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위한 바보 - 주님의 음성에 그대로 순종한
데이빗 케이프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첫 반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만나는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일 뿐으로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로부터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여겼던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보면 단순한 발 씻겨주는 운동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딱히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또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랑은 상관없는 하나님의 사람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이다. 꼭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꼭 나는 하나님의 일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는 그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자진 납세해버렸다. 아는 언니가 설교 말씀 중에 우리가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그 위대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듣게 된 후로, 어떻게 우리가 그럴 수 있냐고, 정말로 우리가 그런 영광스런 존재이냐고 호들갑을 떨고선 성경에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씀을 찾아내 너무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나를 열외시켜버렸을 때, 아마 하나님께서도 내가 그 언니를 봤을 때의 기분이셨을 것이다. 내겐 그 ‘제사장’이란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무심코 듣고 넘기지만,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빗 목사님이 경험하신 일에서만큼은 주춤하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그런 영광스런 하나님의 종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 듯 하다. 그들도 공개적으로 나가는 일에 스스로 얼간이로 느낄 수도 있고, 두려워 떨 수도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준비된 종이었으니까. 난 아니고!! 그런데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께 처음 명령을 받은 후 14개월이 지나서야 첫 사역을 시작한 것을 보니까 조금씩 내 마음이 변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해 보이는 세족식을 준비하는 데 있어 1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도 놀랍지만, 책을 보면서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사역이라는 것도 내게는 진짜 놀라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이 책을 두고 별천지에서나 온 소식쯤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해주실 거라는 정말 무책임하고 막연한 믿음이 내겐 있었다. 책에서 등장한 일이니까 당연히 선한 길로 모든 것을 예비하실 것이라는 그냥 믿음이. 이 한국 땅과는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진 남아공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동시대에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한국, 아니 수원 땅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발을 씻겨주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행하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쓰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으로 보는 복음의 능력이기에 나는 색안경을 끼고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나는 아직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데이빗 목사님은 아마도 그런 모든 그리스도인, 즉 머리로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이해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는 그런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분명 무서웠고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특히 남아공에는 소웨토라는 백인들은 거의 거주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인,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사람의 생명이 귀하지 않는 지역이 있는데, 목사님이 처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고 두려웠는지 그것은 하나님만 아신다. 하지만 두려워하다가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는 진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 목사님에게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일이 있을 때, 걸을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며 한편으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걸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느낄 순 없을 때가 많아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영적으로 끊임없이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요청에 반응을 해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방언의 은사도 나는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 그것을 보시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도 항상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씀 중 한 가지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나오는 그 말씀이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무엇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온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려고 하는 것이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테니까.

 

하나님은 믿되, 그의 복음의 능력을 못 믿는다는 것이 말은 안되지만, 어찌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심하다. 그날 입을 것, 그날 먹을 것, 그날 쓸 것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세상의 주권이 다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나는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난 세상의 지혜와 모든 통찰력을 구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한 이야기는 사실 이런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뜻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지혜와 모든 서적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바로 얻어지는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내가 진정 집중해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이지 생활을 위한, 혹은 생계를 위한 지혜나 지식이 아니였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굶겨죽이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혹시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을 사서 하며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바로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구하고 나아가련다. 정말로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나에게 오길 기대한다. 내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 기회를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나의 종을 부르셔서 세족식을 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정말 하나님의 어리석은 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전반부를 보고 위험 속에서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데이빗 목사님이 순종하시는 내용에서 감동받고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속에는 감히 목숨까지도 내어놓았는데 더 이상 할 사역이 뭐가 있냐 하는 오만함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진짜 오만한 생각이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무지막지하게 축소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데이빗 목사님만 바라보고 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정말 놀라웠다. 한 지역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 영적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가 같이 그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일, 한 나라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까지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똑같이 섬기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좋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치유의 역사와 수많은 영혼들의 회심, 견고한 죄의 진들의 파괴는 읽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체험할 수 없다. 청년부 목사님께서 복음에 미친 자 하나가 공동체를 바꿀 수 있고, 그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 우리 공동체가,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우리 직장이, 우리 도시가, 우리 나라가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이렇게 부패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나라가 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각이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정말 우리는 바르게 서있지 못했다. 14개월 동안 데이빗 목사님이 세족식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하셨을 때 일어난 일을 보자. 그 때 초등학생 둘과 사모님이 살고 있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끌 차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차를 도난당했다. 그리고 부엌에서 사모님이 몸을 틀다가 무릎 관절이 탈골된 사건이 일어났다. 무릎 탈골되어 봤는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난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잘못해서 왼쪽 무릎이 삐긋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무거운 이불만 왼쪽 다리로 밀기만 해도 바로 탈골이 되었다. 그 고통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다리를 든 채로 아무것도 만지지도 못한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려야 할 뿐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저절로 멀쩡해지는데 그 순간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만약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냐나고 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목사님 부부는 기도 먼저 했다. 하지만 차도 없고 시간이 지나가도 무릎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보고 수술을 결정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셨단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에게 차가 있고 건강이 온전하면 네게 맡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일을 하라.”

