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 인상파 화가들의진솔한 한 기록
수 로우 지음, 신윤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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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라고 하면 인상파 화가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화가들이다. 그런 그들이 만나서 무슨 일을 했으며 서로에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을까. 이 책은 그것을 탐구해본 책이다. 인상파화가들에 대한 숨겨진 뒷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비평가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조롱하듯 ‘인상파’라고 불렸던 그들만의 유파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형성하기 시작했는지 파악하기에는 제격이다. 외국에는 대단한 과학자들이 쓰다 버린 종이조각도 남겨두어 과학사를 연구할 때, 자료로 삼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마네, 모네, 르누아르, 모리조, 피사로, 드가, 세잔, 바지유, 카유보트, 베르트, 메리 커샛 등의 여러 화가들의 기록들을 면밀하게 조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는지는 등장하지 않아 호기심이 일지만, 일단 아주 자세한 내막들 - 예를 들면, 베르트의 어머니가 마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생각들, 마네의 아내인 쉬잔은 베르트에 대해서 항상 호의적이었으나 베르트는 항상 그녀에 대해 험담을 했다는 사실들 - 까지도 파악해서 정리해둔 것을 보면 그 섬세함에 대해 놀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도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내 성향에는 더 맞지만, 일단 이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는 살롱전에서 입상한 작가의 작품만 대량 거래되고, 그런 화가들만 전업 화가로 나설 수 있을 만큼 소규모 개인거래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 살롱전에서는 과거의 대가들의 회화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작품만을 입상시켰다. 신흥 중산층이 부상하여 그들 스스로의 교양을 드러낼 회화가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그런 대가의 양식을 답습한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때였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상승해서 대중들에게서도 그림을 감상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전업 화가의 입장으로선 매번 후원자을 찾아야 할 입장이니, 잘 팔리지 않고 오히려 혹평을 듣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그 때만큼 운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나중에는 영국 미술시장과 미국 미술시장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주춤하지만 새로운 유형을 즐기는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것도 10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인상파’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은 아니란 사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이 인상파 화가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 대상이 같은 색감으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받았던 인상대로 색감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 사람들에게 그리다 만 그림이거나 혼란스러운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원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의 양식만 답습할 때는 이미 지났는데 대중들은 아직도 그 수준에서만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대가들과는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생존해있을 때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다소 위안은 되지만, 평생에 걸쳐 모욕을 당하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로서는 치명적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음 그들이 혹평을 들었던 것은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 낙선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낙선전을 개최하여 후원자를 얻고 작품도 팔 궁리를 했지만 몇 번에 걸쳐 개최했지만 매번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구심점에 있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사람들에게 경악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부유하고 귀족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마네는 그림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으로서 한량기질이 다분히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가 낙선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의 행동은 그가 주도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것은 그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단 그의 놀라운 표현기법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항상 도발적인 주제로 사람들을 경악시키면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네와 연극 공연의 뒷 모습이나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 열광했던 드가,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야외에서의 무도회와 같은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길 좋아했던 르누아르, 풍경화에 목숨을 걸었던 모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성적인 세잔, 보트 전문가로서 나무의 질감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해내는 카유보트, 감각적이지만 흐릿한 인상으로 풍경을 표현해내는 피사로 등 각기 개성이 다 다르지만 단 하나 자신이 느낀대로, 정해진 틀 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치된 그들의 우정이 놀랍고 애틋하다. 