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 펜화기행 - 천 년의 문화를 펜 끝에 담다
김영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천 년의 문화유산을 펜 끝에 담다

 

처음 김영택의 펜화를 만난 것은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모 일간지의 한 귀퉁이에 유려한 선으로 그어진 펜화가 신기하기만 해서 마냥 보았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것을 특별히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그림을 매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을 뿐.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평소 신문을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 펜화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다시 만난 것은 작년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였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김영택의 펜화 하나가 자그마한 엽서로 나타나있는 것이 아닌가. 그 엽서의 주인은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것이라 그것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에는 답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는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이런 그림으로 엽서가 만들어졌다면 혹시 책으로도 출간되었을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검색으로 찾아 이렇게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저 펜으로 그린 그림이니까 검색창에 ‘펜화’만 쳤더니 바로 나왔다. 

 

사실 내가 펜화에 주목했던 이유는 그 섬세한 펜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뭐, 굳이 이렇게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 눈에 그저 이쁘기만 하면 나는 다 좋아만 하는 터라 이 펜화도 내 구미에 맞아 이렇게 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동양학자인 조용헌의 추천사와 저자 김영택의 서문을 보노라니, 그리고 제일 첫장을 열고 읽고나니 정말 내가 단순하게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양의 도구인 펜으로 우리 천 년의 문화유산을 담아내는 사람의 깊은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그림이로구나,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단지 펜이 좋아 우리 문화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50만 번의 선을 그려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그 대상의 내력과 유래를 알지 못하고는 그릴 수 없을 것인데... 단지 절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내가 헤아리기엔 그는 대단한 깊이와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문화재나 심지어 산조차도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이 책에 등장한 다양한 절의 모습을 이해하기엔 사진 없이는 조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불상의 이름이나 절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단지 펜화만 실린 책을 보니까 그리 쉽지 않게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펜화의 대상이 된 절의 내력을 알아가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고, 우리 문화재의 위대한 점을 새롭게 전해들었던 것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좀 더 어릴 때라도 여러 우리 문화재를 찾아가 눈으로 본 경험이라도 많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생소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문화재에 문외한인 내겐 알찬 시간이었다. 전국 각지에 숨어져 있는 절경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고,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우리 절을 소개받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기에 이 책을 두고 보다가 가끔은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혼자서라면 훨씬 멋진 여행이 될 테니까.

 다음은 몇 군데 아름다운 절을 꼽아보았다.

 

전북 고창 선운사 내원궁   

선운사는 사시사철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절입니다. 백제 위덕왕 24년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때 3천 명의 스님이 살던 큰 절이었는데 정유재란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이 남아 있고, 큰절에는 대웅보전, 만세루, 영산전 등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서의 사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원궁은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특히 마주 보이는 천마봉의 입석은 한국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관입니다. 천인암 서쪽 암벽에 도솔암 마애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의 하나로 불상의 높이만 5m입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을 세웠던 자리입니다.

경북 경주 독락당계정

독락당을 집 앞에서 보면 평지 마을에 있는 평범한 양반집입니다. 그러나 집 옆 개울가로 돌아가면 느닷없이 깊은 산 속 계곡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독락당은 희재 이언적이 중종 27년 고향마을에 지은 집의 사랑채입니다. 대청마루의 오른쪽 창을 열면 낮은 담장이 보이는데 담장을 뚫고 살창을 설치하여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입니다. 자연을 건물과 직접 연결하는 장치로 보기 드문 아이디어입니다. 독락당이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로는 부족했겠지요.

  독락당 뒤에 별당인 계정이 있습니다. 계정을 마당에서 보면 방 한 칸에 마루 두 칸짜리 작은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계정의 마루에 앉아 계곡 쪽을 내다보면 희재 선생의 뛰어난 건축가적 능력을 알게 됩니다. 동방 5현으로 불리는 선생의 학문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 종로구 창덕궁 존덕정

일제강점기 때 피해가 적어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래도 간직했던 덕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딜 수 있었던 창덕궁입니다. 총 13채의 정자가 있는 창덕궁 후원에는 부용정이나 애련정 외에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정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관람정, 승재정, 존덕정,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취한정, 취규정, 청심정, 희우정이 그것입니다.

