암울하거나 음울하지 않다. 처음에 제목을 봤을 때부터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아 기분 좋을 때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보기에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런 때 보는 것이 자조 섞인 웃음이나마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구김살 전혀 없는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듯이, 적당히 때가 묻고 적당히 패배감을 맛본 사람만이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결국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와 만화가가 만나서 에세이식으로 글을 쓰고 그에 대한 만화가 짤막하게 담겨 있어서 어쩌면 만화라고 선전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정신과 의사의 인간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내면 치료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만화는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으니 만화를 기대해서 책을 펼치면 십중팔구 실망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만화인 줄 알았다가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쾌한 정신과 의사의 입담으로 큰 재미를 얻었으니 누구든 큰 실망은 안 할 것이다.


절망감, 상실감, 혐오감, 허무감, 고독감, 초조감, 무력감, 과대감, 죄책감, 불안감, 피해감, 공허감, 위화감 등 총 13가지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짧은 단상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일반 사람들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쉽사리 구별되지조차 않는 것을 세밀하게 구별해놓고도 세심하게 생각들을 나열해두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태생인 51년생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런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심했을까 생각해보니, 이 책이 정말 대견하다. 읽으면 아주 쉽게 이해는 되지만 그것을 구별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쉽게 설명되지는 않을 것 같은 감정들로만 구성해놨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런 글을 쓸 엄두도 못 낼 것 같아서이다. 허무감은 '소소한 실망감이 쌓인' 감정이고, '다른 사람의 야유나 눈총을 파악하지 못'하는 과대감, '가슴 깊이 새겨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인 죄책감,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표현에 두려움을 느끼는 불안감, '절망감을 느끼는 동시는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는 무력감이 드는 이중구조'로 된 초조감, '이유는 모르지만 싫은 느낌'인 혐오감, '기쁨의 전조가 되는' 위화감 등 쉽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투성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박장대소하든지 씨익 웃든지 고개를 끄덕여가며 맞다고 확인까지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분량은 246페이지정도 되지만 판형도 작고 내용도 여백의 미를 살려 얼마 없고, 각 감정들의 마지막 장에는 만화가 한 장씩 들어가 있으니 읽을 거리도 별로 없다. 그저 같이 공감해보고 싶은 감정을 펴들고 입가에 입꼬리를 올려가며 같이 동조해주면 되겠다.


누구나 경험해본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누가 적극적으로 떠올리며 기억이나 할 것인가. 되도록이면 덮어버리고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듯이 말간 얼굴로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던가. 나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그 시기에서는 무력감이 가장 많이 들었다. 이 책에 설명은 적나라하게 되어 있었지만, 내가 공감하지 못했던 감정이기도 하다. 아마도 꽁꽁 싸매어 두었던 것이 이제야 터져나온 것일 테니, 버퍼링이 그만큼 늦는 것이 당연도 할 것이다. 속으로는 하고 싶은 행동도, 말도 많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누군가에게 설명해본 적도 없던 그것이 집에 와서는 얼마나 원통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무력감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나'라는 껍질을 얼마나 깨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기억은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저 곱씹으면서 나를 괴로히는 장치만 될 뿐이다. 그래서 덮어두었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살다보니, 그런 무력감도 느낄 때도 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떤가. 무력감을 느껴봐야 다음의 기회에 그런 무력감을 느끼지 않게 발버둥이라도 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저자도 말했듯이, 초조감 같은 감정은 이겨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고 하니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곱씹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겠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경험해봤다고 해서 다음 번에 잘 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 부정적인 전망밖에는 안 생긴다. 감정이라는 놈은 끈질겨서 한 번 경험했던 것에 대해서는 계속 끈덕지게 따라다니니, 벗어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도 정신과 의사가 썼으면서도 해결책은 어디에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인 우리가 이대로 포기해버릴 만한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대비도 할 수 있으니 아쉬울 것은 전혀 없다. 어차피 이 책을 안 봐도 누구나 이런 감정은 겪으니까. 솔직하게 펼쳐두고 알아두는 것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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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세계사 - 역사의 운명은 우연과 타이밍이 만든다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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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라는 저자의 책을 예전에 한 권 정도 읽은 것도 같은데, 그 때는 그다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역사의 치명적인 배후, 성>이란 주제에 맞춰서 글을 쓰다보니까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목에 이끌려서 고르긴 했는데 이 내용이 쉽사리 혹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한동안 책을 묵혀두고만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생각해본 적은 없어도 인생의 아이러니쯤은 한 번씩 경험들 하지 않는가. 아이러니만큼 인생이 씁쓸한 것이 없는데 왜 또 굳이 역사까지도 아이러니를 찾으려 했을까 자책 비슷한 것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게 왠걸, 읽기 시작하자마자 350페이지 분량의 책을 후딱 다 읽어버리지 않았겠는가. 그만큼 흥미있는 내용을 적절하게 뽑아놓았고, 편집도 잘 버무려 놓았는데다가 가장 중요한 것인,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쓰는 가상의 대화가 모조리 현대어로 되어 있다. 현대어도 아이들이 쉽게 쓰고 이해하는 속어나 비어를 이용해서 구성해냈기 때문에 정말 쉽게, 아니 재밌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심심풀이 땅콩을 먹는 것처럼 콩트를 대하듯이만 한다면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가 있다. 여기에 적당한 호기심만 가미하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가 된다.

