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물리 여행
최준곤 지음 / 이다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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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곤


  호기심 많은 물리학자 최준곤은 1984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었으며, 1992년 이후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 애쓰고 있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서로 얼키고 설켜 많은 영향과 효과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대중들에게 읽히기 쉬운 글을 일상의 테이블에 많이 올리고 있으며,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와 강의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소리를 질러봐』,『양성자 구조에 대한 현대적 이해』,『수리물리학』,『양자역학』등의 책을 펴냈다.



 

 

과학 분야하곤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요즘에는 오히려 나와 관련이 없어보이는 분야의 책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생물 분야는 귀에 쏙쏙 들어왔으니 내가 일하는 분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것에 탄력을 받아 이제는 고등학생 때 제일 자신 없었던 과학 영역인 물리에 도전해보고자 했다. 그 다음으로 어려워하는 영역은 지구과학의 별자리 찾는 부분, 그 다음이 화학 부분이었기에 사실상 나는 생물 말고는 잘 하는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왠걸, 역시 물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특출난 몇몇에게만 주어지는 능력인가 싶었다. 고등학교 때의 물리 시간으로 착각할 만큼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읽어도 글자만 읽을 뿐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지식의 탐구란 헛발질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전부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머릿속에 쏙쏙까지는 아니였어도 대략 이해도 되고 재미있기까지 했는데, 내게 좌절감을 불러일으킨 분야는 바로 [3단원 기후] 편의 [달 반대편의 밀물]이었다. 한 번 들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다음 번에도 그 트라우마 때문에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과거 기억이 있는데, 이번의 경험으로 한 번 더 증명된 것 같다. 달의 중력으로 인해 지구에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원리가 무엇인지를 고등학생 때도 이해 못했는데 지금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태양의 중력이 크긴 하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달보다는 그 영향력이 미약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밀물과 썰물은 달의 중력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데, 그것만 생각하면 지구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한 번씩밖에 오면 안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밀물과 썰물이 두 번씩 진행되니 그 부연 설명이 뒤따라 와야 하는데, 영 알 수가 없다.

 

그 외에는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이 등장해서 재미도 있었고, 생활에 유용하기까지 했던 참 좋은 지침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1단원 빛], [2단원 소리], [3단원 기후], [4단원 전기 및 자기현상], [5단원 물체의 움직임], [6단원 생활 주변 이야기] 로 총 여섯 단원으로 나뉘는데, 원래 내가 싫어했던 물리 분야는 힘이나 일률 나오는 부분인데, 오히려 이 책에서는 [5단원 물체의 움직임]이 훨씬 재미있고 신기했다. 고야이는 6층 이하에서 떨어지면 많이 다칠 수 있지만, 그 이상에서 떨어지면 덜 다친다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배웠다. 이것은 가속도와 속도에 대한 이야기인데, 6층 이하의 높이에서 떨어지면 가속도를 느낀 고양이가 무서워서 움츠러들고 그러면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기에 더 빨리 떨어지고 크게 다치지만, 7층 이상에서 떨어지면 일정 수준의 속도를 느끼게 되기에 고양이는 느긋해져 다리를 넓게 벌려 착륙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7층 이상에서 떨어진 고양이 하나가 이빨 하나만 나가고 멀쩡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엔 쉽사리 이해되지 않지만, 충분히 가속도와 속도는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학교 다닐 때는 속도 구하는 공식을 적용하는 것이 어려워 애먹었었는데 참 별나다.

