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부자들 - 평범한 그들은 어떻게 빌딩부자가 되었나
성선화 지음 / 다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성선화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자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꿈을 좇아 이화여대에서 언론정보학을 공부했고, 2006년 기자라는 명함을 세상에 내밀었다. 지난 5년간 국제부, 유통부, 사회부, 건설부동산부 등을 거쳤다. 현재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에서 2년째 발로 뛰는 부동산 정보를 전하고 있다. 2010년 좀 더 깊이 있는 부동산 정보 전달을 위해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에 입학했고, 현재 건설개발을 전공 중이다.
특종 기사로는 2010년 강남구 최고 뉴스로 꼽힌 ‘은마 아파트 재건축’과 기업 부동산의 귀재 롯데그룹의 ‘롯데쇼핑, 분당백화점 매각’ 등이 있다. 입사 후 지금까지 6번의 사내 특종상을 수상했다.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기자가 천직이라고 확신한다. 언어로써 표현하고, 전달하고, 소통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즐긴다. 인터뷰 기사 쓰기를 좋아한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독일 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미국 록펠러 가문의 5대손인 ‘스티븐 록펠러’와의 인터뷰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 기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부동산이라고 하면 단지 아파트밖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릴 적 임대 아파트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하고 프리미엄을 주고 되팔기도 하는 등 여러 번의 매매를 통해 자산을 보유해놓으셨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퇴직할 즈음이 되니까, 매달 쓸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몇 건의 상가를 사놓으셨지만 꼼꼼하게 점검하고 구매한 것이 아니라서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파트랑 같겠거니 하고 오피스텔도 하나 사놓으셨는데, 그것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어서 무턱대고 구매하면 안된다는 반면교사가 되어 주시고 계시다. 이 책이 5년 전에만 나와주었다면 상가를 살 것이 아니라 대출을 받아서라도 빌딩을 살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외환위기 때 알짜 부동산이 매물로 헐값에 많이 나왔을 텐데 그 때 기회를 노렸다면 훨씬 알찬 노후를 준비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우리도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여도 그리 넉넉한 자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기엔 부모님께서 감당해야 할 위험부담이 많이 컸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나왔듯이, 성공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 확고하고 그만큼의 부동산 정보도 틈틈히 알아두고 배짱이 두둑한 준비형 부자들이었기에 그 만한 배포는 되지 못하신 우리 부모님께서는 이런 귀중한 정보를 알았어도 조금 힘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외환 위기 때 자기 돈 8천 만원에 부모님께 2억을 빌리고 대출을 4억 조금 넘게 해서 빌딩 하나를 샀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도 그만한 돈은 있었기에 진짜 아쉬울 뿐이다. 그것이 외환 위기 때이니까 가능했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아파트가 아니라 빌딩을 주종목으로 하여 돈을 굴리고 큰 돈을 벌어들인 빌딩부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문기자인 저자가 부동산 분야의 기사를 쓰다가,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알게 된 빌딩부자 오십 명을 인터뷰하고 나서 엮은 책이다. 기자인 그녀도 여러 번의 부동산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니까 뭔가 감이 잡히면서 대단한 감을 잡았기에 이런 책을 낼 기획을 했을 것이다. 부자라고 하는 존재는, 특히 빌딩 부자는 왠지 처음부터 부자여서 대대로 관리를 잘해 부자가 되었을거란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한 달에 적게는 천만원, 많게는 1억 수입이 들어오는 그들 중에 설마 자수성가형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실상을 알게 되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강남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부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빌딩을 갖겠다는 소망 하나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아서 80년대부터 땅에 투자했던 자수성가형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100억 자산을 가진 한 부자는 진짜 혈혈단신 아무것도 없는데서 시작한 사람이라 정말 대단하단 말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도 말하길, 큰 부자는 하늘에서 부여한 것이라고 운을 잘 타고난 사람이 있다고들 한다. 어느 시기에 자신에게 돈이 짝짝 달라붙는 때를 경험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 빌딩 부자들은 일반인들과는 좀 다른 특성이 있다. 빌딩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론 돈도 필요하지만 있는 돈도 까먹지 않기 위해서는 제테크나 중요한 정보가 우선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어려울 때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지인들이다. 이들과 평생 관계를 맺고 계속 그들과만 거래를 하기 때문에 고급 정보도 얻게 되고 서로 마음이 맞으니 서로에게 이익일 수 밖에 없다. 빌딩 부자들에게는 꼭 그런 사람들이 한, 둘씩은 있는데 그것이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없을 때, 지급 기한을 연기해준 사람도 있고,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도 있고, 돈을 빌려준 사람도 있는데, 그런 굳은 신뢰를 받게 된 것도 그들이 그럴 만하게 행동을 했으니까 가능한 것 같다. 현재는 가진 것이 없지만, 자신의 원대한 꿈을 믿었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상대방이 인정해준 것이니까 결국은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소리다. 역시 사람은 꿈이 없으면 될 것도 안 되는 듯 하다.

