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박은주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음식을 빼놓고서는 인생을 논하기가 힘들 정도로 음식은 우리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어찌 진정 인생을 즐긴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나이가 들어서는 점점 음식에 집착에 가까운 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라 때때로 제어하는 애를 먹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진정 식도락가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지경이다. 무엇을 먹든 그것이 당신 자체라는 말처럼,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향유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내가 이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은 먹는 것이 결국에는 내 몸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였다. 물론 먹으면 살이 찌거나 내 몸 어디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이제껏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일명 불량 식품에 폭주한 순간 그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복합적인 합성식품은 먹어서 그리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금방 그 식탐이 제어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몰랐을 때보다는 알게 된 이후가 훨씬 내게 득이 된다. 적어도 내가 ‘나쁜’ 것을 먹고 있다는 인식은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먹고 싶은 음식의 종류의 가짓수가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음식을 체험할 기회가 어릴 때보다야 더 많지만 내가 찾게 되는 음식의 가짓수는 적어진 듯 하다. 이름도 모르지만 내 머리속을 아른거리는 음식은 내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시던 그 때 그 음식일 뿐.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음식이 아닐까 한다. 음악이나 냄새, 소리도 충분히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푸근한 마음이 들면서 행복해지게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음식을 먹는 것이니까. 예전에 일본만화 『심야식당』을 본 적이 있었다. 평소 내 취향대로라면 결단코 빌려서는 안되는,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체이긴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노스탤지어와 페이소스를 보고 있으면 그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할 수 밖에 없다. 동생도 얼추 보더니만 너무 슬프다면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약간 아쉽고 우울한 그런 이야기가 우리네 인생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완전히 중독된 것처럼~

 

그 만화책에서는 어떤 주문이라도 다 가능하는 심야식당에 손님들이 자신의 추억을 먹고 마실 수 있게 추억의 음식을 부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추억이 얼마나 값지든 초라하든간에 그 식당은 아주 멋진 식당이고, 그 손님들도 제 추억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점차 음식은 추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신 찌개 종류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아른거리는 나도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서 그것이 먹고 싶었던 것일테니까. 유복하게 자라지는 못했어도 많이 빈곤하지도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은 돌아갈 수 없어,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명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런 추억의 음식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을 보자면 상당히 많은 명사들이 제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가지고 와서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소개를 하는데 진짜 그들이 먹었던 음식으로 그들의 과거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과감하고 고혹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마릴린 먼로까지도 그녀를 대표하는 샴페인을 가지고 나와서 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녀의 이미지에 아주 딱 들어맞는 음식이었다. 또 스스로를 ‘지식노동자’라 규정하는 발자크는 쓴 커피를 하루에 70장 정도 마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커피에서 나온 힘으로 부지런히 작품을 썼다고 하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쌀을 원했던 호치민이나, 군인적에 먹었던 소박한 치킨 마렝고를 잊지 못해 행군할 때는 계속 먹였던 나폴레옹도 있고, 엘비스프레슬리의 정크푸드나 헤밍웨이의 모히토도 있으니 각가지의 음식을 따라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사실은 여기에 나온 음식들 중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모르는 음식이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그 유래와 상황까지도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정말 뜻하지 않은 수확인 듯~!

 

