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다 하신다 -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완벽한 인도하심과 끝없는 사랑
송태근 지음 / 성서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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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송태근 목사님은 CBS <성서학당>의 인기 강사로 유명하신 분이시지만 나는 우리 청년국 목사님께서 모시고 있는 분이셔서 올해에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이 분을 소개한 책 앞날개 부분을 보면, 신학생들이 열광하는 설교자 중 한 사람이며 말씀에 대한 깊은 헌신이 있는 목회자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잘 풀어해주셔서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서보다 좀 더 풍성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성경을 읽어도 어떤 부분은 어떤 인물의 행동들이 옳은지 아닌지 딱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내가 볼 때마다 잘못 이해했던 부분이 있었다. 여호수아서 1장 14~5절의 근거가 되는 민수기서 32장 1~5절을 보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많은 가축 떼를 가져서 요단 강 서쪽으로 건너가기를 원하지 않고 동쪽에 머무르길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단을 건너지 않게 요청하는 것이 다른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하게 하는 방법인지 생각조차 못하긴 했지만 모세는 그런 식으로 대응하지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몇 번이나 제 처자들과 가축들만 요단 동쪽에 머물게 하고 같이 요단을 건너 들어가 명령하시는 곳까지 들어가 명령하시는 것을 다 행한다는 다짐을 해서 겨우 허락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서 송 목사님은 혹자들이 리더를 따르는 순종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기특하다 생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혹자들이 바로 나였다. 실제로 여호수아서 13장 13절을 보면 르우벤 자손와 갓 자손들이 그들의 다짐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 장면에는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을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않았단다. 못했던 것이 아니라(실제로 못할 수도 없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하겠다고만 순종했으면 하나님께서 다 하셨을 것이니.) 안하려고 작정했던 것이란 말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경계선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고 경종을 울려주셨다.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에 관심이 없어지는 그리스도인들, 약속의 땅을 점점 상실하는 그리스도인들, 이 땅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에 눈이 먼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는 기질이 다혈질이고 뼛속까지 군사 집안이라 전쟁만 났다 하면 제일 앞서서 싸웠고 또한 이겼던 터라 이기는 대로 받는 노획물이 제일 많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고 또 요단 동쪽이 목축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라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권을 따라 행했던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해주신 것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서쪽만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 좁아서 그렇게 요단 동쪽으로 확장하게 했다고 내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사실 요단강을 건넌다는 의미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르우벤 자손, 갓 자손, 므낫세 자손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야 할 지역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껏 광야의 삶의 방법을 수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요단을 과감하게 건너야 했던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요단에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삶의 방법들, 옛 습관, 옛 관습, 옛 고정관념, 불순종 등을 수장하되 매일 매일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었다. 가나안의 새 날, 새 시간을 열기 위해 미리 그런 구습들을 제거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간혹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선 이 땅에서의 잘되는 것이 꼭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과거 내가 그랬고, 신앙을 가지려는 이유가 그러한 것을 가끔 본다. 분명 성경에서도 무엇을 하면 이 땅에서 형통할 것이라고 하긴 했다. 그러나 그런 형통이 실제로 잘 먹고 잘 사는 형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받았지만 그곳은 천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전쟁을 해야 하는 우리 각자가 위치한 그곳이 바로 가나안인 것이다.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계속되는 바로 그곳.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장해가고 좀 더 성화되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물론 모든 성경이 다 그렇지만, 그 어떤 인간도 대단해서 하나님께 구원받거나 은혜를 얻었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죄인임을, 그것도 패역한 죄인임을 언제나 끊임없이 알고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인간에게 있는 가장 큰 복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 기쁨을 누리는 것일 것이다. 성경을 보면서도 알지 못해서 대충 알고 있던 것을 샅샅이 알게 해준다. 요단강이 말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것을 두고 요단 서쪽의 여러 족속들은 마음이 혼미해지고 녹아버릴 정도로 큰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참에 한꺼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시고 그 다음에 여리고성을 아주 희한한 방법으로 무너뜨리신다. 할례를 해버리면 적어도 1주일 정도는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라, 전쟁 시에는 절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많이 풀려서 참 재미있다. 그리고 분명히 보여준다. 인간은 패역하고 하나님만 절대 진리이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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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오디션 30초의 승부