 

책 뒷부분에는 실제로 빌딩을 소유할 수 있는 팁이 제시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가상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는 어떤 변동이 있을지 몰라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만 원을 투자해서 한달에 30만원을 벌 수 있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50만원, 그 다음에는 1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수익률과 여러 가지를 계산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만 일단 발품을 팔아 그 분야에 대해 알아두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책에는 거의 강남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땅을 사두든 건물을 사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 아는 지역을 사두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처음 시작할 때는 작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장소에 투자해야 손해보지 않고 꾸준히 만들어갈 수가 있단다. 필요한 조언이다. 아무리 강남이 좋다고 해도 돈도 얼마 없지만, 초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곳에다가 투자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부터 우선 공략해야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빌딩부자들 대부분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100억 이상의 자산가들은 오히려 수수하게 하고 다니고 절대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50억 이하의 부자들만 명품이나 번드르한 물건으로 자신의 치장하지, 그 이상들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고. 이런 절약 정신이 그들의 부를 더욱 키워가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70년대 강남이 개발될 때부터 유지했던 강남의 5대 땅부자 중에서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알짜 강남 땅부자는 3대밖에 되지 않는데, 그들 중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 가문은 절대 대출을 받고 땅을 사지 않으며 가족끼리 모여서 일주일 한 번씩 사서삼경을 읽는 시간을 가진단다. 돈이 많은 집안에서는 돈 때문에 꼭 불화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구나 싶었다. 특히 그런 경우엔 가정교육을 제대로 한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 싶었다. 역시 수신 제가를 해야 치국을 할 수 있다 싶다. 특별히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해주고 싶다. 부자가 가진 생각들을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 그들 스스로도 100억 이상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됨됨이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겸손한 것을 보면 정말 배울 점이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 여행
홍미선 지음 / 비주얼아트센터보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홍미선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미국 로체스터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 ROCHESTER, NY) 대학원에서 영상예술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그후 삼성포토갤러리,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잊혀진 전쟁-조지 풀러 사진전”, “깨어진 침묵, 아시아의 종국 위안부-이토 다카시 사진전”, “색동저고리-한국여성사진 작가전”. “눈 이야기” 등의 전시회를 기획하였으며, 주요 저서로는 “거울-사진에서 보여진 우리 여성 1880-1970” 등이 있다. 강연, 기고, 심사위원 등 사진 분야에서 전 방위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여성’에 대한 주제로 다양한 설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최근에는 중남미를 여행하며 만난 태고의 자연이 담고 있는 ‘빛과 자연’의 숭고함을 사진 작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
 
사진작가 홍미선 씨는 최근에 중남미 여행을 통해 숭고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기억의 편린이다.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남미의 열정적이고 화려한 문화가 소개되고 있다. 전 아나운서였던 분도 몇 년 전에 남미를 여행하고 책을 내셨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그런 저런 방법으로 유혹해도 별로 남미라는 곳에 대해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어 한 번도 가보고 싶어 하지도 않은 곳이었는데 그녀의 이 책을 보고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의 남쪽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지역이 빙하가 형성되어 있다고 하니, 더욱 호기심이 든다. 남미하면, 아르헨티나나 칠레 두 나라를 말하면, 보통 더운 나라라고 알고 있기가 쉬운데 그 나라에 빙하 지역이 있다고 하니까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같은 나라인 칠레 북부만 하더라도 건조한 사막 지역인데, 밑에는 빙하가 있다니~. 와우, 역시 자연은 절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이 아름다운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신 분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놀라울 뿐이다.