 

게다가 평소에 궁금했던 전자렌지([4단원 전기 및 자기현상)에 대한 설명은 탁월했다. 마이크로파를 쏘아 보내 물 분자의 진동을 일으키고 그것으로 열을 발생시키는 원리를 배우면서 그것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었다. 예전에 전자렌지의 문을 조금 열고 돌린 누군가가 내장이 다 익어서 죽었다는 루머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전자렌지가 위험하지는 않은지 평소부터 궁금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집에도 전자렌지도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마이크로파를 인체에 쏘이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 밝혀낸 것은 없고, 아직 악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도 없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악영향을 끼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니 안심할 수도 없다고 하셨다. 특히나 내가 들었던 소문은 전자렌지 문 앞에 설치된 금속 철망 같은 것 때문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속시원히 밝혀줘서 좋았다. 역시나 공부는 궁금한 점이 있을 때 훨씬 이해가 쏙쏙 잘 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종이 은은하게 아름다운 소리([2단원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사실은 서양의 종소리에 비해 우리의 종소리가 아름답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라 이 부분이 유익했다. 서양의 종은 작아서 은은하게 메아리치는 맥놀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종은 커서 진동수가 비슷하고 소리의 세기도 비슷한 두 개의 소리가 섞이면 맥놀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에밀레 종에 아이를 보시해서 만들었다는 끔찍한 전설이 붙어있는 것도 다 맥놀이 현상이 예술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서, 막연하게 궁금증을 품고 있었던 것을 해결되어 좋았다. 이런 궁금증을 어디가서 풀겠나. 뭐,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난 맥놀이 현상을 알게 된 것보다 서양 종이 은은한 여운이 없다는 것이 더 새로웠지만 말이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물체에, 현상에 대해 속시원히 말해주는 것이 이 책이다. 물론 밀물, 썰물 이야기는 여전히 내겐 오리무중이지만. 이 부분은 동생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라 특별히 속상하진 않다. 이공대를 간 동생 하나만 있으면 이런 상식적인 수준의 물리는 충분히 해결가능한 것이니까 문제없다. 그래도 평소에 알지 못하고, 알려고 들지도 못했던 내용을 이 책 덕분에 다시 들여다볼 수고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예전에는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만 만족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굳은 머리를 굴려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교양 과학서적은 유익하다고 본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아니기에 더욱 편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과학이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한다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일반 교양 선에서 부담 없이 읽을 만한 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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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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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에 달하는 백제의 역사는 가히 잃어버린 역사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지금의 한국의 역사와는 거의 동떨어진 것쯤으로 취급받고 있다. 우리와 가장 근접하게 여기는 조선의 역사도 사실 5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보다 200년이나 더 오래 지탱해온 백제의 역사를 그렇게나 하찮게 취급하는 것은 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역시 고대사에 속한 역사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그 문헌이나 유물, 유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자료들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생생하게 다큐멘터리로 밝혀진 그 백제 역사의 전모를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SBS와 대전방송이 야심차게 기획한 역사스페셜 다큐멘터리 덕분이다. 삼국시대라고 하면 호방하고 호전적인 기질이 대세인 고구려와 소박하고 서민적인 신라, 그리고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를 가진 백제로 보통 생각해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삼국이 이렇게나 각양각색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전쟁을 하거나 교역을 했을 때, 과연 통역을 붙이지 않았을지, 영화 〈황산벌〉에서도 나왔듯이 그렇게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면서 서로 전쟁을 치렀을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의 어머니가 백제 직계 왕족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발언으로 일본 열도가 발칼 뒤집어졌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만큼 일본과 한국, 즉 백제의 문화 중에는 닮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기사 어릴 적 멋모르고 봤던 역사책에서조차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과 우리 백제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지 않은가. 교토의 고류우지(광륭사, 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 사진은 항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진과 함께 따라다녔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봤을 때, 도금한 우리의 유물보다는 나무로 만든 일본의 유물이 훨씬 아름다웠지만 어쨌든 그 둘이 닮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 다음은 누가 누구에게 전수해주었는지를 살펴봐야한다. 그런데 이것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좀더 깊숙히 역사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백강 전투가 벌어졌던, 신라와 당 연합과 백제와 일본 연합이 벌인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 해전이 벌어진 서기 663년 8월로 말이다. 흔히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몰아내고 통일신라를 이룩한 것으로 아는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고구려는 몰라도 일단 신라와 백제가 해전을 치렀다는 그 자명하고도 생소했던 사실을 말이다.

