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가와 이토

 

1973년 출생. 세이센 여대에서 일본 고대문학을 전공했으며, 1999년『리틀 모어』에『밀장(密葬)과 카레』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4년에는 남편 미즈타니 기미오가 소속되어 있는 밴드 Fairlife에 참여하여, 하루아라시(春嵐, 아지랑이)라는 예명의 작사가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2007년 고단샤에서 시 그림책을 내고, 2008년에 첫 소설『달팽이 식당』을 포푸라샤에서 출간했다. 『달팽이 식당』은 제1회 포푸라샤 소설 대상에 응모해서 최종심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이후 스테디셀러가 되어 2010년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저자의 공식 홈페이지‘이토 통신’(http://www.ogawa-ito.com)을 찾아가 보면 독서 일기와 자신만의 요리법‘밥과 간식’, 식당 순례기 등 오밀조밀한 사연들이 소개되어 있다. 2007년부터 연재한 이 소소한 이야기들 중에서 일기와 레시피는『펭귄과 살다』『펭귄의 부엌』『펭귄과 하늘 위를 걷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식당 순례기는『지구 식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에세이집으로 엮어져 나왔다. ‘이토’(실)라는 자신의 필명처럼 말을 한 가닥 가느다란 실처럼 뽑아 한 편의 이야기로 묶어내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가 잘 드러난다. 남편(펭귄)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만드는 전갱이 초절임, 친구가 보내준 유채밥, 기운 없는 사람에게는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야채 포타주 등 맛있고 사랑스러운 요리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11월에는 포푸라샤에서 세 번째 장편소설『패밀리 트리』를 출간했고, 네 번째 장편소설『쓰루카메 조산원』이 2010년 12월에 슈에이샤에서 출간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를 꼽자면 아마 먹는 것이 아닐까 한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를 모를 만큼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또한 다채롭다. 그렇기에 요리에 열광하고 미식가임을 자처하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소모임도 만들어 몇 주에 한 번씩 모여 맛집 기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나만 해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대부분의 경우 맛있는 것 앞에서 참아내질 못해서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참다 참다 무너져 야식을 만들어 먹고 나서 후회를 하곤 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단지 먹는 데에서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소소하고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먹는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데, 딱 가정을 위해 하나라도 알뜰히 챙기는 엄마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먹는 것을 좋아해서 자신만의 요리법을 책으로 펴내기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닌 이야기도 책으로 낸 저자이기에 그렇게 요리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잘 드러난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자신의 강점을 잘 살린 소설로는 먼저 『달팽이 식당』이 있는데, 나는 아직 그 책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까 결코 후회가 될 만한 책은 아닐 게다. 특히 이번에 나온 『초초난난』의 잔잔하다 못해 애절한 불륜이야기가 파격적인 설정이라고 소개되는 것을 보니까 그 전에 나온 『달팽이 식당』은 더 내 마음에 쏙 들 것이 분명해보인다. 사실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전혀 소설류가 아니었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시간이 낭비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리 말하면 요즘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섣불리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 저기에 널려있는 책도 읽어야 하고 서평도 다 마무리해서 올려야 하고 그 밖에 더욱 중요한 일들을 다 처리하려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가동해야 할 지경인데, 전혀 그렇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이유는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 다른 이유로는 다급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목적이 분명히 서 있기 때문에 그 때처럼 멍하니 있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바쁠 때에 소설인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본의 장인정신이 연상되는 그러한 분위기, 정갈한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조용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가 나를 이끌었다. 겉으로는 여유있는 척 멍하니 있었는데, 속으로는 무척이나 바빠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 소설을 이끌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고요한 분위기에 기대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위로가 되었다. 바깥 세상의 복잡한 소음과 정신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들이 이 소설을 여는 순간, 음소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은, 소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항상 깨어있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할 존재가 이 소설 한 권으로 아무것도 위급한 것이 없게 느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특히, 마음이 분주한 누구라도 이 소설 하나면 충분히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단어가! 고요한 명상~! 명상하는 것을 잘 모르고 그다지 원하지도 않는데, 이 소설을 보고 있으면 꼭 내가 명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고요히 엔티크 기모노를 파는 시오리를 보고 있으면 번잡할 것도 없고, 번뇌할 것도 없고, 화낼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연이 있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녀의 삶은 여전히 고요히 흘러갔으니까. 아무것도 주장하고 있지 않기에 더욱 분명히 들리는 소리는, 이 고요한 명상의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기모노를 사러 온 하루이치로 씨와의 만남이 그녀의 고요한 생활에 자그마한 양념이 될 뿐, 아무것도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것이 불륜이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소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이지만,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진 후에는 심한 열병을 앓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고요한 그녀조차도 사랑은 열병일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그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자신을 잠식해버릴 정도가 되어 이제는 멀리하기로 마음 먹었던 시오리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륜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나가는 바람은 용서해주어야 한다느니, 남자라면 한 번정도는 그럴 수 있다느니 하는 등의 전문가인 척하는 여러 소리들도 있지만, 나는 인간이라면 배우자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 서로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까지 두었지만, 그 사랑이 식어지고 혹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아서 결혼했음이 밝혀진 다음이라면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생긴 후라면, 이혼이라도 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상대방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질 생각이 아니라면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에서 질척이거나 악의가 있어서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불륜을 그린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것 같아서 영 기분이 나쁘다.
 
만약 그런 아름다운 요리의 과정이 불륜이 아닌 상대에게 전해졌던 것이라면 더욱 아름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륜의 상대가 마치 다시 없을 유일한 사랑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여러 장면들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감정 때문에 자신의 아내랑 결혼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떠밀려서 결혼을 했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절절한 사랑을 느껴서 결혼했다면 그 사랑이 식었을 때 상대의 행복을 위해 놓아주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소설의 결말은 참으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세상 누가 봐도 아름답게 볼 불륜관계를 아름답게 볼 수 없었던 나이지만, 시오리의 아름다운 결단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물론 처음부터 불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으면 더 예뻤겠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이혼도 반대이다. 이혼은 정말 어쩔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정말 안될 때 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사랑이 떠났다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날 때마다 해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기에 사랑이 변했다면 바로 그 사람이 게을러 사랑을 가꾸지 않은 탓이지, 사랑 자체는 결단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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