 
요즘 여행이라는 화두를 통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이 세상은 빛으로 통해 있고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이 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남미 여행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물이나 태양이 어떻게 결핍되느냐에 따라 사막이 되거나 빙하가 되어가는 자연에게서 웅장하고도 심오한 감동을 받고 나선, 결핍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결핍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고. 그 말에 공감한다. 세상은 독특한 곳이라 거저 주어지는 것이 있으면 손해보게 되어 있고, 원래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떤 보상 같은 것이 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 섭리가 아닐까.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녀의 깨달음에 관해서는 자연이, 혹은 지구가 생명체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아 깊이 공감한다. 요즘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여러 자연 재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기상 이변이 가능하지도 않았겠지. 그러니 그녀의 여행은 정확한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 ‘빛’이라는 통로로 이 세상이 통해져 있다는 말에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세상을 연결시키는 요소가 빛이라니?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내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꿰어 맞추자면, 빛이 있어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빛으로 통해 있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사진은 단연 빛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녀의 그러한 표현이 내심 마음에 든다. 처음 접하는 홍미선 씨의 사진집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정말 달랑 사진만 있어서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사진이 말하는 바가 깊으면 별다른 글이 없어도 내용이 꽉찰 수 있다는 것을 난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꽉 차있지 않아도 좋겠다. 빛은 공간이 있어야 훨씬 더 제 빛깔을 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그냥 이 모습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 제일일 듯 싶다.
 
사진 작품들이 다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봐야 했는데 제일 압권인 것은 나라 이름조차 몰랐던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Rapanui는 칠레 서쪽의 남태평양 상에 거대한 인면석상이 있는 이스터 섬을 말하는 것인데, 원지어로 라파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라파누이에서 찍은 사진이 몇 컷 있는데, 이스터 섬의 유명한 석상의 사진이 전혀 없어서 그 사진이 이스터 섬의 사진인지를 상상도 못했다. 이 책의 표지에 나온 것이 바로 그 섬에서 찍은 것인데, 페루에 있는 나스카 라인은 몇 컷이나 실었던 것을 보면 인면석상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만큼은 진짜 예술이다. 멕시코, 라파누이,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코스타리카, 볼리비아를 배경으로 한 여러 사진이 등장한다. 진짜 아름답고 신비스럽고 놀라울 만큼 선명한 색을 자랑하는데, 나는 빙하 색이 그렇게나 선명한 색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찍은 빙하 색은 에메랄드 녹색보다 조금 더 푸른 빛이 나는 색이라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물감을 연상하면 빠르겠다. 정말 빙하라곤, 얼음이라곤 상상이 되지 않는 색이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인간의 손을 대지 않은 자연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다.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서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서울은 600년의 조선의 도읍지이자 백제의 600년 도읍지로 지내온 역사적 가치면에서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위상이 큰 도시이다.  서울은 개발의 흐름에 밀려 우리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잃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한 역사적인 모습과 발전된 우리네 모습을 모두 포착해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서울이란 도시의 현재진행형을 일러스트로 남긴 책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해 먼 도시인 우리 서울을 샅샅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자주 지나치지만 제대로 그곳에 대해 알지 못했던 장소 열네 군데를 돌아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을 좀 더 자세히 알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절절히 느꼈던 것은, 일러스트 화가란 사람이 아는 것도 많다는 것이었다. 서울을 소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열네 군데를 꼽으라고 했더니,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 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숭례문,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으로 역사적인 곳과 발전된 곳이 다양하게 정하긴 했지만 화가 본인이 대부분 역사적인 장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골랐던 지역이 정동이라면 덕수궁을 빠뜨릴 수 없다는 것쯤은 당연하지만 그 모든 덕수궁에 대한 이야기를 한가득 풀어내어야 했을까. 나는 경기도민이면서도 서울에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사람인지라 서울을 잘 모르는데, 그림 그리는 양반이 이렇게나 박학다식함을 뽑내니 내심 기가 죽었더랬다. 모든 지역에 등장하는 표지석도 아주 자세하게 알려줘서, 그런 표지석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 나로서는 새삼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비밀을 책장을 덮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풀어냈던 모든 지식 중에는 원래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열여섯 권이나 되는 책을 참고했다는 것을 맨 뒷장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한 그 모든 자세한 그림을 현장에서 다 그리고 정리해내기에는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기도 했는데, 몇몇 그림은 책에 나온 사진을 참고하거나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집에서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총 392페이지나 되는 묵직한 분량인데도 그가 틈틈히 서울에 대해 그려온 그림이 워낙 많아서 많이 쳐낸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쳐냈던 많은 그림들이 좀 아까워졌다. 