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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회사 -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8개 회사 이야기
사카모토 고지 지음, 양영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일본 기업을 생각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장인 정신’이란 단어는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일본이 가지는 이미지는 작지만 오래 가는 기업의 것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 일이 설사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일을 잇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게다가 그런 일들은 오랜 시간동안 물려 내려온 요리 비법이거나 도예, 종이 만드는 것 등 소박하고도 힘이 들어가는 대신 돈은 되지 않는 일이라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제 시간을 가질 수도 없고, 여행을 갈 수도,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낼 수 없다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말이다. 그저 제 일에서만 보람을 느끼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뒤로 물러나 있는 삶이란 무엇일지 상상해볼 수 조차 없다. 그런데 그런 자그마한 기업이 일본에는 여덟 개나 있단다. 생각해보면 여기 등장한 여덟 개의 기업이 일본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부는 아닐 테니까 일본에는 이런 멋진 기업이 조금은 더 있을 것이라는 말인데, 어찌 보면 우리는 일본에 비해 경제 분야만 10년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식적인 면에서도 그 만큼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여기 등장한 기업들은, 얼핏 생각해보면 우리 젊은이 입장에서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일년에 한, 두 벌만 팔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대단한 의류 기업 사장이었던 오가와 사장의 경우, 자신이 암에 걸리고서야 비로소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옷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잘 나가던 의류 사업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병원복 사업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꿔버렸다. 그래서 경영 상태가 휘청거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주변에서 어떻게서든지 도움을 줘서 이제껏 버틸 수 있었다는 그의 사업은 기업의 첫 번째 목표인 이윤면에서 보면 빵점 짜리 기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인간의 삶이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된 그는 약자를 위한 사업을 해야 함을 분명히 알았다. 대박을 꿈꾸는 현대 한국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가고 싶지 않는 기업 1순위가 아닐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개의 기업을 읽어 보기 전까지는, 내겐 어떤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작지만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기업이라고 하길래 당연히 작은 규모의 기업이지만 재무 구조는 탄탄해서 알이 꽉찬 그런 기업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본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그 사업 종목도 뭔가 인류를 위한 일이거나 뭔가 가치 있는 일일 거라 상상했다. 사회를 위한 일을 하되, 절대 나는 손해보지 않는, 뭐 그런 것을 연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는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싶기는 한데 그 일이 절대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심보가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런 내 심보가 다른 사람들 등 처먹고 사는 일보다야 양심적인 일이고, 유익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극악한 이기심을 본 것 같아서 씁쓸했다. 책의 내용도 생각만큼 장미빛이지도 못했고, 내 자신도 그다지 장미빛과는 상관 없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기에. 가장 힘들게 읽었던 기업이 양갱과 모나카만 파는 오자사란 기업이었다. 기업이란 말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직원이 서른 명 남짓 되는 그 기업의 사장은 제 나이 예순이 되었을 때나 겨우 아버지께 기업을 이끌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 서른에 팥 삶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나이만큼 세월을 흘려보내야 겨우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 때쯤 되니 팥이 말하는 소리를 느끼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사실 난 이런 명가의 요리를 좋아한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이렇게 장인정신이 가득한 음식점이나 가게가 있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가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을 내가 잇는다면? 어머나, 할머니가 되었을 적에나 겨우 가업을 이을 수 있다니, 너무 힘들다. 그래, 맞다. 요즘 사람인 나도 아닌 척 해봐야 어쩔 수가 없다. 어려운 이웃을 꽤나 생각하는 척 하는 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은 싫다. 그러니 이 기업이 언제든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다들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여사장의 후계자가 없다면, 그녀가 죽는다면 그녀의 양갱과 모나카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면 뭐하나, 다음 세대를 이을 가능성이 희박한데.
양갱 파는 집이나 환자복을 만드는 기업 외에도 옥수수껍질로 명함을 만들거나 휠체어를 거동편하게 만드는 기업, 와인 전문점,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준 여관 등 다양한 종류의 기업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 중에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기업도 몇 있었지만, 지금 사장이 죽으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은 기업도 몇 있어 안타까웠다. 이런 기업을 더욱 육성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불황인 일본에서 이런 기업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이들이 기업이 좀 더 세계적으로 판을 벌인다면 조금은 더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은 보이는데 말이다. 유럽에 있는 어떤 기업들은 작은 기업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많이 펼치는 경우도 많은데, 한국도 아닌 동양의 강대국인 일본도 그런 식으로 큰 판을 벌이지는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아직 우리는 그런 기업도 없어서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도 그렇게 이윤보다는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생각하는 다른 생각으로 기업을 만드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정말. 좋은 아이템으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보다는 단 한 사람을 살리는 기업이 하나씩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