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안녕하세요? - 글래디 골드 시리즈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4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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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라는 책 표지의 선전이 시선을 잡아끄는 책, 추리소설 <오늘도 안녕하세요?> 를 읽었다. 나에게 추리소설은 중학교 때 셜록 홈즈의 <얼룩끈>을 끝으로 인연이 없었던 책인데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보니 정말 새로웠다. 사실 살인이나 범죄가 등장하는 스릴러 쪽은 영화라면 몰라도(그것도 극히 가려서 보긴 하지만^^;) 책이라면 전무하다시피 하는 나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추리소설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오늘도 안녕하세요?> 는 표지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정말 유쾌, 상쾌, 발랄하기까지 한 추리소설이라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처음에는 나이든 할머니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군더더기가 많은 설명이 조금 지루했었는데 리타 라킨이란 작가가 만든 ‘글래디 골드’라는 캐릭터가 역시 주인공답게 예민한 지각력을 발휘해 추리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순간부터 쏘옥 빠져들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라 그런지 피해자는 심장마비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평범하게 죽어서 별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프랜시가 살해당했을 때 등장한 살인범의 눈빛을 보고는 내 방문이 닫혀있는지 뒤돌아볼 정도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수다스럽고 정신없는 일상에 빠져들었는지 추리소설임에도 유쾌한 내용만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내 불찰이었다. 워낙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배경인지라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일어나지만 그 내용에 마음이 가진 않았고 읽는 내내 마음이 갔던 궁금증은 힘 없고 돈 없는 할머니들을 왜 죽였냐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줄거리에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추리하기엔 너무나 쉬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건의 범인과 동기를 밝혀내지 못했다. 범인을 앞에 두고 의심이나 검문도 안하고 넘어가버리는 꼴이었다. 그냥 아파트를 헐고 다른 것을 지으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까지 규모가 큰 사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섬세하고 더 악랄한 음모였을 뿐.

 


어느 날 셀마는 생일을 하루 앞두고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사람들은 그저 나이많은 노인네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주인공 글래디 골드만은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고 친구들과 조사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우리의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프래디가 생일 전날 죽은 후, 글래디는 글래디의 동생 에비와 쌈닭같은 아이다, 건망증이 심하나 논리적인 벨라, 완벽한 치장을 좋아하는 소피와 함께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역시 등장인물이 할머니이다 보니까 정말 결정적인, 짜증나는 실수를 저질러 주셨다. 가장 유력한 사망원인은 독살이기에 글래디는 프래디의 시신을 부검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하러 갔으나 나머지 할머니 탐정들이 다들 잘한답시고 프래디의 시신을 화장시켜놓고 자랑을 하러 왔으니. 글래디가 얼마나 열을 받았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나도 같이 열을 받아 주었으니까. 유쾌하고 간단한 내용이라서 이렇게까지 몰입할지는 나도 몰랐다.

 


여기서 잠깐! 할머니라서 사랑이란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의 주인공도 마찬가지!! 14년 전에 글래디가 남편의 기일에 슬퍼했던 어느 파티장소에서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잭 랭포드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죽은 그는 아내가 있을 때조차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다니 그 이후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흐흐흐.

 


이런 막간의 휴식이 있고 난 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재빠른 진행이 있었다. 휙휙 진행해가는 이야기 속에 글래디는 주도한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어 많이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살인범이라는 작가가 정말 아닐 것 같은 인물이라니. 여기서 글래디의 반짝이는 추리가 빛이 났다. 글래디가 발빠른 행동력으로 모든 증거를 다 확보하고 뛰어난 연기력까지 발휘해서 진짜 살인범을 찾아내는데, 여기서도 추리를 못 따라가서 좀 허덕였다.^^; 아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소설은 금방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워낙 추리소설쪽은 약한데. 다른 논리적인 문제를 푸는 것은 그렇지도 않은데 유독 추리소설은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정말 찾기 힘들다. 글래디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고 하니 앞으로 나올 책은 꼭 범인을 내가 먼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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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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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도 다케루’ 라고 하는 현직 의사이자 소설가인 그가 써서 대박을 터뜨린 소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그 후속작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소문에 많이 둔감한 편이여서 사람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소설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하는데 이렇게 늦게나마 ‘가이도 다케루’ 의 책에 편승하게 되었다. 읽어보니 정말 대박을 터트릴 만한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작가 본인이 의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쪽 분위기나 전문분야를 자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우선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있어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 같다. (가노 다쓰야와 다마무라 마코토 커플과, 시라토리 케이스케와 다구치 고헤이 커플 같은) 어찌 평생을 의학에 매달린 사람이 이렇게나 소설을 맛깔나게 쓸 수 있는 걸까. 신이 사람에게 주신 재능이 공평하다면 나에게도 그런 대단한 능력을 주셨을까나? 한 번 기대해 봐야지.

