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의 하루
홍남권 지음 / 파코디자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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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살을 붙여 이야기를 짓는 팩션은 얼마만큼의 진실성을 담고 있을까...? 혹 나는 이런 책을 보면 항상 궁금하다. 작가가 어떤 문헌에 근거해서 얼마만큼의 상상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말이다. 팩션을 볼 때면 항상 그 이야기가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착각하곤 그 착각에 혼자 웃음 지으며 좋아라 하는 나로선 그 상상이 진실이었으면 매번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수천 년이나 지나고 나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이 사실이라고 바라건 말건 그들의 인생은 이미 지나갔던 일인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정말은 상관없겠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애절한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고, 성숙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도 우리네와 같은 여러 감정이 살아숨쉰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사가 단지 과거의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임을, 우리 민족의 이야기임을 확인하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무미건조한 역사책을 보는 것보다 팩션에 손이 더 많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어쨌든 딱딱한 사실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감정일 테니까.

 

이 이야기는 백제의 의자왕이 그리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황산벌 전투로 유명한 계백이 장군이 아니라 의자왕의 동생이라는 것, 당나라와 싸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이 여자라는 것, 그것도 전 고구려를 통틀어서 덕이 높은 평강공주의 손녀 하루라는 것 등 역사적인 사실로서는 논란이 되는 몇 가지 이야기를 전제로 깔고 시작한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500년 정도밖에 안 지난 조선의 역사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는데 그보다 수천 년 지난 백제와 고구려의 이야기를 어찌 정확하게 알 수 있겠냐마는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너무도 다른 사실이기에 신기하면서도 내심 소설 속 내용이 맞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런 어쭙쟎은 내용을 가지고 설파하니 다른 사람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혹 누가 알겠는가. 어릴 적 봤던 위인전 속에 신라의 영웅으로 등장한 김유신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멋진 인물이 아니라 선덕여왕을 유폐시켜 제 권력을 챙기기에 바빴던 인물임이 드러났던 것처럼(『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다산북스 참조) 혹 계백이 수많은 왕자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백제의 왕자인 계백은 이 세상을 다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포옹력이 크고 생각이 올곧은 딱 임금의 자리에 어울리지만, 권력욕은 없어 자기 세력을 만들지 않고 제 형 의자왕을 목숨 다 바쳐 보필한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알기 위해 유랑을 할 때, 중국을 제패한 당나라가 신경쓰는 고구려의 한 성을 방문하고 거기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아직은 어린 그녀, 하루 성주를... 그녀의 성은 그 유명한 안시성으로 고구려 안에서도 세수가 많이 걷히기로 유명한데다가 실제 성주를 어머니라고 모실 정도로 덕을 베푸는 정치를 하는 곳이었다. 하루 성주의 할머니, 즉 평강공주는 몰락한 귀족 가문인 온달을 제대로 보필해 영웅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고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성읍 하나를 태평성대가 되도록 잘 가꿀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하루는 계백을 만나 하나의 정표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고구려를 호시탐탐 노리는 당나라와의 전쟁 때 적장으로서였다. 백제로서는 고구려가 한 달 정도 버텼다가 당나라가 이기는 것이 이상적이었지만 마음을 준 그녀가 있는 성읍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계백은 당나라의 지략가로 일하면서 하루에게 묘책을 일러주게 된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양만춘 성주가 안시성을 지켜내고 당나라가 물러가더라도 고구려의 성주인 하루와, 백제의 왕자인 계백이 같은 배를 탈 순 없는 법.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나라와 의무에 가로막혀 아름답게 꽃피우지 못했다.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얼까.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이름이야 대대손손 위인전에 기록되어 전해지지만 그들의 인생은 행복했을까... 인간에겐 명예가 남는다곤 하지만 과연 그런 명예만으로 일생간의 행복이 보상될까 싶다. 나는 모르겠다. 그들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그저 그들의 사랑이 안타깝고 아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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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추천영화 77편 두 번째 이야기 - 세상을 바라보는 다섯 개의 시선
이승민.강안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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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매일 보다시피 하는 나로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울까, 아이들이 뭔가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시험이 끝나고 영화를 선정해서 같이 보는 시간에는 그 고민이 극에 달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영화를 보여주어야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을까 항상 고심하게 되는데 매번 성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저번만 하더라도 내가 의도한 감동적인 영화감상이 지루한 감상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청소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이들이랑 같이 보면 참 좋을 그런 영화만으로 묶은 이 책은 바로 나 같은 선생님에겐 보물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소중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냥 흘려들을 수 있을 간단한 말이긴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런 간단한 주문조차 아주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가끔 보기에 나는 그런 주문을 끝없이 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자신을 사랑한다면 멍하니 학원에 와서 그저 시간만 죽이다 갈 수는 없지 않을까. 만약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렇게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TV에 중독되게 자신을 내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귀찮아”, “그냥”, “몰라”를 남발하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을 위해 하루를 연명하는 로봇일 뿐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아이들도 많지만, 서울권이 아닌 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들조차 성적에 연연한다.