  그 중 존덕정은 전국의 많은 정자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정자입니다. 흔한 팔각정자가 아니라 희귀한 육모정자라 더욱 관심이 가지요. 안쪽 기둥 위 창방 아래에 꽃살 교창을 달고 그 아래에는 낙양가글 붙여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천장은 왕의 정자답게 청룡과 황룡 그림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경남 함양 화림동 거연정

 국립공원 덕유산 남쪽에서 발원한 남계천은 깊은 계곡에서 여울이 되고 넒은 계곡에서는 고요히 흐르는 연못으로 바뀌며 함양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됩니다. 이 계곡을 옛부터 '화림동 계곡'이라 하여 명승지로 손꼽았다고 합니다. 현재 남은 8개의 정자 중에 거연정은 조선 인조 때 중추부사를 지낸 화림 전시서가 1613년에 지은 초가 정자를 1885년 후손들이 기와를 얹어 중건한 것입니다. 마루 아래 누하주는 가공하지 않은 나무를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 맞추어 밑바닥을 그랭이 기법으로 깎아 얹어놨습니다. 이런 동양적인 건축 방식은 홍수에는 취약하지만 지진의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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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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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봐도 이 제목은 무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라니~

처음엔 제목만 보고 골랐던 소설인지라 이 제목의 무심함을 발로 차 주고 싶었다. 다짜고짜 발로 차 주고 싶다니...

 

어느 고등학생의 과학수업 시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섯 명씩 한 조를 만들어 실험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외톨이임을 자각하는 한 소녀, 하츠는 또한 외톨이로 있는 한 남자아이 니나가와를 인식한다. 자신과 같이 세상을 거부하는 그를 보며 혹시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만 알고보니 모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오타쿠였다. 온 세상을 거부하고 모델만을 제 눈 속에 담는 그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일말의 욕구조차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까지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묘한 우월감을 느끼지만 하츠도 역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일방적으로 거부한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지냈던 친구 키누요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다른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하츠는 키누요가 자신의 그룹에 들어오라고 해도 떨거지를 받아들여주는 것처럼 느껴져 거부한다. 거부하는 자신에게 달려와서 매달리지 않는 것조차 용서가 되지 않는 하츠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만 생각하기만 했다. 체육선생님과 그를 이용하는 육상부원들의 관계도 서로를 이용하는 것처럼만 보이는 하츠에게 맘 좋은 선배의 말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니나가와의 말로 인해 조금은 다른 여지를 느낀다. 자신의 생각이 어쩌면 잘못 되었을 수 있었겠다는. 소풍 때 맘 놓고 잠만 자는 친구 때문에 심심했던 키누요의 마음을.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내려는 키누요와 그렇지 못한 하츠,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니나가와의 이야기는 점진적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흩어진다.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한다거나 제 감정을 잘못 드러내는 것을 보곤 조금은 제 소통 방식이 잘못 되었음을 인식하는데... 고등학생들이 겪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짧은 단편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냈다. 어쩐지 우울하고 불행해보이는 외모와 생각을 가진 고등학생들을 등장시켰는데도 일본 청소년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내심 신기하기도 한다. 아마도 겉으로는 세련되어 보일지라도, 혹은 생각없이 보일지라도 남과 소통하는 법을 몰라 힘들었던 경험을 한번 쯤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냈을 테지.

 



그러니... 발로 차 주고 싶은 것은 하츠의 못난 모습일까, 아니면 니나가와의 외면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가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안정된 것을 흔들어버리고 싶은 마음...