분명 책에 들어가지 못한 그림 중에서도 많은 것이 예술적이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가의 박식한 역사적 지식 덕분에 서울에 유람하러 갈 때,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히 서울을 대표하는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서울의 여러 번화한 곳도 소개받을 수 있고 말이다. 그렇게 서울 나들이를 할 때 이 책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특징인 세심함 때문이다. 처음 경복궁을 소개하는데, 여러 역사적 사실들과 우리가 알아두면 재미있을 이야기들을 정리해두고, ‘경복궁 스케치’라고 해서 세심하게도 약도까지 그려두었다. 이렇게 약도로 보니까 정신없었던 내용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다음 번에 갈 때 이동할 경로까지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경복궁 스케치’에는 북쪽의 청와대 영역과 신무문에서부터 남쪽의 광화문과 경복궁역, 서쪽의 영추문과 동쪽의 건춘문 외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가는 벽의 뚫어진 문까지 표시가 되어 있어 아주 편리하다.
 
게다가 그 장을 하나 넘기면, 더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조금 아쉬울 뻔 하긴 했지만, 그 뒤로 어마어마하게 정리해두실 줄은 정말 몰랐다. 약도만 지나고 나면 완전히 역사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자면, ‘경복궁’의 근정전만 해도, 편액부터 다포식 팔작지붕, 하월대와 상월대로 나뉜 이중 기다, 용두, 삼도, 품계석 그리고 마당의 쇠고리까지 어느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설명이,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어느 누가 안 반할까. 특히나 나 같은 경우,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 누가 그려준 캐릭터 하나만 받으면 너무나 행복했었다. 아마도 이 화가도 그런 열정으로 그런 이 모든 그림을 그려내지 않았을까. 어쨌든 정성이 대단한 사람이다. 유적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조감도에서부터 소품 하나에까지 자세하게 챙기는 그의 세심함 때문에 책 읽기가 아주 즐거웠다. 반면 화가는 너무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대상이 꼭 역사적인 건물이 아니라도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잘 그려서 설명해준다. 장애인 유도 점자 블록이나 시비, 여러 고층 건물의 기법까지 다 소화해내는데 대단하다. 모든 것을 다 소화해내기도 하고 재능도 있는 화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라면 바로 서울이 급격한 개발에 밀려 점차적으로 서울의 유적들이나 옛스러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책에서도 몇 번이나 지금 보고 있는 서울이 다시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린다. 부지런히~ 그렇게 그의 손놀림이 활발해지는 것이 눈요기감을 되기 때문에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끔찍히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져 감사하다. 보다 이런 그림들이, 책들이 점차적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즐겁게 여기는지도 좋고, 현재까지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가 그려도 좋겠다. 모든 물건은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니, 그 존재 가치를 그림으로 남겨두는 것도 의미를 가질 테니까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비 2011-04-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의 유세 연설을 들으면, 그다지 많이 들어본 적은 없지만, 별로 들을 정도로 가치있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소리만 크게 지르는 듯한 느낌일 뿐,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대단한 힘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그렇게 들리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였다. 특별히 외국 정치가들의 유세연설을 들으면 정확하고도 명쾌한 근거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예리함이 돋보이는데, 우리나라 유세 연설은 조금 윽박지르는 듯한 어조와 내용들 뿐이란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나마 명연설가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없지 않나 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정치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홀리는 명연설이 뒤받침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이뤄낼 수 없다. 전에 읽었던 스웨덴에 대한 책에서만 봐도 보통 정치인들은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이 쌓아져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나운서들의 이적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이력 전향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봤자 버텨낼 수가 없다고. 그러니 그런 나라는 얼마나 연설이 자동으로 흘러나올까. 토론의 부재인 우리 교육계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정치가의 명연설이 탄생하기란 아직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가끔 공중파 방송에서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을 본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말이라고 하는, 어쩌면 단순하다고 하면 단순하달 수 있는 그 기술이 얼마나 잡다한 소리를 양산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들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해도, 못 알아듣는 척 다른 이야기로 대답하는 등 동문서답하는 경우를 종종 보이기에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느껴졌다. 그 주제에 대해 대답하기가 곤란해서 다른 쪽으로 이탈하기 위해 그런 교묘한 말로 논점을 흐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상대방의 논점을 읽어내지 못해서 헤프닝이 벌어지는 경우도 보았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장과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단 이해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자기 말만 하겠다고 회장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짜증났다. 그리고 내 생각으론 이왕 토론하기로 나오기로 했으면 있는 그대로를 다 밝혀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매너인데 그러지 않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어쨌든 꽤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상대방의 주장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드러나는 것 같아 우리나라의 공교육의 문제, 즉 어릴 때부터 토론 문화에 접하지 못했던 것이 가시화된 것 같아서 착찹하다. 