 

물론 기본적인 역사적인 지식이 갖추어진 사람이 읽는다면 훨씬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내가 찾기론 딱 두 부분밖에 안 되어서 역사 초보자가 읽기에도 아주 수월했다. 내 경우에는, 그 첫 번째가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전쟁으로 유명한 황산벌 전투이었는데, 이 전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마지막에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기는 했던 계백 장군이 왜 졌고, 어떤 방식으로 개죽음을 당했는지는 나와있지 않는 책이 조금 야속했다. 내가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으면 이 책에서 말하는 바가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범상치 않은 것인지까지도 제대로 알 수 있었을 것을, 그것을 포착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없다고 해서 아예 책을 읽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여서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솔직히 학창시절에 역사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모든 내용을 다 외워야 하는 상황을,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어렸을 때 많은 역사 책을 읽어놨거나 하는 방식으로 뛰어넘지 못한다면 역사는 항상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는 과목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재미난 대화글을 들려주면서 역사가 단지 고루하고 들쳐봐야 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아닌 것을 알려준다면, 누가 역사를 싫어하거나 못할까 싶다. 진정한 스토리텔러라 부르고 싶은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자 이성주가 말하는 '역사'란 살아남은 자들, 즉 권력 잡은 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을 것이란 생각을 그는 항상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앞에 두고선 정말 이것이 맞는 내용인지 일일히 딴지를 걸고 확인하고 자료 조사해봐아야 한다.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진정한 역사 앞에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 뿐인 방법이고 기회이라는 것이다. 계속 의심해봐야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의 틀을 깨버릴 수 있으니 앞으로도 역사를 바라볼 때는 엉뚱하게 생각해보고 현대 상황으로 바꾸어 봐서 진정한 역사에 도달해봐야겠다. 일단 이성주가 쓴 책을 위주로 많이 읽는 것이 우선이겠다. 이 바쁜 나날동안 언제 역사에 딴지를 걸고 있겠나. 이미 걸고 넘어뜨린 이야기를 읽으면 더 수월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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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인류의 문명 - 선사 시대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궈팡 편저, 김영경 옮김 / 꾸벅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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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인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과연 '역사'라 이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인류의 문명사의 첫 발을 디딘 책이 등장했다. '꾸벅'이란 생소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등장한 이 역사서는 방대한 인류의 문명에 대해서 최대한 담을 수 있는 내용이란 내용은 다 담으려 노력했다. 그렇다보니, 책의 판형도 다소 큰 편이고 올컬러판이라 무척 무겁기도 하다. 하지만 밖에서 볼 것이 아니라면, 특히 역사에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사진 자료가 주가 되어야 할 테니 이렇게 무거워도 상관없다. 가지고 다니면서 책 보길 좋아해서 일단 무거운 책은 패스해버리곤 하지만, 이 책만은 참 좋았다. 물론 예전에 봤던 가야에 관련된 역사책도 올컬러판이긴 했지만 종이의 재질이 다소 얇아서 덜 무겁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긴 안다. 어쨌거나 풍부한 사진 자료를 앞세우면서 선사 시대에서부터 기원전 500년까지의 일들을 잘 담아냈는데, 그렇다보니 다소 구체적이지 못한 면은 어쩔 수 없었다. 겨우 300쪽밖에 달하지 않는 분량에 기원전 500년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담아내려니 아주 상세하지 못했던 탓도 있고, 문자가 아예 없던 문명이 발견되었거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해서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덜 상세해도 어쩔 수 없긴 하다. 또한 이제껏 알고 있던 지식에 비해 너무나 생소해서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몰랐던 부분이 많이 나와 지루하기도 했으니 이렇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세계사의 뿌리부터 훑어 내려가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이 책의 범위인 4대 문명이 등장하는 이 시기인데, 견고하게 오랫동안 왕조를 유지했던 이집트 문명과 많은 민족의 침입을 받았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스 문명을 발원시킨 에게 문명, 인도 문명으로 대표되는 인더스 문명이 아주 상세하게 정리되어 나온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가장 먼저 문명이 형성된 곳은 이집트 문명으로, 왕조가 바뀌기는 했으나 민족이 모두 멸망당하거나 강제 이주를 실시한 적이 없으므로, 차지하는 분량 아주 많을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내가 관심있는 것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라는 계획 도시에 대한 일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쪽이다.