 

난 가끔 말한다. “하나님, 전 그 때 너무 아팠어요. 그 때는 정말 힘들었고요. 그 땐 제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수두룩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 선대하며 축복하며 종처럼 섬기지 못할 때의 내 변명들이다.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그저 내가 아프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문제는 항상 핑계를 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신다. 내가 충분히 하지 못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지켜보신다. 그것이 진정으로 믿음일 테니까 말이다. 상황이 되고 여건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그것이 정말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도 된 양 그렇게 자기합리화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일 때, 가장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정말로 내가 어려워지면 찾게 되는 이가 바로 내가 믿는 이이니, 여기서 내 믿음을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어서 하길 바라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을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가능할 때도 하길 바라신다. 왜냐하면 세상을 상대로 이긴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있으니까!!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은 정말 크고 놀라울 만큼 방대해졌다. 그의 삶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의 사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길을 돌려 중동지역으로 들어가셨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그것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은 종이다. 아마도 그 다음은 우리가 아닐까. 우리가 그를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이 발걸음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권적으로 드러나는 역사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잉 메시지 - 지구와 인류를 살리려는 동물들의
개와 돼지 외 지음 / 수선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받고 솔직히 놀랐었다.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명상을 통해 동물들과 교감을 나눈 사람들이 편찬한 책인 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와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니까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도교나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딱 알맞다. 내가 도교나 불교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인원이 진화해서 인간이 된다고 한다거나 동식물들의 정령이 있어서 인간과 서로 대화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책의 내용을 그저 받아들일 수는 없겠다. 특히나 나는 환생은 절대 믿지 않으니까 말이다. 딱히 이 책에서 환생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고, 딱 잘라 읽기 싫었다. 하지만 200여 쪽밖에 되지 않은 책이라 빨리 읽어버렸다.

 

처음에 어찌나 황당하던지~. 서문에서 동식물들의 정령과 깊은 교감을 통해 대화를 한 대화자들 여섯 명의 대화를 묶은 책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순간 떠올랐던 것은 판타지소설이었다. 주인공이 물이나 불, 바람, 땅의 정령 중 하나를 소환해서 계약을 맺고 그들을 부리는 이야기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판타지소설을 특별히 많이 본 것은 아닌데, 아주 깊게 빠져있었던 책이 하나 있었다. 『이드』란 책이 있었는데,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에다가 드래곤의 힘까지도 부여받은 터라 처음 소환해본 정령이 대빵급이라 신기했던 그 장면이 순간적으로 눈앞을 지나가는데,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솔직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동식물들의 정령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령이 없다는 논쟁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존재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가 믿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천사들 뿐이지, 정령이라는 것은 내 사전엔 없는 단어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이라는 것, 더불어 이 땅의 동식물도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계를 잘 가꾸며 보살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동식물을 만드실 때 흙으로 그들을 빚으셨고, 보시기에 좋아하셨다. 하나님의 심미안을 만족시킬 정도니까 얼마나 아름다웠겠나. 하지만 인간을 만드실 때는 동식물을 만들 때와 똑같이 흙으로 빚으셨지만 거기에 아주 특별한 것을 더하셨다. 하나님의 생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 덕분에 인간은 유일하게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가.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하지만 동물이나 식물은 영혼이라는 것이 없어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사후에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얼마나 내게 황당했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명상학교를 운영하는 곳이 바로 이 책이 나온 수선재란 출판사이다. 선 명상을 통해 수련을 하고 깊은 경지에 이르면 이 책처럼 동식물과 대화를 할 수가 있다고 가르치나 본데, 솔직히 불교에서는 신이란 존재를 믿지 않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 같다.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허물을 내려놓고 모든 자연과 함께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불교도에서는 이 내용이 최선일 거라 생각은 든다. 그들이 말하길, 우주에는 에너지가 있어서 어느 한 곳에서 무언가를 하는 하나가 있으면 그것이 전달이 되어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일어난단다. 『시크릿』이란 책 때문에 그런 에너지론이 많이 등장했는데, 난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이야기는 들어볼 만한 내용이다. 우리 인간의 욕심 때문에 없어도 될 구제역, 신종 인플루엔자,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이 생겼다고 하는 것, 빙하가 녹아내려서 북극곰들이 거주할 곳이 없어진다는 것, 공기의 오염 때문에 벌들이 집단적으로 폐사하기도 하고, 바다가 오염되어서 고래들이 제대로 살지 못해 집단 자살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내용을 간단하게 흡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결단을 매일 같이 내리도록 해야겠다. 참고로, 이 책에서 가장 예쁜 곳을 뽑으라면, 모든 사진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었다. 사진은 정말 예쁘게 편집해서 진짜 아름답게 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플의 발상력 - 스티브 잡스와 애플맨들의 이야기
다케우치 가즈마사 지음, 이경은 옮김 / 문화발전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애플의 발상력』이라는 이 책은 조금은 심심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이슈가 되고 있는 애플사에 대해서 특별한 정보를 알려주기 보다는