 

아, 맞다. 백제와 신라는 두 면을 바다에 인접해 있으니 해전을 안 했을리가 없다. 특히 백제의 연합군이 일본인 점을 감안했을 때 기필코 해전이 있었을 텐데, 신기한 것은 이 백강 전투 이후에 일본 내 백제 대 신라의 대립감정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백강전투로 인해 백제가 멸망해버렸는데 일본 안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인들의 신라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야 없었겠다. 그래서 이미 일본으로 이주해와서 세력을 장악한 백제인들이 신라인들을 현재 도쿄 중심지역인 동국으로 강제로 보내 무사 가문 겐지, 즉 원(源)이 동국의 정권을 잡았고, 신라인들이 강제 이주된 현재 교토 중심인 서국은 헤이시 가문, 즉 평(平)이 정권을 잡았다. 백제계인 서국은 헤이시 가문으로 왕조적인 문화를 가진 상업과 해군이 중심인 지역이었다면, 신라계인 동국은 겐지 가문으로 무인 문화를 가진 농업과 육군이 중심인 지역으로 뚜렷한 대립적인 특색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서로 적대적인 두 가문은 저 멀리 일본에서 백제와 신라로 대표되어 서로 끊임없는 다툼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단노우라 전투에서 백제계 평(平)가의 여덟 살난 안덕천황이 수장되고, 평(平)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반도에서 끊어진 삶을 열도에서 다시 이어갈 정도로 생명력 있는 백제계 후손들은 구마모토 현 깊은 산속으로 피신해 자신들이 백제계의 후손인지도 모른 채 현재까지도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또한 백제인들은 황금 유물이 대단한 민족이다. 솔직히 신라, 백제 하면 황금으로 된 유물 한, 두 개쯤은 기억이 날 만큼 황금 유물이 유명한 나라였는데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생각도 못했다. 신라는 사슴뿔을 연상시킬 정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금관’도 있고, 백제는 그 유명한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곳이니 그 당시 백제는 섬세하게 금을 다룰 줄 아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금도 금이지만, 철의 제조 기술은 대단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칠지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철 제련 기술과 금 제련 기술이 뛰어났던 우리 백제였다. 솔직히 고구려는 철이나 금에 관련된 유물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했으니,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벌써 그런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조선업에 강하고 반도체에 강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백제를 대백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뿐만 아니라 백제의 종교면 종교, 의복이면 의복, 노래면 노래,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고대문화는 뒤떨어져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가 이 책에 낱낱이 등장한다. 이래서 나는 우리의 고대사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과거의 영광에만 심취해 있다고 해서 무엇 하나 얻어지는 것은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불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주변에는 울화통 터져서 한국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나도 고등학생 때는 그랬다. 점수 나오지 않은 탓을 그것에다가 돌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초등학교 교과과정에도 한국사가 빠진 것은 정말 말도 되지 않은 것 아닌가 한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 수학 공부한다고 책을 읽지도 않는 마당에, 교과서에서라도 봐야 하는데 이번 초등학교 교과서 개정 때 한국사가 빠졌단다. 이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어른이 되니까 조금은 알겠다, 왜 내가 그 어렵고도 짜증나고 한스러운 치욕의 국사를 배워야 했었는지를. 힘이 약해 다른 나라의 꼬봉 노릇 했던 우리의 과거가 짜증난다고 배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사실에 대해 곱씹는 사람이 없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겠는가. 자국의 역사를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과거란 그 민족의 현재를 반영해주는 것이며,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과거 없는 현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초등학교 때 우리 역사 전체를 다 아우르고, 중학생 때 또 전체를 아우르고, 또 고등학교 때 전체를 다 배우는 식으로 하지 말고 한 나라만 죽어라고 팠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는 고대사만 체계적이고 다각도로 배우고, 중학교 때는 중세를, 고등학교 때는 근대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상황극도 하고 발표도 하고 전쟁사도 배우고 민속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옷도 지어 입고 음식도 만들어보면 다각적인 배움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서구 열강들은 이런 식으로 딱 한 부분만 배워서 다각적인 접근을 한다는데, 우린 너무 창의성이 없다. 가르치는 데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으니, 어디 배우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기대할 수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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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사생활 - 우리 집 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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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개란 동물을 보면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동물이면서도 스스로를 인간화시키는 능력이 다른 가축화된 동물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애완동물’이란 단어 대신 ‘반려동물’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질 정도로 가족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까지 한다. 어찌나 인간에 대해서 적응을 잘 했던지, 말을 알아듣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개는 숫자를 안다느니 119에 전화 요청까지 할 수 있다느니 하는 루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곤 한다. 그러나 정말로 개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줄 놀라운 책이 등장했다. 개에 관한 놀라운 보고서! 이제까지 우리가 가졌던 개에 관한 잘못된 오해를 산산히 부수어낼 책이다. 저출산이 가속화되고, 핵가족 시대나 1인 가족 시대가 당연해지면서 홀로 쓸쓸히 노년을 보내거나 아예 결혼을 안해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게 개는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정말로 개랑 얼마 정도만이라도 살아본 사람이라면 외로움을 달래줄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모든 관심을 나에게 집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해버리는 것이 하나 있다. 개는 절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를 거의 인간처럼 생각해버려서 순전히 선의로 그들에게 지옥 같은 환경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를 사랑하는 인간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두어야 한다.

