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린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조종사라는 것은 그의 다른 소설 『야간비행』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왕자』처럼 아름답거나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다 읽지는 못했고 그저 그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이었고 후에는 비행기를 조종하다 실종되었다는 사실 정도로만 알게 된 것이 고작이었다. 꼭 『어린왕자』의 그것처럼 신비롭게만 느껴지는 결말이다. 실종되었다는 것은 죽었을 수도 있지만 아예 기억이 상실되어 다른 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왠지 『어린왕자』의 작가에 걸맞는 죽음인 듯 싶다. 그런데 앙투안이 『야간비행』이란 소설을 발표하고 세간의 좋은 평가를 얻었던 것과는 달리 동료들에게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가끔 『어린왕자』를 읽을 때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린왕자’의 말이나 행동이 정말 예사롭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를 보니 생텍쥐페리는 너무나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소년이었고 남자였음이 드러난다. 그가 했던 말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했던 말들이 아주 적재적소에 잘 삽입되어 아름다운 문학을 완성해내는데, 특히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가 확실히 와닿는다. 실제로 사하라 사막에서 근무했던 때에 사막여우 한 마리를 길들이려고 했는데 그가 워낙 사나워서 하루 종일 굉음만 지른다고 했던 장면이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구 설렌다.

 

실제로 난 작가라고 하면 그저 집에서 들어앉아 글만 쓸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어릴 적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으나 떨어지고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의 청강생이 되는 비운을 겪으면서 내적으로 더욱 성장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편지 중에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찍 돌아가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랬기에 그에게는 어머니가 전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편지의 전체적인 주제는 “엄마, 왜 편지해주지 않으세요?”이다. 학생일 때는 필요한 것이 많으니까 용돈이나 전신환을 요청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 외에 집안의 지인들과 식사를 했던 이야기, 친구들과의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엄마에게 의존하는 앙투안 본인이다. 엄마의 편지를 볼 수 있었다면 더 자세한 감정의 교류를 알 수 있겠지만, 일방적으로 앙투안의 편지만 보니까 엄마의 사랑을 거의 구걸하다시피 하는 그의 놀라운 표현력만이 인상에 남는다. 평소에 엄마에게 편지를 써 본적도, 써야 할 일도 없지만 - 이래서 문명의 이기는 장단점이 공존하는 듯 싶다 - 그처럼 매달리는 듯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다면 엄마가 많이 기뻐하실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편지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보면 마리 드 생텍쥐페리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대단한 교육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웠다는 말이 있었다. 고정적으로 꼭 해야 했던 것은 음악교육이고 그 외에는 특별한 규칙이나 제재없이 자유롭게 교육을 했다고 했는데, 그런 교육방식이 지금의 위대한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앙투안이 해군사관학교에서 떨어진 이유가 수학은 응시자 중 최고의 성적을 받았으나 문학과목에서 구술시험에 탈락했던 것이라고 하니까 현재 작가로 이름 날리고 있는 것을 시험 감독관이 알면 놀랄 일이겠다. 그러니까 시험에 꼭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의 청강생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트라부르의 제2비행연대에 배속되어 지상근무원으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그 이후에 조종훈련을 받아 나중에 모로코의 라바트에 있는 제37비행연대에 배속되어 학생조종사가 되는 시기를 거쳤으나 두개골이 골절되는 첫 비행기 사고 후 제대하여 공군에 들어가지 않고 대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때는 약혼자 집안의 반대를 수용했던 것인데 평생 그를 비행기에서 떼어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죽을 때도 전쟁 중 조종하다가 실종되었으니... 그가 살아왔던 일생 중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그것과 결혼이었을 것이다. 그의 실종이 첫번 째였고, 미망인이었던 콘수엘로와의 결혼은 두번 째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개인적인 고민과 고독도 남편과 나누고자 하지 않는 그녀의 폐쇄성과 자유분방함이 앙투안을 힘들게 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도 그것으로 고통받았으니 말이다. 어떤 어머니가 제 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며느리를 환영하겠는가. 어쩌면 그런 모습에서 앙투안이 끌렸겠지만.

 

이 편지로 보아 세계적인 작가의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꼭 어머니가 아니여도 그런 존재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 정석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교류해야 그만큼 성장하고 풍부해질 수 있는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