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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비오틱 홈베이킹 - 자연을 통째로 구운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마크로비오틱’이란 단어가 들어간 요리책을 더러 보긴 했었는데 생소한 영어가 등장하는 바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 것을 이렇게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요즘 내 입맛 때문이었다. 야식을 자주 하게 되는 직업의 특성상 주전부리를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중 빵을 제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다지 먹고 싶은 음식은 아니였던 빵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등극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살을 무리해서 빼진 못하더라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야식을 한동안 금했었는데 그것이 금단현상을 촉발했는지 마구잡이로 빵을 먹게 되어 버린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과도하게 금지하지 않고 그냥 달래가면서 밤에 먹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가끔 빵을 먹을 때면 항상 걱정은 되었다. 요즘은 추워서 걷지도 못하는데 내가 유지해야 할 적정 몸무게는 벌써 초과해버렸으니, 조금 난감할 때 이 책을 만났다. 빵을 살 때 꼭 보게 되는 것이 칼로리인데 어찌나 다들 칼로리가 높은지 먹을 엄두가 안날 때가 많다. 그런데 마크로비오틱 베이킹은 설탕도, 버터도, 유제품도, 이스트도 들어가지 않아서 칼로리가 높지 않을 것 같아 선택했다. 역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나다.
자연에서 나온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마크로비오틱은 껍질이나 뿌리까지 빼놓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고구마만 해도 껍질을 먹어야 배가 더부륵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은 껍질에 위장이나 소장에서 소화시키지 못해 가스의 원인이 되는 전분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부분을 읽고 난 뒤에는 삶은 고구마를 먹을 때 번거롭게 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먹었는데 훨씬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변비로 고생한 적이 있어 배에 가스 차는 것을 경계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상식이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비타민, 미네랄, 칼로리의 관점에서 치중한 기존의 건강 식사법과는 달리 마크로비오틱은 자연 에너지 관점에서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쉽게 이해가 안 가는데, 단순히 말하면 기氣가 골고루 섞이도록 섭취해야 한다면서 극음과 극양으로 치우친 식재료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것이다. 사실 극양이나 극음의 식재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더 어려운 설명이지만 첨가물은 다 극음이고 소금, 열, 시간은 다 양성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익숙하지가 않은 것이라 그런지 쉽사리 와닿지도, 그다지 친근하지도 않다. 기 어쩌고 하면 왠지 선불교나 도교가 생각나는 바람에 그리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요리책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앞서 말한 베이킹의 기본 재료인 설탕, 버터, 유제품, 이스트를 빼고 대신 넣는 재료들 때문이다. 설탕이야 단 것이니까 막연히 꿀을 넣으면 되겠거니 했으니 그다지 놀라운 것이 없었는데 (실제로는 조청이나 메이플 시럽, 말린 과일이나 과일주스를 넣는데 꿀이 포함되지 않아서 의외였다) 유제품이나 달걀 대체 재료가 가장 놀랍다. 유제품 대신에는, 즉 치즈나 우유 대신에 식물성기름(참기름과 카놀라유 반반씩 섞어서 사용)이나 두유, 두부를 대신 넣으면 되고, 달걀 대신에는 마를 넣어서 갈았을 때 생기는 끈기에 공기를 넣듯 거품기로 부풀려 푹신한 스폰지의 느낌까지 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두부치즈케이크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는데 치즈를 넣어야 하는 부분에 들어갈 재료가 너무 신기하다. 두부, 통밀가루, 조청, 메이플시럽, 카놀라유, 레몬즙, 레몬 껍질, 된장이 다인데 이것을 볼에 넣고 블랜더로 갈아 크림 상태로 만들어 오븐에서 구운 크러스트 위에다 붓는데 사진으로 봐선 진짜 치즈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더 가관이다. 두부티라미스는 또 어떤지... 여기에는 한천가루를 넣어서 끈기가 생긴 다음에 두부랑 섞어서 크림 상태로 만드는데 봐도 또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 이것이 가능한지를 보려면 실제로 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두부요거트 파르페를 만들 때 들어가는 두부요거트도 두부 1모에 조청 2큰술을 넣어 단맛을 맞추고 소금을 약간 넣고 블랜더로 간 이후에 레몬즙을 넣어 섞어 만드는데 진짜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유제품을, 요거트나 치즈를 두부로 만들 생각을 다 했을지...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은 역시 다른 것 같다.
내가 요즘에 몰입하고 있는 빵은 치즈와 초콜릿이 들어간 종류인데, 이 책에는 채식초콜릿 만드는 방법까지 제시해놓고 있어 정말 홈베이킹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가 있다. 두부로 만든 치즈도 놀랍지만, 두부초콜릿과 아보카도초콜릿, 그리고 바나나초콜릿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가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짜 초콜릿과 식감도 똑같고 맛도 같은데 칼로리는 적다니.... 정말 신기하다. 세 가지 초콜릿 중 아보카도초콜릿 색이 가장 근접한 데다 식감도 똑같다니까 이것은 꼭 만들어볼 만하겠다. 이렇게 만든 초콜릿으로 수제초콜릿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집에 오븐이 없다는 것이다. 전에 봤던 오븐 없이 굽는 베이킹 책에서 본 몇 가지 빵 굽는 방법이 어른거리는데 그 책과 이 책이 합쳐지면 더 좋을 듯 하다. 오븐이 없으니 빵 굽는 게 쉽지 않아 도전할 엄두가 안 났었는데 프라이팬에 굽는 방법을 알려준 그 책에다가 이 책의 재료가 섞이면 나도 충분히 건강한 빵을 만들어 먹어볼 수 있는 대작이 완성될 테니까 이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말이다. 어쨌든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베이킹 방법을 알게 되어 너무 반갑다. 빵이 너무 먹고 싶은 날,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