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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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남자 배우의 이름은 모르지만 청순해보이던 미셸 파이퍼와 악역으로 나오던 한 여자의 삼각구도 이야기. 그 후에도 여러 영화로 소개되었지만 그 때 그 영화만큼 기억이 남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는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카리스마는 넘치지만 아름답게 나오지 않아서 그 이미지가 책을 볼 때 나를 많이 방해했다. 소설 속의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아름답고 정숙한 이미지를 가져 많은 사람들에게 인품을 인정받는 여성으로 나온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호한 여성은 아니었다. 그녀가 연인 - 정말 사랑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 에게 애교를 부릴 줄도 아는 사랑스런 여성이란 점은 영화만 봤을 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역시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봐야해.


서간체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실제 있었을 것 같은 현장감이 느껴져서 상상하는 즐거움이 배나 늘어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읽고 있는 중간 중간마다 정말 사실 아니야? 하는 상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내가 처음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를 봤을 때처럼. (엄마에게 이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이냐고 계속 물어봤었다~~! ^^;) 소설 속의 상황을 현실처럼 인식하는 나는 이런 사실에 흡사한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ㅋㅋㅋ 그래서 상당한 분량의 소설이지만 처음 한 장을 열었을 때부터 한 번에 빨려 들어갔다.


간략한 내용을 본다면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자길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앞둔 애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동지인 발몽 자작을 이용해서 그의 약혼녀인 세실 볼랑주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와 성적으로 너무나 자유로운 발몽 자작이 한 눈에 반한 정숙한 투르벨 법원장 부인을 함락시키기 위해 술책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서로 엇갈려서 진행된다. 그 시대의 결혼 풍습은 정략결혼인 경우가 많이 있기에 사교계라는 닫힌 사회에서 서로서로 애인을 만들었지만 사회적인 명예와 위신도 중요시하는 조그만 사회이다 보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기만과 위선이 참 많았다.


정말 그 시대의 상류층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살았을까. 같은 시대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나에게는 그들이 상당히 별천지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하루종일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짓까지 벌이는 것일까. 하지만 한편으론 생계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인권이니 자유이니 하는 숭고한 가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기에 얻으려고 투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 오직 추구할 수 있는 가치란 바로 쉽게 싫증이 나버리는 쾌락일 뿐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시대, 다른 계층으로 살고 있지만 또한 나도 생계에 대해 걱정을 한다거나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살고 있지 않은데 어찌 그들에게 뭐라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시대에서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같은 계층에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환경에 어느 정도나마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가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런 사람이 되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제일 흥미로운 사람은 메르테유 후작부인이다. 그녀는 발몽 자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느 정도나마 자기의 생각에 대해서나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알려주는데 정작 마지막 도피장면에서의 메르테유 후작부인의 심리상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과연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너무 궁금하다. 누구에게 편지를 쓸 수가 없는 상황 - 유일한 동지인 발몽과는 전쟁 중이고 그나마 나중에 결투로 그가 죽으니까 - 이다 보니까 그저 야반도주했다고만 나타나서 이제껏 자신이 벌여왔던 일들을 실제로 뉘우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영화에서도 그녀가 너무 악의적으로 보여서 싫어했었는데 소설에서의 모습은 앳띠고 사랑스러운 모습 - 물론 악독한 면도 많지만^^; - 도 있어서 더 관심이 갔던 인물이었다. 어릴 때 나이 많은 남자와 정략결혼을 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일찍 죽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사회적 명예를 더럽혀지지 않으려고 이중적인 모습 즉, 겉으로는 덕망있는 부인으로 지내고, 실제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야 직성이 풀리는 야성적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다.


그녀가 했던 행동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짓거리를 한 발몽 자작의 잘못은 그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덮어지고 - 결투 상대자였던 당스니 본인의 입으로 덮어두자고 했다!! -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메르테유 후작부인만 욕을 먹는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않을까. 성적으로 방종한 것은 다같이 똑같은 잘못인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을 맺다니. 영화에서는 세실이 수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발몽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지 아끼는 로즈몽드 부인의 후견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는데 방종했던 발몽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 같아 이 결말도 무지 마음에 안 든다. 세실은 어린 나이에 방종한 못된 계집이 아니라 발몽의 후계자를 남긴 가문의 은인이 되어버리는 것으로 끝이 나면 그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여도 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걸.


어쨌든 사교계의 환락이란 환락은 다 본 것 같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발몽 자작이 실제 투르벨 법원장 부인에게 사랑을 느꼈든지 안 느꼈든지는 그다지 부각되어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보았지만 금방 죽어버려서 잘 알기가 어려웠다. 투르벨 법원장 부인만은 그에게 진정 사랑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만. 그래서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렸다.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꼈든지간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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