다 읽고 이런 박식한 정보를 구한 저자가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서 앞날개를 보니, 기자이셨다. 사실 별 기대없이 펼쳐든 책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서문을 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시간에 쫓겨서 마음 편히 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었다. 아무래도 저자와 나는 나이도 경력도 연륜도 다르지만, 음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새로운 음식들을 소개받는 기쁨과 그네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나보다. 기자가 뜬금없이 이런 책을 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워낙 먹성도 좋고 먹는 것에 조예가 깊으신 분 같아 반가웠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음식을 싫어하는 자는 없으니, 이 책은 앞으로도 많은 독자를 만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뚝배기 하실래요? - 입맛 확~ 당기는 손맛 한 그릇
정경지.손유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he DISH (정경지 & 손유진)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큰 디쉬’(정경지)와 웹디자이너 출신 ‘작은 디쉬’(손유진)는 시누이올케사이로 만나 올해로 4년째 함께 요리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에는 손수 만든 음식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재미있어 블로그를 열었다. 호텔에서나 볼 법한 멋진 요리도 그녀들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따라만 하면 내 손으로 뚝딱 완성할 수 있음은 물론 맛까지 끝내준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하루 4천여 명이 다녀가는 유명 파워 블로그가 되었다. 자연스레 그녀들의 실력을 알아주는 곳이 늘었고 현재는 푸드 스타일링, 쿠킹클래스 운영, 요리 강의, 레시피 개발 및 메뉴 컨설팅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다른 저서『참 맛있는 채식요리 만들기』는 그녀들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담긴 책으로, “이게 정말 고기는 하나도 안 쓰고 채소로만 만든 거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요리들이 가득하고 『홍대 카페 러너』는 비용 걱정은 줄이고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러너 메뉴들을 소개한다. 러너는 오후 3~5시, 점심(LUNCH)와 저녁(DINNER) 사이에 간편하게 즐기는 간식을 말한다.



 

따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겨울이 돌아왔다. 이런 추운 날에는 아무래도 몸이 옹송그려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 국물 하나에도 마음이 금방 따스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매번 밖에서 사먹기만 하면 주머니는 얇아지고 건강은 해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아무래도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믿음직스럽지는 않으니 의심이 갈 만하지 않은가. 그럴 때 꼭 지참해야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뚝배기란 도구를 사용하는 국물 요리이다 보니 더 따스해보이고 푸근해보이는 느낌이 아주 맘에 든다. 책 표지에 등장하는 국물요리 사진은 낙지배추탕인데, 겨울에 상상할 수 있는 시원한 국물맛이 아주 자연스레 연상되는 표지라 책을 선택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책 속에는 다른 국물요리 중에서도 꼭 먹어봐야 할 요리들이 한가득이었지만, 표지에 등장한 이 요리만큼 나를 끄는 것은 없었다. 아마도 책을 고를 때가 마음이 허하고, 으슬거릴 때였었는지 저 표지가 아주 제격이었다.

 

책을 받자마자 다 읽어버릴 수 밖에 없을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요리책이라 받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 만약 저녁쯤 퇴근한 다음에 책을 받게 되면 밤을 꼬박 새우게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지는 못하니까 눈으로라도 요기를 해야겠다고 악을 쓰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꼭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읽기를 당부한다. 진짜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운 색감과 질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들어본 적이 없는 요리도 많이 알게 되었고 요리 프로그램 속에서 처음 알게 된 요리가 이 책에도 등장해서 진짜 신기해하기도 했다. 차돌박이고추장찌개가 그것인데, 박수홍 씨가 등장하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차돌박이된장찌개가 등장했었다. 그것을 보면서 일본처럼 된장에 고기를 빠뜨린다고, 혹 느끼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박수홍씨가 시식을 하고 나서 했던 말이 참 인상깊었다. 차돌박이를 넣어서 국물이 더 깊고 진해졌다는 그 말, 그 때문에 요리가 먹고 싶었고 어울리지도 않게 나도 요리책을 끼고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찌개가 그렇게나 먹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쓸쓸한 겨울날, 따뜻한 곳에 누워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뚝배기로 만든 음식을 먹을 땐 조금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전에 텔레비전에서 뚝배기는 숨을 쉬기 때문에 세제로 닦기 보다는 쌀뜨물와 같은 것으로 몇 분 담아놓았다가 헹궈서 써야 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집에서야 그렇게 잘 처리하면 되겠지만 음식점에서는 죄다 뚝배기로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좋을 건지. 내가 조금만 더 뻔뻔하고 대찼으면 음식점에서 뚝배기 어떻게 씻으시는지 물어봤을텐데 그러질 못해서 조금 찝찝하고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이 책에서도 뚝배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등장한다. 세제와 쌀뜨물 이야기는 이제 일반 상식선에서 머무르는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이라 그렇기에 더욱 간과해버리기 쉬운데 그것까지도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아주 보기 좋았다. 사실 이 내용이 없었으면 뚝배기를 대상으로 한 요리책이라고 믿지 못했을 거다. 마지막까지 성실해야 인정받는 것처럼 하나부터 끝까지 알아서 잘 챙겼으니...

