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의 하루
홍남권 지음 / 파코디자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살을 붙여 이야기를 짓는 팩션은 얼마만큼의 진실성을 담고 있을까...? 혹 나는 이런 책을 보면 항상 궁금하다. 작가가 어떤 문헌에 근거해서 얼마만큼의 상상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말이다. 팩션을 볼 때면 항상 그 이야기가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착각하곤 그 착각에 혼자 웃음 지으며 좋아라 하는 나로선 그 상상이 진실이었으면 매번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수천 년이나 지나고 나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이 사실이라고 바라건 말건 그들의 인생은 이미 지나갔던 일인데,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정말은 상관없겠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애절한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고, 성숙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에게도 우리네와 같은 여러 감정이 살아숨쉰다는 것을 아는 것은 역사가 단지 과거의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임을, 우리 민족의 이야기임을 확인하게 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무미건조한 역사책을 보는 것보다 팩션에 손이 더 많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어쨌든 딱딱한 사실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감정일 테니까.

 

이 이야기는 백제의 의자왕이 그리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황산벌 전투로 유명한 계백이 장군이 아니라 의자왕의 동생이라는 것, 당나라와 싸워 끝까지 자리를 지킨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이 여자라는 것, 그것도 전 고구려를 통틀어서 덕이 높은 평강공주의 손녀 하루라는 것 등 역사적인 사실로서는 논란이 되는 몇 가지 이야기를 전제로 깔고 시작한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500년 정도밖에 안 지난 조선의 역사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하는데 그보다 수천 년 지난 백제와 고구려의 이야기를 어찌 정확하게 알 수 있겠냐마는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너무도 다른 사실이기에 신기하면서도 내심 소설 속 내용이 맞는 것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런 어쭙쟎은 내용을 가지고 설파하니 다른 사람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혹 누가 알겠는가. 어릴 적 봤던 위인전 속에 신라의 영웅으로 등장한 김유신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멋진 인물이 아니라 선덕여왕을 유폐시켜 제 권력을 챙기기에 바빴던 인물임이 드러났던 것처럼(『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다산북스 참조) 혹 계백이 수많은 왕자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백제의 왕자인 계백은 이 세상을 다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포옹력이 크고 생각이 올곧은 딱 임금의 자리에 어울리지만, 권력욕은 없어 자기 세력을 만들지 않고 제 형 의자왕을 목숨 다 바쳐 보필한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알기 위해 유랑을 할 때, 중국을 제패한 당나라가 신경쓰는 고구려의 한 성을 방문하고 거기서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아직은 어린 그녀, 하루 성주를... 그녀의 성은 그 유명한 안시성으로 고구려 안에서도 세수가 많이 걷히기로 유명한데다가 실제 성주를 어머니라고 모실 정도로 덕을 베푸는 정치를 하는 곳이었다. 하루 성주의 할머니, 즉 평강공주는 몰락한 귀족 가문인 온달을 제대로 보필해 영웅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고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성읍 하나를 태평성대가 되도록 잘 가꿀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하루는 계백을 만나 하나의 정표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고구려를 호시탐탐 노리는 당나라와의 전쟁 때 적장으로서였다. 백제로서는 고구려가 한 달 정도 버텼다가 당나라가 이기는 것이 이상적이었지만 마음을 준 그녀가 있는 성읍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계백은 당나라의 지략가로 일하면서 하루에게 묘책을 일러주게 된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양만춘 성주가 안시성을 지켜내고 당나라가 물러가더라도 고구려의 성주인 하루와, 백제의 왕자인 계백이 같은 배를 탈 순 없는 법.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나라와 의무에 가로막혀 아름답게 꽃피우지 못했다. 그런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얼까.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의 이름이야 대대손손 위인전에 기록되어 전해지지만 그들의 인생은 행복했을까... 인간에겐 명예가 남는다곤 하지만 과연 그런 명예만으로 일생간의 행복이 보상될까 싶다. 나는 모르겠다. 그들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그저 그들의 사랑이 안타깝고 아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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