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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기행 - 천 년의 문화를 펜 끝에 담다
김영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천 년의 문화유산을 펜 끝에 담다
처음 김영택의 펜화를 만난 것은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모 일간지의 한 귀퉁이에 유려한 선으로 그어진 펜화가 신기하기만 해서 마냥 보았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것을 특별히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그림을 매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했을 뿐.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평소 신문을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 펜화는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 다시 만난 것은 작년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였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김영택의 펜화 하나가 자그마한 엽서로 나타나있는 것이 아닌가. 그 엽서의 주인은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것이라 그것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에는 답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는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이런 그림으로 엽서가 만들어졌다면 혹시 책으로도 출간되었을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검색으로 찾아 이렇게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저 펜으로 그린 그림이니까 검색창에 ‘펜화’만 쳤더니 바로 나왔다.
사실 내가 펜화에 주목했던 이유는 그 섬세한 펜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뭐, 굳이 이렇게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 눈에 그저 이쁘기만 하면 나는 다 좋아만 하는 터라 이 펜화도 내 구미에 맞아 이렇게 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동양학자인 조용헌의 추천사와 저자 김영택의 서문을 보노라니, 그리고 제일 첫장을 열고 읽고나니 정말 내가 단순하게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양의 도구인 펜으로 우리 천 년의 문화유산을 담아내는 사람의 깊은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그림이로구나, 아름다운 그림일 뿐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단지 펜이 좋아 우리 문화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50만 번의 선을 그려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그 대상의 내력과 유래를 알지 못하고는 그릴 수 없을 것인데... 단지 절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내가 헤아리기엔 그는 대단한 깊이와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문화재나 심지어 산조차도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이 책에 등장한 다양한 절의 모습을 이해하기엔 사진 없이는 조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불상의 이름이나 절의 구조를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단지 펜화만 실린 책을 보니까 그리 쉽지 않게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펜화의 대상이 된 절의 내력을 알아가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고, 우리 문화재의 위대한 점을 새롭게 전해들었던 것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좀 더 어릴 때라도 여러 우리 문화재를 찾아가 눈으로 본 경험이라도 많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생소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문화재에 문외한인 내겐 알찬 시간이었다. 전국 각지에 숨어져 있는 절경을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고,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우리 절을 소개받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기에 이 책을 두고 보다가 가끔은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혼자서라면 훨씬 멋진 여행이 될 테니까.
다음은 몇 군데 아름다운 절을 꼽아보았다.
전북 고창 선운사 내원궁
선운사는 사시사철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절입니다. 백제 위덕왕 24년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때 3천 명의 스님이 살던 큰 절이었는데 정유재란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이 남아 있고, 큰절에는 대웅보전, 만세루, 영산전 등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서의 사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내원궁은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특히 마주 보이는 천마봉의 입석은 한국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관입니다. 천인암 서쪽 암벽에 도솔암 마애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의 하나로 불상의 높이만 5m입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을 세웠던 자리입니다.
경북 경주 독락당계정
독락당을 집 앞에서 보면 평지 마을에 있는 평범한 양반집입니다. 그러나 집 옆 개울가로 돌아가면 느닷없이 깊은 산 속 계곡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독락당은 희재 이언적이 중종 27년 고향마을에 지은 집의 사랑채입니다. 대청마루의 오른쪽 창을 열면 낮은 담장이 보이는데 담장을 뚫고 살창을 설치하여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입니다. 자연을 건물과 직접 연결하는 장치로 보기 드문 아이디어입니다. 독락당이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로는 부족했겠지요.
독락당 뒤에 별당인 계정이 있습니다. 계정을 마당에서 보면 방 한 칸에 마루 두 칸짜리 작은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계정의 마루에 앉아 계곡 쪽을 내다보면 희재 선생의 뛰어난 건축가적 능력을 알게 됩니다. 동방 5현으로 불리는 선생의 학문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 종로구 창덕궁 존덕정
일제강점기 때 피해가 적어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래도 간직했던 덕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딜 수 있었던 창덕궁입니다. 총 13채의 정자가 있는 창덕궁 후원에는 부용정이나 애련정 외에 일반인들이 관람하기 어려운 정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관람정, 승재정, 존덕정,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취한정, 취규정, 청심정, 희우정이 그것입니다.
그 중 존덕정은 전국의 많은 정자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정자입니다. 흔한 팔각정자가 아니라 희귀한 육모정자라 더욱 관심이 가지요. 안쪽 기둥 위 창방 아래에 꽃살 교창을 달고 그 아래에는 낙양가글 붙여 한껏 멋을 부렸습니다. 천장은 왕의 정자답게 청룡과 황룡 그림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경남 함양 화림동 거연정
국립공원 덕유산 남쪽에서 발원한 남계천은 깊은 계곡에서 여울이 되고 넒은 계곡에서는 고요히 흐르는 연못으로 바뀌며 함양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됩니다. 이 계곡을 옛부터 '화림동 계곡'이라 하여 명승지로 손꼽았다고 합니다. 현재 남은 8개의 정자 중에 거연정은 조선 인조 때 중추부사를 지낸 화림 전시서가 1613년에 지은 초가 정자를 1885년 후손들이 기와를 얹어 중건한 것입니다. 마루 아래 누하주는 가공하지 않은 나무를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 맞추어 밑바닥을 그랭이 기법으로 깎아 얹어놨습니다. 이런 동양적인 건축 방식은 홍수에는 취약하지만 지진의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