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이 책이 워낙 꼼꼼하게 설계되어 있어 이해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하수도관 시설이나 공중목욕탕 등의 선진 문화가 존재하는 인도 문명이 한순간에 멸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더 연구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고고학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런데 내가 하라파 문명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메소포니미아 문명인데, 이 시기가 바로 성경의 구약에 등장하는 것이라 비교 대조해보면서 공부하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성경에 나온 사람 이름과 진짜 이름를 몰라서 어떤 왕이 어떤 왕인지 모른다는 것이지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시기에 맞추어 구약성경의 열대기상하, 역대상하를 같이 읽는다면 충분히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성경을 읽을 때 시대적 상황과 변화를 잘 고찰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도 하는데 이 책도 충분히 부연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몰랐던 사르곤 1세 이야기와 아크나톤 이야기 등 같은 것도 들어서 하나씩 지식을 쌓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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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전해 준 쪽지 탐 청소년 문학 4
게리 폴슨 지음, 정회성 옮김 / 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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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에게는 남과는 다른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방학 동안에 대화하는 사람이 열 명으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든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보다는 책에 푹 빠져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 등 그 또래 청소년과는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른 개성 만점의 남학생이다. 게다가 일 하면서 야간 대학에 다니시는 아빠와 요양원에 계시면서 대학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할아버지까지 이렇게 남자만 셋 있는 요상한 집안에 태어나기도 해서 여자와의 인연은 평생 동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도 하다. 또한 가늠해보건대 아빠의 나이가 많이 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엄마가 집을 나간 이유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니까 대학도 가기 전에 일을 쳤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와 할아버지가 갓난쟁이를 키웠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어딘가 모르게 심리적인 불안감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여자의 보살핌 없이 평생을 살아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십대 남자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그렇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는 대로, 적당히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가면서 살았던 그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숫기가 없어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아이 녀석이 건설현장 인부들이 여럿 모여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모금 활동을 하지 않나, 짝사랑의 대상인 여자아이와 마주 치기라도 할라치면 나무 근처라도 숨어버릴 녀석이 그녀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고, 말을 잘 한다고 칭찬을 받질 않나, 평생의 취미라곤 독서말곤 모르던 다소 통통했던 그가 남을 위해 3종 철인 경기에 대타로 뛸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질 않나 이렇게 평소와 같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과감하게 해내게 되었다. 물론 그런 과감성 속에는 밍기적거리는 소심함이 분명 들어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한 발짝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을 평소에 믿지는 않지만, 그의 경우에는 그 격언에 맞아떨어져가는 것 같다. 실제 주인공 핀은 여러 가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일회성일 뿐 그의 본성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닐 것이기에 어쩌면 확실하고 짠 하고 변하는 성장 소설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로 재듯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 매일 매일의 삶이 쌓여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니 충분히 그의 인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소설에서의 놀라운 점은 핀이란 약간의 소심증과 게으름증이 있는 소년의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대충만 계산해봐도 일흔이 넘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심리 묘사를 게리 폴슨은 정확하게 해낸다. 소설을 읽을 때 딱히 전작주의를 고집하지는 않지만 이 사람의 소설은 꼭 읽고 싶을 정도로 첫 만남이 아주 좋았다. <손도끼>라는 소설로 만난 그의 작품은 어쩐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는데 모험 소설로 유명한 <15소년 표류기>를 읽고 행복했다면 이 책도 당연히 읽어야 할 소설이다. 소년이 홀로 남아 (마음만)청년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성장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금상첨화이고, 뭔가를 만들고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모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다소 아쉬운 것은 처음 만난 <손도끼>의 감동이 더했던지 지금 본 이 소설의 감동은 전작만 하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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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모든 역사 : 한국사 - 1월에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2개월의 모든 역사 1