꼭 험상궂거나 못될 것만 같은 사람들 하나 하나가 생활비가 없을 때 보조해주기도 하고 그림을 서로 사주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우정을 나누었다. 눈치가 볼일 법도 한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예술에 대한 정신인 듯 당당히 돈을 부쳐달라는 편지가 여기저기서 오고갔다. 하긴 화가들은 일 년에 얼마만큼의 후원을 받지 못한다면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으니 그런 철가면이라도 없다면 문제가 될 듯 싶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동료 몇 사람은 잃게도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열악해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살롱전에는 출품하지 않고 낙선전에만 출품하자는 의리를 저버리고 개별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에 아내와 자식을 부양해야 할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는 개인 거래상 뒤랑 뤼엘을 만나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 당시에 있어서는 혹평이란 혹평은 있는대로 받았던 작품들인데도 어느 정도 예술품에 대한 조예가 있던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큰 돈을 주어가며 대량으로 사두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가 미술 시장을 뚫지 않았더라면 파산했겠지만 그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화가들이 끊임없이 격려를 받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공을 한 것은 61세였는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60세에 죽었다면 엄청난 보물들에 둘러싸여 빚을 떠안고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한 행동은 아찔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고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그 덕분에 인상파 화가들은 말년에 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위대한 예술가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듯 싶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나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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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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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말고는 감옥에 갔던 경험을 쓴 책을 본 적은 없었다. 그마저도 다 읽지 않고 기회만 보고 있는 상황인데 그 이상 말을 해봐야 무엇하랴. 솔직히 범법자들의 감옥에서의 경험을 읽는다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간 경험을 읽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명예로 간주되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과 일반수들이 따로 구별되어 있어 어느 정도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랑 같은 곳에서 징역을 사는 것은 징역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사상전향을 시키기 위해서 감옥에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성고문 등 요즘 시대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할 일들을 여럿 자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이 감옥 안까지 확산된 탓인지 그전보다는 덜 팍팍하게 감시를 해서 수월하다고. 그 당시에는 조폭과 민주화 운동한 학생들이 연합해서 짜고 감옥 안의 기강을 흐리기도 했다는데 저자가 징역을 살았던 시기에는 아니였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읽을 만 하다. 아니, 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있다. 아마도 감옥이라는 배경을 감안하고 읽기 때문일 것이지만 감옥 안에서 징역사는 이야기이렇게 유쾌할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주었고, 감옥 안에서도 사람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면 숙식이 제공되니까 돈이 필요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밀가루나 야채는 살 수 없지만 군대의 피엑스처럼 돈만 주면 알아서 배달까지 해주기에 훨씬 더 편할지도 모르다.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한다. 한 번은 어떤 분의 환갑을 맞아서 술을 제조하는 일을 떠맡기도 했다. 밥풀에다가 곰팡이를 쓸게 해서 그것을 패트병에다 넣어 적당하게 따듯하게 해주면 잘 발효되어 술이 되는데 김을 적당히 빼주어야 나중에 폭탄처럼 발사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또 훈제 닭다리를 이용한 닭볶음탕라든가 중탕으로 끓이는 계란말이까지도 그가 음식 담당일 땐 주변 사람의 인정을 듬뿍 받을 수 있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쓰는 방을 호텔로 변신시키기 위해서 종이로 여러겹 붙여서 가구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여닫이로 된 옷장을 만들었는데, 옷장에 달려있는 서랍 만드는 방법이 가장 압권이었다. 서랍 둘을 자유롭게 꺼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분리해주는 가림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만들어 잘 세우고 그 다음에 단단하게 여러겹 붙이면 된다. 문짝도 잘 달고 나니까 시중에서 파는 옷장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튼튼하고 잘 만들어졌다. 종이도 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종이를 여러 겹 붙이면 나무와 같은 강도르 될 것이라는 생각 하게 시도했던 것이지만 확실하게 성공해냈다. 그 외에 작은 소품들이야 식은 죽 먹기다. 감옥에 있으면서 좋은 것은 공간적 제약이 있다보니까 시간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구할 수 없으면 많은 시간을 이용해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감옥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물론 이런 것은 정치범에나 해당하는 사건들이겠지만 말이다.