조영수.김성한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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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오디션 열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 쇼, 댄스, 밴드, 피겨 스케이팅까지 여러 분야에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좁았던 가수의 관문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실력은 있는데 외모가 되지 않는다거나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가창력이 무엇인지조차 혹은 실력이 있다고 할 때의 ‘실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대중가수가 되기 위한 실력이라 함은 단연 고음만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말고 그냥 가창력과 음정과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고 거기에다가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또한 그 외에도 상황에 대한 판단력, 적응력, 자기 관리, 압박을 이겨내고 긴장을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나 대범함, 실수를 해도 당황하지 않는 능력까지 전천후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대중가수를 찾기 위함이다. 안 그러겠는가. 마음이 편하고 감정이 물 올랐을 때 나오는 실력만 가지고 가수로 뽑아주길 기대하는 것은 대중가요계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에는 복잡다단한 능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션에서는 처음 30초가 중요하다고 한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단 한 사람을 고르는 무대인데, 첫 인상에서 지고 들어가면 승산이 있을까. 절대 없다. 그렇기에 실력이 탄탄히 받쳐주는 지원자라면 그 실력을 잘 포장해서 처음부터 드러낼 수 있어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소위 말하는 실력은 있으나 운이 없었던 오디션 탈락자들과 오디션 지망생들을 위한 책이다.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배우지 못해서 실력을 단순히 고음만 내지르는 가창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그런 부분부터 하나씩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대중 가요를 많이 히트시킨 조영수 작곡가와 김성한 기자가 만나 만든 책이니만큼 그 완성도는 보장할 수 있다. 음악이나 노래에 그다지 애착도 없고 재능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계로 데려다 줄 책이니 호기심에라도 보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오디션을 볼 때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기준을 파악하거나 지원자들을 나름 평가해볼 수 있는 잣대도 생길 것이다. 전에 심사위원의 성적은 좋았으나 시청자 투표가 낮았던 한 지원자가 떨어지고서 말이 많았다고 하는데, 앞으로 팬이 되어줄 시청자에게 호감을 사지 못했던 것도 그의 능력의 한계라고 할 수 있으니 떨어뜨리는 것이 맞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대중가수를 뽑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션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어떤 이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만큼 상황이 급변하게 돌아간다. 지역 예선에서 0.07%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지망생들을 2박 3일 합숙하면서 여러 미션을 가지고 최종평가를 할 때는 2시간 잔 것이 가장 많이 잔 것일 정도로 그 과제량과 압박감이 엄청나다. 그 때 정신을 바르게 차리면서 여유를 잃지 말고 떨어져도 다음을 대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이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때부터는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이미 실력은 검증받고 올라왔기에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과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얼마나 적응이 잘 되고, 얼마나 화합이 잘 되는지를 평가하는 자리인 것이다. 실시간 카메라가 돌아가기에 인성을 평가하는 것도 무시 못한다. 그 때 좋은 인상으로 호감을 샀던 허각이 최종 우승자가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든 경기를 하든 최대의 긴장을 얼마나 잘 견디고 무대에 설 수 있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이 운동 선수이든 가수이든 배우이든 화면에 비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긴장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하지 않는다면 오디션은 안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얼마든지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무대울렁증이 있고 소심쟁이였던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희생할 부분이나 고쳐야 할 부분을 말끔히 준비하고 가는 것이 좋다.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좋은 점수를 줬던 것은 시선 처리 부분이었다. 잡아먹을 듯이 심사위원을 바라보는 연습이 되지 않아 눈을 회피하거나 먼산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면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혹은 자신 없어 보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뽑아줄 수가 없다. 