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삼국사기 우리 역사에 담긴 과학을 찾는다
이종호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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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호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 등 인문·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을 수상한 후 해외유치 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간편하게 50층 이상의 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출원한 바 있다. 과학·문명·역사를 넘나드는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9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에서 주는 저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공저) 『피라미드 과학』『노벨상이 만든 세상』『세계를 속인 거짓말』『세기의 악당』『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등이 있다


 

 

아직까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보지 않은 내가 이 책을 골랐던 것은 뭔가 쉬울 거란 착각 때문이었다. 인문과 과학의 만남이라니 처음부터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내 예감은 여지 없이 틀렸다. 물론 이 책이 무척 어렵다거나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도 탄탄하고 정말 많은 책들을 섭렵해서 정리한 티가 나는, 아주 성실한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거나 글씨 크기도 지금보다는 조금 커서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해주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쉽게도. 아마 나는 조금은 칼라풀한 속지를 기대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실만 나열해놓는 것보다는 핵심을 아주 쉽게 파악하면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로 채워지면 훨씬 이해도 빠르고 무엇을 이야기하기 원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소장가치도 한 몫 톡톡히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혀 없었다. 간간히 흑백으로 된 사진 몇 장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그 당시의 유물을 파악하기엔 조금 버겁지 않으냐 말이다.

 

