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꼭 봐야 할 100점의 명화
디나 맥도널드 외 지음, 송연승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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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에서 꼭 봐야하는 명화 100점이라고 해서 난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실은 훨씬 더 복잡했다. 그 뉴욕이라는 곳이 미국에서 알아주는 가장 큰 도시로, 미국의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데다가 또 많은 대학·연구소·박물관·극장·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인데다가 보니 뉴욕이란 도시 하나에 9개나 되는 주요 미술관이 포진해있다. 그러니 뉴욕에서 100점의 명화를 골라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미술관만 해도 1000점 이상의 명화가 걸려있다고 한다면 이 책에 등장한 명화는 - 설사 내겐 생소하기 그지 없는 작품일지라도 -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또 있다. 각기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상시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대여를 해주거나 보수하느라 떠나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슨 무슨 컬렉션이다 뭐다 하는 전시회 등으로 이동이 가능하기에 이 책만 덜컥 믿고 뉴욕에 찾아갔다가는 원본을 보지 못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냈을 때 상시적으로 걸리는 작품 위주로 편성을 했다고 하니 대체로 맞을 것이다.ㅌ
 
여기에 등장하는 미술관은 브룩클린 미술관, 클로이스터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분관), 프릭 컬렉션,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노이에 갤러리 뉴욕, 휘트니 미술관까지 총 아홉 개인데 많게는 90페이지, 적게는 4페이지 정도의 지면을 할애해서 설명이 되어 있다. 아마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거나 앞으로 갈 예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겸사겸사 좋은 날 이 책을 들고 좋아하는 명화를 찾아나서는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참 좋을 것이다. 따스한 오후 어느 날, 명화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테니까. 실은 나는 한국의 미술관도 잘 찾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유명한 명화는 책으로만 봤을 따름이고. 하지만 이 책에 소소하게 제공되는 개관시간, 입장료, 가는 길, 장애인 편의시설, 미술관 숍 등의 정보를 참고하고 간다면 가는 날이 장날이 되는 허탈한 기분을 맛보지 않고 감상할 수 있을 게다. 솔직히 난 명화를 감상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정말 난해하게 느껴지는 현대미술은 볼 생각도 없지만, 그나마 볼 만한 회화들 중에서도 대단한 명작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명화가 많다.
 
그런 작품들은 내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르네상스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처음 시도해보는 어설픈 원근감은 둘째치고라도 현실과 흡사해보이지 않는 작위적인 인물 배치나 인물 표정, 그리고 색감이 별로였는데 작품의 설명을 읽어보면 내 평가와는 정말 상반되어 더 웃기다. 내가 본 그림들은 하나같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 어색하게만 보이는 모델 배치 구도가 나오는데, 그것이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진행되어가는 초기의 모습이라고 극찬을 해대어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13세기, 14세기의 작품들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이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이 책엔 그 시기의 작품도 많이 등장해서 조금 아쉽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풍경 화가 컨스터블이나 따뜻한 르누아르도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내가 워낙에 알고 있는 명화가 없다보니까 모르는 그리고 이상해보이는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것 중에서도 아름다워 보이는 명화도 많이 소개받아서 기분은 좋았다. 아뇰로 브론치노의 「로도비코 카포니의 초상」은 처음 보는 명화이지만 정말 강렬했다. 혹자는 모델이 사랑에 빠져있을 때라고는 하는데 작품 속에선 그런 기미를 찾아볼 순 없지만 충분히 미남자라 눈이 호강했다.
 