이종하 지음 / 디오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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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라고 하면, 정말 할 말이 많은 인간이 나다. 어쩌면 그렇게 한국사를 못하는지, 진짜 내가 생각해도 너무 못했던 점수를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이 고1인지, 고3인지는 모르겠으나 수능 모의고사에서 몇 문제도 안 되는, 그래서 총점이 한국사만 15점 만점이었던 그 문제들 중에서 딱 9점을 맞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성적에 연연해 하지도 않았지만 그 때의 기억은 이제껏 맞아본 적이 없었던 극악무도한 점수였기에 그렇게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까지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것도 같다. 그 때부터였다, 억지로라도 한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가. 그러나 마음에서 멀어진 과목이 어디 점수가 팍팍 올라가는 경우가 있던가. 그러고도 한동안 바닥에 머물다가 한국사에 흥미를 갖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교탁에서 반 엎어진 상태로 강의를 하시던 국사 선생님께서 그 구성진 목소리로 마님과 상놈의 목소리 연기까지 펼치신 적이 있었다. 무척이나 바쁘고 진도 빼기에도 벅찬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할 여력이 없었을 텐데도, 어찌된 일인지 그 때는 한 소절 구연 동화를 펼쳐주셨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배우고 있는, 이 미치도록 머릿속에 박히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인생이자 이야기이자 생명력 넘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 사건이 있은 후, 미친듯이 한국사를 파고들고 나서야 겨우 성적이 올라갔지, 그저 그 재미만 느꼈다고 성적이 오르는 그런 천재적인 머린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한국사에 대해 가졌던 모든 오해와 편견이 풀려 내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아마도 한국사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한 편으론 정리하길 좋아하는 내 못말리는 습성과, 일단 적기만 하면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 대략 기억이 나는 황당한 기억력 덕분이겠지만 이 때부터 한국사의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올 수 있었다. 너무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 때 그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평생 한국사와 담 쌓고 살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참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사는 그냥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이 생기고 재미있으며 톡톡 튀는 맛이 제법인데, 한국사는 그런 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 나와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조금 유별나게 뛰어났던 것이 세계사를 좋아하게 된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때의 나는 존재감이 없던 아이었으나 세계사를 배우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너무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욕심이 더 강해져서 한국사에 대한 책을 더 많이 보는데 이 책도 참 좋았다. <1월의 모든 역사 : 한국사>는 사실 한국사가 더 이상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는 해도 빡빡하게 쓰여진 한국사 책을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정보의 양은 많으면서도 읽기에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보면 눈치챌 수 있듯이, 1월의 1일부터 31일까지 인물의 탄생이나 사망, 사건, 사고 등을 제대로 모아두었기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름도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았다.

 

내가 시인 박목월이 1916년에 돌아가셨는지도 몰랐고 그가 얼마 전까지 교사를 했다고 하니, 의아할 뿐이다. 작품 생활을 하면서 다른 일을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바쁘게 작품 생황과 교사 생활을 했을까 하는 어려움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또한 2011년 1월 21일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삼호주얼리 호의 선원들이 구출된 역사적인 날인데, 그들의 얼굴이 아직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선장이 수원에 있는 아주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가 현재는 다 나아서 얼마 전에 퇴원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수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그냥 책장이 넘겨질 수 밖에 없지만, 의외로 깊이가 있는 책이니 조금만 분발하면 좋겠다. 책 편집은 사건의 중요성에 따라 분량을 분배했다고 하니까 다소 많은 분량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만약 1월이 자기 생일이 있으면 그 날을 보고 재미를 누려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하루라도 역사가 아닌 날이 없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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