 

어쩌면 성적에 연연하는 것은 그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님뿐일지 모르겠다. 개중에는 자신의 성적을 관리하기 위해 전체적인 계획을 짜서 미리 점검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정말 극소수일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성적에 연연해하는 부모님 밑에서 수동적으로 지시만 받고 살아갈 뿐이다. 가끔 “재미 없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 얻어낸 반나절의 자유로 그 때까지의 스트레스를 해소해가며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현주소이다. 아직 아이가 없는 나로선 아이의 행복을 존중하며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아주 의심스럽긴 하지만, 지금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아이들의 모습만큼은 아닌 듯 싶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를 가르치는데, 한 순간의 영화 감상 시간을 어찌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작은 우물 안에서 부모가 뿌려주는 모이만을 먹었던 우리 아이들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통로라곤 책말곤 영화가 유일한데 말이다. 그래서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제목만 봐도 딱 감이 오는 주제로 꾸며놓았다. 「1장 모든 것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합니다」「2장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3장 세상의 왕들은 늙었습니다」「4장 지금 이 가을날을 우리는 함께 걷고 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 인생은 멋진 것이다」까지 아주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마 5장의 주제로 이끌기 위해 이렇게 구성한 것처럼 멋진 영화를 많이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후속작이라니까 그것도 구입해서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같은 주제의 다른 영화를 비교해봐도 좋은 공부가 되지 않겠는가. 일단 내가 먼저 봐야한다는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 책에는 정말 만족스럽다. 애니메이션부터 일본영화, 한국, 할리우드 영화, 블록버스터까지 다채롭게 구성해두어서 아주 좋다. 아이들에게 맞는 것으로는 신나는 춤 영화말고는 생각지 못했던 내겐 아주 필요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각 영화마다 러닝 타임이 명시되어 있으면 학원에서 이용하는데 아주 용이했을 거란 점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바로 검색만 해보면 되긴 하지만, 어쩐지 뒷마무리가 안된 느낌이 든다. 영화의 기본적인 정보가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주제면이나 구성면이나 다른 부분에선 만족스러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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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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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의 탄생』~! 오랜만에 날 설레게 하는 책이 등장했다. 두둥~!! 세계 지도의 탄생!! 작은 것을 좋아해서 수집을 취미로 삼지 않기 위해 - 가산을 다 탕진할까봐 - 무지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도가 좋은 것인지, 그냥 옛날 느낌이 나기 때문에 그저 좋은 것인지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지도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 아마도 지도는 어마어마한 기술의 축척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 명석한 지식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에? 어쨌든 영원히 그 이유는 알지 못할지라도 나는 중세의 아름다운 지도나 현대의 실용적인 지도에 관계없이 지도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지도를 아주 잘 해석하거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그냥 좋다.   
 