그저 애플사를 구성해왔던 여러 인종들에 대해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어록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역사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주 시의적절한 말을 해야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나 가능하지도, 그 모든 말이 남아있지도 않다.

애플사의 시작은 부업 그 이상이 아니였던 데다가, 매킨토시를 만들고 나서 얼마 동안은 적자인 상황이었던, 결코 미래가 장미빛이라고는 할 수 없었던 기업이기에 

누군가 주목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조차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컴퓨터의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애플사이기에

특히, 요즘에 봇물 같이 쏟아져나오는 애플사에 관한 책들만 몇 권 봐도 많이 들었던 어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책을 보고 솔직히 실망했다. ‘발상력’이란 단어 혹해서 선택한 책이기에 애플사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발상법이 따로 있거나 그 비슷한 것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처럼 창의적인 생각은 도통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 보면 뭔가 연습이라도 할 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발상‘법’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저 애플사를 만들어왔던 여러 혁명가들의 말들을 여러 책에서 발췌해서 얻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지만 처음 생각했던 책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히 재미는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이런 천재적인 발상을 해내지 못한 범인으로서 천재들의 생각의 한 단면이라도 훔쳐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사의 사장인 스티븐 잡스를 비롯해서 그와 공동창업했던 천재 엔지니어인 스티븐 워즈니악,

애플사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었던 마이크 마쿨라,

쫓겨난 잡스가 픽스사를 세울 때 같이 창업한 사람으로서 컴퓨터 그래픽스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에드윈 캣멀,

픽사의 영화감독으로 컴퓨터 그래픽스(CG) 애니메이션의 일인자로 에드윈 캣멀에게 소개받아 픽사의 전신에 합류한 존 라세타,

스티븐 잡스가 애플사에 복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길 아멜리오,

아이튠즈 개발의 초석이 된 사운드 잼을 개발한 제프 로빈, 퍼스널 컴퓨터의 개념을 제창한 ‘퍼스널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케이,

13세 때 만든 애니메이션이 인정받아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인크레더블」의 픽사 감독 브래드 버드, 애플사에서 하급 서비스 기사로 입사한 컴퓨터 기술자 버렐 스미스,

매킨토시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브루스 혼, 매킨토시 팀 초창기 멤버 중 주요 인물인 앤디 허츠펠드 등

없어서는 안될 여러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 말들을 모았다.

 

왼쪽에는 그들이 한 어록들이 큼직막하게 실려있고, 오른쪽에는 그 말이 나올 수 있는 전후상황들을 설명하고 문맥에 맞는 말로 돌려말하는데

그것만 봐도 소소한 애플사의 역사는 알 수 있을 정도라 충분히 읽을만한 재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나도 처음 열어보곤 어록집이라 실망했지만, 계속 읽으니까 그 다음에는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될 정도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읽다보면 역시~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우리 인생에 있는 법칙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 것처럼 여겨져

내가 가진 틀을 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내게 몇 가지 울림을 준 어록을 보자면,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라고 자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약은 창소성을 자극한다. - 에드윈 캣멀 (p. 44~45)

디즈니에서도 영화는 만들 수 있지만, 픽사에서는 역사를 만들 수 있다. - 존 라세타 (p.128~129)

사고 칠 것 같다는 이유로 채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 브래드 버드 (p. 160~161)

이런 독특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읽고, 읽을 하니, 어찌 대박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대박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혹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은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어디일지 나는 모른다. 이제는 아이폰에 아이패드까지 나왔으니 어디로 확장될를 알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세상이 정말 빨리 변하고 있다. 인터넷이 나온지도 근 10년 쯤 되었는데 지금은 아예 걸어다니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니, 그리고 SNS가 들불처럼 번지니

더 이상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중간에도 못 들고 도태되어야 할 처지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바꾸는 그 능력은 사실은 별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편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다른 누구보다도 충실하는 것!!