존 컨스터블은 「주교의 정원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이란 작품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피셔주교로부터 의뢰를 받았던 거라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고 설명되었다. 만약 주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날로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을 테니 정말 피말리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의 「모르트퐁텐의 뱃사공」이란 그림도 아련한 강가를 그린 그림이라 풍경화를 좋아하는 나에겐 아름다웠다. 조금은 경박하지만 밝고 유쾌한 그림을 그리는 장-오노레 프라고라르의 「사랑의 진행: 만남」은 아름다우면서도 너무 도자기 같은 모델과 주변의 섬세할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의 조화가 잘 된 작품이다. 이런 그림과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그림을 좋아하는데 왠지 분위기가 같아 손꼽아보았다. 인물 화가로는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를 빠뜨릴 순 없는데 그의 유명한 허리가 기이할 정도로 긴 비너스의 그림은 없고 대신 처음 보는 「오송빌 백작부인」이란 그림이 등장한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백작부인이라는데 남편이 이 그림을 그녀가 죽은 뒤에도 간직했을 정도로 사랑했다는 뒷말이 더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이 모든 그림은 프릭 컬렉션에 있으니 찾아가볼 사람은 찾아가보도록. 그림의 크기가 큰 것도 같은데 그런 사이즈는 찾아볼 수가 없어 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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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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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아는 작가도 없었고, 가장 중요한 볼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작년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우연찮게 받았던 한 그림책이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유쾌하게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점차 관심이 갔다. 그러고보니 장 지오노 글에, 프레데릭 바크 그림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란 그림책을 좋아했던 것이 기억도 날듯 하니 아예 안 본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래도 그림책은 아무래도 그림이 중요하니까 그림체가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림책은 내용과 이미지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 이 그림책은 수채화의 느낌이 물씬 우러나오는 그림체라 그림이 분명하지 않지 않아 처음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계속 음미하면서 보다보니까 충분히 마음에 전해오는 것이 있었다.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만남이라니, 그것도 일본인 소녀와 프랑스인 아저씨의 만남이라니, 그렇게 서로 이질적이었기에 서로에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 않았을까. 아저씨와 소녀도 친해지긴 어려운 만남이긴 한데, 다른 인종의 만남, 다른 국적의 만남이었기에 더 신기하고 편안했는지도 모른다. 내겐 저런 뜻밖의 선물 같은 일회성의 만남이 없어서 더 동경의 눈으로 봤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멘티가 될 수 있는 뜻밖의 만남은 어떤 사람에게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매너리즘에 빠져서 잘할 수 있는 것임에도 대충 하게 되어버린 경력자나 아직 잘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형성되지 않는 초심자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어른이나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애나....누구에게나 말이지~

 

조금은 살아보니까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물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면 어릴 때보단 조금은 이성적이니까 나쁜 소리, 잘못된 생각을 물리치고 자기에게 좋은 것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약하다. 자신이 힘들 때는 주저말고 주변에게 긍정적인 위로, 생각을 주입받아야만 훨씬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이든, 연인이든, 혹시 처음 본 사람이든간에~. 우울하고 지칠 때, 만약 처음 본 누군가가 좋은 곳에 데려가주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좋은 것을 알려준다면 그 사람은 혼자일 때보다 익숙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때보다 그 자극이 그에게 더 주효하지 않을까. 그에게 훨씬 자극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바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회성이든 여러 번의 만남이든 자극은 동일할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의 특별하지 않은 말에도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가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의 별다른 말이 아니여도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 등장하는 식물을 좋아하는 소녀와 식물학자는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게다. 그것이 너무나 소중해서 나중에는 헤어짐이 아픔이 될지라도 그 만남을 놓치지 않을 만큼 그렇게. 그러니까 서로 만나지 못할 때도 상대방의 이름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일시적으로 끝날 만한 만남이었을지라도 그것은 서로에게 영원히 계속될 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만남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사에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푸른 여러 나무 속에서 사에라와 아저씨를 보노라니, 무더운 여름도 사라락 가실 것만 같다.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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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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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약간 은은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폼새로 생긴 이 책은 겉만 보면 뭔가 어려울 것 같은 포스를 물씬 풍긴다. 실은 극히 서민적인 ‘미각’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서민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네 먹거리 그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것, 음미하는 것, 어떻게 먹는 것이 그 본연의 식재료를 음미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주 근본적인 한국인의 미각에 대해 설파하는 글이다. 설탕이니 소금이니 배추김치니 떡이니....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책 제목만 딱 봐서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구구절절 말이 필요 없이 그저 한 번만 책을 열어봐라. 그럼,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단순함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제목만 덩그라니 놓는 그 파격의 美란~!
 
