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촌놈, 베이징대 접수하다 - 도전본능 겨레의 중국유학 성공기
이겨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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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겨레

 

1989년생. 6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아키타, 홍콩, 베이징, 창춘, 울란바토르 등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충남 청양군 용천리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그러나 학생 수가 적어 중학교가 폐교되자, 중국유학에 도전했다. 중국유학 2년 만에 길림성 최고의 이공계 고등학교 ‘창춘 11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남다른 인내와 끈기로 터득한 자기주도학습법으로 중국영재들과 경쟁해 장학금을 받았으며, 2008년 우수한 성적으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동시 합격했다. 성공적인 재중 한국유학생으로 주목받아 창춘 「성시만보」에도 보도되었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 입학 후 중국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밑바닥부터 체험한 경험, 관심분야인 외교, 영화 등의 지식을 살려 중국전문가·문화외교관의 길을 설계하고 있다. 현재 그는 1년간의 휴학기를 갖고 자신의 꿈을 위해 6·2 서울시장 지방선거, NGO단체 봉사활동, 한국 방중(訪中) 경제사절단 동시통역 등 다양한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이겨레라는 아이는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길래 아무리 유년시절에 중국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중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녀석이 중학교 2년 때 중국유학을 결심할 수 있었느냔 말이다. 어릴 때부터 외국 물을 먹은 녀석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걸까. 시골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다가 학교가 폐교가 되는 바람에 나와야 했을 때 보통은 서울로 상경하거나 옆 동네의 학교에 가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듯 싶다. 그런데 이 녀석은 대뜸 지인 하나 없는 중국에서 혼자서만 생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무래도 담이 큰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으시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셨다면 이 녀석은 중국 유학이 아니라 유럽 유학, 미국 유학을 했을 테니까. 옆 나라 일본에서 사업을 하셨다면 아마도.... 일본의 동경대나 와세다대도 꽤 알아주는 대학이 아닌가. 아마 미국이었다면 하버드대였을 것이고, 영국이면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였겠지. 그러니까 이 아이는 아버지 덕분에 여러 외국을 접했는데 그것이 별다르게 힘들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니까 자신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여긴 것일 테다. 그가 가장 친근하게 여길 수 있으되, 꽤 실력있는 대학을 목표로 해서 칭화대나 베이징대가 낙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중학교 2학년, 열다섯에 해낸 것이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녀석들이 보통 그 정도인데, 생각이 어린 녀석이 대부분이라 정말 놀라울 뿐이다.

 

저자가 내 제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였을 때 이야기를 읽고 있어도, 이 책은 내 아이들 생각보다는 나의 옛날 모습을 보게 했다. 정말 나는 어땠었는지, 그 나이 때 내가 했던 공부는 어땠는지 말이다. 정말 진실로 말하자면, 나는 내 생애에 열심히 공부해 본 적이 없어 겨레에게 대비하기가 정말 부끄럽다. 노력을 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낸 이 녀석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맞겠다. 아마도 그 녀석은 어학 쪽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을 것이고, 나보다는 조금 더 머리는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유학을 와서 우수한 고등학교의 영재반에서 13등까지 향상되고 나중에는 베이징 대학에 유학생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겨레도 말했듯이, 날고 기는 아주 비상한 녀석이라도 노력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처음 배운 과학적 지식이라도 쉽게 머릿속에 집어넣고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1, 2등 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진짜로 힘을 내야 할 고3 때 제 실력을 유지하지 못한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데, 이것을 보면 진짜 공부는 노력이지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중국 고등학교, 그것도 길림성 최고의 이공계 고등학교인 창춘 11고에서는 공부를 즐겁게 여기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곳이라서 단지 머리만 좋다고 해서 인문계열 쪽에서 최고인 베이징 대나 이공계열 쪽에서 최고인 칭화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그것도 영재반에서 10등 안에 들어가기로 한 조건을 걸고 고등학교 등록금을 반이나 면제받기까지 해냈다. 악바리라고 할 수도 있는 헝그리 정신으로 해낸 것이다. 예전에 하버드대에 들어간 미스코리아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유학은 삼성에서 후원을 해주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들었다. 그녀 스스로가 말하길, 자신의 룸메이트처럼 등록금이나 용돈을 벌면서 공부까지 따라가라고 했으면 아마 못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룸메이트에게 커피나 간식을 사다바치면서, 혹은 알바비를 주면서 리포트에 필요한 자료를 구하거나 해석을 부탁하거나 과외를 부탁했다는데 이 녀석은 악바리 정신으로 근 한달 동안을 간식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면서까지 큰 성과를 달성했기에 더욱 대단하다 여겨진다. 물론 이 녀석은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도전한 것이고 그 미스코리아는 대학 졸업 후에 도전한 것이라 외국어를 소화하는 수준이나 능률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이 녀석이 더욱 멋진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이런 대단한 결과를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승부 근성만큼은 알아주어야 할 녀석임에는 틀림 없다. 우리가 단순히 고사성어라 여기는 ‘와신상담(臥薪嘗膽 : 가시가 많은 나무(섶나무)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쓸개를 핥으며 패전의 굴욕을 되새김)’을 말 그대로의 의미로 되새기면서 쓰디쓴 돼지쓸개를 구해서 졸릴 때마다 한 번씩 혀에다 갖다대며 공부하기도 했고, 기숙사에서 소등시간이 되면 재래식 화장실에서 암모니아의 공격을 받으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정말 악바리 근성이 있는 녀석이다.

 

또한 철학적인 사유능력까지도 갖추고 있어 스스로 쉬는 시간에는 데카르트의 책을 구해다가 놓고 깊이 있게 파들어가기도 하고 제 삶과 접목시켜 깊은 사유까지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대학생이 생각나 안타까웠다. 깊이 있게 입시공부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제 생각과 관점까지도 착실하게 키우는 그 나라의 분위기를 볼 때 부럽기까지 했는데, 정말 청소년기의 철학 공부는 꼭 필요한 듯 싶었다. 이제 칭화대도 합격했고 베이징대도 합격했으나 고2 때 공부를 해보니 평소 원했던 이공계열보다는 인문계열 쪽에 훨씬 더 재능이 있다는 알게 되어 베이징대학에서 외교관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위해 착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을 들어갔다고 해서 끝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자기가 연구하고 싶은 것을 파고들 수 있는 기쁨을 느끼며 마음껏 지식의 바다를 유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니까!! 이제는 각자 생각해왔던 비전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려야 할 때인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베이징대까지 도달했던 것에만 안주한다면 이제 다시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부터 심사숙고해서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계속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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