 

개는 늑대에서 분화된 종이라는 것을 대부분 안다. 그러나 현재 늑대와 개는 전혀 다른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적응된 개가 늑대보다 훨씬 인간에게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부분이 있다. 개외에 다른 동물들은 인간의 눈을 피한다. 우리 인간들도 상대방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잘못을 했을 경우에 눈을 마주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늑대들은 인간과 눈을 맞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경우 눈을 마추는 행위는 공격 행위이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그런 행동을 보기란 어렵다. 하지만 개들은 그런 두려움을 이기고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 눈을 마주치는 행동을 한다. 그것은 개가 인간과 같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요소였다. 인간들은 개와 눈을 마주칠 때 개에게 친근감을 훨씬 많이 느낀다. 그리고 개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킨다. 보통 흰자위가 없는 개들은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도 상대방의 입장에선 그것을 알아채기가 어렵기에 더 그러하다. 그렇기에 개들은 늑대에게 없는 시선 맞추는 능력을 개발해 인간에게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개들은 인간의 말을 구별하진 못한다. 그저 말의 억양을 구별할 뿐이다. 혼낼 때와 산책가자고 할 때의 억양이 달라지는 것은 누구나 알아챌 것이다. 그렇기에 몇 번만 반복하면 개들은 쉽게 그 차이를 구별해낸다. 과거에 덧셈을 하는 말이 있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내 주는 사람의 행위를 자세하게 관찰을 해서 그 정답을 맞추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니 개들은 말의 억양 뿐 아니라 주인의 행동과 시선 처리를 통해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 능력이 아마도 개를 반려동물의 위치까지 오르게 했을 것이다.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눈치 빠르게 인간의 마음까지 파악해내니 어느 누가 싫어할까. 특히 인간은 자신을 알아봐주기 기대하는 동물인지라 그런 관심을 전폭적으로 주는 대상이 있다면 나라도 쏙 빠질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가 개에 대해 쉽게 하는 오해도 익숙지는 않다. 하지만 읽어보니까 개라는 놀라운 종족에 대해서 충분히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한 번이라도 키울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다른 종족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인간과는 비교도 안되게 뛰어난 후각적인 능력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개의 후각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알 정도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폭발물이나 마약 탐지견으로 그들이 이용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그들의 후각적 능력이 뛰어난 지는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개는 인간 코에 있는 600만 개의 감각 수용체에 비해 월등히 많은 2~3억만 개의 감각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서, 바람결에 날라오는 냄새도 추적 가능하고, 한 장소에서 시간대별로 냄새를 구별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제일 처음 시각으로 무언가를 파악하는 것처럼 제일 처음 후각으로 존재를 인지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괴로운 냄새일지라도 그들에겐 정보창구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집에 놀러온 손님의 가랑이 사이로 돌진하며 냄새를 맡고자 하는 것이 절대 불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존재를 알아가고자 하는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자인 저자는 무조건 못하게 하지 말고 손이나 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개에게 냄새를 못 맡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눈을 가리고 못 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더 신기한 점은 개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이 발산하는 호르몬이나 페르몬의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어서 인간의 감정을 후각으로 읽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이 흥분하거나 두려워할 때 혈압만 조금 변해도 인지할 수 있어서 우리에겐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거짓말 탐지기의 원리가 이런 것이니까 개의 후각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심지어 인간에게 발생하는 종양이나 암의 냄새도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라니까 정말 독특한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빗속을 달리는 방법』이란 소설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개가 주인 여자의 머릿속 종양을 발견해내고 짖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이 등장했었는데, 그 내용을 읽고 그럴 법하다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보니 정말 과학적인 근거로 썼던 것이란 걸 알겠다. 개가 괜히 흥분하고 짖어대면 무언가 다른 점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는 후각도 놀랍지만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놀라운 특성을 가진 존재이다. 영장류에게는 중심와라는 것이 있어서 정면에 있는 대상을 선명한 색깔로 아주 자세히 볼 수 있지만, 개에게는 중심역이 있어서 얼굴 정면에 있는 있는 물체를 볼 수는 있어도 우리가 보는 것만큼 초점이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서 개는 자기 코 앞에 있는 자잘한 것들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시야에서 그 부분의 빛을 받아들이는 데 관여하는 망막 세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데, 바로 앞에 놓인 장난감이 조금 멀어지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개는 색맹이 아니다. 그저 파란색과 녹황색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러니 노랑, 빨강, 주황의 색을 쉽사리 구별하지 못해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못 보는 대신 개는 볼 수 있다. 