총 84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대로 볼 필요도 없다. 충분히 자유롭게 규칙이 없이 보는 책이라고 해야 할 거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책의 서문을 보면 한번에 이해된다. 서문 「왜 미각의 ‘제국’인가」라는 꼭지가 12번에 가 있다. 누가 거기에 처박아 놨을까. 그야 물론 저자 황교익이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특이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회사 돈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향토음식을 맛본 것을 『맛따라 갈까보다』(디자인 하우스, 2000년)란 책으로 펴냈고, 1990년 중반부터 여러 잡지에 맛 칼럼을 연재한 것을 묶어 『소문난 옛날 맛집』(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란 책으로 냈다니 뭐, 맛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맛 컬럼니스트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이나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그런 자리에 꿰차고 앉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지금은 그가 쓴 책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칼럼을 묶은 것이란 소리는 없었는데, 각 꼭지의 분량이 2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식재료에 대해서 읊어주고 있으니 맛에 대한 내공이 없어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다. 1번부터 10번까지는 양념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금」, 「된장」, 「식초」, 「고추」, 「설탕」같은 부재료가 등장해주는데 내용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 이상이다. 익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이긴 하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먹어댔다는 자각이 여실해질 만큼 새롭다. 예를 들어, 국산 천일염은 다 좋은 줄만 알았더니만 쓴맛을 내는 염화마그네슘의 함량이 많으면 좋지 못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세계 최고로 치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을 명품이라고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꼬집어준다. 맛있는 음식, 좋은 음식에 목을 매는 미식가들은 다른다지만 실은 요즘 우리 입맛이 단맛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설탕」편에서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식당 음식이 달아지고 있다고.  
 
그 다음부터 84번까지는 뒤섞여서 한 번에 무엇이라고 나눌 순 없다. 「청국장」, 「추어탕」, 「설렁탕」, 「계삼탕」 등 탕 종류가 나열되었는가 하면, 「잡식성 인간」, 「열」, 「아내」, 「겨울」등 먹는 행위나 외부적인 요소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이 돋보이는 꼭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포도」, 「곶감」과도 같은 과일 종류가 등장하기도 하고, 「대게」, 「석화」, 「갯장어」, 「새우젓」 같은 해산물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미각의 제국을 본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단순히 어떤 어물은 어느 시기에 맛이 있다거나 단백질이나 지방이 얼마만큼 함유되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음식을 먹는 방식에 대해서, 그 철학에 대해서 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선회」편에서는 일본과 우리가 먹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이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이라기보단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먹는 방식을 알려준다. 일본식은 회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어 간장에 와사비를 곁들여 하나씩 찍어 먹는 것이 좋지만, 우리식은 얇게 썰어 초고추장과 야채를 함께 머무린다거나 상추에 싸서 마늘과 풋고추랑 같이 먹는 것이 훨씬 식감이 좋다고.
 
가장 특이했던 꼭지는 「아내」편이었다. 자신의 미각은 어머니의 세게에서 왔다가 이제는 아내의 세계로 진행하고 있고, 시작되었다는 말에서는 아내의 가치나 아내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묘해졌다. 단지 먹는다는 행위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달하는 행위였음을 역설하는 그의 글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처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자각했다던 책임 - “이 아이는 나 아니면 죽겠구나!” - 이 떠오른 것은 괜한 우연일까. 어쩌면 내가 이제껏 먹어왔던 우리 가족만의 식문화는 단지 습관 그것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표현은 아니였을지. 아이에게 좀더 많은 영양을 보충해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나온 많은 음식이 이제껏 수많은 자식을 키우고 살려냈을 테니까. 아, 그러니 음식은 다른 말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미각이란 꼼꼼한 원칙이 아니라 영양이라는 것, 사랑이란 따스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란 것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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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 이여영이 전하는 위안과 희망의 메시지
이여영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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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영은 예전에 만난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란 책으로 알게 된 전직 기자이다. 촛불 시위에 대한 기록을 개인 블로그에 남긴 것이 화근이 되어 중앙일보를 떠나게 된 사연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여자란 이름으로, 청춘이란 이름으로 가져야 할 것과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을 나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책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다 읽고 나서 속이 후련했던 기억만은 갖고 있다.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이 멋있다는 생각만은 오롯이 내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1년 만에 또다른 책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동안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칼럼도 쓰고, 강의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는데 그렇게 멋지게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거저 얻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믿었던 회사에 배신을 당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미치도록 싫어졌을 때 석 달을 두문불출하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삶에서 배신당할 때 위로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일등은 아니지만 일등만큼, 아니 어쩌면 일등보다도 더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서른 명씩이나 만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그맣게 들려주는 이 책은 세상은 하나의 잣대로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는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세상이 보기엔 실패라고 과감하게 평가를 내릴 지라도 그것이 그다지 상처가 되지 않는 단단한 내공을 기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새삼스러웠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게 된 것인지,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부르짖는 모양새만 쫓고 있었던 것인지 내 우둔함을 깨달아볼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하나만 알았구나 싶었다. 연예인이라고 하면 겉만 보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으려 했던 내 무지가 서글펐다.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진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가 추구하는 목적을 향해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만 눈에 들어와 스스로를 얼마나 비하했는지...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달라질 것이다.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다 발라내진 않았지만, 내가 몰랐던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고,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재연배우 이중성 씨의 이야기였다. 한동안 언니가 너무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 항상 등장하던 보조개가 인상적인  남자배우가 아닌가. 그 때만 해도 3~4년 전이라 그가 많이 나오는 것을 못 봤는데 어느 새 여러 프로그램에서 재연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사극에서 조연으로 나오기도 해서 요즈음 그의 얼굴이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래서 나도 익숙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던 배우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서 보기 전까지 그의 이름이 이중성인 줄도 몰랐었다. 하지만 그가 연기 학원에서 춤도 가르치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디지털 음반까지 준비하면서 뮤지컬 배우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멋져보였다.
 