그렇게만 한다면 혹 나만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그래서 시장성은 없는 것일지라도 홀로 만족감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돈과 명예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연구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책은 한 일본인 프로그게머가 애플저팬에 들어가서 자신이 적응하기에 어려웠던 일들도 아주 자그마하게 정리해 두기도 해서,

우리 같이 동양인들이 읽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어 금방 보기에도 쉽게 꼭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되는 아주 독특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촌놈, 베이징대 접수하다 - 도전본능 겨레의 중국유학 성공기
이겨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겨레

 

1989년생. 6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아키타, 홍콩, 베이징, 창춘, 울란바토르 등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충남 청양군 용천리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그러나 학생 수가 적어 중학교가 폐교되자, 중국유학에 도전했다. 중국유학 2년 만에 길림성 최고의 이공계 고등학교 ‘창춘 11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다른 인내와 끈기로 터득한 자기주도학습법으로 중국영재들과 경쟁해 장학금을 받았으며, 2008년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동시 합격했다. 성공적인 재중 한국유학생으로 주목받아 창춘 「성시만보」에도 보도되었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 입학 후 중국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밑바닥부터 체험한 경험, 관심분야인 외교, 영화 등의 지식을 살려 중국전문가·문화외교관의 길을 설계하고 있다. 현재 그는 1년간의 휴학기를 갖고 자신의 꿈을 위해 6·2 서울시장 지방선거, NGO단체 봉사활동, 한국 방중(訪中) 경제사절단 동시통역 등 다양한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이겨레라는 아이는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길래 아무리 유년시절에 중국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중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녀석이 중학교 2년 때 중국유학을 결심할 수 있었느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외국 물을 먹은 녀석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걸까. 시골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다가 학교가 폐교가 되는 바람에 나와야 했을 때 보통은 서울로 상경하거나 옆 동네의 학교에 가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듯 싶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뜸 지인 하나 없는 중국에서 혼자서만 생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무래도 담이 큰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으시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셨다면 이 녀석은 중국 유학이 아니라 유럽 유학, 미국 유학을 했을 테니까. 옆 나라 일본에서 사업을 하셨다면 아마도.... 일본의 동경대나 와세다대도 꽤 알아주는 대학이 아닌가. 아마 미국이었다면 하버드대였을 것이고, 영국이면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였겠지. 그러니까 이 아이는 아버지 덕분에 여러 외국을 접했는데 그것이 별다르게 힘들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니까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여긴 것일 테다. 그가 가장 친근하게 여길 수 있으되, 꽤 실력있는 대학을 목표로 해서 칭화대나 베이징대가 낙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중학교 2학년, 열다섯에 해낸 것이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녀석들이 보통 그 정도인데, 생각이 어린 녀석이 대부분이라 정말 놀라울 뿐이다.

 