디지털이 아닌 영화는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속도로 정지 화면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인데, 개들은 우리처럼 영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지 화면 사이사이로 검은 화면을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TV나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개를 위해 TV를 틀어줘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개를 보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특별히 검은 화면이 재미있게 여기지 않는다면 개들은 TV를 보는 것보다 산책을 나가는 것이 좋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봤지만 사실 더 연구할 분야가 무한대이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개이기에 관찰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개는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아는 예리한 관찰자란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개가 반려동물의 1순위로 꼽힌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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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회사 -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8개 회사 이야기
사카모토 고지 지음, 양영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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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본 기업을 생각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장인 정신’이란 단어는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일본이 가지는 이미지는 작지만 오래 가는 기업의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 일이 설사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일을 잇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게다가 그런 일들은 오랜 시간동안 물려 내려온 요리 비법이거나 도예, 종이 만드는 것 등 소박하고도 힘이 들어가는 대신 돈은 되지 않는 일이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제 시간을 가질 수도 없고, 여행을 갈 수도,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말이다. 그저 제 일에서만 보람을 느끼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뒤로 물러나 있는 삶이란 무엇일지 상상해볼 수 조차 없다. 그런데 그런 자그마한 기업이 일본에는 여덟 개나 있단다. 생각해보면 여기 등장한 여덟 개의 기업이 일본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부는 아닐 테니까 일본에는 이런 멋진 기업이 조금은 더 있을 것이라는 말인데, 어찌 보면 우리는 일본에 비해 경제 분야만 10년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식적인 면에서도 그 만큼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여기 등장한 기업들은, 얼핏 생각해보면 우리 젊은이 입장에서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일년에 한, 두 벌만 팔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대단한 의류 기업 사장이었던 오가와 사장의 경우, 자신이 암에 걸리고서야 비로소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옷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잘 나가던 의류 사업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병원복 사업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꿔버렸다. 그래서 경영 상태가 휘청거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주변에서 어떻게서든지 도움을 줘서 이제껏 버틸 수 있었다는 그의 사업은 기업의 첫 번째 목표인 이윤면에서 보면 빵점 짜리 기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인간의 삶이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된 그는 약자를 위한 사업을 해야 함을 분명히 알았다. 대박을 꿈꾸는 현대 한국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고 싶지 않는 기업 1순위가 아닐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개의 기업을 읽어 보기 전까지는, 내겐 어떤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작지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기업이라고 하길래 당연히 작은 규모의 기업이지만 재무 구조는 탄탄해서 알이 꽉찬 그런 기업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본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그 사업 종목도 뭔가 인류를 위한 일이거나 뭔가 가치 있는 일일 거라 상상했다. 사회를 위한 일을 하되, 절대 나는 손해보지 않는, 뭐 그런 것을 연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는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그 일이 절대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심보가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런 내 심보가 다른 사람들 등 처먹고 사는 일보다야 양심적인 일이고, 유익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극악한 이기심을 본 것 같아서 씁쓸했다. 책의 내용도 생각만큼 장미빛이지도 못했고, 내 자신도 그다지 장미빛과는 상관 없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기에. 가장 힘들게 읽었던 기업이 양갱과 모나카만 파는 오자사란 기업이었다. 기업이란 말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직원이 서른 명 남짓 되는 그 기업의 사장은 제 나이 예순이 되었을 때나 겨우 아버지께 기업을 이끌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 서른에 팥 삶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나이만큼 세월을 흘려보내야 겨우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 때쯤 되니 팥이 말하는 소리를 느끼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사실 난 이런 명가의 요리를 좋아한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이렇게 장인정신이 가득한 음식점이나 가게가 있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가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을 내가 잇는다면? 어머나, 할머니가 되었을 적에나 겨우 가업을 이을 수 있다니, 너무 힘들다. 그래, 맞다. 요즘 사람인 나도 아닌 척 해봐야 어쩔 수가 없다. 어려운 이웃을 꽤나 생각하는 척 하는 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은 싫다. 그러니 이 기업이 언제든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다들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여사장의 후계자가 없다면, 그녀가 죽는다면 그녀의 양갱과 모나카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면 뭐하나, 다음 세대를 이을 가능성이 희박한데.