많은 긴장감을 이겨내야 할 사람인데 심사위원의 눈조차 못 마주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줄 수가 있을까. 만약 오디션을 준비한다면 기본기를 탄탄히 쌓아놓는 것은 당연하고 틈나는대로 몸도 만들어놓아 오디션의 극한 긴장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기르고 악기 하나는 자유자재로 다루어서 자신의 음역대에 맞는 노래로 해석해서 부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다 잘되었다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녹음해서 듣기도 하고 거울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파악도 하고 시선을 절대 피하지 않는 연습까지 한다면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황하지 말고 간절함으로 무장하고 가는 것은 당연하다. 마지막 기회라고 덤벼드는 것도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태도임을 잊지 말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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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사진첩을 열다
맥스 루케이도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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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만큼 예수님의 일생을 재미나게 조명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이 책이 나온 것을 봤을 때, 그리고 그 저자가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분명히 예수님의 일생, 곧 공생애 시기를 생생하고 실감나게 전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다운 이야기꾼은 다시 없기에, 복음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쉽고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이는 없을 것이기에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루케이도 목사님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 그다지 확고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어 아쉬웠다. 특히나 각각의 에피소드가 너무 짧은 분량으로 등장해서 각 에피소드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나 감동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여운의 깊이를 더 주시려고 그렇게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많은 이적과 설교 사건들을 다 따라가려니 마음만 바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실은 없고 껍데기만 안고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각 에피소드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내가 파악한 것과 목사님의 이야기와 달라서 당황했던 경우도 있다. 물론 목사님께서 전달해주고 싶어했던 다양한 주제들이 있었기에 그런 식으로 편집하셨겠지만 각 에피소드의 분량이 너무 짧아서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뭔가 더 이야기해주면 그곳에 도달할 것 같은데 왠지 산중턱에 주저앉아버린 느낌으로 읽었던 듯 하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까 처음 받았던 느낌과는 다르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이 된다. 아마도 이 책은 각 에피소드의 분량이 짧은 대신 힘있고 강한 영향을 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에 나만 적응이 되지 않아서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 읽으니까 그제서야 드는 생각이다. 탄생이 예고되는 순간부터 바울을 부르신 사건까지 총 42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그 뒤에 에필로그 격으로 천국에 대한 것과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것에 대한 내용이 덧붙여졌다. 성경을 한 번쯤 읽었거나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를 빠짐없이 나와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 책을 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저 하나님의 아들인 분이라고만 알고 있어도 책이 어렵지 않아서 충분히 읽고 주제를 얻어낼 수 있다. 요즘에 느끼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거나 그곳까지 도달해보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복음을 들어 믿고는 있어도 아직은 확실하게 와닿는 것이 없는 그런 상태라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도록 여운을 두었기에 충분히 오랜 시간 묵상을 한다면 어렵기만 하진 않다. 가치창조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대부분 어려운 책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께 내가 기대를 했던 것은 그의 다른 저작 『세상이 외면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너를 사용하신다』에서 베드로를 깨우는 천사처럼 재미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성이었다. 천사가 궁시렁대며 베드로를 깨우기 위해선 나팔을 가져와야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성경 속 사람들이 멀고 먼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나와 같은 죄인들이라는 것을 더 확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쾌함과 분명함을 보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은 없었다. 이번에는 약간 예수님의 속 마음이 드러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한 신이시자 인간이신 그분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상상을 발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아니였을까 싶다. 혈기 왕성하고 열정적인 선지자 이사야나 눈물이 많은 예레미야 선지자, 마음이 온유한 선지자 모세, 복음이 ‘너나 잘 하세요!’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하박국 선지자 등 구약의 인물이나 신약의 열두 제자들로 그런 식의 의외성을 찾아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기에 다음 저작이 기다려질 따름이다. 짧막한 글귀에 깊은 여운을 숨겨둔 책을 찾고자 한다면, 순서대로 찬찬히 살펴보지 않고 보고 싶은 부분부터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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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외면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너를 사용하신다