 

같은 정치범이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동네는 여러 인종들이 섞여 들어오기 마련이다.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엄격한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유대가 없을 수 없을 게다. 그러나 감옥이란 장소가 같은 특이성 때문에 나와 같지 않은 계급과 학식,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세월 동안 갇혀있었던 감옥이 주는 귀중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좋은 학벌에, 엘리트 코스를 잘 밟아나갔다면 평생 감옥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을 텐데, 학생 운동에 빠지는 바람에 독특한 수확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인생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가장 나쁜 사람에게도 착한 구석이 있고, 가장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구석이 있는 것처럼 인생사에는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다는 진리를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옥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유머로 어려움을 승화시키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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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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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학창시절에 유명했던 시인이 있었다. 읽지는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 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가 80만부나 팔리면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이름에 오글오글거리는 수사법은 내 나이 여고생 시절에 들불처럼 시집 광풍을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사볼 정도로 그의 시에 빠졌던 것은 아니지만 시집 이름만 들어도 괜시리 마음이 갔다. 한 때 다이어리에 누군가의 시와 누군가의 노래 가사를 옮겨 적어놓는 것이 유행이 되었는데 그의 시도 단골메뉴로 심심치 않게 등장했으니 내가 글씨를 좀 잘 썼다면 나도 옮겨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단한 내용도 아니고 툭 하면 등장하는 사랑 타령인 내용에 아이들이 목을 매는 것을 볼 땐 좀 의외였다는 느낌도 들었다. 고교시절 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그나마 좋아했던 시도 대부분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이육사, 윤동주, 신동엽과 같은 저항적인 면모가 남다른 시였기에 원태연 시를 좋아하기엔 내겐 공감대가 너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집을 사보지 않았으니 시인의 성별에 대해 전무했지만 나름 추측하기를 독특한 이름도 그렇고, 표현력도 그렇고 분명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남자인 것도 참 의아했다. 여하튼 내겐 그가 뻔한 내용에 비해 평범하지는 않은 시인으로 여겨졌다.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와 같이 딱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대단한 표현력이란 감탄을 하긴 했다. 내 또래 여고생이 생각할 법한 언어들을 잘 버무려 시를 썼기에 우리들은 말 그대로 환장을 했다. 사랑 타령이 싫은 나조차도 감각적으로 잘 표현했단 생각은 하게 만들었으니. 꼭 여고생이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의 감성을 잘 뽑아냈던 시였다. 하지만 시란 존재가 워낙에 그렇듯이, 오랜 울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도 몰랐고, 우리도 몰랐다. 시의 표현은 우리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옮기면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것이 식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들었을 때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만, 계속 곱씹기에는 평범한 그런 시가 나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또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자 한다.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오디오그래픽노블(Audio Graphic Novel)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는데 CD 없이 QR코드를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고교 때 시로 우리 세대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것처럼 스마트폰에 열광하는 요즘 세대에 딱 어울릴 만한 장르의 책이다.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그래픽아티스트 아메바피쉬와 국내 일렉트로니카 음악계 1세대 작곡가 이철원이 합류했다.

 

이제 나도 서른을 넘어 중년을 향해 간다. 고교 시절 자신의 시가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시인은 스물하나에 첫 시집을 발표해 엄청나게 많은 시집이 팔리는 시인이 되었지만 그 때까지도 시인이 뭘 하는 사람인지를 몰라서 군대를 다녀왔다. 스물다섯에 전역을 하고 유명 가수들에게 노래 가사를 써주며 화려하게 살았지만 작사가도 시인도 아니었다. 스물아홉에 우연히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꿈을 꾸다가 능력의 부족으로 좌절해버리고 서른부터 서른여섯까지 웃음, 글, 영혼까지 팔아가면서 자신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찾다가 드디어 시인이 뭘 하는 사람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나 그 땐 이미 시가 떠난 이후였다. 나도 서른이 넘은 지금에 인생을 회고해보면 아쉬웠던 부분이 더러 보이고, 지금 알고 있는 이것을 그때 알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많이 있는데 후회로 점철된 이런 고백 덕분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어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실수를 발판 삼아 더 앞으로 나가야 할 일이다. 오히려 이런 실수를 안고 나온 글이기에 그 글이 더 깊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소심쟁이 고양이와 사랑하는 이를 안아줄 수도, 위로해줄 수 없는 선인장을 사랑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그런 많은 실패의 경험이 녹아들어갔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보고 싶은 감정이 앞서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에서부터 소심해서 맞서지 못해서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행동까지 다 포함하는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사랑의 첫 설레임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순정까지 모두 잘 표현했는데 고양이가 왜 외로워가 되었는지, 선인장이 왜 이름이 땡큐인지도 알 수 있다. 덧붙어 등장하는 선인장의 친구 쓸쓸이는 서로 좋아하는 고양이와 선인장 사이를 질투하지만 그것은 날카롭거나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받지 못해 안타까운 감정만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에 에필로그격으로 나오는 고양이의 첫사랑 이야기에서는 진짜 잔잔하게 감싸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는 시가 떠나갔다고 말하지만, 확실히 시인이여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단어 하나도 절대 그냥 쓴 것이 없고 앞뒤에 진행될 이야기 속에 꼭 필요한 구절로 연결되는 것들이 많아 감동을 느끼게 된다. 평범해 보이는 단어 속에 대단한 의미가 숨겨져있음을 밝히면 항상 신선한 감동을 받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원태연은 시인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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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이 준 선물 - 트레져 Treasure