그런데 ‘탄생’이라니! 이 제목은, 지도라고 하면 태초부터 당연히 존재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탄생’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정도로 특별한 일이었던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21세기에 살아가는 나로선 세계 지도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석기를 가지고 놀던 시대에서는 ‘세계’라는 말이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조금 들었다. 아하~! 그러니까 세계 지도란 그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거란 것이다. 그러니 인식이 깨어났다는 점에서 ‘탄생’인 건가? 아무리 높게 올라가봤자 구릉이나 산이 전부였을 그 기원전의 시대에 전세계를 어떻게 파악했을지 상상해보는 일은 아마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단지 지평선이 둥글게 보여서 세계가 원판으로 되어 있다고 인식했다는 수메르 왕조의 세계관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너무 단순하지만 그래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본 관점을 담은 것은 정확히 말해서 ‘세계 지도’가 아니라 ‘세계도’이다. 경험하여 축척된 지식과 관념으로 ㅍ현되는 가상의 세계를 혼합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세계도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똑똑하고 신비로운지 그 까마득한 옛날, 아는 것이 쥐뿔도 없을 때에도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세계, 즉 이역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한꺼번에 한 공간에 그려넣기 위해서는 ‘경험과 현실’의 연장선상에 ‘관념과 가상’을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관념과 가상’안에 ‘경험과 현실’을 위치시킨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발상의 전환으로 그려낸 지도는 가상의 세계까지 다 표현하기 때문에 묘출하는 영역이 굉장히 넓어 소축척으로만 구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기원전 지도는 하나같이 단순하게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불교적 세계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본의 오천축도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드러난 중세 유럽의 지도 헤리퍼드 지도, 세계가 하늘과 땅으로 구성되어 있고 땅은 화와 이로 양분된다는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금화이구역총요도,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근대를 선취한 이드리시 세계지도를 중심적으로 설명한다. 세계 지도가 단순히 지리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만큼 대단한 철학을 이야기한 지리서는 처음이다. 역시 지리분야는 만만히 볼 만한 책이 아니였다. 지리책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고대 사상에서부터 불교적 세계관, 중화 사상, 기독교적인 세계관까지 다 나열하며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지도는 중세 시대의 것일 뿐이라 이보다 더 대단한 지도 중의 걸작지도는 따로 있다. 지도가 갖추어야 할 요소, 즉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을 모조리 갖춘 칸티노 세계지도가 바로 그것인데, 이것까지 훑으면 세계 지도는 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지도는 책의 제일 앞 부분에 컬러로 실어뒀으니 내용을 읽는 중간중간마다 앞에서 찾아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단순하게만 여겼던 지도가 사실은 그 시대의 민족 사상을 품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에 유행한 무언가를 적거나 그리거나 해서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우리 인간은 제 이름을 드높이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람이 먹고 살만 하면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처럼 누구나 제가 드러나길 바라는 점을 보고 한편으로 대단하다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교만한 인간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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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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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김두식 교수는 어릴 적엔 한국에서, 결혼하고 나서는 미국에서 영화를 보며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판 삭제되지 않은 원작을 감상하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지 혹은 얼마나 불편한 삶이 있는지 숙고해볼 수 있었단다. 그런데 그가 먼저 영화를 통해 인권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고, 그가 영화를 이용해 여러 강의를 잘 진행하니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그를 조르고 졸라 눈물겹게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영화 「별별 이야기」 (2005)과 책 『십시일反』 (창비 2003), 『사이시옷』 (창비 2006)도 국가인권위원회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란 사실도 이제서야 알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된 위의 책들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것들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이었는데 아마 이 책을 만나게 되려고 그랬나보다. 그런데 그 당시 이 책과 영화는 보는 내 마음을 아주 불편하게 했다. 그 책을 살까 말까 망설였을 때, 결국 사지 않았던 것은 만화의 표현이 상당히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표현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실제의 삶의 더 잔인하고 적나라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내가 겪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것이다. 아니다, ‘무심히’가 아니라 마음이 불편하니까 ‘회피’하기 위해 그렇게 지나쳤었다.
 