 

양갱 파는 집이나 환자복을 만드는 기업 외에도 옥수수껍질로 명함을 만들거나 휠체어를 거동편하게 만드는 기업, 와인 전문점,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여관 등 다양한 종류의 기업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중에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기업도 몇 있었지만, 지금 사장이 죽으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기업도 몇 있어 안타까웠다. 이런 기업을 더욱 육성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불황인 일본에서 이런 기업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들이 기업이 좀 더 세계적으로 판을 벌인다면 조금은 더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은 보이는데 말이다. 유럽에 있는 어떤 기업들은 작은 기업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많이 펼치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도 아닌 동양의 강대국인 일본도 그런 식으로 큰 판을 벌이지는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아직 우리는 그런 기업도 없어서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도 그렇게 이윤보다는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생각하는 다른 생각으로 기업을 만드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정말. 좋은 아이템으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보다는 단 한 사람을 살리는 기업이 하나씩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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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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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5일, 저 멀리 떨어진 이름도 들어본 것이 가물가물한 칠레라는 나라에서 한 광산에서 서른세 명이나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름과 지형의 독특함 때문에 일찍이 그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선 완전 까막눈이었다. 그저 운 나쁘게 다 저물어가는 1차 산업에 종사하다가 애궂은 목숨만 날라가는구나 하고 무심히 넘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데다가 한창 바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작년 8월 5일은 한국 땅에조차 있지 않았던 때였다. 낯선 언어가 가득한 곳에서 인터넷은 고사하고 TV나 라디오와 같은 문명의 이기와는 담 쌓고 살던 때라서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 들었을까. 지금 기억나는 것은 한국이 태풍으로 엄청나게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 소식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들어왔더랬다.
 
