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남자
에바 푈러 지음, 서유리 옮김 / 새론북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유쾌한 소설을 만났다. 칙릿소설이 이렇게나 재미있다니..흠흠..이제까지의 내 관점을 바꿔야겠는 걸. 레스토랑의 주인(이제 막 개장하려는)과 고객의 입장으로 만났던 파비오와 이자벨이(딱 한 번 만났다!!) 기억상실증과 그 모든 상황 때문에 약혼자인 척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이 줄거리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너무나 단순하게 돌아가지만 내용은 너무나 재미있다는 말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자벨이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서 엉망진창인 파비오의 레스토랑에 피로연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러 온 날,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녀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넘어져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거만하고 성격이 좋지 않은(엉망인 레스토랑을 나쁘게 평했단 이유로) 이자벨이지만 계속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게 되었던 피비오는 질투심이 많아 곧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사촌 지울리오 때문에 그녀를 약혼자라고 이자벨을 소개해버린 것이다.

 


요정같아 보이는 그녀는 파비오가 약혼자라고 소개한 것을 철썩같이 믿고서는 그가 어색하게 행동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둘이 깨질 뻔 했던 사이라는 파비오의 누나 나타샤의 말을 듣고 파비오가 자신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을 그냥 넘어간다. 스스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점차적으로 자신의 기호를 알아가던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파비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에 대해 절망하고, 약혼자라는 피비오도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른다는 것에 절망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나타샤의 장난스런 한 마디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버렸다.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가족은 몇 인지, 둘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에 대해서 서로 전혀 모르는 이유는 둘이 서로 눈만 마주치면 침대로 가려고 안달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파비오와 이자벨은 딱 한 번 만난 사이이다. 그런데 나타샤의 이 말이 이자벨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자신만 보면 딱딱하게 구는 파비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것!! 파비오는 결혼 안한 총각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이자벨의 경우에는 파비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 걸까. 아무리 기억을 잊어버려도? 칙릿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해서 심각하게 넘어가야 할 부분에서도 유쾌한 웃음을 던져주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필이 꽂힌 상태였단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인지. 아마 막연히 매력을 느끼고 있는 상태(파비오 입장에선 그녀를 속였다는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샤의 한 마디가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마음놓고 터뜨릴 수 있게 한 건 아닐까.

 


그래서 파비오가 자신을 모른 척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이자벨은 늦은 밤 방황을 한다. 바에 가서 실컷 술도 마시고 (돈은 없었지만 나중에 자신의 매니저가 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사주었다.) 자신이 피아노를 끝내주게 잘 친다는 사실도 알아내어 흥겹게 돌아온 순간, 그런 그녀를 내버려둘 수없는 파비오가 마중하고 그 뒤는 불꽃이 팍팍팍!!! 이자벨의 모든 불행도 파비오의 힘겨운 죄책감도 이 모든 사랑의 유희에 묻혀버리고 행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자벨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천부적인 솜씨를 지닌 인테리어 감각을 이용해 평범한 레스토랑을 고품격의 우아한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해놓았다.

 


그러나 항상 행복할 순 없는 법!!! 이제 파비오에겐 이자벨에게 고백하는 시간만이 남아있었는데 고백하면 그녀를 잃어버릴거란 생각에 주저하다가 큰 일을 낸다. 본인의 입으로 듣는 사실과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듣는 진실이란 정말 다른 법이지 않는가! 특히 파비오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옛애인의 말이라면 얼마나 곡해하고도 남았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그 후에 파비오는 이자벨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주고(이제서야 그녀의 집을 알게 되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 순간 이자벨은 자신이 어떤 기억을 봉쇄하고 싶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기 집에 왔을 때 거짓말처럼 모든 기억이 살아난다니 그것도 좀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니까 봐줘야지. 자신을 속여서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사실보다는 배신당했다는, 그러니까 파비오가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게 더 충격을 받았던 이자벨은 분노를 청소로 표현해냈다. 우리 어머님들도 화가 나면 설거지 소리가 엄청 크게 나지 않던가. 하지만 그런 방법도 효과는 있다. 돈도 많고 우아하게 살았던 그녀이기에 집안 곳곳을 한 번도 제 손으로 청소해 본적은 없었는데 나타샤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깨끗이 집을 청소하고는 (분노의 힘에 의해)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은 것을 발견한다. 실연의 아픔도 조금 잦아들었겠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연인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까.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라면 자존심을 더 내세우지 않을까. 내 모습이 상대에게 얼마나 바보스럽게 보였을지 한탄하고 자책하면서. 나 같은 소심쟁이는 아마도 그럴 확률이 크다. 그래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먼저 다가가는 쪽은 내가 될 수 없을텐데. 주인공 이자벨은 아니었나 보다. 청소까지 다 하고 나서 너무도 할 일 없어진(파비오의 레스토랑에서는 할 일이 끊임없이 나왔었는데) 그녀는 나타샤의 방문을 받는다. 파비오의 누나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자벨에게도 애착을 느낀 듯한 그녀는 이자벨이 자존심만 내세우느라 미처 보지 못한 면을 꼬집어주곤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기로 한다.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충분히 예상가능한 것 아닌가. ㅋㅋ 그러나 판에 박힌 별다를 것 없는 이 결말이 얼마나 좋은지. 한 가지 분명한 건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결코 남자에게 국한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으음.. 그럼 난 미남은 못 얻으려나. 용기를 갈고 닦아야겠어.

 


참고로 이 책의 제목인 ‘월요일의 남자’는 독일어에서 ‘별 볼일 없는 남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나타샤가 하는 말이 결혼해선 안될 남자의 1순위가 바로 ‘별 볼일 없는 남자’라니 아무래도 파비오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