소설의 주인공은 눈에 암이 생겨 적출해야만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는 병, 망막아종에 걸린 14살 된 미즈토와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는, 소아과를 담당하는 간호사 사요이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어둠이 내재되어 있는데 일단 미즈토는 양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증오를 가지고 있고 사요는 어머니에 대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을 주축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어느날 미즈토의 수술을 허가해주지 않던 그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어찌보면 연쇄살인이라고 크게 벌어질 뻔한 엽기 살인사건을 가노 형사에 의해 바로 모순점이 간파되어 용의자는 미즈토와 사요, 두 사람으로 좁혀진다.

결국 살인사건은 오톱시 이미징(Autopsy Imaging)이란 기술을 통해 마무리되는데 작가가 그 기술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하니 정말 대단히 집요한 사람인 것 같다. 오톱시 이미징이란 사망시에 하는 화상병리진단이란 새로운 해부 기술인데 데이터를 넣으면 미세한 상처까지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쉽사리 용의자 중에서 범인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아직은 널리 쓰여지진 않지만 이 기술이 쓰여진다면 미국드라마 CSI와 같은 놀라운 기술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된다.


의학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또하나의 이야기,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간호사인 사요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아주 잘해서 아버지에게 노래 훈련을 받기까지 했었는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노래를 통해서 어떤 영상을 보여준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것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는 몰라도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놀라운 가창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소설 속 의사들은 우리 뇌가 청각을 시각으로 잘못 인식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는 하는데 글쎄~ 정말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협박하는 무기로 쓰일 수 있겠다는 순수하지 못한 용도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예전에 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한 음악교수가 사람을 보면서도 예전처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고 어떤 사물로 잘못 보는 경우를 보았다. 특히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사연은 정말 어이없다!!! 그것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나마 상대방이 말하고 어떤 행동을 취하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있다는데 정말 이상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상 당해보니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역시 인간은 정말 오묘한 존재인가 보다.

마지막 이야기를 하면, 한 번 저지른 죄악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그 죄에 대해 값을 치르거나 용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는 어디론가 없어져진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가 어느 순간이든 상화에 맞는 순간에 딱 하고 나타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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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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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남자 배우의 이름은 모르지만 청순해보이던 미셸 파이퍼와 악역으로 나오던 한 여자의 삼각구도 이야기. 그 후에도 여러 영화로 소개되었지만 그 때 그 영화만큼 기억이 남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카리스마는 넘치지만 아름답게 나오지 않아서 그 이미지가 책을 볼 때 나를 많이 방해했다. 소설 속의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아름답고 정숙한 이미지를 가져 많은 사람들에게 인품을 인정받는 여성으로 나온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호한 여성은 아니었다. 그녀가 연인 - 정말 사랑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 에게 애교를 부릴 줄도 아는 사랑스런 여성이란 점은 영화만 봤을 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역시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봐야해.


서간체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실제 있었을 것 같은 현장감이 느껴져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배나 늘어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읽고 있는 중간 중간마다 정말 사실 아니야? 하는 상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내가 처음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를 봤을 때처럼. (엄마에게 이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이냐고 계속 물어봤었다~~! ^^;) 소설 속의 상황을 현실처럼 인식하는 나는 이런 사실에 흡사한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ㅋㅋㅋ 그래서 상당한 분량의 소설이지만 처음 한 장을 열었을 때부터 한 번에 빨려 들어갔다.


간략한 내용을 본다면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자길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둔 애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동지인 발몽 자작을 이용해서 그의 약혼녀인 세실 볼랑주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와 성적으로 너무나 자유로운 발몽 자작이 한 눈에 반한 정숙한 투르벨 법원장 부인을 함락시키기 위해 술책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서로 엇갈려서 진행된다. 그 시대의 결혼 풍습은 정략결혼인 경우가 많이 있기에 사교계라는 닫힌 사회에서 서로서로 애인을 만들었지만 사회적인 명예와 위신도 중요시하는 조그만 사회이다 보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기만과 위선이 참 많았다.