이누카이 터보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화발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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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에서 창업까지 비즈니스 성공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행복한 성공을 전파하는 성공소설가의 손으로 탄생했다. 실제로 36세 청년 코바야시 카즈나리 사장의 실화를 재구성해서 만든 소설인데, 저자와는 6개월간 정예 세미나 ‘마스터 코스 4기생’에서 만나서 그의 직원을 아끼는 경영 이념에 감동해 그 이념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썼다고 한다. 저자는 대인 관계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세일즈를 시작했고 2000명이 넘는 회사에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지만, 음식업계에서는 아르바이트도 해보지 않아서 이 책을 쓸 때 많은 도움을 받고 썼단다. 그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의 술집을 경영하는 코지 이야기를 읽으면 장소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직원은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사실까지 확인해볼 수 있다. 정말 한 번 손에 잡으면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다. 비즈니스 성공 소설이기에 목적이 있는 바도 알고 읽었지만 재미가 있어 전혀 거부감 없이 빨려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표지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듯 하다. 한눈에 봐도 일본 만화풍의 그림체라서 드라마가 있고, 감동이 있는 내용일 거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책의 느낌과 아주 흡사해서 이 표지에 끌려 읽게 되더라도 충분히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겠다. 나도 일본 만화를 무척이나 많이 보고 자라서 만화, 즉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당연히 일본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 잘 먹힐 책이다.

 

이야기는 창의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제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직장 환경 때문에 일할 의욕이 점차 사라져가는 나카다 코지가 멘토격인 유미이케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서른여섯에 영업부장직에 올라 초고속으로 승진은 했지만, 보람있는 일을 하기에는 사장의 성격 파탄 같은 성격이 걸림돌이 되어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상태였다. 오락실에서 땡땡이치고 있다가 예전 동료를 통해 유미이케를 만나 성공의 7단계를 들으면서 자신의 단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받아가며 성공을 향해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 딱 느꼈던 것은 저렇게 성격 파탄자 같은 사장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었던 곳에서도 사장의 한 마디에 기를 펴지 못하는 임원급들이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전해듣거나 보게 되면 참 희한하고 의아할 뿐이었다. 여기에 나온 사장은 급여를 후하게 주는 대신 직원들을 종 부리듯 하는 곳이었다. 영업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해당 점장들은 무릎을 꿇어 앉아 반성을 하거나 사직이라도 할라치면 주먹다짐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살벌한 근무환경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장 이외의 임원진이었다. 그런 인권 유린하는 행동이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바로 신고를 하던가 항의라도 해야 하는데 여기는 모두 사장의 횡포에 길들여진 듯 아무런 소리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벼룩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능력 있는 코지는 멘토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장벽을 제거해나가며 창업을 하게 되는데, 그 장벽이 멘탈 블록이라 부른다. 그는 상황이 어려워지면 도망간다는 회피성 틀이 있었는데 그것을 깨부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버지랑도 특별한 일 없이 1년 이상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이 사장과도 그런 두려움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어서 그것을 바꿀 시도를 해보도록 숙제를 내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 일을 벌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 친한 사람들이 창업한다고 할 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걱정해주면 급격하게 불안해지는 경우가 그렇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주위 사람의 의견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텐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많이 휘둘린다는 것이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기 스스로 제 사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실제적인 방법도 구상해놓는다면 충분히 자유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말 사소한 것 하나까지라도 신경써야 하는 자영업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나도 이런 직종에서 일을 해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정말 인생 전체가 매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쉽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피드백도 빠르게 올 수 있기에 감동도 배가 될 것이기에 해볼만 한 직종임에는 틀림없다. 주인공 코지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손님만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스텝들에게 거대한 부담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스텝의 즐거움을 위해 일하기로 경영 이념을 정해놓았다. 그것이 더 확장되어서 식자재를 납품해주는 이들과 라이벌관계에 있는 점장까지도 감동을 실천해주기 위해 노력했더니, 성공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다. 