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평점 :
표지도 약간 은은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폼새로 생긴 이 책은 겉만 보면 뭔가 어려울 것 같은 포스를 물씬 풍긴다. 실은 극히 서민적인 ‘미각’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서민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네 먹거리 그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것, 음미하는 것, 어떻게 먹는 것이 그 본연의 식재료를 음미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주 근본적인 한국인의 미각에 대해 설파하는 글이다. 설탕이니 소금이니 배추김치니 떡이니.... 그런데 이렇게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책 제목만 딱 봐서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구구절절 말이 필요 없이 그저 한 번만 책을 열어봐라. 그럼,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단순함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제목만 덩그라니 놓는 그 파격의 美란~!
총 84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대로 볼 필요도 없다. 충분히 자유롭게 규칙이 없이 보는 책이라고 해야 할 거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책의 서문을 보면 한번에 이해된다. 서문 「왜 미각의 ‘제국’인가」라는 꼭지가 12번에 가 있다. 누가 거기에 처박아 놨을까. 그야 물론 저자 황교익이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특이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회사 돈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향토음식을 맛본 것을 『맛따라 갈까보다』(디자인 하우스, 2000년)란 책으로 펴냈고, 1990년 중반부터 여러 잡지에 맛 칼럼을 연재한 것을 묶어 『소문난 옛날 맛집』(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년)란 책으로 냈다니 뭐, 맛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맛 컬럼니스트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이나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그런 자리에 꿰차고 앉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지금은 그가 쓴 책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칼럼을 묶은 것이란 소리는 없었는데, 각 꼭지의 분량이 2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식재료에 대해서 읊어주고 있으니 맛에 대한 내공이 없어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다. 1번부터 10번까지는 양념들이 소개되어 있다. 「소금」, 「된장」, 「식초」, 「고추」, 「설탕」같은 부재료가 등장해주는데 내용은 우리에게 생소한 것 이상이다. 익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이긴 하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먹어댔다는 자각이 여실해질 만큼 새롭다. 예를 들어, 국산 천일염은 다 좋은 줄만 알았더니만 쓴맛을 내는 염화마그네슘의 함량이 많으면 좋지 못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세계 최고로 치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을 명품이라고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꼬집어준다. 맛있는 음식, 좋은 음식에 목을 매는 미식가들은 다른다지만 실은 요즘 우리 입맛이 단맛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설탕」편에서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식당 음식이 달아지고 있다고.
그 다음부터 84번까지는 뒤섞여서 한 번에 무엇이라고 나눌 순 없다. 「청국장」, 「추어탕」, 「설렁탕」, 「계삼탕」 등 탕 종류가 나열되었는가 하면, 「잡식성 인간」, 「열」, 「아내」, 「겨울」등 먹는 행위나 외부적인 요소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이 돋보이는 꼭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포도」, 「곶감」과도 같은 과일 종류가 등장하기도 하고, 「대게」, 「석화」, 「갯장어」, 「새우젓」 같은 해산물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미각의 제국을 본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단순히 어떤 어물은 어느 시기에 맛이 있다거나 단백질이나 지방이 얼마만큼 함유되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음식을 먹는 방식에 대해서, 그 철학에 대해서 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선회」편에서는 일본과 우리가 먹는 방식이 다른데 그것이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이라기보단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먹는 방식을 알려준다. 일본식은 회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어 간장에 와사비를 곁들여 하나씩 찍어 먹는 것이 좋지만, 우리식은 얇게 썰어 초고추장과 야채를 함께 머무린다거나 상추에 싸서 마늘과 풋고추랑 같이 먹는 것이 훨씬 식감이 좋다고.
가장 특이했던 꼭지는 「아내」편이었다. 자신의 미각은 어머니의 세게에서 왔다가 이제는 아내의 세계로 진행하고 있고, 시작되었다는 말에서는 아내의 가치나 아내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묘해졌다. 단지 먹는다는 행위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달하는 행위였음을 역설하는 그의 글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처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어머니께서 자각했다던 책임 - “이 아이는 나 아니면 죽겠구나!” - 이 떠오른 것은 괜한 우연일까. 어쩌면 내가 이제껏 먹어왔던 우리 가족만의 식문화는 단지 습관 그것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표현은 아니였을지. 아이에게 좀더 많은 영양을 보충해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나온 많은 음식이 이제껏 수많은 자식을 키우고 살려냈을 테니까. 아, 그러니 음식은 다른 말은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미각이란 꼼꼼한 원칙이 아니라 영양이라는 것, 사랑이란 따스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란 것을 조금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