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감옥 - 시대와 사람, 삶에 대한 우리의 기록
이건범 지음 / 상상너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말고는 감옥에 갔던 경험을 쓴 책을 본 적은 없었다. 그마저도 다 읽지 않고 기회만 보고 있는 상황인데 그 이상 말을 해봐야 무엇하랴. 솔직히 범법자들의 감옥에서의 경험을 읽는다는 것에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간 경험을 읽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명예로 간주되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과 일반수들이 따로 구별되어 있어 어느 정도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랑 같은 곳에서 징역을 사는 것은 징역 생활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 이전까지는 사상전향을 시키기 위해서 감옥에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성고문 등 요즘 시대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할 일들을 여럿 자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이 감옥 안까지 확산된 탓인지 그전보다는 덜 팍팍하게 감시를 해서 수월하다고. 그 당시에는 조폭과 민주화 운동한 학생들이 연합해서 짜고 감옥 안의 기강을 흐리기도 했다는데 저자가 징역을 살았던 시기에는 아니였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읽을 만 하다. 아니, 깔깔 웃을 정도로 재미있다. 아마도 감옥이라는 배경을 감안하고 읽기 때문일 것이지만 감옥 안에서 징역사는 이야기이렇게 유쾌할 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주었고, 감옥 안에서도 사람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면 숙식이 제공되니까 돈이 필요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밀가루나 야채는 살 수 없지만 군대의 피엑스처럼 돈만 주면 알아서 배달까지 해주기에 훨씬 더 편할지도 모르다.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한다. 한 번은 어떤 분의 환갑을 맞아서 술을 제조하는 일을 떠맡기도 했다. 밥풀에다가 곰팡이를 쓸게 해서 그것을 패트병에다 넣어 적당하게 따듯하게 해주면 잘 발효되어 술이 되는데 김을 적당히 빼주어야 나중에 폭탄처럼 발사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또 훈제 닭다리를 이용한 닭볶음탕라든가 중탕으로 끓이는 계란말이까지도 그가 음식 담당일 땐 주변 사람의 인정을 듬뿍 받을 수 있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쓰는 방을 호텔로 변신시키기 위해서 종이로 여러겹 붙여서 가구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여닫이로 된 옷장을 만들었는데, 옷장에 달려있는 서랍 만드는 방법이 가장 압권이었다. 서랍 둘을 자유롭게 꺼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분리해주는 가림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만들어 잘 세우고 그 다음에 단단하게 여러겹 붙이면 된다. 문짝도 잘 달고 나니까 시중에서 파는 옷장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튼튼하고 잘 만들어졌다. 종이도 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종이를 여러 겹 붙이면 나무와 같은 강도르 될 것이라는 생각 하게 시도했던 것이지만 확실하게 성공해냈다. 그 외에 작은 소품들이야 식은 죽 먹기다. 감옥에 있으면서 좋은 것은 공간적 제약이 있다보니까 시간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구할 수 없으면 많은 시간을 이용해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감옥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물론 이런 것은 정치범에나 해당하는 사건들이겠지만 말이다.

 

같은 정치범이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동네는 여러 인종들이 섞여 들어오기 마련이다.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엄격한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유대가 없을 수 없을 게다. 그러나 감옥이란 장소가 같은 특이성 때문에 나와 같지 않은 계급과 학식,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세월 동안 갇혀있었던 감옥이 주는 귀중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좋은 학벌에, 엘리트 코스를 잘 밟아나갔다면 평생 감옥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을 텐데, 학생 운동에 빠지는 바람에 독특한 수확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인생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가장 나쁜 사람에게도 착한 구석이 있고, 가장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구석이 있는 것처럼 인생사에는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다는 진리를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감옥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유머로 어려움을 승화시키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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