 

이 책을 보고 이제까지 내가 간과해버리고 있었던 점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재료!! 아무리 날고 뛰는 요리 실력이 있다손치더라도 재료가 신선하거나 좋지 않으면 그 본연의 맛이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많이 넣으면 요리실력이 아주 개차반이여도 어느 정도의 맛을 낼 수 있다. 이 책은 하다못해 찌개 하나를 끓일 때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베이스 국물에 온갖 재료를 넣어 맛을 월등히 높여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그래서 앞부분에 본격적으로 요리에 대해 들어가기 전에 각기 기본 국물을 만드는 방식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물론 뚝배기를 핵심으로 만든 책이니까 뚝배기의 종류나 기능에 대해서도 잘 정리가 되어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해물의 일종을 갈아서 넣는 천연조미료도 소개가 되었는데 진짜 요리 하나 하는데 손이 엄청 많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품을 팔아서라도 음식 솜씨를 늘려야  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되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고 포기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그래도 어쨌든 눈은 즐거웠다. 입으로는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눈으로 대신 만족했으니까 말이다.

 

이런 밤중에 출출할 때 먹으면 딱일 것 같은 국수 뚝배기편이나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 종류가 듬뿍 들어간 퓨전 이탈리안 뚝배기편, 동양의 다양한 밥 종류를 볼 수 있는 퓨전 오리엔탈 뚝배기편까지 없는 것이 없다. 이 중에서 때와 장소에 맞게 골라 먹으면 별미도 그런 별미가 없을 것이다. 역시 제일 맘에 드는 건 따끈한 국물요리가 아니겠는가. 낙지배추탕, 먹고 말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기닝 - 모든 것의 시작
야자와 사이언스 오피스 지음, 장석봉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진짜 재미난 책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어 겨우 과학책인 줄 알았던 이 책은 표지는 절대 그래 보이지 않지만 과학책이 맞다. 표지를 보아하니 다양한 그림과 자그마한 영단어로 표시해놓고서 이것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주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인 줄 전혀 알지 못한다. 나만 해도 표지를 얼핏 보고 나서 이 책이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으니까. 솔직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기닝』이란 제목이 과학책과 어울리나 묻고 싶다. 어쩌면 어울리는 듯도 싶지만, 이런 표지에 이런 제목은 조금 안타까울 따름이다.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표지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았다면 바다출판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지를 만들지 말았어야했다.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인데, 검정이나 어두운 파란 색으로 바탕을 깔고 거기에다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것으로 신비하게 『비기닝』이란 제목을 박아 넣고(굳이 이 제목을 넣고 싶다면) 배경도 우주를 표현한다면 훨씬 이 책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 확언할 수 있다. 『비기닝』이란 제목도 어떤 표지와 같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것이 자기계발서가 될 수도 있고, 과학서적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전체적인 책의 주제가 우주에 관련되어 있다. 우주가 언제 시작되었느냐, 행성이 언제 시작되었느냐, 인간이 혹은 생물이 언제 시작되었느냐에 대한 내용을 묶은 책이기 때문에 표지에다가 신비롭지만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형상화하는 것이 훨씬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장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책이 있어도 그 책의 표지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마음 속으로만 좋아하기로 마음먹는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감을 잡고 책을 읽길 원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는 좋은 책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고 싶어 안달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처음에 표지만 보고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이, 그리고 표지가 영 어울리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간택을 못 받을까 우려되는 점이. 그러니 바다출판사 관계자님들은 부디 다음 판을 찍을 때는 내 의견을 적극 반영해주길 부탁드린다. 일본 소설 중 오기와라 히로시의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란 책도 그런 아름다운 밤하늘을 형상화한 것이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것보다 더 환상적인 색감이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 책의 특이한 점은 한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일본에 세워진 과학정보 연구자들의 모임에서 나온 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여러 국적의 과학자들이 모여 30년 가까이 자연과학, 의학, 생물학, 대체에너지, 과학철학, 국제경제, 미래 문명 등에 대해 연구하고 학술교류 및 집필활동을 하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란다. 역시나 처음에 저자 이름을 얼핏 봤을 때는 그냥 일본인 과학자이려니 하고 말았는데, 자세히 보니 ‘야자와 사이언스 오피스’라고 씌여 있어 독특하고 신기했다. 하긴 책의 내용을 보면 한 과학자가 연구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은 아니긴 하니까. 