그렇게라도 차 주면서 자신의 무감각한 마음을 흔들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어렵다. 역시 청춘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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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 별이 반짝! 심장이 쿵!!
차선희 지음 / 다인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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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조금 독특한 설정을 안고 시작한다. 안면기억장애를 가진 여주인공의 설정이 바로 그렇다. 한 번에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주인공 장미후는 열일곱에 첫눈에 반한 환이랑 행복하고 별이 반짝이듯이 사랑을 하다가 그를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다. 벌써 3년이나 그를 잊지 못해 혼자 살면서 가끔 그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아 엉엉 울다가도 그가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방긋 웃는 그렇게 사랑을 할 줄 알고 하는 사람이었다. 스물여덟이란 나이가 무색하게도 환이 엄마, 즉 시어머니께 ‘엄마’라고 부르면서 안겨들기도 잘 하면서 사랑을 잘 베푸는 사람. 고아이지만 작은 사랑을 크게 느끼고 감사하면서 사랑을 많이 줘봤던 그렇게 마음이 순수하게 넓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장면은 그런 미후가 엉엉 울면서 뛰어들어왔을 때 옆에 존재감 없이 다소곳하니 자리잡은 성 작가와 같이 일하는 서우영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싫다는 여자 안 붙잡고 쿨 하게 헤어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상당히 담백한 남자, 그 서우영. 그가 미후와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서로 소개를 정식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경황없이 울다가 눈만 잠깐 마주친 사이, 그들의 첫만남은 독특했다. 더 독특한 것은 미후의 안면기억장애가 무색하게도 우연히 동네 슈퍼에서 두번 째 만났을 때 그를 단박에 기억해내버린 것. 환이말고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환이말고는 운명을 만들지 않으려했기에 그렇게 무심히 모른 척 누구냐고까지 연기를 했어야 했던 남자였다, 서우영은.
 
그렇다면 우영이에겐 미후란 여자가 어떻게 비춰졌을까. 자신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 울면서 시어머니에게 안겨드는 여자. 스물여덟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낮은 정신연령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보단 성 작가가 제 아들부부 때문에 그런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사극드라마에서 연애물로 전향했다고 하는 소문이 더욱 궁금했다. 실물로 보진 못했지만 소문으로는 엄청 유명했던 그 여자와의 첫만남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어이없다고 받아들여졌지만 엉엉 우는 여자를 보니 혹은 그녀의 사랑이 정말 진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사랑도 연애도 복잡할 것 없이 단순하게 마음이 들면 사귀다가 지루해지면 바로 끝내는 우영의 사랑에 정면도전한 것 같이... 그저 성큼 다가왔다. 새로 찍는 드라마에서 플로리스트로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독특한 여자 그 이상은 아니었을 거다. 그저 안면기억장애라니까 자기는 얼마만에 기억할지가 궁금했고, 그녀가 해주는 끝내주는 연포탕이 먹고 싶고, 눈가를 반달로 만들며 웃는 그녀의 웃음이 보고 싶었을 뿐. 어느 것 딱 와닿는 것은 없는데 그저 그녀가 보고 싶을 뿐.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꽂혀버렸다. 평소처럼 연애하자고 정면공격을 해놓고서 싫다는 대답이 나올까봐 하루 더 준다고 더 생각해보라고 그러고, 정말 환이보다도 더 많이 생각하지만 그래도 안되겠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자존심이 상해 미치겠지만 이 여자랑 다시 못 볼까봐 무섭고, 결국 환이에게 미안하다며 못 하겠다는 서글픈 표정을 짓는 여자가 안쓰럽고, 그래서 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란 걸 마음으로 먼저 알아버렸다. 사랑은... 원래 그런가? 죽을만큼 아프면서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우영이에게도 사랑이 왔나보다, 운명처럼.
 



우리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느냐 물었던 적이 있어. 별이 반짝, 심장이 쿵.
그랬지, 나도. 유치하다고. 나도 모르게 쯧 혀까지 찼다니까. 근데, 서 감독. 녀석을 보니까...... 그 눈을 보니까 알겠더라고. 정말 적당한 표현이더라고. 그것밖에 없더라고. 서 감독, 너도 느끼게 될 거야. 별이 반짝, 심장이 쿵. 사람들이 왜 그 유치한 대사에 열광했는지 서 감독 너도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 백번 이해하게 될 거야. (성재경 작가가 대본 수정하면서 서우영 감독에게 한 충고) - p.17~18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막 생각나. 분명 촬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미후를 생각하고 있어. 멍청히 앉아 있을 땐 귓가로 미후의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해. 그러면서 불안해. 초조하고. 그러다 만나면, 저 애랑 시선을 맞추면...... 그 불안함이 깔끔하게 가셔. 좀...... 어이없지? 나도 요즘 내가 좀 어이없어. 이런 적이 없어서 뭐라 말하기도 그래. (서 감독이 여자친구에게 한 미후에 대한 심경) - p. 82
 
