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삼국사기 우리 역사에 담긴 과학을 찾는다
이종호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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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호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 등 인문·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을 수상한 후 해외유치 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간편하게 50층 이상의 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출원한 바 있다. 과학·문명·역사를 넘나드는 활발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9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에서 주는 저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공저) 『피라미드 과학』『노벨상이 만든 세상』『세계를 속인 거짓말』『세기의 악당』『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등이 있다


 

 

아직까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보지 않은 내가 이 책을 골랐던 것은 뭔가 쉬울 거란 착각 때문이었다. 인문과 과학의 만남이라니 처음부터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내 예감은 여지 없이 틀렸다. 물론 이 책이 무척 어렵다거나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도 탄탄하고 정말 많은 책들을 섭렵해서 정리한 티가 나는, 아주 성실한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거나 글씨 크기도 지금보다는 조금 커서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해주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쉽게도. 아마 나는 조금은 칼라풀한 속지를 기대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저 사실만 나열해놓는 것보다는 핵심을 아주 쉽게 파악하면서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로 채워지면 훨씬 이해도 빠르고 무엇을 이야기하기 원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소장가치도 한 몫 톡톡히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혀 없었다. 간간히 흑백으로 된 사진 몇 장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그 당시의 유물을 파악하기엔 조금 버겁지 않으냐 말이다.

 

하지만 글 자체로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삼국사기』의 한 장면을 인용해와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전쟁이나 화친을 번갈아가며 정책을 바꾸었던 것은 한반도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였던 것임에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전쟁을 겪어왔으면서도 그 세 나라 모두를 한민족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서로 소통하는데도 무리는 없었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 아마 한민족으로 여기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사실이 있다. ‘거서간, 이사금, 차차웅’이란 칭호로 ‘왕’이란 칭호를 대신할 정도로 국가 성립의 기틀이 가장 늦게 잡힌 신라가 다른 두 나라와 같은 핏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일명 흉노족이라고 부르는 기마 민족 중 한 일파였다는 여러 정황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라의 전반적인 풍습이나 의복 등 여러 문화가 중국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들만의 참신한 문화가 흉노족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의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 심지어 중국의 어떤 장신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라의 금관은 남러시아의 알렉산드로폴에 있는 사르마트족 고분에서 발견된 금제 관식과 아주 흡사하다.

 

게다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신라의 황금보검은 아예 무늬가 로마네스크 양식이랑 흡사해서 그곳에서 건너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1973년 경주의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길이 32cm, 최대 폭 9.3cm으로 크기는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표면에 보이는 무늬는 나선무늬(그리스 소용돌이무늬), 로만로렐, 파무늬, 메달무늬(비잔틴 기법), 테두리선(금으로 된 가는 선)이 있다. 보통 황금 보검의 제작지는 지금의 체코, 폴란드, 러시아 지방으로 켈트인들이 제작했던 것인데 이것이 경주의 대릉원에서 발견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동유럽의 지배자가 무슨 연유로 경주까지 이 보검을 전해주었을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비싼 장식품은 교역의 한 물품이라기보다는 선물로 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분명히 하사했거나 하사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가설의 열쇠는 앞서 나왔듯이 기마민족인 흉노족이다. 기원전 3세기 경 흉노족에 속해 있던 한민족의 원류 중 한 부류는 서천하여 훈족으로 성장했고, 또 한 부류는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동천하여 가야 등을 건설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세계를 다스린 3대 영웅 중 하나인 훈족의 아틸라를 생각해보면, 로마가 제패했던 유럽 반도를 다시 훈족이 재패하고서는 동천했던 제 동포에게 그 시기의 유행하던 유럽풍의 황금보검을 하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어마어마한 땅 덩어리를 지배했던 아틸라 입장에서 황금으로 만든 의례용 칼 하나 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황금보검을 지척에 두고도 흑백으로 된 사진을 봐야한다니 어찌 아니 슬플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처음 보는 것이 아니던가. 신라 금관 같은 경우에는 역시나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위대해보이긴 하지만 이미 봤던 것이라 그리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겠는데, 황금 보검인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정말, 이 장면을 봤을 때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또한 글 속에는 등장하는 유물들이 산적해있는데 그 옆에 참고로 등장한 사진은 한정되어 있으니 글을 읽으면서도 내가 제대로 이야기의 흐름을 잡고 가는 것인지 의아하면서 읽을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나를 탓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런 유물 사진을 유독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울 뿐이다. 이 내용에다가 칼라 사진이 풍부하게 들어갔더라면 4개 하고도 반이 아니라 총 다섯 개의 별을 주었을 텐데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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