정말 그 시대의 상류층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았을까. 같은 시대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나에게는 그들이 상당히 별천지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종일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짓까지 벌이는 것일까. 하지만 한편으론 생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인권이니 자유이니 하는 숭고한 가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기에 얻으려고 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 오직 추구할 수 있는 가치란 바로 쉽게 싫증이 나버리는 쾌락일 뿐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시대, 다른 계층으로 살고 있지만 또한 나도 생계에 대해 걱정을 한다거나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살고 있지 않은데 어찌 그들에게 뭐라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시대에서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같은 계층에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환경에 어느 정도나마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가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런 사람이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제일 흥미로운 사람은 메르테유 후작부인이다. 그녀는 발몽 자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느 정도나마 자기의 생각에 대해서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는데 정작 마지막 도피장면에서의 메르테유 후작부인의 심리상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과연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누구에게 편지를 쓸 수가 없는 상황 - 유일한 동지인 발몽과는 전쟁 중이고 그나마 나중에 결투로 그가 죽으니까 - 이다 보니까 그저 야반도주했다고만 나타나서 이제껏 자신이 벌여왔던 일들을 실제로 뉘우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도 그녀가 너무 악의적으로 보여서 싫어했었는데 소설에서의 모습은 앳띠고 사랑스러운 모습 - 물론 악독한 면도 많지만^^; - 도 있어서 더 관심이 갔던 인물이었다. 어릴 때 나이 많은 남자와 정략결혼을 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일찍 죽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사회적 명예를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이중적인 모습 즉, 겉으로는 덕망있는 부인으로 지내고, 실제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야성적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다.


그녀가 했던 행동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짓거리를 한 발몽 자작의 잘못은 그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덮어지고 - 결투 상대자였던 당스니 본인의 입으로 덮어두자고 했다!! -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메르테유 후작부인만 욕을 먹는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않을까. 성적으로 방종한 것은 다같이 똑같은 잘못인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을 맺다니. 영화에서는 세실이 수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발몽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지 아끼는 로즈몽드 부인의 후견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는데 방종했던 발몽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 같아 이 결말도 무지 마음에 안 든다. 세실은 어린 나이에 방종한 못된 계집이 아니라 발몽의 후계자를 남긴 가문의 은인이 되어버리는 것으로 끝이 나면 그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여도 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걸.


어쨌든 사교계의 환락이란 환락은 다 본 것 같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발몽 자작이 실제 투르벨 법원장 부인에게 사랑을 느꼈든지 안 느꼈든지는 그다지 부각되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보았지만 금방 죽어버려서 잘 알기가 어려웠다. 투르벨 법원장 부인만은 그에게 진정 사랑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만. 그래서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렸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꼈든지간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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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풍경 - 정약용 시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0
정약용 지음, 최지녀 편역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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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라고 하면 내가 알기로 정조 시대에 거중기를 이용해서 수원성을 축조했고 주요 요직에 두루두루 앉아서 정조의 오른팔 노릇을 했지만 정조가 죽자 천주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유배만 다니는 불운한 지식인이라는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그의 시를 찬찬히 보니 정말 감각적인 분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를 어찌 그렇게 재미나게 쓸까. 특히 정조의 은밀한 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여러 고을을 다녔던 경험으로 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들어있는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정말 따뜻한 지식인이란 생각이 든다. 21세기까지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학자임에 틀림없을텐데 그의 겸손한 시를 읽고 있으면 그의 인품도 또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의 여러 학자들의 생애나 저작들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약용의 시 선집을 보는 것이 거의 처음인데 이것을 보니 정말 새록새록 우리나라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관심이 생긴다. 어찌 생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꼭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그에게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마치 내 옆에서 살아 숨쉬고 웃고 우는 사람처럼 그도 하나의 인간임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렸을 때 위인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위인들을 하나같이 천재나 영재쯤으로 묘사해놓은 것이 아닌 그저 나와 같은 범인(凡人)으로 보여지니 정말 친숙할 따름이다.




