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읽고 있으면 무척이나 뿌듯해지거나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나는 법조계에 종사하지도, 그 분야에 관련된 사람을 하나라도 알지도 않는, 완전히 그 방면에 문외한인 사람인데도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까 마구 마음이 설레이고 무슨 정의의 사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불의했던 현 세태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졌던 것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 사례들을 놓고 이렇게 기뻐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에 각각의 판례들을 편집한 사람들의 이력들이 쟁쟁하다는 것이다. 거의 대표급쯤 되는 박경신 변호사는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후, UCLA 로스쿨을 다시 졸업한 재원이다. 현재는 고려대 법과대학(로스쿨)에 재직 중이며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다른 6명의 저자들도 이력이 하나같이 쟁쟁하다. 나는 보통 그렇게 머리가 좋고 스스로 엄청나게 노력해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은 제 밥그릇 챙기느라고 사회적 약자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위대해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지 않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고 했던가. 제 앞가림을 하려는 욕심도 없이 제 밥그릇을 주저 없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어쨌든 그런 쟁쟁한 이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대거 모여서 한국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갑자기 한국이란 나라가 막 자랑스러워지려고 한다.

 

세계에서 한국이 가지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실 그리 높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우리가 약간의 겸손을 섞어서 말하는 순위보다 열에서 스무 계단 정도 낮지 않을까. 경제적으로만 본다면야 ‘한강의 기적’하며 떠들어댈 정도의 수준일 순 있어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직 ‘거지 근성’을 못 벗어났으니까. 쓰촨성 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나 아이티에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 국제적인 재난이 일어나면 당연히 도와야 할 수준보다도 한참을 못 미치는 성금만 겨우 보낸다고 들었다. 그것도 유엔 반기문 총장의 입으로 말이다. 한국은 오히려 도와주지 않는 것이 더 체면이 선다고 할 만큼만 도와주니, 세계적으로 망신이란다. 그런 것이 바로 ‘거지 근성’이 아니고 뭐겠는가. 우리는 50년대에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것도 값없이. 그렇다면 그 빚을 갚아야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한국인들이 물품들을 보내오면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이기고 경제 성장을 이루었기에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들이 가는 것이 그렇게나 위안이 된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약자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다. 그것은 비단 외국에 대해서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국민에게 자행하는 짓거리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니. 저소득층, 철거민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년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고아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행동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네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인 제도가 되어 있는가. 노동자의 힘으로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평소에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용자들을 보면 정말 전태일 씨가 울고 갈 일이다. 21세기에 오히려 더 열악한 노동 환경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노동자들을 위해서 분신자살까지 했던 전태일 씨가 무덤에서라도 돌아눕지 않을까.

 

상황이 이러할 진데, 이 책이 반갑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약자인 사람의 편에 서서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상식적인 판결을 이끌어낸 판례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도 다 썩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평생을 살아도 법원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일수록 그런 곳에 많이 끌려가니 이런 좋은 변호사들이 많이 필요하다. 사회 여러 곳에서 가난하지만, 사회적 약자이지만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부단한 용기를 냈던, 혹은 내는, 혹은 낼 민주주의 시민들의 편에 서서 권리를 부르짖는 정의의 사도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책에서나 텔레비전에서 한 번은 보암직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흘러나온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보았던 철거민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오산 쌍용자동차에서 한창 문제가 되었던 비정규직 대량 해고문제까지, 우리나라의 희한한 명예훼손죄 성립 이야기에서부터 환경 문제까지, 불합리하게 이루어졌던 관습적인 부분에서부터 종교적인 인권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등장한다. 인간으로 살면서 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제, 사회, 환경, 역사, 미디어, 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추려낸 사례들은 약자에게 희망을 준다. 그 전까지는 피해자였다는 것을 모르다가 다른 사람의 도전으로 인해 내가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정당하게 제 권리를 주장해서 얻어내기도 하는 등 여러 쟁쟁한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욱이 신기하게도 법조계 글인데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장이라 쉽사리 읽힌다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진짜 사회를 알고 싶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자 한다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대중 민주주의란 그 품은 뜻은 숭고할지 몰라도 자칫하면 그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바른 뜻,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리석은 대중들은 선동하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크나큰 악을 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 않은가.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우리 대중들이 바른 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회 이곳 저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정당한 제 권리를 인정받은 사례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이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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