미리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 놓았다면 이런 무식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드잡이는 아마도 이런 토론 생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그래서 이 책은 토론 문화나 연설 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로 이야기 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연설이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로 이야기 했는지를 들어야 그것에서 반박하거나 옹호할 수 있는 힘,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대통령이나 총리, 수상들의 연설을 만나볼 수가 있다. 최근에 갑자기 등장하셔서 미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잔뜩 확신시켜준 현 미국대통령 버락 오마마에서부터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의 추창 테쿰세에게 이르기까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말하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이 모여 있다. 이런 연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분야인 정치적인 영역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무언가를 희생해주길 요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 소중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알려주고 마음을 감동시켜야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국민이 움직이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힘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미국에서 자행된 여러 악행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흑인을 사다가 노예화한 것일 것인데, 끔찍하게도 노예로 살다가 글을 배운 후 흑인들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 노예폐지론자가 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연설을 읽고 있으면 얼마나 위트가 넘치고 지적인지 뭐라 감탄을 안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현재 노예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두발 벗고 나서서 노예 폐지를 성사시키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연설이었다. 이런 감동적인 연설이 있었기에 그 나라에선 민주주의가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설가 중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 중에는 영국 정치인이나 인도 지도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도 있고, 이스라엘 출신의 교황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런 귀중한 책을 받아들고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연설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고, 영어 공부를 위해 억지로 봐야 할 책도 아닌데, 얼핏 읽으니까 재미없는 것도 꽤 많았다. 시대상으로 봤을 때 엉뚱한 주장을 했다고 하든지 그로 인해 그 후에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하면 딱히 읽고 싶은 이유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여기에 모셔둔 연설 고수들을 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그 당시에 어떤 가치를 위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쳤는지를 파악해야겠다. 설사 그 연설이 내게는 아직 대단하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연설이라는 형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명철하게 들리는 말이 아니라 글로 읽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편견을 버리고 봐야 할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부터 흑인 인권, 여성 인권에까지 아우르고 전쟁 문제부터 실업률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모든 문제는 다 포함되어있기에 우리 현재 상황에 맞는 것이 있다면 골라서 봐도 좋을 듯 싶다. 사실 문제가 없는 사회가 어디 있으며, 전쟁 없는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어딜 가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가 더 중요한 것일 테다. 그러니까 지도자 입장에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구하는 방법으로 연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시대가 너무 달라져서 필요없어 보이는 연설도 몇 있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그런 연설문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거꾸로 추적할 수 있으니 모든 연설을 다 읽어봐도 시간 낭비만은 아닐 것이다. 충분히 찬찬히 읽으면 좋겠다. 더불어 영어와 한글이 같이 나온 책이 있으면 이 책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쾌한 노자, 현대인과 소통하다 - 알기 쉽게 풀어쓴 알기 쉽게 풀어쓴 동양철학 시리즈 1
왕융하오 지음,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자의 사상은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철학일 수밖에 없다. 특히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얻는 것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에게는 역설적으로 그 반대를 말하고 있는 노자의 사상이 매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풍족한 중에서 가끔씩 하게 되는 단식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절제함의 미덕을 갖추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할까. 현실이 그러하고, 내 삶이 그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세태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비루한 우리네 삶 속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우리는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책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나도 가끔 생각한다, 이런 책이 우리네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느냐고. 읽을 때는 마음이 비워지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지만, 그 책을 덮는 순간부터 숨가쁘게 뛰어야 하는 우리 삶 속에서는 이 책이 반창고 그 이상의 역할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암울할 뿐이다.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과연 암울함 혹은 반창고 대용밖에는 없을까.