하지만 글 자체로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삼국사기』의 한 장면을 인용해와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전쟁이나 화친을 번갈아가며 정책을 바꾸었던 것은 한반도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였던 것임에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전쟁을 겪어왔으면서도 그 세 나라 모두를 한민족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서로 소통하는데도 무리는 없었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아마 한민족으로 여기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사실이 있다. ‘거서간, 이사금, 차차웅’이란 칭호로 ‘왕’이란 칭호를 대신할 정도로 국가 성립의 기틀이 가장 늦게 잡힌 신라가 다른 두 나라와 같은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일명 흉노족이라고 부르는 기마 민족 중 한 일파였다는 여러 정황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라의 전반적인 풍습이나 의복 등 여러 문화가 중국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들만의 참신한 문화가 흉노족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의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 심지어 중국의 어떤 장신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라의 금관은 남러시아의 알렉산드로폴에 있는 사르마트족 고분에서 발견된 금제 관식과 아주 흡사하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신라의 황금보검은 아예 무늬가 로마네스크 양식이랑 흡사해서 그곳에서 건너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1973년 경주의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길이 32cm, 최대 폭 9.3cm으로 크기는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표면에 보이는 무늬는 나선무늬(그리스 소용돌이무늬), 로만로렐, 파무늬, 메달무늬(비잔틴 기법), 테두리선(금으로 된 가는 선)이 있다. 보통 황금 보검의 제작지는 지금의 체코, 폴란드, 러시아 지방으로 켈트인들이 제작했던 것인데 이것이 경주의 대릉원에서 발견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동유럽의 지배자가 무슨 연유로 경주까지 이 보검을 전해주었을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비싼 장식품은 교역의 한 물품이라기보다는 선물로 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분명히 하사했거나 하사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가설의 열쇠는 앞서 나왔듯이 기마민족인 흉노족이다. 기원전 3세기 경 흉노족에 속해 있던 한민족의 원류 중 한 부류는 서천하여 훈족으로 성장했고, 또 한 부류는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동천하여 가야 등을 건설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세계를 다스린 3대 영웅 중 하나인 훈족의 아틸라를 생각해보면, 로마가 제패했던 유럽 반도를 다시 훈족이 재패하고서는 동천했던 제 동포에게 그 시기의 유행하던 유럽풍의 황금보검을 하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어마어마한 땅 덩어리를 지배했던 아틸라 입장에서 황금으로 만든 의례용 칼 하나 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황금보검을 지척에 두고도 흑백으로 된 사진을 봐야한다니 어찌 아니 슬플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처음 보는 것이 아니던가. 신라 금관 같은 경우에는 역시나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위대해보이긴 하지만 이미 봤던 것이라 그리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겠는데, 황금 보검인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정말, 이 장면을 봤을 때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또한 글 속에는 등장하는 유물들이 산적해있는데 그 옆에 참고로 등장한 사진은 한정되어 있으니 글을 읽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이야기의 흐름을 잡고 가는 것인지 의아하면서 읽을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나를 탓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런 유물 사진을 유독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 내용에다가 칼라 사진이 풍부하게 들어갔더라면 4개 하고도 반이 아니라 총 다섯 개의 별을 주었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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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나 레이즈 지음, 임현경 옮김 / 다음생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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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고유한 능력일 것이다. 하지만 불쌍하기 때문에, 나보다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불우한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적선하듯이 돕는 것은 진정 돕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국을 선택하지 못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다. 그저 태어난 그곳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내가 전쟁이 일어난 베트남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런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그저 자신이 잘났으니까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당연히 내가 값없이 받은 고마움을, 그 빚을 갚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남을 돕는 행위일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국제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어려움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베트남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던 메이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서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났다. 많은 가족들이 한꺼번에 망명할 수는 없어서 먼저 장녀인 메이를 필두로 가장 어린 린과 넷째 남동생 뚜엔이 먼저 뉴욕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이들은 그나마 추위와 파도, 두려움과 굶주림만 싸우면 되었지만 그외 운이 나쁜 사람들은 해적을 만나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어져 죽기도 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었다. 어쩌면 나도 그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미개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다른 인종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서, 특히 도와주어야 할 사람을 만나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자신이 사실은 없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허울 아래 우리 말을 어눌하게 쓰는 사람들을 뭔가 어리석은 인간 취급을 하지는 않는가. 외국 노동자들의 이주가 많아지면서 심심치 않게 동남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편견과 오해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런 베트남 ‘보트 피플’ 입장에서 낯설고 두려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메이의 입장과 미국에서 사는 강인한 신념을 가진 한나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등장한다. 마리화나나 피우고 온갖 쓰레기 같은 생각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고 싶어 하는 한나는 어디에서나 외톨이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따돌림을 당한다거나 심리적으로 상처가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이들보다 좀더 성숙하고 좀더 어른스러울 뿐이라 그런 외로움을 꿋꿋이 견뎌낸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학교를 절대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견뎌내니까 말이다. 그런 그녀가 드라마를 보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본 뉴스에서 ‘보트 피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구를 위한다고 엄마가 한번만 블루데밍 백화점에서 옷을 사라고 애원할 정도로 항상 누가 입다가 판 벼룩시장에서 옷을 구하는 한나에게 이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상황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한나는 여러 곳에 전화를 한 끝에 베트남에서 망명한 푸엉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드. 디. 어!!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어 우정을 이룬 푸엉과 한나 네 가족은 그 이후로 30년간 관계를 만들어갔다. 서로에게 필요뿐만 아니라 꿈과 희망을 채워준, 서로에게 삶의 목표가 되어준 관계였다. 단순히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영혼을 채워주는 관계... 그런 관계를 맺었기에 30년간이나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맹목적으로 도움을 주기만 하는 관계이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얼마나 삭막한가.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없으면 한 순간이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뼛속 깊이 깨달으면 어쩌면 푸엉과 한나의 관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로서는 이해 밖의 현상이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사실도 내 생각을 바꿔야 할 좋은 이유가 되었다. 실제로 이런 만남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데 그것을 부인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처음 보고 내 친족처럼, 내 영혼의 반쪽처럼 느껴지는 것은 실제론 경험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상당히 멋진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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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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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고 있으면 무척이나 뿌듯해지거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나는 법조계에 종사하지도, 그 분야에 관련된 사람을 하나라도 알지도 않는, 완전히 그 방면에 문외한인 사람인데도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까 마구 마음이 설레이고 무슨 정의의 사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불의했던 현 세태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졌던 것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 사례들을 놓고 이렇게 기뻐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에 각각의 판례들을 편집한 사람들의 이력들이 쟁쟁하다는 것이다. 거의 대표급쯤 되는 박경신 변호사는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후, UCLA 로스쿨을 다시 졸업한 재원이다. 현재는 고려대 법과대학(로스쿨)에 재직 중이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다른 6명의 저자들도 이력이 하나같이 쟁쟁하다. 나는 보통 그렇게 머리가 좋고 스스로 엄청나게 노력해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은 제 밥그릇 챙기느라고 사회적 약자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위대해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지 않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고 했던가. 제 앞가림을 하려는 욕심도 없이 제 밥그릇을 주저 없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어쨌든 그런 쟁쟁한 이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대거 모여서 한국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갑자기 한국이란 나라가 막 자랑스러워지려고 한다.

 

세계에서 한국이 가지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실 그리 높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우리가 약간의 겸손을 섞어서 말하는 순위보다 열에서 스무 계단 정도 낮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만 본다면야 ‘한강의 기적’하며 떠들어댈 정도의 수준일 순 있어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직 ‘거지 근성’을 못 벗어났으니까. 쓰촨성 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나 아이티에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 국제적인 재난이 일어나면 당연히 도와야 할 수준보다도 한참을 못 미치는 성금만 겨우 보낸다고 들었다. 그것도 유엔 반기문 총장의 입으로 말이다. 한국은 오히려 도와주지 않는 것이 더 체면이 선다고 할 만큼만 도와주니, 세계적으로 망신이란다. 그런 것이 바로 ‘거지 근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우리는 50년대에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것도 값없이. 그렇다면 그 빚을 갚아야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한국인들이 물품들을 보내오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이기고 경제 성장을 이루었기에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들이 가는 것이 그렇게나 위안이 된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약자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다. 그것은 비단 외국에 대해서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국민에게 자행하는 짓거리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니. 저소득층, 철거민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년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고아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행동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네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인 제도가 되어 있는가. 노동자의 힘으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평소에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용자들을 보면 정말 전태일 씨가 울고 갈 일이다. 21세기에 오히려 더 열악한 노동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노동자들을 위해서 분신자살까지 했던 전태일 씨가 무덤에서라도 돌아눕지 않을까.