그랬다가 10월달 즈음, 서른세 명이나 되는 광부들이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무사히 생환했다는 소식을 스치듯이, 그야말로 지나가는 길에 들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두 달 넘어 지하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성에 사실 위배되는 것은 아니였나 하는 의문과, 그 곳에 누군가 혹 신적인 누군가가 같이 계시지 않고서야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역시나 그 서른세 명의 광부들은 평소에 복음을 전파하러 다녀던 엔리케스를 중심으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기도를 드렸단다. 거기에 있는 서른세 명의 사람 모두 신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었건만, 실은 가톨릭 신자도 있고 복음주의자, 게다가 무신론자도 있었지만, 모두 다 기도를 했다. 아마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보자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설령 지금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무언가를 잡고 애원해보고픈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깨끗한 물도 없고, 음식도 없고, 언제 또 산이 붕괴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하 700미터나 되는 곳에서 갇혔지만, 그들은 비정상적인 공포를 느끼지도 공황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침착할 수는 없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지나자, 점차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모두가 함께 뭉쳐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음을 인식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지이며, 수출 소득의 50%를 구리에서 얻는 칠레에서는 광업에 대해 우리나라의 폐광을 연상해선 안 된다. 칠레의 축구 스타였던 사람도 돈이 없으면 당연히 광부일을 하는 곳이 바로 칠레이다. 하지만 극도로 위험하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작업 환경에서 일하기에 힘들게 번 돈을 바로 유흥비로 탕진해버리고, 각자의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생활이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생명수당이 좀 되는 터라 반대급부로 자신의 향락을 위해 많이 써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운명의 날, 이미 붕괴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곳이 슝슝 뚫린, 굴뚝마다 사다리가 설치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되어 있지 않은 산호세 구리 광산에 그 서른세 명이 갇혔다. 운이 좋게도 산이 붕괴될 때 아무도 다치거나 부러지거나 바위에 압사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그저 갇혀있기만 했다. 하지만 지상에서 700미터나 떨어진 깊은 곳, 사람 열 명이 48시간 동안 먹을 정도의 음식밖에 없는 곳에서, 그나마 물도 깨끗하지도 않은 곳에서 서른세 명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사람은 큰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면 이제껏 지녀왔던 성격이나 가치관이 한순간에 바뀐다고들 한다. 여기 서른세 명의 광부들도 그랬다. 그들 중 누구도 광부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없지만, 이제껏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만큼의 충격은 받은 것이다.
 
세뿔베다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았고, 조니는 아내와 이혼하고 오랜 시간 사귀었던 애인과 삶을 나누기로 했고, 사모라는 엄마의 바람대로 갇힌 광산에서 시를 썼고, 우르수아는 이 광산에 온 지 석 달도 안 되었지만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겪었던 경험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계획이 인생 앞에 놓여있어도 어느 순간에 죽을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많은 계획도 좋지만, 우선 지금 이순간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깨달은 가장 첫 번째 교훈일 것이다. 그 교훈은 또한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노력하는 것이야 아주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못한 선택이다. 노력하고 성장하는 그 자체를 즐기고, 먼저 해야 할 것은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바른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오늘 해야 할 공부나 일을 해내는 것, 오늘 이 순간을 진정으로 누리는 것, 그것이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내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가장 큰 재앙이 될 뻔한 그들의 사고가 최대의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각국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한 피녜라 대통령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칠레로 날아가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많은 기술자들, 심리학자들, 의사들, 과학자들 덕분이었다. 테러와 반목과 분쟁만 가득할 줄 알았던 지구촌에 이런 좋은 일이 있다니! 2011년에는 이런 일만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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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1-03-1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