무언가의 시초라는 것이 워낙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이다 보니 방대하기도 어마어마하고, 모호하기도 마찬가지라 혼자서 책을 내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서문에 보면 나가노 게이 교수와 네 명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썼다는데 워낙에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이라 일반인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단다. 확실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을 보면 그들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겠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무언가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주, 은하, 태양계, 시간, 생명, 종, 인류까지 총 일곱 가지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잔뜩 불러일으키는 주제라 누구나 관심이 생길 만할 책이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삽화나 사진이 잔뜩 들어가있어서 이해하기에도 쉬우면서도 확실한 근거를 들어줘 내용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도록 해준다. 역시 과학서적에는 사진이 제일이다. 일단 2차원적인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4차원적인 내용은 그림으로 표현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 노력에 힘입어 이 책은 아주 금방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주가 시작되는 것이나 은하가, 혹은 태양계가 시작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가 없으니 아무리 많은 학설과 가설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끝내 시작의 과정을 밝혀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빅뱅이론으로 대표되는 우주의 시작설만 해도 사실 아무것도 증명된 것이 없다. 어디까지나 물리학에서 등장할 수 있는 수학적인 계산식과 가설이 만나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만들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렇다. 이러저러한 가설들을 쭈욱 나열한 다음 마지막에는 확실히 모른다고 마무리를 짓는 방식으로 서술되니, 나중에는 내가 왜 이것을 읽고 있나 멍한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인 이상 우주의 깊이와 근원은 알 수가 없고, 우리가 여러 가설을 세워도 누구 하나 확답을 지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과학자들은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면서 탐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은 사물의 기원과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지성적인 생물이라고. 우리가 어떤 답을 얻게 될지, 혹은 과연 답을 얻을 수는 있을지조차 확답이 없는 상태에서라도 우리는 끝까지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존재라고. 그것이 우리가 인간인 이유이고, 다른 생명체와 차별되는 이유라고 말이다. 결론난 것은 하나도 없고, 내 머릿속에 남은 지식도 하나도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이 만들어지든 - 진화이든 창조이든 - 우리 인간이 살 수 있을 만큼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기란 어마어마하게 적은 확률이고, 그 중에서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작은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조금 보이는 것도 같다. 이렇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누구이든간에 한 번 준 생명을 절대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는 것,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주는 광활하고 태양계도 어마어마한 규모이니 인간은 찍 소리조차 내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것을 알았다. 내 환경, 내 처지를 불평만 하면서 살았던 과거의 나에서 조금은 벗어나 좀 더 큰 세상을 봐야겠다. 우주만큼 큰 세상을 말이다. 그러면 내 입에 붙어살았던 불평이란 놈이 어디론가 사라질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크로비오틱 홈베이킹 - 자연을 통째로 구운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마크로비오틱’이란 단어가 들어간 요리책을 더러 보긴 했었는데 생소한 영어가 등장하는 바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 것을 이렇게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요즘 내 입맛 때문이었다. 야식을 자주 하게 되는 직업의 특성상 주전부리를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중 빵을 제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다지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였던 빵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등극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살을 무리해서 빼진 못하더라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야식을 한동안 금했었는데 그것이 금단현상을 촉발했는지 마구잡이로 빵을 먹게 되어 버린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과도하게 금지하지 않고 그냥 달래가면서 밤에 먹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가끔 빵을 먹을 때면 항상 걱정은 되었다. 요즘은 추워서 걷지도 못하는데 내가 유지해야 할 적정 몸무게는 벌써 초과해버렸으니, 조금 난감할 때 이 책을 만났다. 빵을 살 때 꼭 보게 되는 것이 칼로리인데 어찌나 다들 칼로리가 높은지 먹을 엄두가 안날 때가 많다. 그런데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은 설탕도, 버터도, 유제품도, 이스트도 들어가지 않아서 칼로리가 높지 않을 것 같아 선택했다. 역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나다.

