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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명문대학을 나와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할 꿈에 부풀어있던 애나는 곧바로 하녀보다도 못한 사립학교 교사의 현실을 깨달았다. 깨진 유리창에 엄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좁아터진 집에다가 월급의 대부분을 집세로 내면 식사조차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명품백과 슈즈, 옷으로 치장한 아이들에게서 인기 많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방법은 그들의 엄마보다도 옷을 잘 입고 좀 더 세련되 보이는 것 뿐이었다.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가 아이들에게 환호를 받아도 다른 스케줄에 방해된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진정한 수업다운 수업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순간, 과외 하나를 알선받았다. 가서 잡담이나 하고 놀아주면서 시간당 2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가끔 글쓰기 숙제를 ‘아주 많이’ 다듬어 주어야 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뭐, 돈이 더 필요해서 과외를 늘리기만 하면 조금 부담은 되긴 하겠지만, 아니면 크리스마스 휴가 때 대학생들 레포트 쓰는 과외를 맡아도 무지 힘들겠지만 그 돈으로 집으로 휘황찬란한 곳으로 바꿀 수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하는 숭고한 뜻을 펼치기 위해 학교로 들어왔던 애나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면서 수업을 이끌어갈 생각이었을 뿐. 하지만 그런 시도가 좌절되자 갈 길을 잃어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조언을 받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고 엄마들은 협박을 일삼는데 어쩌겠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서관 행이나 미술관 견학을 핑계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는 것... 그렇게 해서 2주 동안 공부를 하나도 안 가르쳐주기도 했다. 내심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게 왠걸? 엄마들과 아이들은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학교 수업은 대충 해달라고 선생에게 압력을 넣고, 숙제는 과외 선생님이 대신 해주고, 그렇게 돈으로 쳐발라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돈과 인맥으로 명문대학교를 들어가게 되는 거였다. 거기서도 역시 레포트 전문 아르바이트를 구해놓고 그렇게 학위를 따면 아버지 회사에 임원이 되어 부하 직원들이 죽어라 일을 할 때 유유자적 골프나 치러 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런 세계의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거였다.
편했다. 명품이 주는 유혹에 빠져, 아이들과 엄마들이 보내는 환호에 빠져 가책은 저리 미뤄두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기를 거의 1년.... 그렇게 애나는 처음 자신이 교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의 마음을 잊고 있었다... 교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조차 이런 거액 과외는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뭐에 홀린 것인지 그녀는 그래도 직진이었다.... 처음, 애나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학교 다닐 때 공립학교에서 몇 주 실습을 했던 즐거운 기억에 기인했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기 싫어했던 아이들도 몇 주가 지나자 모두 생글생글 웃으며 과제를 다 이해했던 그 짜릿한 보람을 느끼며 그녀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돈에 매어 하루에 11시까지 일을 하는 이 짓이 너무 징글징글해서일까,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줘도 그것이 모두 가정교사가 ‘다듬은’ 것이여서 읽기가 싫었던 것일까. 어느 순간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야박하게 구는 것 같은 7학년 학생들은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는데 명품과 대단한 가문이라는 후광 때문에 그들을 아이로 봐주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게 아닐까....
가르치는 작업은 기쁘고 고통스럽다. 아이에게 맞는 수업 방식을 찾아내는 것도, 그 아이가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에 많은 연구와 열정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많은 지원과 지지를 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요즘은 교원평가제니 뭐니 말이 많은데 나는 솔직히 반반이다. 내가 보기에도 필요없는 교사는 분명 존재하기에 안 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생님을 이겨먹으려는 학생들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항상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사실 어렵고 힘든 일인데, 한 사람의 먹고 사는 일을 가지고 함부로 휘두를 순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런 비슷한 책을 읽었는데 교육하는 일에 적성이 맞지 않는 교사는 하루 빨리 다른 일을 찾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나도 교육일에 적성이 맞지 않으면서도, 즉 못 가르치면서도 - 재미있게 혹은 즐겁게 - 교사를 지원하는 사람들만 욕을 했었지,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들도 이 사회가 만든 피해자가 아닐까. 안정된 직업이라고는 그런 것밖에 만들어놓지 않은 이 사회가 그런 식으로 피해자를 여럿 만들어놓은 것이니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만 일말의 현실을 담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서울대 입학생들 중 부모가 꽤 사는 비율이 반이 넘었다는데 그것은 극성맞은 과외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또 뭐겠는가. 그러니 이젠 돈이 있는 자만 명문대를 갈 수 밖에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교사이고 학생은 학생일 뿐. 교사는 수업 시간에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10명 중에 한 사람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해오라는 숙제를 모조리 과외 선생에게 떠넘겨서 제 실력을 향상시키지 못했다면 이젠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미국의 수업 방식이 부러웠다. 그들의 모든 것이 부럽지는 않지만 자율적인 분위기나 모조리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들은 너무 좋았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명문사립중학교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나는 곳이로구나! 부모가 아이들을 덜 가르치도록 조장하고 음란한 짓을 하도록 부추기고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어린 자식에게 용인하는 그런 덜떨어진 부모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스캔들이란 스캔들에는 빠지지 않는 패리스 힐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동을 용인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부모가 있었다는 것. 정말 부모 교육을 먼저 시켜놓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게 하는 법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래도 조금은 아이들에게 희망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