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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같이 흉흉한 때에 음모론이나 종말론이 아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2012년의 종말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그런 기회를 포착해 종말에 대한 영화를 속속 내놓기도 하고 마야인들이 말했다는 종말에 대해서도 여러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모 프로그램에서는 마야의 달력과 과거 유명 예언가의 말 혹은 주가를 추정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예를 들어 2012년의 종말론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종말이 일어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해버리거나 현재가 너무 힘들어서 빨리 종말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라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도 종말이라는 화두가 생소한 것만은 아니여서 종말론을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고, 종말이 오면 오는 거지 하는 나태하고도 안일한 생각을 했다. 내심 그것이 2012년 12월 21일이었으면 바라기도 했던 것이 그 당시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현세의 생이 그리 기쁘거나 즐겁지 않다면 자포자기해버리는 그런 막연한 심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순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연유를 말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그것은 넘어가고 이 책, 그 모든 종말론의 시작이 된 마야의 달력을 말하고자 한다.
훌륭한 달력을 만들어낸 마야인들도 그렇겠지만, 세상에서는 잘 하는 분야와 못 하는 분야가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전제로 깔아두고 싶다. 나는 결단코 미국드라마 「넘버스」에 나오는 천재 수학 교수가 되지는 못할 것임을 안다. 몇 세기가 되었든 마야인들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도 역법 전문가들의 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처럼 말이다. 이는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책에 등장하는 마야의 대단한 달력 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 책은 다짜고짜 마야의 달력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력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와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종류부터 시작한다. 달력을 만들고 시간을 장악하는 것은 그 당시, 특히 로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각해왔다는 아주 특별한 관점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만 해도 달력을 다시 바꾸어서 기존의 달력에서 새로운 달력으로 옮기기 위해 10일을 버리고 시작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7월 8일 오늘이 지나면 7월 19일이 오는 식으로 남는 날짜를 빼버려서 달력을 맞췄던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달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국가 권력의 속셈이 무엇인지 대충 알겠다.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달력이란 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왔던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는 이런 상황이 무척이나 놀랍다. 이슬람교도들은 전세계적으로 쓰는 그레고리우스력을 쓰기도 하지만, 특별한 종교적 행사를 위해 종교력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종교력이 없는 나라나 민족들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마야인들도 달력이 종교력 촐킨과 태양력 하아브, 두 가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교류를 하기 때문에 달력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교류가 그리 많이 두드러지지 않았을 것인데도 두 가지 달력을 사용한 것이 어찌보면 의아할 만한 일이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나 그렇게 달력이 두 가지가 되는 이유는 태양을 근간으로 하는 달력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옛날 우리나라도 태양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라 음력, 즉 달을 기준으로 삼아 날짜를 계산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농경 사회에서는 태양보다는 달을 기준으로 삼았다. 임신 주기와 농경 주기는 태양보다는 달과 잘 부합되는 데다가 달은 모양도 변하기 때문에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마야인의 종교력 촐킨에서 독특한 것은 1년이 260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대 달력을 봐도 260일이 1년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마야인들이 생각했던 신성한 숫자 260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유추한 결과로는 임신주기가 유력하기도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는 실정이다. 종교력 촐킨의 날짜는 1에서 13까지의 숫자와 20개로 된 날짜의 명칭을 조합해서 표시하는데, 날짜 명칭은 이믹스, 이크, 아크발, 칸, 치칸, 키미, 마니크, 라마트, 물루크, 오크, 추웬, 에브, 벤, 익스, 멘, 킵, 카반, 에츠납, 카와크, 아하우이다. 그리고 태양력 하아브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날짜가 똑같고 각 달은 20일 주기로 총 18개의 달이 있다. 18개의 달 이름은 포프, 우오, 시프, 소츠, 세크, 슐, 약스킨, 몰, 첸, 약스, 사크, 케흐, 마크, 칸킨, 무완, 팍스, 카얍, 쿰쿠인데, 총 360일에 태양력과 맞추기 위해 5일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한다.
태양력 하아브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은 기원전 100년 전의 것이고, 종교력 촐킨의 흔적은 기원전 600년의 유물에 남아있다. 모든 달력이 있는 나라에서 천체의 주기가 달력과 맞아떨어지지 않아 무척이나 고심했다. 마야인들에게는 분수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산술적으로 주기가 맞는 날을 찾으려면 최소공배수를 알면 되지만 이것이 어려웠기 때문인데, 이것을 해소하려고 발전해왔던 것이 나중에는 수학의 발전과 특정 천제의 순환 주기나 천문 현상의 배경까지도 연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표지에 흐릿하게 드러나 있는 톱니바퀴 같이 생긴 것이 마야인들의 촐킨과 하아브의 조합 방식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야인들이 관측하다가 말았던 13.0.0.0.0일 즉, 2012년 12월 21일에 모든 것이 끝나냐는 것이다. 왜 그것까지밖에 적어놓지 않았는지가 더욱 궁금한데, 마야인들의 종교관으로 봤을 때 이는 종말의 날짜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물론 마야인들의 세계관에서는 신이 인간을 흙으로, 나무로 만들다가 실패해서 나중에 옥수수로 빚어냈다는 창조신화가 있어서 이번의 세상을 멸망시키고 다른 인간들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황당무계한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런 창조 신화가 또다시 다른 인간들을 증명하는 요소는 될 수 없다고 하였다. 특히나 현세적인 마야인들이 종말하는 날짜를 적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숫자를 계산해보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은 더 지나야 하는 날짜가 나온다. 그래서 마야인들의 계산법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단다.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지만. 어쨌든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보려고 했으나 많은 고고학 문서에서 헤매다가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책에서 정말로 아쉬운 것은 사진 한 장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단한 올메크 문화나 테오티우아칸이나 아즈텍 문화 이야기를 설명해줄 땐 생소한 문화 환경이기 때문에 흐릿한 흑백 사진 한 장이라도 등장할 수 알았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하나의 문화를 설명하는 책은 보다 보다 처음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족속들은 아즈텍이나 마야를 빼놓고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한가득인데, 지도를 그려서 위치를 표현해주고 이슬람이나 이집트의 달력도 그림으로 표현해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여하튼 읽기에 너무나 불편한 책이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