 

자연에서 나온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마크로비오틱은 껍질이나 뿌리까지 빼놓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구마만 해도 껍질을 먹어야 배가 더부륵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은 껍질에 위장이나 소장에서 소화시키지 못해 가스의 원인이 되는 전분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부분을 읽고 난 뒤에는 삶은 고구마를 먹을 때 번거롭게 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먹었는데 훨씬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변비로 고생한 적이 있어 배에 가스 차는 것을 경계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상식이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비타민, 미네랄, 칼로리의 관점에서 치중한 기존의 건강 식사법과는 달리 마크로비오틱은 자연 에너지 관점에서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쉽게 이해가 안 가는데, 단순히 말하면 기氣가 골고루 섞이도록 섭취해야 한다면서 극음과 극양으로 치우친 식재료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다. 사실 극양이나 극음의 식재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더 어려운 설명이지만 첨가물은 다 극음이고 소금, 열, 시간은 다 양성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익숙하지가 않은 것이라 그런지 쉽사리 와닿지도, 그다지 친근하지도 않다. 기 어쩌고 하면 왠지 선불교나 도교가 생각나는 바람에 그리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요리책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앞서 말한 베이킹의 기본 재료인 설탕, 버터, 유제품, 이스트를 빼고 대신 넣는 재료들 때문이다. 설탕이야 단 것이니까 막연히 꿀을 넣으면 되겠거니 했으니 그다지 놀라운 것이 없었는데 (실제로는 조청이나 메이플 시럽, 말린 과일이나 과일주스를 넣는데 꿀이 포함되지 않아서 의외였다) 유제품이나 달걀 대체 재료가 가장 놀랍다. 유제품 대신에는, 즉 치즈나 우유 대신에 식물성기름(참기름과 카놀라유 반반씩 섞어서 사용)이나 두유, 두부를 대신 넣으면 되고, 달걀 대신에는 마를 넣어서 갈았을 때 생기는 끈기에 공기를 넣듯 거품기로 부풀려 푹신한 스폰지의 느낌까지 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두부치즈케이크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는데 치즈를 넣어야 하는 부분에 들어갈 재료가 너무 신기하다. 두부, 통밀가루, 조청, 메이플시럽, 카놀라유, 레몬즙, 레몬 껍질, 된장이 다인데 이것을 볼에 넣고 블랜더로 갈아 크림 상태로 만들어 오븐에서 구운 크러스트 위에다 붓는데 사진으로 봐선 진짜 치즈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더 가관이다. 두부티라미스는 또 어떤지... 여기에는 한천가루를 넣어서 끈기가 생긴 다음에 두부랑 섞어서 크림 상태로 만드는데 봐도 또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 이것이 가능한지를 보려면 실제로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부요거트 파르페를 만들 때 들어가는 두부요거트도 두부 1모에 조청 2큰술을 넣어 단맛을 맞추고 소금을 약간 넣고 블랜더로 간 이후에 레몬즙을 넣어 섞어 만드는데 진짜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유제품을, 요거트나 치즈를 두부로 만들 생각을 다 했을지...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은 역시 다른 것 같다.