저자가 내 제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였을 때 이야기를 읽고 있어도, 이 책은 내 아이들 생각보다는 나의 옛날 모습을 보게 했다. 정말 나는 어땠었는지, 그 나이 때 내가 했던 공부는 어땠는지 말이다. 정말 진실로 말하자면, 나는 내 생애에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어 겨레에게 대비하기가 정말 부끄럽다. 노력을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낸 이 녀석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맞겠다. 아마도 그 녀석은 어학 쪽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을 것이고, 나보다는 조금 더 머리는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유학을 와서 우수한 고등학교의 영재반에서 13등까지 향상되고 나중에는 베이징 대학에 유학생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겨레도 말했듯이, 날고 기는 아주 비상한 녀석이라도 노력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처음 배운 과학적 지식이라도 쉽게 머릿속에 집어넣고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1, 2등 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진짜로 힘을 내야 할 고3 때 제 실력을 유지하지 못한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데, 이것을 보면 진짜 공부는 노력이지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중국 고등학교, 그것도 길림성 최고의 이공계 고등학교인 창춘 11고에서는 공부를 즐겁게 여기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곳이라서 단지 머리만 좋다고 해서 인문계열 쪽에서 최고인 베이징 대나 이공계열 쪽에서 최고인 칭화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그것도 영재반에서 10등 안에 들어가기로 한 조건을 걸고 고등학교 등록금을 반이나 면제받기까지 해냈다. 악바리라고 할 수도 있는 헝그리 정신으로 해낸 것이다. 예전에 하버드대에 들어간 미스코리아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유학은 삼성에서 후원을 해주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들었다. 그녀 스스로가 말하길, 자신의 룸메이트처럼 등록금이나 용돈을 벌면서 공부까지 따라가라고 했으면 아마 못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룸메이트에게 커피나 간식을 사다바치면서, 혹은 알바비를 주면서 리포트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거나 해석을 부탁하거나 과외를 부탁했다는데 이 녀석은 악바리 정신으로 근 한달 동안을 간식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면서까지 큰 성과를 달성했기에 더욱 대단하다 여겨진다. 물론 이 녀석은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도전한 것이고 그 미스코리아는 대학 졸업 후에 도전한 것이라 외국어를 소화하는 수준이나 능률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이 녀석이 더욱 멋진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이런 대단한 결과를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승부 근성만큼은 알아주어야 할 녀석임에는 틀림 없다. 우리가 단순히 고사성어라 여기는 ‘와신상담(臥薪嘗膽 : 가시가 많은 나무(섶나무)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김)’을 말 그대로의 의미로 되새기면서 쓰디쓴 돼지쓸개를 구해서 졸릴 때마다 한 번씩 혀에다 갖다대며 공부하기도 했고, 기숙사에서 소등시간이 되면 재래식 화장실에서 암모니아의 공격을 받으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정말 악바리 근성이 있는 녀석이다.

 

또한 철학적인 사유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어 스스로 쉬는 시간에는 데카르트의 책을 구해다가 놓고 깊이 있게 파들어가기도 하고 제 삶과 접목시켜 깊은 사유까지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대학생이 생각나 안타까웠다. 깊이 있게 입시공부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제 생각과 관점까지도 착실하게 키우는 그 나라의 분위기를 볼 때 부럽기까지 했는데, 정말 청소년기의 철학 공부는 꼭 필요한 듯 싶었다. 이제 칭화대도 합격했고 베이징대도 합격했으나 고2 때 공부를 해보니 평소 원했던 이공계열보다는 인문계열 쪽에 훨씬 더 재능이 있다는 알게 되어 베이징대학에서 외교관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위해 착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을 들어갔다고 해서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자기가 연구하고 싶은 것을 파고들 수 있는 기쁨을 느끼며 마음껏 지식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니까!! 이제는 각자 생각해왔던 비전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려야 할 때인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베이징대까지 도달했던 것에만 안주한다면 이제 다시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부터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계속되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가와 이토

 