접대하는 사람이 확실히 즐겁다면 어떻게 손님이 즐겁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정말 이런 기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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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교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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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학의 대가들이 한 사람씩 등장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철학 교실을 표방하여 묶어낸 책이다. 총 열네 시간 동안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열네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장씩 끝내고 나면 뭔가 확실하게 잡혀지지는 않지만 뭔가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든다. 사실 이제껏 여러 권의 철학책을 읽어봤지만 재밌다, 재미없다는 평가만 했을 뿐, 이렇다 할 깨달음을 얻거나 삶의 방향성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최근에 읽었던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나 본 지 꽤 된 안광복의 『인생고수』은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활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철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은 적은 없었단 말이겠다. 이는 비단 철학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을 선택하는 사람의 짧은 식견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번 책을 통해서는 이제까지와는 관점이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철학이라는 것은 어떤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목적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도구적인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뭐 이런 당연한 것에 대해서 뒤늦게 설명하냐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라 무척이나 신기하고 새롭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 즉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철학을 공부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나요?”이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도 이것이었을 게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삶을 긍정하고 나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고, 그렇기에 한 번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발판삼아 다시 한 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방법을 한 번 터득하고 나면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철학책을 읽는 이유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위기가 닥쳐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철학적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이겨낸 적이 없었던 나로선 철학책이 하나의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순 없는 내용이라 같은 내용을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보긴 했지만, 철학책은 내겐 ‘앎’을 위한 학문이었다. 정말 맞는가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온갖 독특한 이름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조들을 한데 묶어서 이해해보고 그 이후에 그것을 외우는 기쁨을 누려왔다는 것이 맞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배움을 위한 책읽기였다.

 

실은 읽고 나서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고 철학 사상은 도통 외워지지도 않아서 누군가에게 아는 척도 하지 못하는데 왜 철학책을 읽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그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다른 방법과 사고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쩌면 잉여지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니체이다. 니체는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던 사상가였다.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까 그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제일 아쉬웠다. 내가 철학책을 좋아한다니까 누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해주셨는데 그 책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무서워서 쉽사리 집을 순 없었던 책이여서 이 책에 나왔을 땐 반가웠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을 낱낱이 이해한 것도 아니고 제삼자가 그의 사상을 짤막하게 정리해둔 것을 읽는 것만으로는 그의 사상에 대해 뭐라고 논박을 펼 수 없어서 아쉬웠던 생각도 강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의문을 표시하자면,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경구가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신에게 의지하여 노예적인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를 믿어 삶을 긍정하면서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자는 말로 그의 사상을 이해했다. 그리고 니체는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고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를 주창했는데 그 부분이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복된다는 것을 받아들여 부조리한 일이 긍정적인 일보다 많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긍정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다른 희망을 찾아 또 한 번 인생을 살고자 하려는 의지가 갖추어지려면 세상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니체의 주장은 처음 가정한 것이 뒤에 자신이 주장할 내용과 모순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부분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책에 나온 짤막한 이야기만으로는 니체의 철학을 다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어쨌든 철학이 단순한 앎의 영역이든 삶의 방향성을 찾는 영역이든 누구에게나 열린 학문임에든 틀림없다. 내가 암기를 위해 철학책을 본다고 해서 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허나 점차적으로 철학책이 재미가 없는 것을 보니 그것이야말로 큰 일이다. 내 방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는 철학책만도 조금 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부지런히 읽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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