맥스 루케이도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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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너무나 유쾌하다. 단지 내용이 유쾌해서 유쾌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렵게 생각하는 베드로와 여러 성경 속의 장면들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면들로 다시 꾸며져서 내 앞에 놓여졌기 때문에 유쾌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헤롯이 야고보 사도는 죽이고 베드로 사도를 옥이 가두어둔 그 상황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다. 장면 15번 [기도부터, 그리고 기도에 힘입어]란 부분인데 베드로가 죽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 교회 역사상 가장 위기인 순간을 루케이도 목사님은 아주 재미있게 설명해주셨다. 무지렁이 어부였던 베드로의 이전까지의 행적과 그 당시의 행적을 비교하여 베드로가 얼마나 담대해진 사도로 거듭났는지를 아주 절묘하고 기치 넘치게 풀어냈다. 예수님께서 풍랑이 부는 바다 위 배에서 잠을 곤히 주무셨던 장면이 기억나는가. 어떻게 우리가 다 죽게 된 상황에서 주무실 수가 있느냐고 예수님께 투덜거리던 바로 그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하룻밤만 지나면 죽게 될 그 감옥에서 코를 골며(물론 성경에는 안 나와있지만) 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성숙된 증거가 아닐까.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걱정 근심 없이 평안을 누리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야할 바가 아닌가. 그 때 바로 천사가 베드로를 깨운다. 그 장면을 성경책으로 보면서 천사가 베드로를 깨우느라 고충이 심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고(행 12:7) 또 어린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일일히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라고(행 12:8) 했던 것을 볼 때 그는 아직 잠이 덜 깨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했던 것(행 12:9)이 확실하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감옥에서 빠져나와서야 겨우 천사를 보내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니까 진짜로 그는 아무런 걱정 없이 감옥에서 잤던 것이다. 쿨쿨~ 그때 루케이도 목사님은 돌아서 가는 천사가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갔다는 말로 재미를 한층 더하셨다. 다음 번에는 나팔 가져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그 심각한 상황이 이렇게 재미있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성경을 어렵게만 느끼고 봤기 때문인지 그렇게 우리와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그들을 보지 못했다. 작년에 가르침을 주신 전도사님께서도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언뜻 기억난다.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셨던 것을 볼 때,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 이곳에 있고 싶다고 한 말을 가리켜 마가는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던 것을 가리켜 그렇게 말씀하셨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베드로, 쟨 알지도 못하고 헛소리를 해~”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각 성경의 저자가 개인적인 언급을 중간 중간에 한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해서 이런 풀이가 참 신기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해서 즐거웠다. 정말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천재적인 성경 스토리 텔러이다. 이 책을 보면 성경에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 모든 진리들이 쉽게 다가온다. 성경을 읽었으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분들에게 사도행전만큼은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겠다. 게다가 이 책은 단지 읽고만 넘기는 책으로 쓰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촉구를 하신다. 행동을 요구하는 촉구. 앞서 말했던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한 이야기는 기도 편이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 베드로 사도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서는 우리와 같이 기도하면서도 믿음이 약한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작은 계집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가 살아돌아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만큼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뒤숭숭한 분위기였는지,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베드로를 살려달라 기도하면서도 그가 돌아온 것을 그의 영혼이라 여겼던 예루살렘 교인들처럼 우리의 본성으로는 희망을 바라보기보단 절망을 먼저 예측하는 것이 훨씬 쉽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경에는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더불어 교회는 예배드리는 집도 아니고, 교제하는 집도 아니고, 성경 풀이하는 집도 아니고 오로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부르셨던 예수님처럼 기도로 힘입어 살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기도로 교회를 가득 채울 것을 다짐하게 한다.