하지만 ‘불편함’은 ‘중요함’ 혹은 ‘잘못됨’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내가 무언가가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것이 뭔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런지. 『십시일反』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사람의 손이 잘리는 장면이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그렇게 사고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현실을 깊게 생각하긴 싫기에, 그렇게 ‘외면’해버리고만 것이다. 마치 내 눈 앞에서만 사라지면 그런 일도 같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불편한 것도 괜찮다고. 조금 불편한 것이 왜 그런지 그 이유만 알기만 하면 문제없이 풀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김두식 교수는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알지 못함’에서 온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래서 외면해버린다고 말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저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익숙해지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와 달랐기에 처음부터 선입견에 빠져 거부했던 영화들을 한 번 보자. 그래서 그런 영화들을 통해 청소년들,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검열 문제, 인종차별, 그리고 제노싸이드까지 내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으면 방관해버리는 우리의 나태한 인권의식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이 책의 여러 꼭지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관점은 아무래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이야기였다. 이 책을 기획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도 그 부분이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성애자이자 기독교인인 김 교수의 상황 때문이었다.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는 것을 인권문제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했던 것인데, 김 교수는 그것을 명쾌하게 구별해냈다. 사실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잘 몰랐다. 사실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와 차별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곤 생각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물론 내가 인정하든 말든 그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연예인 홍석천 씨가 커밍 아웃을 하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기자 회견을 할 때는 솔직히 그가 불쌍했다. 그가 힘들게 살아가야 할 것도 불쌍했고,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비난이나 경멸을 받아야 하는 것도 불쌍했고, 그렇게 태어난 것도 불쌍했다. 더구나 그의 개인적인 선택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눈물까지 흘리면서 변명을 해야 하는 것도 불쌍했다. 특히나 그 이후 방송가에서 그를 볼 수 없었던 것도, 다른 트렌스젠더들이 커밍 아웃을 한 후에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보도를 통해서도 단지 성적 취향이 다른 것만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명확하게 생각이 정리되진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성애자들이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그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며, 동일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모두 근거가 논리적이지 못하다며 앞으로 계속 제도적인 개선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마음의 장벽을 없애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고 다독였다. 또한 내 주변에 동성애자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무심코 내뱉는 말에 다른 사람은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에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아름답고 애절하게 그린 영화로는 「더 월 2」가 있는데 사랑하는 할머니들이 같이 살다가 한 분이 돌아가시는데도 그녀를 면회할 수 없었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데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고 그녀와 나누었던 추억을 되새길 유품 하나 챙길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을 본다면 동성애자들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는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동성애자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다. 이 세상은 이성애자들 위주로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볼만 하다. 인간이기에 인권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도 단순한 원칙, 절대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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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의 How Song - 누구나 노래 잘 할 수 있다
박선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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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카피가 생각난다. 난 글로 음악을 배웠다~ 이 말은 동영상으로 배우지 않아 뭔가 부실하게 알게 되었을 때 하는 말로 쓰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뭔가 열심히 읽긴 했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한 느낌이랄까. 책을 마지막까지 덮고선 했던 말, "엥?" 뭐, 이런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박선주 씨에게 왜 책을 이 따위로 쓰셨느냐, 책을 환불해달라 뭐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왜 그랬을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에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고,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노래를 불러보지 않거나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거나 노래방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 분명할 정도로 우리는 노래를 사랑한다. 물론 회식자리에서 빼기 위해 노래를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저 그런 끔찍한 소리를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내놓을 수 없을 뿐이지. 아니, 오히려 노래를 못 부르기에 더 노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아는 이유는 바로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회식 자리에는 적어도 두,세 번은 빼주고 나서야 겨우 마이크를 잡으며 마이크를 잡아도 다른 사람에게 서브 마이크를 권해서 내 목소리가 최대한 들리지 않게 해두고서야 노래를 부른다. 물론 회식 자리가 아닌 경우에는 마이크를 놓지 않아서 문제고~ 너무 부끄럽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최대의 문제다. 도무지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크게 낼 수가 없으니... 이것은 노래방 뿐만 아니라 합창이나 제창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옆 사람이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을, 혹은 내가 잘못 맞춘 음정이나 박자를 들을 것을 우려해서 작게 부르니 도무지 노래란 놈이 늘 생각을 안 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덥썩 집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요즘 「남자의 자격 - 합창단 편」을 신나게 보고 있다. 내가 노래를 못하는 만큼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항상 꿈만 같기 때문에 아예 그 꿈 속에 빠져 살고 싶을 뿐이다. 오디션에서 거의 마지막에 나온 가수 배다해 씨의 모습에서 마른 사람이 안정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대단한 내공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박선주 씨도도 그녀처럼 노래 부르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고음을 잘 내려고 하는 것보다 - 물론 배다해 씨는 고음도 안정적으로 소화해내지만 - 몸통에서 소리를 안정적으로 공명시켜 바른 자세에서 발성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에 핏줄이 서면서까지 급격하게 소리를 내려고 하면 성대가 쉽사리 상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기에 그 부분을 잘 조절해야 한다던데 배다해 씨는 고음 때말고는 정말 쉽게 소리를 내는 것 같아서 진짜 멋졌다. 그런 노래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나면 나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꾸곤 한다. 꼭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지레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이다. 박선주 씨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이란 제 목소리를 잘 내고 제 목소리에 맞는 곡을 선곡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나 같은 부질없는 꿈에서 빨리 깨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리를 찾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공명을 하고 발성을 하는지를 먼저 알라고 조언하는데 노래부르는 순서가 따로 있다. 먼저 리듬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라라라’라고 하면서 리듬을 익힌 후에 멜로디를 모음으로 연습하고 발성과 관련해 호흡 포인트를 표시해두고 발음을 얹져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을 상상하여 감정을 싣는 것이다. 
 
스스로 ‘음치’라 생각하는 나는 여기에 나온 여러 개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평생 음악하곤 친하지 않아서 그런 용어가 쉽사리 이해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이 와닿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박선주 씨의 말로는 세상에 음치는 없다고 한다. ‘음치’는 음악에 많이 노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음정을 구별하는 감이 떨어지고 박자도 맞추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이 내게는 별 효과를 주지 못했다. 복식 호흡을 통해 성대를 보호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알려주긴 하는데 너무 어렵고 따라해봤자 맞는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목소리를 갑자기 크게 쓸 때가 있어 목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데도 따라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안타울데가~ 그러니 이런 보컬 트레이닝은 눈 앞에서 실제로 받아봐야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책은 깔끔한 외모에 개성 넘치는 속표지와 강조된 글씨, 그림으로 꾸며져 있어 보기 쉽게 되어 있고, 중간 중간 미션들을 해결하기 위한 연습곡이 악보로 제시되어 있어서 노래를 ‘쫌’ 하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되겠다. 악보가 있고, 가사가 있으니 집에서도 쉽게 부를 수 있어 그 악보는 내게도 유용하다. 하지만 노래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엔 좀 안타까운 면이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느낌이다. 그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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