 

내가 요즘에 몰입하고 있는 빵은 치즈와 초콜릿이 들어간 종류인데, 이 책에는 채식초콜릿 만드는 방법까지 제시해놓고 있어 정말 홈베이킹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가 있다. 두부로 만든 치즈도 놀랍지만, 두부초콜릿과 아보카도초콜릿, 그리고 바나나초콜릿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가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짜 초콜릿과 식감도 똑같고 맛도 같은데 칼로리는 적다니.... 정말 신기하다. 세 가지 초콜릿 중 아보카도초콜릿 색이 가장 근접한 데다 식감도 똑같다니까 이것은 꼭 만들어볼 만하겠다. 이렇게 만든 초콜릿으로 수제초콜릿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집에 오븐이 없다는 것이다. 전에 봤던 오븐 없이 굽는 베이킹 책에서 본 몇 가지 빵 굽는 방법이 어른거리는데 그 책과 이 책이 합쳐지면 더 좋을 듯 하다. 오븐이 없으니 빵 굽는 게 쉽지 않아 도전할 엄두가 안 났었는데 프라이팬에 굽는 방법을 알려준 그 책에다가 이 책의 재료가 섞이면 나도 충분히 건강한 빵을 만들어 먹어볼 수 있는 대작이 완성될 테니까 이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베이킹 방법을 알게 되어 너무 반갑다. 빵이 너무 먹고 싶은 날,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플, 성공 신화의 비밀 - 아이패드 vs 갤럭시탭 : 많이 팔리는 게 이기는 걸까?
김정남 지음 / 황금부엉이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의, 혹은 무언가의 성공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지나간 업적을 따라가는 자리이기에 언제나 유쾌, 상쾌, 통쾌한 일이다. 전에 봤던 구글에 대한 책도 그랬지만, 이 책도 이 세상의 판도를 바꾸는 애플 사의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고 재미나게 그리고 있다. 그런데 장장 361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지만 한 번도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거라고 본다. 물론 이런 성공 스토리에 대한 책이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대개가 외국 저자가 쓴 책을 읽었었는데, 이 책은 한국인 저자가 한국의 실정까지도 알기 쉽게 정리해주어서 아이폰이 가지는 반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구글은 거의 유일하게 한국에서는 맥을 못추니 한국인 저자가 그 기업을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의 경우, 휴대폰 업계는 우리나라 휴대폰 기업이 거의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 휴대폰 업계의 전망을 깨고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 타 휴대폰 업계가 스마트폰을 개발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무선인터넷은 이동통신사에서 통신요금을 받을 수가 없기에 별로 탐탁지 않아 했던 분야였는데도, 이제는 대세가 그러니 너도 나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이 가져온 변화가 아주 놀라웠던지 미국의 한 신문사에서는 아이폰으로 인해 벌어진 한국의 실정을 대서특필하기도 했으니, 애플의 영향력은 가히 원자폭탄급이라 명명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외국 브랜드가 침투하기가 어렵다는 일본에서도 아이폰만큼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니까 정말 대단한 브랜드이자 대단한 상품이다.