다른 건 생각 하나도 안 나. 잡고 싶어. 잡고 싶어졌어. 내가 왜 이런 말을 성 작가님한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그래요. 그 녀석, 미후...... 내 옆에다 끌어다 놓고 싶어요. 성 작가님이 원했던 것이 어디까지였느냐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거든. 이렇게 불시에 당할 줄 몰랐거든, 나도. (미후가 사라지자 초조해한 서 감독이 성 작가님한테 한 미후에 대한 고백) - p. 94
 
한숨 또 한숨. 그러면서 뒤척이길 수십 번이었다. 가슴은 자꾸만 뭉클거리고, 심장은 공포영화를 볼 때처럼 무섭게 뛰어댔다. 미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생각보다...... 힘들다. 환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힘들었던 것보다 배는 더 ...... 아프다. "그러니까...... 진작 그만 하랬잖아." (...) 기어이 눈물을 뽑고선 신경질을 부려댔다. 그리고 미후가 잠든 건, 6시가 다된 시각이었다.
(우영이를 거절하고 난 뒤 미후의 심경) - p. 141
 
공원 앞, 그녀는 입구를 빠져나가고, 그는 입구를 막 들어오는 참이었다. 그녀는 멈춘 데 반해, 우영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어?'  그리고 눈물 한줄기가 뚝 떨어졌다. 미후는 재빨리 눈물을 훔쳐 냈다. "미련퉁이" 울음 섞인 목소리...... 그랬다. 자신은 분명 미련퉁이가 맞았다.
(거절한 후 일주일만에 본 우영이가 자신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제 마음을 깨닫는 미후) - p. 155
 
지나치는 그 순간부터 아니, 마주친 그 순간부터 잡고 싶었다. 그냥 확 끌어안아 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흔들린다는 녀석이니 와락 끌어안고 절대로 안 놔주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 했었다. 하지만 여태 그런 마음을 참고 견디는 이유가 그거다. 흔들리면서도 오지 못하는 마음, 그거......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막연히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아플까, 쪼그만 녀석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뒤돌아보고픈 거 꾸역꾸역 참아가며 멍청하게 걷고 있는 거였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초인적인 힘을 내가며 참고 있는 거였다.
(거절당한 후 미후를 보고도 외면한 우영의 마음) - p. 156

 
이 이야기는 사랑이 가벼웠던 한 남자와 사랑이 운명 하나라고만 믿고 있었던 여자의 이야기이다. 먼저 만나 추억과 이야기를 만든 전 남편에 대한 질투심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우영이와 먼저 우영이를 붙여주었지만 정작 잘 되어가는 우영-미후 커플을 볼 때 가슴 한 켠이 씁쓸해지는 성 작가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먼저 가버린 사람이 불쌍하고 그래서 더욱 남겨진 사람이 불쌍하긴 하지만, 제게 찾아온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벼울 것 같은 문체 속에다 무겁고 진중한 내용을 잘 포장해놓은 차선희 작가는 이번이 처음인데,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엄마도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보시고선 눈물을 쏟으셨다고 하셨는데,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말고도 인생의 깊은 주제, 인간의 애환을 잘 담아내어 마음에 든다.
 


