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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위한 바보 - 주님의 음성에 그대로 순종한
데이빗 케이프 지음, 이상준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1년 2월
평점 :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첫 반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만나는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일 뿐으로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부름에 응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로부터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여겼던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보면 단순한 발 씻겨주는 운동이라고 치부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딱히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또 이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랑은 상관없는 하나님의 사람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이다. 꼭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꼭 나는 하나님의 일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는 그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자진 납세해버렸다. 아는 언니가 설교 말씀 중에 우리가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그 위대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듣게 된 후로, 어떻게 우리가 그럴 수 있냐고, 정말로 우리가 그런 영광스런 존재이냐고 호들갑을 떨고선 성경에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씀을 찾아내 너무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나를 열외시켜버렸을 때, 아마 하나님께서도 내가 그 언니를 봤을 때의 기분이셨을 것이다. 내겐 그 ‘제사장’이란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무심코 듣고 넘기지만,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빗 목사님이 경험하신 일에서만큼은 주춤하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어쩌면 나는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그런 영광스런 하나님의 종들은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한 듯 하다. 그들도 공개적으로 나가는 일에 스스로 얼간이로 느낄 수도 있고, 두려워 떨 수도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준비된 종이었으니까. 난 아니고!! 그런데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께 처음 명령을 받은 후 14개월이 지나서야 첫 사역을 시작한 것을 보니까 조금씩 내 마음이 변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해 보이는 세족식을 준비하는 데 있어 1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도 놀랍지만, 책을 보면서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사역이라는 것도 내게는 진짜 놀라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이 책을 두고 별천지에서나 온 소식쯤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해주실 거라는 정말 무책임하고 막연한 믿음이 내겐 있었다. 책에서 등장한 일이니까 당연히 선한 길로 모든 것을 예비하실 것이라는 그냥 믿음이. 이 한국 땅과는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진 남아공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동시대에서 일어난 일이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한국, 아니 수원 땅을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발을 씻겨주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행하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쓰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으로 보는 복음의 능력이기에 나는 색안경을 끼고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딱 까놓고 말해서, 나는 아직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데이빗 목사님은 아마도 그런 모든 그리스도인, 즉 머리로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이해하면서도 실제 삶 속에서는 그런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분명 무서웠고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특히 남아공에는 소웨토라는 백인들은 거의 거주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살인, 강간 사건이 일어나는 사람의 생명이 귀하지 않는 지역이 있는데, 목사님이 처음 그곳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고 두려웠는지 그것은 하나님만 아신다. 하지만 두려워하다가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는 진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 목사님에게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일이 있을 때, 걸을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며 한편으로는 내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걸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느낄 순 없을 때가 많아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영적으로 끊임없이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내 요청에 반응을 해주시지 않으실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방언의 은사도 나는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 그것을 보시려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도 항상 어릴 적부터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말씀 중 한 가지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구하기만 하면 다 주신다고 할 때, 우선적으로 나오는 그 말씀이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무엇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온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려고 하는 것이 아마도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테니까.
하나님은 믿되, 그의 복음의 능력을 못 믿는다는 것이 말은 안되지만, 어찌 그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심하다. 그날 입을 것, 그날 먹을 것, 그날 쓸 것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세상의 주권이 다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나는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난 세상의 지혜와 모든 통찰력을 구했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한 이야기는 사실 이런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뜻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구하지 않은 지혜와 모든 서적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바로 얻어지는 그것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내가 진정 집중해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이지 생활을 위한, 혹은 생계를 위한 지혜나 지식이 아니였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굶겨죽이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혹시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을 사서 하며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바로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구하고 나아가련다. 정말로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을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나에게 오길 기대한다. 내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 기회를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나의 종을 부르셔서 세족식을 하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정말 하나님의 어리석은 종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전반부를 보고 위험 속에서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데이빗 목사님이 순종하시는 내용에서 감동받고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속에는 감히 목숨까지도 내어놓았는데 더 이상 할 사역이 뭐가 있냐 하는 오만함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진짜 오만한 생각이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무지막지하게 축소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데이빗 목사님만 바라보고 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정말 놀라웠다. 한 지역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 영적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가 같이 그 도시를 위해 기도하는 일, 한 나라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까지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똑같이 섬기게 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데이빗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좋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치유의 역사와 수많은 영혼들의 회심, 견고한 죄의 진들의 파괴는 읽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체험할 수 없다. 청년부 목사님께서 복음에 미친 자 하나가 공동체를 바꿀 수 있고, 그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아서 우리 공동체가, 우리 교회가, 우리 가정이, 우리 직장이, 우리 도시가, 우리 나라가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이렇게 부패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나라가 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각이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정말 우리는 바르게 서있지 못했다. 14개월 동안 데이빗 목사님이 세족식을 위해 준비하며 기도하셨을 때 일어난 일을 보자. 그 때 초등학생 둘과 사모님이 살고 있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끌 차가 필요했는데, 마침 그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차를 도난당했다. 그리고 부엌에서 사모님이 몸을 틀다가 무릎 관절이 탈골된 사건이 일어났다. 무릎 탈골되어 봤는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난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잘못해서 왼쪽 무릎이 삐긋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무거운 이불만 왼쪽 다리로 밀기만 해도 바로 탈골이 되었다. 그 고통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다리를 든 채로 아무것도 만지지도 못한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려야 할 뿐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저절로 멀쩡해지는데 그 순간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만약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냐나고 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목사님 부부는 기도 먼저 했다. 하지만 차도 없고 시간이 지나가도 무릎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보고 수술을 결정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셨단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에게 차가 있고 건강이 온전하면 네게 맡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일을 하라.”
난 가끔 말한다. “하나님, 전 그 때 너무 아팠어요. 그 때는 정말 힘들었고요. 그 땐 제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수두룩했어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 선대하며 축복하며 종처럼 섬기지 못할 때의 내 변명들이다.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그저 내가 아프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문제는 항상 핑계를 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신다. 내가 충분히 하지 못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지켜보신다. 그것이 진정으로 믿음일 테니까 말이다. 상황이 되고 여건이 될 때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그것이 정말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도 된 양 그렇게 자기합리화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일 때, 가장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정말로 내가 어려워지면 찾게 되는 이가 바로 내가 믿는 이이니, 여기서 내 믿음을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어서 하길 바라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없을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가능할 때도 하길 바라신다. 왜냐하면 세상을 상대로 이긴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있으니까!!
데이빗 목사님의 사역은 정말 크고 놀라울 만큼 방대해졌다. 그의 삶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의 사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길을 돌려 중동지역으로 들어가셨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그것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은 종이다. 아마도 그 다음은 우리가 아닐까. 우리가 그를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이 발걸음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강권적으로 드러나는 역사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