요즘 재연배우들이 한창 뜨기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소개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또 하나의 직업이 존재한다고만 생각하고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다. 평생을 두고 뮤지컬 배우로, 연기자로 성장할 것을 목표로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 이루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 먹는다면 충분히 조급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내 꿈도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조금은 지친 상태였는데 다시금 나를 재정비할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세상엔 역시 다양한 군상들이 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았다. 남들보다 다른 모양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이 뒤쳐진다거나 잘못 사는 인생은 아니라는 것을, 비록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알지 못했던 그 사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청량감을 안겨주는 책을 만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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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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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소설의 제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이선과 말로리의 재결합 그 후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네이선이 어릴 적 죽었다가 살아난 그 후일까. 아니면..... 말로리의 그 후? 이 소설은 기욤 뮈소가 쓴 일곱 번째 소설이다. 이제껏 그의 소설을 몇 권 보아왔지만 어느 때보다도 더 죽음과 삶에 가깝게 다가간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게다가 이 소설에 쓰여진 내용보다는 그 이후에 나올 이야기가 더 기대되는 그런 소설이다. 아마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란 그런 느낌...? 왜 이리 주인공들의 느낌은 하나같이 틀리지 않는 건지...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나를 완전히 무시한다. 에이, 못됐어.
 
세상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있고, 아픔이 있고, 죽음이 있고, 이혼이 있고....
 
일반적인 통속소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다 갖추었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고루함이나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이 그 순간에 빨려들어가버리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기욤 뮈소는.
한데, 이 소설은 교통사고를 겪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에 써서 그런가 이전에 느꼈던 영상미보다는 심리 묘사에 더 치중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은 받았었는데.... 혹시 그것은 기욤 뮈소가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이 무언지 알 것도 같은데 더디게 온 것 같은 느낌은 계속 울리는 머리 속의 아픔이 내게 주는 재촉인지도 모르겠으니...
 
하지만 조금은 달랐다. 이전과 다른 묵직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으니...
내가 읽었던 그의 소설은 하루 동안의 시간이 계속 진행되는 이야기와, 도둑과 경찰의 쫓고 쫓기는 관계와 같은 이야기였는데 정말 소설 속 인물과 거리를 두고 냉철하게 관조할 수 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그러는 동안 무한한 재미와 더불어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한한 재미와 감동보다는 아픔을 더 많이 느꼈다. 절절하게 헤어진 아내를 그리워하는 네이선의 아픔이 무척 공감되어서 그들의 사랑이 다시금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계속 했었으면 바랐다. 그들의 자존심과 허례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면서 왠지 짜증까지도 났으니까. 왜 서로 사랑하면서 눈치만 슬슬 보는지, 원~
 
그렇게 소설 속 인물일 뿐인 대상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나니까 이젠 감당이 안된다. 서로에게 속해있는 두 사람이 언젠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니. 그런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 『마지막 강의』의 랜디 포시 교수처럼은 아마 못살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인정하고 포기하고 막혔던 것을 풀고 난 다음에 그 미지의 세계로 가야 한다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두고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고통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까지 내가 봤던 기욤 뮈소의 소설 중에서는 이런 결말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결말이 충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충격이었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운명이었다면 받아들여야지. 아마 끝까지 잘 해낼 것이다. 그런데 정말 뼛속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줄 수 있을까.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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