 

상황이 이러할 진데, 이 책이 반갑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약자인 사람의 편에 서서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상식적인 판결을 이끌어낸 판례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도 다 썩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평생을 살아도 법원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일수록 그런 곳에 많이 끌려가니 이런 좋은 변호사들이 많이 필요하다. 사회 여러 곳에서 가난하지만, 사회적 약자이지만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부단한 용기를 냈던, 혹은 내는, 혹은 낼 민주주의 시민들의 편에 서서 권리를 부르짖는 정의의 사도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책에서나 텔레비전에서 한 번은 보암직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흘러나온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보았던 철거민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오산 쌍용자동차에서 한창 문제가 되었던 비정규직 대량 해고문제까지, 우리나라의 희한한 명예훼손죄 성립 이야기에서부터 환경 문제까지, 불합리하게 이루어졌던 관습적인 부분에서부터 종교적인 인권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등장한다. 인간으로 살면서 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제, 사회, 환경, 역사, 미디어, 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추려낸 사례들은 약자에게 희망을 준다. 그 전까지는 피해자였다는 것을 모르다가 다른 사람의 도전으로 인해 내가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정당하게 제 권리를 주장해서 얻어내기도 하는 등 여러 쟁쟁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신기하게도 법조계 글인데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장이라 쉽사리 읽힌다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진짜 사회를 알고 싶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자 한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대중 민주주의란 그 품은 뜻은 숭고할지 몰라도 자칫하면 그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바른 뜻,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리석은 대중들은 선동하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크나큰 악을 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 않은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우리 대중들이 바른 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회 이곳 저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한 제 권리를 인정받은 사례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이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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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룰 - 세상 모든 음식의 법칙
마이클 폴란 지음, 서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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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음식의 법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의 책이다. 나는 그의 명성도, 책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된 『푸드룰(Food Rules)』으로 겨우 그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 얼핏 잡식동물의 딜레마(Omnivore's Dilemma)』라는 책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기에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어설프게는 감잡았지만 먹고 살기 바빠 그의 책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그의 책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할 것을 알겠다. 생태계의 가장 끔찍하고도 무자비한 포식자, 인간이 제대로만 행동한다면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아숨쉬는 지구란 행성이 행복하게 생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내가 감잡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뭐가 어찌됐든 간의 유해하고도 끊임없는 욕망에 대한 것일 것이란 것!! 그래서 그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이 책에 나온 64가지의 법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마음을 뜨끔하게 했던 것은 첫 번째 규칙인 [음식을 먹는다]였다. 나는 내가 상당히 잘 챙겨먹고 건강을 끔찍이도 챙기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저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입에만 달콤하기만 하다면 몸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내가 좋아하고 밤참으로 자주 찾게 되는 것이 라면이고, 그것도 종류별로 많이 늘어서있는 컵라면인데다가, 저녁때면 나도 모르게 대형할인마트에서 어슬렁거리면서 괜히 살까 말까 망설이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 것은 편의점에서 사먹는 것보다 얼마나 싸냐~ 였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다. 세상에 사는 이유가 오로지 먹기 위해서인 것처럼 그렇게 철없게 살았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초콜릿인데, 이것도 아예 안 먹으면 그만일 것을 칼로리 계산한다고 여러 가지 초콜릿을 들고 비교하는 척 하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러니 몸이 좋아질 리가 있겠나. 게다가 되지도 않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야식을 금했던 적이 있었다. 며칠 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에 대한 반대 스트레스로 인해 먹을 것에 폭주했다. 그 때는 왜 이렇게 빵이 맛있던지... 빵의 참맛을 새롭게 발견하고 내린 결론은, ‘모든 빵은 맛있다’였다. 그전까지 빵 같은 간식을 그리 좋아하지도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그 때는 진짜 빵이 이렇게나 맛있는 것이란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것도 치즈가 들어간 빵이란 빵은 모조리 먹어야 할 정도로 절박했다. 치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안 먹는 것은 용납이 안되었으니까!!

