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교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철학의 대가들이 한 사람씩 등장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철학 교실을 표방하여 묶어낸 책이다. 총 열네 시간 동안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열네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장씩 끝내고 나면 뭔가 확실하게 잡혀지지는 않지만 뭔가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든다. 사실 이제껏 여러 권의 철학책을 읽어봤지만 재밌다, 재미없다는 평가만 했을 뿐, 이렇다 할 깨달음을 얻거나 삶의 방향성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최근에 읽었던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나 본 지 꽤 된 안광복의 『인생고수』은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활력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철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은 적은 없었단 말이겠다. 이는 비단 철학책의 문제라기보다는 책을 선택하는 사람의 짧은 식견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번 책을 통해서는 이제까지와는 관점이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철학이라는 것은 어떤 지식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목적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도구적인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뭐 이런 당연한 것에 대해서 뒤늦게 설명하냐고 하겠지만 나로서는 이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라 무척이나 신기하고 새롭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 즉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철학을 공부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나요?”이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마도 이것이었을 게다. 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삶을 긍정하고 나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고, 그렇기에 한 번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발판삼아 다시 한 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방법을 한 번 터득하고 나면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난 철학책을 읽는 이유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위기가 닥쳐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철학적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이겨낸 적이 없었던 나로선 철학책이 하나의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쉽게 이해할 순 없는 내용이라 같은 내용을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보긴 했지만, 철학책은 내겐 ‘앎’을 위한 학문이었다. 정말 맞는가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온갖 독특한 이름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조들을 한데 묶어서 이해해보고 그 이후에 그것을 외우는 기쁨을 누려왔다는 것이 맞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봐도 배움을 위한 책읽기였다.

 

실은 읽고 나서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고 철학 사상은 도통 외워지지도 않아서 누군가에게 아는 척도 하지 못하는데 왜 철학책을 읽는 건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저 그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다른 방법과 사고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쩌면 잉여지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니체이다. 니체는 기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렇기에 더욱 궁금했던 사상가였다.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까 그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제일 아쉬웠다. 내가 철학책을 좋아한다니까 누군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권해주셨는데 그 책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무서워서 쉽사리 집을 순 없었던 책이여서 이 책에 나왔을 땐 반가웠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을 낱낱이 이해한 것도 아니고 제삼자가 그의 사상을 짤막하게 정리해둔 것을 읽는 것만으로는 그의 사상에 대해 뭐라고 논박을 펼 수 없어서 아쉬웠던 생각도 강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의문을 표시하자면,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경구가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다. 신에게 의지하여 노예적인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를 믿어 삶을 긍정하면서 진취적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자는 말로 그의 사상을 이해했다. 그리고 니체는 세상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고 세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를 주창했는데 그 부분이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복된다는 것을 받아들여 부조리한 일이 긍정적인 일보다 많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긍정적인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어려운 일을 극복하고 다른 희망을 찾아 또 한 번 인생을 살고자 하려는 의지가 갖추어지려면 세상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니체의 주장은 처음 가정한 것이 뒤에 자신이 주장할 내용과 모순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부분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 책에 나온 짤막한 이야기만으로는 니체의 철학을 다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어쨌든 철학이 단순한 앎의 영역이든 삶의 방향성을 찾는 영역이든 누구에게나 열린 학문임에든 틀림없다. 내가 암기를 위해 철학책을 본다고 해서 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허나 점차적으로 철학책이 재미가 없는 것을 보니 그것이야말로 큰 일이다. 내 방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는 철학책만도 조금 되는데 재미가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부지런히 읽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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