 

그런 애플의 가공할 만한 브랜드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 책에서는 하나하나 파헤쳐놓았다. 일단 애플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또한 어떻게 화려한 부활을 할 수 있었는지 간략한 시대적인 변천사가 먼저 등장한 다음 애플의 창조력, 개발, 디자인, 마케팅, 시장 형성 그리고 애플의 앙꼬인 스티븐 잡스에 대한 이야기까지 애플에 대한 모든 궁금한 이야기들을 항목별로 분류해서 만들어놓았다. 신기했던 점은 애플은 곧 스티븐 잡스이고, 스티븐 잡스는 애플이자 애플을 뛰어넘는 하나의 브랜드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대단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놓았던 것이 주된 이유였겠지만, 한 사람에게서 그런 열정과 심미안과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의 인생 자체가 성공 스토리였기에 사람들은 탄탄한 집안에서 탄탄하게 달려온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보다 그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은 하나의 기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판다. 애플을 사용하는 사람은 시대를 앞서 가는,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에 일조하는 혁명가로, 전사로 그리고 있기에 애플의 브랜드 파워는 항상 새롭다. 변혁을 꾀하는 인물로 대표되는 오바마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준을 사용한다는 소리에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혁명적인 인간은 애플을 사용할 것이라는 대중의 심리가 은근히 깔려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오바마의 대변인은 음악을 들을 때 애플의 아이팟을 사용한다고 공식 발표까지 해야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애플의 힘은 애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루한 인간, 답답한 인간, 딱 정해져있는 인간이란 꼬리표를 달아줄 정도로까지 커졌다. 맥을 사용하느냐, PC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까지 의심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호~

 

마지막에 등장하는 애플 연혁을 보니, 매킨토시의 부진으로 스티븐 잡스가 애플 사에서 쫓겨날 때가 1985년이었다. 그리고 다시 화려하게 애플의 CEO로 취임할 때가 1996년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 회사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던 것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들은 풍월이라는 것이 좀 있어서 그가 픽사에서 「토이스토리」로 대박을 쳤다는 이야기, 그가 다시 돌아와서 대단히 잘 했다는 이야기는 조금 듣고 있었는데 그런 역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특히 가장 좋았던 것은 까다롭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스티븐 잡스가 항상 독재적인 행동을 하고 사람들과 마찰을 가졌던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쫓겨났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몇 번의 실패을 겪고 좀 더 겸손해지고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자신에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주변에서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독재적이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을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의 사기를 향상시켜줄 줄 아는 지도자로 다시 태어났단다. 하지만 진짜 신기하고 놀라운 점은 애플이 무언가를 연구할 때 시장 조사를 하지 않고 그저 스티븐 잡스가 원하는 것, 애플 사 직원들이 가지고 싶은 것을 연구하고 발표할 뿐이라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비자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그의 심미안이 놀랍다. 사실 시장 조사를 하면 이제까지 있었던 제품에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제품만이 등장하지, 완전히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소비자의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자신이 남과는 차별적인 애플을 사랑하고 애플에서 더 쉽고 간편하게 세상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에 그가 원하는 것으로만 만들어도 세상에서는 대박이 나는 것이다.

 

나는 애플의 기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디자인이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남과는 다른 심미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내가 대단한 감각이라도 가진 척 느낀다. 그런데 그런 디자인이 기계에 접목 가능하고, 또한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위해 얼마나 어렵게 연구하는지 알게 되니까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하긴 나라도 그런 능력이 있고, 애플을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하겠단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생각과 실제의 차이는 크니까. 처음에 선보인 매킨토시의 플라스틱 껍데기도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고 그 색도 반투명으로 사탕 같은 색을 낸 것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라니까 더 존경스럽다. 아예 공장에서 그들을 위한 생산 라인을 새롭게 깔아야 될 정도로 새로운 공정 시스템을 개발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니 그들의 열정이 놀랍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보여준 기술이 모두 다 애플 사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이리 저리 통합해서 눈 앞에 들이대 준 것말고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통합해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다는 것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정말 시대를 앞서가지 않고서는 어려운 그런 일들을 그들이 해냈다니까, 그들이 지금 누리는 성공의 열매는 결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는 아이 시리즈가 어떤지에 따라서 그들의 평가는 유지되기도, 혹은 떨어지기도 할 테니까 그들은 결코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계속적으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아름다운 기기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