"왜 ...... 환이라 그랬어?"     
재경이 우영에게 물었었다. 그때, 우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더 이상 질투하지 않으려고."   
그 말에 재경이 알 수 없는 눈길을 보내자, 우영은 다시 한 번 얘기했다.
"환일 사랑하려고."               
그날, 재경은 우영을 끌어안고 한동안 엉엉 울었다.
                                                                                                               (우영이가 아들을 낳았을 때 재경이와 했던 대화)   - p. 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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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에서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3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지음, 김원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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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샘 그리블리는 달랑 주머니칼, 노끈, 도끼, 부싯돌, 약간의 돈만 가지고 대대로 선조들이 살아온 캐츠킬 산으로 가출을 감행한다. 그것도 아주 추운 겨울,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는 그 산에서 홀로 서기를 했던 것이다. 청소년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아이가 무슨 이유에서, 어쩌자고 그렇게 가출을 감행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이유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내가 이유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 내용을 찾자고 약간 지루할 수도 있는 이 흥미진진한 책을 끝까지 다 읽었나보다. 워낙 모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하는 나인지라 이 책도 청소년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나홀로 분투기를 담고 있다는 책소개글을 보고 냉큼 집어들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책을 읽다가 약간 지루해서 앉았다 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였던 생각이.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뒷이야기는 궁금했다. 도대체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

 

처음엔 샘이 현재는 살지 않지만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캐츠킬 산에 도착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는 도중에 봤던 도서관에서 만난 누나의 도움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로빈스 크루소처럼 완전 홀로서기라곤 할 수 없지만 청소년 혼자니까 봐주도록 하자. 사실 오자마자는 불도 지피지 못하고, 물고기도 낚지 못한 채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생존의 절박함을 경험했다. 그런 생존의 처절함을 알고 나서부터 아주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겨울이니 가장 중요한 난방 문제부터, 그 다음엔 식수, 그리고 식량 문제까지 다 자급하는 샘의 야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보고 원리를 이해한 다음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방법부터 산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손질해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많은 돈이나 명예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 말고 실제 생존에 필요한 것만 해도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모험소설을 좋아해서 좀 봤는데, 이런 소설들은 독자에게 뭔가 성취감을 주는 듯 싶다. 비록 소설 속에서 내가 실제로 행동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해서 하루 하루 살아나가는 것을 보면 꼭 내가 뭔가 해낸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하니까. 그래서 성장소설 중에서도 모험소설이 꽤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샘은 처음 캐츠킬 산에 와서 들어가 살 수 있는 썩은 나무통을 발견한다. 나무 속에 움푹 패여있어서 좀 깍아내면 들어가 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나무통을... 그곳에 따스한 보금자리와 식량 창고를 만들어놓고 나중에는 달콤한 디저트까지 신경을 쓸 정도로 꽤 능숙해졌다. 만약 원시시대의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다면 상상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정도로 꽤 재미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정보들 덕에 편히 생존할 수 있겠지만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따뜻한 집을 놔두고 이런 애먼 곳에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 그리 이해가 되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홀로 생존만 생각하며 단순하게 일 년만 지내고 나면 또래 아이들보다는 몇 배 성숙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가치 판단도 흔들리지 않을 것도 같다. 요즘 세상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가치가 바뀌어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될 때가 많지 않은가. 정상적인 생각과 가치관으론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만약 그런 지원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런 썩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6개월 단위로 샘처럼 홀로 나무 구멍에서 사는 체벌을 한다면 조금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 발을 꼭 딛고 인간적으로 옳은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일생을 다 바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삶일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한 인생의 가치를 무시하고 부귀와 명예만 추종하며 산다면 그 말로는 아마 생각하기도 끔찍하지 않을까. 소로우처럼 단순한 자연에의 삶, 그것이 우리게 몸에 좋은 쓴 약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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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명문대학을 나와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할 꿈에 부풀어있던 애나는 곧바로 하녀보다도 못한 사립학교 교사의 현실을 깨달았다. 깨진 유리창에 엄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좁아터진 집에다가 월급의 대부분을 집세로 내면 식사조차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명품백과 슈즈, 옷으로 치장한 아이들에게서 인기 많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방법은 그들의 엄마보다도 옷을 잘 입고 좀 더 세련되 보이는 것 뿐이었다.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가 아이들에게 환호를 받아도 다른 스케줄에 방해된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진정한 수업다운 수업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순간, 과외 하나를 알선받았다. 가서 잡담이나 하고 놀아주면서 시간당 2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가끔 글쓰기 숙제를 ‘아주 많이’ 다듬어 주어야 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뭐, 돈이 더 필요해서 과외를 늘리기만 하면 조금 부담은 되긴 하겠지만, 아니면 크리스마스 휴가 때 대학생들 레포트 쓰는 과외를 맡아도 무지 힘들겠지만 그 돈으로 집으로 휘황찬란한 곳으로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숭고한 뜻을 펼치기 위해 학교로 들어왔던 애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면서 수업을 이끌어갈 생각이었을 뿐. 하지만 그런 시도가 좌절되자 갈 길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조언을 받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고 엄마들은 협박을 일삼는데 어쩌겠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서관 행이나 미술관 견학을 핑계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는 것... 그렇게 해서 2주 동안 공부를 하나도 안 가르쳐주기도 했다. 내심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게 왠걸? 엄마들과 아이들은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학교 수업은 대충 해달라고 선생에게 압력을 넣고, 숙제는 과외 선생님이 대신 해주고, 그렇게 돈으로 쳐발라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돈과 인맥으로 명문대학교를 들어가게 되는 거였다. 거기서도 역시 레포트 전문 아르바이트를 구해놓고 그렇게 학위를 따면 아버지 회사에 임원이 되어 부하 직원들이 죽어라 일을 할 때 유유자적 골프나 치러 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런 세계의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거였다.