 

전에 내가 노자의 책을 읽었던 때는 까막득한 옛날과 비교적 최근에 읽은 때 총 두 번이 있었다. 워낙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한자로 되어 있는 책이다 보니, 보통 어른용으로 만들어진 책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청소년용 책이 훨씬 이해가 빨랐다. 아마도 공자의 『논어』와 같이 읽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 책에서도 그런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 중간 중간에 공자가 한 말들을 간략하게 인용해주었다. 예를 들어, 공자도 물을 찬미했던 것은 노자와 일치한다고 한다든지, 공자 역시 세상과 경쟁하지 않음을 강조한다고 하든지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비슷한 점도 들어주었고 노자와 공자의 상반된 사상도 들어서 설명해주었다. 그 외에도 묵자나 장자, 한비자도 간혹 등장해서 노자의 사상을 설명하는데 확실한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가장 많은 예로 등장했던 것은 아무래도 공자였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중국의 사상을 떠올릴 때 공자의 유가 사상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가장 친숙해서 동양의 사상이라고 하면 꼭 유가말고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곧잘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동양사회에 끼친 유가 사상의 영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노자는 어쩌면 생소한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보이지도 않고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도’를 말하는 것이니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사회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서 더욱 생소하다. 노자가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많은 제도나 법률이 필요없는, 강한 공권력이 발휘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사회이다. 그러니 현대 정부가 감당하고 있는 여러 복지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법률과 제도는 노자가 말하는 것과 어울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노자에게서 현대인들이 답을 구하기란 사실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노자의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팁’을 주기 보다는 무한경쟁적으로 진행되고, 가지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릴 것 같은 인간사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그러니까 바깥의 무한 경쟁에 대비하여 정신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게 해주는 마음의 쿠션 그 이상의 역할은 아닐 것이라도 말이다. 사람이 이기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를 인식하기에 자아를 존중할 수가 없으니까 이런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나는 정신적인 정화를 이룩하는 노력은 한다고 자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부정적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이 공허해졌기 때문이다. 전에 봤던 어떤 책에서처럼 말도 안 되는 우주 에너지 어쩌고라고 하진 않았지만, 읽어가는 모든 항목들마다 읽는 사람, 바로 현대인들에게 요구만 하고 있다. 사는 것도 바쁜데,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무위자연을 요구하거나 승승장구하더라도 겸손하라고, 실패를 맛봐야 더욱 스스로를 보전할 수 있다고, 스스로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 좋다고, 밖으로 쉼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데 그렇게 하지 않고도 내면의 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하니, 이거 어디 보통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무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떤 구절 하나라도 틀린 말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그런 결단이 당장 필요할 정도로 마음의 안정이 절실한데, 문제는 그런 모든 노자의 주장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이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일반인에게는 하루 열심히 사는 것만도 힘에 부친데 어디서 득도의 깨달음을 얻으며, 내면의 길을 통달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제껏 인간의 학문을 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지만, 오늘 노자의 사상이 이렇게나 쓸모없게 느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현실과는 멀어진 판타지 동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은 기분일까. 읽을 때는 명상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기분이 고요해지지만 막상 책을 덮으니 이렇게나 공허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정말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인간은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일을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의 뒤에서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가장 더럽고 낮은 곳이라도 유유히 흐를 수 있는 물처럼 되고, 공로가 있더라도 겸손해할 줄 알며, 말을 적게 할 줄 알며,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있고, 글을 쓸 때도 정신 수양을 하며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평안할까.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오랜 시간 속세를 떠나 정신 수양만 하신 분이라면 또 모를까, 일반인들은 그런 경지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스스로 이뤄낼 수 없는 이 길을 가는 법을 알기에, 조금은 이 책이 공허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알 테지만, 내겐 오늘 이 책이 정말 보통 때랑은 다르게 느껴지는가보다. 이제는 별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