1973년 출생. 세이센 여대에서 일본 고대문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리틀 모어』에『밀장(密葬)과 카레』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4년에는 남편 미즈타니 기미오가 소속되어 있는 밴드 Fairlife에 참여하여, 하루아라시(春嵐, 아지랑이)라는 예명의 작사가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2007년 고단샤에서 시 그림책을 내고, 2008년에 첫 소설『달팽이 식당』을 포푸라샤에서 출간했다. 『달팽이 식당』은 제1회 포푸라샤 소설 대상에 응모해서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이후 스테디셀러가 되어 2010년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저자의 공식 홈페이지‘이토 통신’(http://www.ogawa-ito.com)을 찾아가 보면 독서 일기와 자신만의 요리법‘밥과 간식’, 식당 순례기 등 오밀조밀한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다. 2007년부터 연재한 이 소소한 이야기들 중에서 일기와 레시피는『펭귄과 살다』『펭귄의 부엌』『펭귄과 하늘 위를 걷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식당 순례기는『지구 식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에세이집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토’(실)라는 자신의 필명처럼 말을 한 가닥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 한 편의 이야기로 묶어내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가 잘 드러난다. 남편(펭귄)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만드는 전갱이 초절임, 친구가 보내준 유채밥, 기운 없는 사람에게는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야채 포타주 등 맛있고 사랑스러운 요리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11월에는 포푸라샤에서 세 번째 장편소설『패밀리 트리』를 출간했고, 네 번째 장편소설『쓰루카메 조산원』이 2010년 12월에 슈에이샤에서 출간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를 꼽자면 아마 먹는 것이 아닐까 한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를 모를 만큼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또한 다채롭다. 그렇기에 요리에 열광하고 미식가임을 자처하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소모임도 만들어 몇 주에 한 번씩 모여 맛집 기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나만 해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경우 맛있는 것 앞에서 참아내질 못해서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참다 참다 무너져 야식을 만들어 먹고 나서 후회를 하곤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단지 먹는 데에서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소소하고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먹는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데, 딱 가정을 위해 하나라도 알뜰히 챙기는 엄마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먹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만의 요리법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닌 이야기도 책으로 낸 저자이기에 그렇게 요리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잘 드러난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자신의 강점을 잘 살린 소설로는 먼저 『달팽이 식당』이 있는데, 나는 아직 그 책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까 결코 후회가 될 만한 책은 아닐 게다. 특히 이번에 나온 『초초난난』의 잔잔하다 못해 애절한 불륜이야기가 파격적인 설정이라고 소개되는 것을 보니까 그 전에 나온 『달팽이 식당』은 더 내 마음에 쏙 들 것이 분명해보인다. 사실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전혀 소설류가 아니었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시간이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리 말하면 요즘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섣불리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 저기에 널려있는 책도 읽어야 하고 서평도 다 마무리해서 올려야 하고 그 밖에 더욱 중요한 일들을 다 처리하려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가동해야 할 지경인데, 전혀 그렇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이유는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로는 다급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목적이 분명히 서 있기 때문에 그 때처럼 멍하니 있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바쁠 때에 소설인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본의 장인정신이 연상되는 그러한 분위기, 정갈한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조용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가 나를 이끌었다. 겉으로는 여유있는 척 멍하니 있었는데, 속으로는 무척이나 바빠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 소설을 이끌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고요한 분위기에 기대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위로가 되었다. 바깥 세상의 복잡한 소음과 정신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들이 이 소설을 여는 순간, 음소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소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항상 깨어있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할 존재가 이 소설 한 권으로 아무것도 위급한 것이 없게 느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특히, 마음이 분주한 누구라도 이 소설 하나면 충분히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단어가! 고요한 명상~! 명상하는 것을 잘 모르고 그다지 원하지도 않는데, 이 소설을 보고 있으면 꼭 내가 명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고요히 엔티크 기모노를 파는 시오리를 보고 있으면 번잡할 것도 없고, 번뇌할 것도 없고, 화낼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연이 있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녀의 삶은 여전히 고요히 흘러갔으니까. 아무것도 주장하고 있지 않기에 더욱 분명히 들리는 소리는, 이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기모노를 사러 온 하루이치로 씨와의 만남이 그녀의 고요한 생활에 자그마한 양념이 될 뿐, 아무것도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것이 불륜이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이지만,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진 후에는 심한 열병을 앓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고요한 그녀조차도 사랑은 열병일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자신을 잠식해버릴 정도가 되어 이제는 멀리하기로 마음 먹었던 시오리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륜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바람은 용서해주어야 한다느니, 남자라면 한 번정도는 그럴 수 있다느니 하는 등의 전문가인 척하는 여러 소리들도 있지만, 나는 인간이라면 배우자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까지 두었지만, 그 사랑이 식어지고 혹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아서 결혼했음이 밝혀진 다음이라면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생긴 후라면, 이혼이라도 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상대방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질 생각이 아니라면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질척이거나 악의가 있어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불륜을 그린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것 같아서 영 기분이 나쁘다.
 
만약 그런 아름다운 요리의 과정이 불륜이 아닌 상대에게 전해졌던 것이라면 더욱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륜의 상대가 마치 다시 없을 유일한 사랑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여러 장면들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감정 때문에 자신의 아내랑 결혼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떠밀려서 결혼을 했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절절한 사랑을 느껴서 결혼했다면 그 사랑이 식었을 때 상대의 행복을 위해 놓아주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소설의 결말은 참으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세상 누가 봐도 아름답게 볼 불륜관계를 아름답게 볼 수 없었던 나이지만, 시오리의 아름다운 결단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불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으면 더 예뻤겠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이혼도 반대이다. 이혼은 정말 어쩔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정말 안될 때 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사랑이 떠났다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 때마다 해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기에 사랑이 변했다면 바로 그 사람이 게을러 사랑을 가꾸지 않은 탓이지, 사랑 자체는 결단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