 

편했다. 명품이 주는 유혹에 빠져, 아이들과 엄마들이 보내는 환호에 빠져 가책은 저리 미뤄두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기를 거의 1년.... 그렇게 애나는 처음 자신이 교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의 마음을 잊고 있었다... 교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조차 이런 거액 과외는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뭐에 홀린 것인지 그녀는 그래도 직진이었다.... 처음, 애나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학교 다닐 때 공립학교에서 몇 주 실습을 했던 즐거운 기억에 기인했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 싫어했던 아이들도 몇 주가 지나자 모두 생글생글 웃으며 과제를 다 이해했던 그 짜릿한 보람을 느끼며 그녀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돈에 매어 하루에 11시까지 일을 하는 이 짓이 너무 징글징글해서일까,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줘도 그것이 모두 가정교사가 ‘다듬은’ 것이여서 읽기가 싫었던 것일까. 어느 순간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야박하게 구는 것 같은 7학년 학생들은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는데 명품과 대단한 가문이라는 후광 때문에 그들을 아이로 봐주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게 아닐까....

 

가르치는 작업은 기쁘고 고통스럽다. 아이에게 맞는 수업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그 아이가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에 많은 연구와 열정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많은 지원과 지지를 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요즘은 교원평가제니 뭐니 말이 많은데 나는 솔직히 반반이다. 내가 보기에도 필요없는 교사는 분명 존재하기에 안 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생님을 이겨먹으려는 학생들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사실 어렵고 힘든 일인데, 한 사람의 먹고 사는 일을 가지고 함부로 휘두를 순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런 비슷한 책을 읽었는데 교육하는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교사는 하루 빨리 다른 일을 찾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나도 교육일에 적성이 맞지 않으면서도, 즉 못 가르치면서도 - 재미있게 혹은 즐겁게 -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들만 욕을 했었지,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들도 이 사회가 만든 피해자가 아닐까. 안정된 직업이라고는 그런 것밖에 만들어놓지 않은 이 사회가 그런 식으로 피해자를 여럿 만들어놓은 것이니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만 일말의 현실을 담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서울대 입학생들 중 부모가 꽤 사는 비율이 반이 넘었다는데 그것은 극성맞은 과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또 뭐겠는가. 그러니 이젠 돈이 있는 자만 명문대를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교사이고 학생은 학생일 뿐. 교사는 수업 시간에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10명 중에 한 사람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해오라는 숙제를 모조리 과외 선생에게 떠넘겨서 제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했다면 이젠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미국의 수업 방식이 부러웠다. 그들의 모든 것이 부럽지는 않지만 자율적인 분위기나 모조리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들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명문사립중학교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나는 곳이로구나! 부모가 아이들을 덜 가르치도록 조장하고 음란한 짓을 하도록 부추기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어린 자식에게 용인하는 그런 덜떨어진 부모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스캔들이란 스캔들에는 빠지지 않는 패리스 힐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동을 용인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부모가 있었다는 것. 정말 부모 교육을 먼저 시켜놓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게 하는 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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