이 책은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세상을 향한 뜻’ 에서는 세상에 대한 다산의 포부와 실망이 드러나 있고 제2장 ‘오징어와 해오라비’ 에서는 우회적인 어법으로 세태를 풍자하거나 삶의 근본적인 원리를 제시해준 시를 모아져 있고 제3장 ‘백성이 아프니 나도 아프네’ 에서는 애민시나 사회시를 모아두었다. 제4장 ‘하늘 끝에 홀로 앉아’ 에서는 유배지의 풍광과 풍속, 일상을 노래한 시들이 있고 제5장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추네’ 에서는 다산의 서정시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6장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 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그리움이 드러난 시들이 있다. 정말 읽으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나도 감각적인 시는 좋아하지만 거의 일 년에 시 한 편도 보지 못할 때가 많은 게으른 사람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쉽고 다산의 인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이기 때문에.




다음은 제2장 ‘오징어와 해오라비’ 편에 수록되어 있는 <오징어와 해오라비>이다. 이 책 뒷표지에 수록되어 있는 시라 정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재미있다. 그 시의 내용이 고고한 다산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서 정말 내 마음에 쏙 든다.




<오징어와 해오라비>




오징어가 물가를 가다가

문득 해오라비를 보았는데

하얀 눈처럼 눈부시고

잔잔한 물처럼 빛나기에

머리를 들고 해오라비에게 말하기를

“네 생각을 난 모르겠구나

실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면서

어째서 고상한 척하는 거지?

내 배엔 늘 먹물 한 주머니가 있어

한 번 내뿜으면 주위가 온통 까매지지.

물고기는 앞이 어두워 지척을 못 보고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동서남북을 분간 못해

입 벌리고 삼키는 줄도 모르니

나는 늘 배부르고 물고기는 늘 속게 되지.

네 깃털은 너무 하얗고 눈에 띄는구나

흰 저고리 흰 치마니 누가 의심을 않겠니?

가는 데마다 멋진 모습 먼저 물에 비쳐

물고기가 멀찍이 보고 살짝 도망가면

종일 서 있어도 바랄 게 없지.

다리만 시큰거리고 배는 항상 주릴 테니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려 입어

적당히 자기를 감춰 편의를 추구하면

물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서

아내도 새끼도 먹일 수 있을 거야.”

그러자 해오라비가 오징어더러 말하기를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하늘이 나에게 깨끗함을 주었고

내가 나를 봐도 깨끗하기만 한데

어찌 이 작은 밥통이나 채우자고

이 모습을 그렇게 바꾸겠니?

물고기가 오면 먹고 가면 내버려 두고

똑바로 서서 하늘 뜻대로 살 뿐이지.”

오징어가 먹물 뿜고 화내며 하는 말이

“바보 해오라비야 굶어 죽고 말어라.”




여기서 말하는 ‘해오라비’는 다산으로 보인다. 단순히 ‘해오라비’의 이상주의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오징어’의 대꾸가 다산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쓰럽다. 다산이 귀양을 가기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때가 상당히 많았을 텐데 그의 그런 어려운 생활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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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남자
에바 푈러 지음, 서유리 옮김 / 새론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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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유쾌한 소설을 만났다. 칙릿소설이 이렇게나 재미있다니..흠흠..이제까지의 내 관점을 바꿔야겠는 걸. 레스토랑의 주인(이제 막 개장하려는)과 고객의 입장으로 만났던 파비오와 이자벨이(딱 한 번 만났다!!) 기억상실증과 그 모든 상황 때문에 약혼자인 척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이 줄거리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너무나 단순하게 돌아가지만 내용은 너무나 재미있다는 말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자벨이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서 엉망진창인 파비오의 레스토랑에 피로연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러 온 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넘어져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거만하고 성격이 좋지 않은(엉망인 레스토랑을 나쁘게 평했단 이유로) 이자벨이지만 계속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게 되었던 피비오는 질투심이 많아 곧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사촌 지울리오 때문에 그녀를 약혼자라고 이자벨을 소개해버린 것이다.

