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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의 유세 연설을 들으면, 그다지 많이 들어본 적은 없지만, 별로 들을 정도로 가치있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소리만 크게 지르는 듯한 느낌일 뿐,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대단한 힘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그렇게 들리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였다. 특별히 외국 정치가들의 유세연설을 들으면 정확하고도 명쾌한 근거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예리함이 돋보이는데, 우리나라 유세 연설은 조금 윽박지르는 듯한 어조와 내용들 뿐이란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나마 명연설가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은 없지 않나 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정치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홀리는 명연설이 뒤받침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이뤄낼 수 없다. 전에 읽었던 스웨덴에 대한 책에서만 봐도 보통 정치인들은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이 쌓아져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나운서들의 이적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전 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이력 전향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들어와봤자 버텨낼 수가 없다고. 그러니 그런 나라는 얼마나 연설이 자동으로 흘러나올까. 토론의 부재인 우리 교육계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정치가의 명연설이 탄생하기란 아직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가끔 공중파 방송에서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을 본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말이라고 하는, 어쩌면 단순하다고 하면 단순하달 수 있는 그 기술이 얼마나 잡다한 소리를 양산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들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해도, 못 알아듣는 척 다른 이야기로 대답하는 등 동문서답하는 경우를 종종 보이기에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느껴졌다. 그 주제에 대해 대답하기가 곤란해서 다른 쪽으로 이탈하기 위해 그런 교묘한 말로 논점을 흐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상대방의 논점을 읽어내지 못해서 헤프닝이 벌어지는 경우도 보았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장과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일단 이해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자기 말만 하겠다고 회장이 시끄러워지는 것이 짜증났다. 그리고 내 생각으론 이왕 토론하기로 나오기로 했으면 있는 그대로를 다 밝혀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매너인데 그러지 않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어쨌든 꽤 대단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상대방의 주장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드러나는 것 같아 우리나라의 공교육의 문제, 즉 어릴 때부터 토론 문화에 접하지 못했던 것이 가시화된 것 같아서 착찹하다. 미리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해 놓았다면 이런 무식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드잡이는 아마도 이런 토론 생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그래서 이 책은 토론 문화나 연설 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로 이야기 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연설이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로 이야기 했는지를 들어야 그것에서 반박하거나 옹호할 수 있는 힘,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는 을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대통령이나 총리, 수상들의 연설을 만나볼 수가 있다. 최근에 갑자기 등장하셔서 미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잔뜩 확신시켜준 현 미국대통령 버락 오마마에서부터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의 추창 테쿰세에게 이르기까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말하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연설이 모여 있다. 이런 연설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분야인 정치적인 영역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무언가를 희생해주길 요구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 소중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알려주고 마음을 감동시켜야 실질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국민이 움직이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힘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미국에서 자행된 여러 악행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흑인을 사다가 노예화한 것일 것인데, 끔찍하게도 노예로 살다가 글을 배운 후 흑인들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 노예폐지론자가 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연설을 읽고 있으면 얼마나 위트가 넘치고 지적인지 뭐라 감탄을 안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현재 노예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두발 벗고 나서서 노예 폐지를 성사시키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연설이었다. 이런 감동적인 연설이 있었기에 그 나라에선 민주주의가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설가 중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 중에는 영국 정치인이나 인도 지도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도 있고, 이스라엘 출신의 교황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런 귀중한 책을 받아들고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연설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고, 영어 공부를 위해 억지로 봐야 할 책도 아닌데, 얼핏 읽으니까 재미없는 것도 꽤 많았다. 시대상으로 봤을 때 엉뚱한 주장을 했다고 하든지 그로 인해 그 후에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하면 딱히 읽고 싶은 이유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여기에 모셔둔 연설 고수들을 두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그 당시에 어떤 가치를 위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쳤는지를 파악해야겠다. 설사 그 연설이 내게는 아직 대단하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연설이라는 형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명철하게 들리는 말이 아니라 글로 읽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편견을 버리고 봐야 할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주장하는 연설부터 흑인 인권, 여성 인권에까지 아우르고 전쟁 문제부터 실업률까지 우리가 생각해왔던 모든 문제는 다 포함되어있기에 우리 현재 상황에 맞는 것이 있다면 골라서 봐도 좋을 듯 싶다. 사실 문제가 없는 사회가 어디 있으며, 전쟁 없는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어딜 가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가 더 중요한 것일 테다. 그러니까 지도자 입장에서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구하는 방법으로 연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시대가 너무 달라져서 필요없어 보이는 연설도 몇 있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그런 연설문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거꾸로 추적할 수 있으니 모든 연설을 다 읽어봐도 시간 낭비만은 아닐 것이다. 충분히 찬찬히 읽으면 좋겠다. 더불어 영어와 한글이 같이 나온 책이 있으면 이 책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