 

먹고 싶은 것은 하나 같이 몸에 부담이 가는 것뿐이니,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살다가 한 방에 훅 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 절제를 하며 자신을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것인지... 다이어트를 일주일 했나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무리하게 억압하는 것이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 이제는 무리하게 먹을 것을 제한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음식 같아 보이기만 할 뿐, 정말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로만 채워진 대형할인마트에 가면 어찌 그리 유혹을 많이 받는지.... 또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햄이다. 어릴 때 많이 못 먹었던 것이 그렇게 한이 되었던지, 햄은 모두 좋아한다. 아주 싼 입맛이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음식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음식이 아니니, 이것만 줄여도 충분히 몸은 살릴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또 문제인 건, 기업체에서 쓴 술수에 그냥 넘어가버린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까 내 모습이 보였다. 과자를 좋아하는 내가 칼로리가 높은 과자를 그냥 먹기엔 뭔가 께름직하니까 ‘무슨무슨 첨가’라고 쓰여 있기만 하면 마음 편히 먹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완전히 순진하지 않은가! 아무리 몸에 좋은 것을 넣는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합성된 물질일 텐데 그것이 무어 그리 몸에 좋을꼬. 정말 미련하긴 왕 미련했던 나이다.

 

그런데 후회 많은 이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이젠 나도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했다. 나는 조금 미련하긴 했지만 이제 알긴 아니까 예전만큼은 많이 먹지 않고 일단 몸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요즘 들어 피부가 많이 재생을 하지 못한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내가 먹는 것으로부터 영양을 공급 받아 만들어내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좀 더 예뻐지고 싶다면, 좀 더 현명해지고 싶다면, 좀 더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면 아는 대로 조금씩 실천해볼 것이다. 대체 식품에 현혹되지 말고, 기능성 식품에 현혹되지 말고,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채소 위주로 먹는다면 피부도 아프지 않고 몸도 아프지 않을거다. 분명 그럴 것이다.

『푸드룰』을 처음 보았을 때, 그런 의미에서 혹했다. 내가 음식을 제어하지 못하는그것에 대해 무언가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던히 노력을 계속 해야겠지만 조금씩 음식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한 것 같긴 하다. 예전에도 탄산음료가 몸에 그렇게나 좋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도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땐 꼭 탄산음료를 먹었다. 아니, 그 때는 특별히 꼭 챙겨먹었다. 평소에는 특별히 사먹는 음료가 아니기에 그 때만큼은 특별히 먹어줘야 하는 음료였다. 게다가 가끔 속이 더부룩할 때는 약 대신 찾아먹을 정도로 내겐 친숙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탄산음료를 매일 한 잔씩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충격적인 정보를 얻고 나서부터는 탄산음료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단 무언가를 알아야 변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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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생각 -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안내서
제이미 화이트 지음, 유자화 옮김 / 오늘의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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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오류가 가끔 기억난다.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것 중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순환 논법의 오류, 권위에의 호소 등이 있다. 너무 복잡한 것이라 다 외우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대충 발음하기 재미있는 것 위주로만 기억나는데 이 책을 보다 보니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오류를 배우는 시간처럼, 순전히 그런 내용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고 그러고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고 있는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지 다양한 실례를 들어 설파해준다.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것 굳이 필요없을 것 같았는데 이 책을 보니까 전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어떤 오류보다 더 구체적이고 여러 유형을 알려주기 때문에 찬찬히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애매어의 오류, 동기의 오류, 권위의 오류, 편견, 논박, 반계몽주의, 불일치, 애매한 말, 논점 회피, 우연, 통계, 도덕병까지 총 12가지 항목으로 진행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오류를 철저히 분해해준다. 두 사람이 어떤 주제를 놓고 제 주장을 펼칠 때 한 사람이 “나도 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어!”라고 하곤 모든 이야기를 끝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이 제 의견을 가져 한 가지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의 주장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상대방에게 제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만 대뜸 말하고는 이야기를 끝내 버리니, 가슴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상대방은 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도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그저 그 의견을 서로에게 설명해준다고만 생각하면 될 텐데 괜히 과민반응을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제 주장을 관철시킬만한 논거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뭐, 이것은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보통 그런 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나도 내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어!”라는 말은 어떤 문제에서 권리 문제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겨버리는 아주 희한한 대응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고 황당한 말을 실생활에서 쉴새없이 한다는 것이다.

 

간혹 토론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항상 먼저 정리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용어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같은 단어라도 그 상황과 제 의도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도 맞고 다른 식으로 표현해도 그 단어의 의미가 맞다고 할 때, 한 가지로 통일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전에 ‘홍길동의 의적활동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런데 찬성팀과 반대팀에서 똑같은 ‘양반’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쓴 적이 있었다. 찬성팀에서는 ‘양반’을 ‘탐관오리’로 사용했고, 반대팀에서는 그저 그 의미대로 사용해버려서 토론의 마무리가 없고 계속 빙빙 돌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얼마나 생각이 주관적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악한 의도에 따라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인데, 그것이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라는 것이 실제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추상적이고 기호적인 기능을 위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보니 이런 오류도 간혹, 아니 항상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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