 


요정같아 보이는 그녀는 파비오가 약혼자라고 소개한 것을 철썩같이 믿고서는 그가 어색하게 행동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둘이 깨질 뻔 했던 사이라는 파비오의 누나 나타샤의 말을 듣고 파비오가 자신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을 그냥 넘어간다. 스스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점차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알아가던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파비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에 대해 절망하고, 약혼자라는 피비오도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른다는 것에 절망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나타샤의 장난스런 한 마디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버렸다.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가족은 몇 인지, 둘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서로 전혀 모르는 이유는 둘이 서로 눈만 마주치면 침대로 가려고 안달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파비오와 이자벨은 딱 한 번 만난 사이이다. 그런데 나타샤의 이 말이 이자벨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자신만 보면 딱딱하게 구는 파비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것!! 파비오는 결혼 안한 총각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이자벨의 경우에는 파비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 걸까. 아무리 기억을 잊어버려도? 칙릿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해서 심각하게 넘어가야 할 부분에서도 유쾌한 웃음을 던져주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필이 꽂힌 상태였단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인지. 아마 막연히 매력을 느끼고 있는 상태(파비오 입장에선 그녀를 속였다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샤의 한 마디가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마음놓고 터뜨릴 수 있게 한 건 아닐까.

 


그래서 파비오가 자신을 모른 척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자벨은 늦은 밤 방황을 한다. 바에 가서 실컷 술도 마시고 (돈은 없었지만 나중에 자신의 매니저가 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사주었다.) 자신이 피아노를 끝내주게 잘 친다는 사실도 알아내어 흥겹게 돌아온 순간, 그런 그녀를 내버려둘 수없는 파비오가 마중하고 그 뒤는 불꽃이 팍팍팍!!! 이자벨의 모든 불행도 파비오의 힘겨운 죄책감도 이 모든 사랑의 유희에 묻혀버리고 행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자벨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천부적인 솜씨를 지닌 인테리어 감각을 이용해 평범한 레스토랑을 고품격의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해놓았다.

 


그러나 항상 행복할 순 없는 법!!! 이제 파비오에겐 이자벨에게 고백하는 시간만이 남아있었는데 고백하면 그녀를 잃어버릴거란 생각에 주저하다가 큰 일을 낸다. 본인의 입으로 듣는 사실과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듣는 진실이란 정말 다른 법이지 않는가! 특히 파비오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옛애인의 말이라면 얼마나 곡해하고도 남았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그 후에 파비오는 이자벨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주고(이제서야 그녀의 집을 알게 되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 순간 이자벨은 자신이 어떤 기억을 봉쇄하고 싶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기 집에 왔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기억이 살아난다니 그것도 좀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니까 봐줘야지. 자신을 속여서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사실보다는 배신당했다는, 그러니까 파비오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게 더 충격을 받았던 이자벨은 분노를 청소로 표현해냈다. 우리 어머님들도 화가 나면 설거지 소리가 엄청 크게 나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방법도 효과는 있다. 돈도 많고 우아하게 살았던 그녀이기에 집안 곳곳을 한 번도 제 손으로 청소해 본적은 없었는데 나타샤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깨끗이 집을 청소하고는 (분노의 힘에 의해)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것을 발견한다. 실연의 아픔도 조금 잦아들었겠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연인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까.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라면 자존심을 더 내세우지 않을까. 내 모습이 상대에게 얼마나 바보스럽게 보였을지 한탄하고 자책하면서. 나 같은 소심쟁이는 아마도 그럴 확률이 크다. 그래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먼저 다가가는 쪽은 내가 될 수 없을텐데. 주인공 이자벨은 아니었나 보다. 청소까지 다 하고 나서 너무도 할 일 없어진(파비오의 레스토랑에서는 할 일이 끊임없이 나왔었는데) 그녀는 나타샤의 방문을 받는다. 파비오의 누나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자벨에게도 애착을 느낀 듯한 그녀는 이자벨이 자존심만 내세우느라 미처 보지 못한 면을 꼬집어주곤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기로 한다.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 아닌가. ㅋㅋ 그러나 판에 박힌 별다를 것 없는 이 결말이 얼마나 좋은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결코 남자에게 국한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으음.. 그럼 난 미남은 못 얻으려나. 용기를 갈고 닦아야겠어.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인 ‘월요일의 남자’는 독일어에서 ‘별 볼일 없는 남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나타샤가 하는 말이 결혼해선 안될 남자의 1순위가 바로 ‘별 볼일 없는 남자’라니 아무래도 파비오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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