 

또한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도 항상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보기에 개망나니일지라도 그에 대한 관심을 항상 잃지 않으셨다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 때문에 그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쉽게 선고를 내리곤 한다. 무직자이기 때문에, 노숙자이기 때문에, 알콜 중독자이기 때문에, 폭력 전과가 있기 때문에 등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고 싶어하시는 모습은 긍휼이기에 그가 설사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형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을지라도 우리는 긍휼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이 이것이 아닐까. 좋은 일인 줄은 당연히 알지만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거나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것. 신앙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대인 관계로 드러나는 것임을 느낀다. 내 삶에 드러나는 모습이 내 믿음을 드러내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 부분은 나를 쳐서 복종시켜 움직여야 할 부분일 것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미국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일화들이라 딱 마음에 와닿지는 않지만 노숙자에게라도 존중하면서 눈을 바라봐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미안해서 회피하게 되기 때문인데 인간적인 관심부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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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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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글씨로 촘촘하게 풀어써내려간 이 책은 이제껏 우리가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정당한 근거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모으지 못해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시가 환경파괴의 주범이고 성범죄 및 다양한 범죄의 온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의 선입관을 무너뜨리고 저자는 오히려 도시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설파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도시는 인적 자본, 즉 인재를 끌어모은다는 주장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러 지식인들이 모여 살면서 등장한 온갖 아이디어가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르네상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우리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아이디어가 폭발하는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의 방갈로르의 경우에도 사회적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는 않은 도시이지만 인적 자본을 잘 활용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인도는 열악한 도로와 취약한 전력망 때문에 실제로 서양 사회에서 이뤄진 것처럼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IT산업으로 도약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금은 IT산업으로 많은 발전을 낳고 있다. 방갈로르의 인터넷 기업가 루반 푸칸은 다양한 IT 산업을 경험하면서 나중에는 인도에서 제 회사를 차렸는데 그때 굶주린 소작농이든 최고 계급인 브라만이든 어떤 계급에게든 열린 태도로 다가갔더니 폭발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곳 방갈로르는 국제적 교류가 일어날 수 있었던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자연적으로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전문가를 육성할 기회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고용주 입장에서는 가격이 낮은 근로자들이 많은 것에 매력이 느껴 인도로 찾아오고, 그 덕분에 근로자들은 좋은 조건을 가진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에 방갈로르가 그만큼 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도시가 크면 클수록 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직장을 찾아나설 수 있기에 그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다. 물론 방갈로르가 뭄바이보다 건조하고 델리보다 덜 후덥지근한 온난한 기후라는 것도 좋은 요건이겠지만 그보다는 인적 자본들이 모여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중에는 많이 배우면 많은 연봉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다. 실제로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성인 인구가 10퍼센트 늘어나면 도시 1인당 총생산은 22퍼센트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그 말은 옳다. 게다가 숙련된 사람들과 같이 일했을 때 사람들이 훨씬 더 생산적으로 변한다는 연구 결과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 인적 자본임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이 쉽게 하는 실수는 제조업이나 인프라가 확장되면 도시가 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몰락해가는 디트로이트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디트로이트는 뉴욕과 함께 항구가 인접해 있어서 19세기에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당시에는 운송비용이 컸던 시기였기에 지리적 인접성이 용이했던 이유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한창 잘 성장했으나 그것만으로는 계속적인 발전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헨리 포드가 개발한 조립 라인은 비숙련된 미국인들을 이용하는데 용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디트로이트를 덜 숙련된 도시로 만듦으로써 디트로이트가 몰락하는 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시기가 바뀌자 기업가들은 더 큰 공장을 세우기 위해 도시에서 이주를 꿈꾸었고 광대한 공장들의 기계화가 노동자도 내쫓아버렸다. 이로써 산업의 발달은 도시에서의 빠른 탈주를 돕는데 사용될 뿐 도시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디트로이트의 몰락을 가속화하기도 했다. 큰 빌딩을 짓고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 피플 무버를 개통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줄 알았지만 인적 자본이 없는 도시에 그런 인프라가 많이 생긴다고 해서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아도는 주택은 관리가 되지 않아 범죄의 온상이 될 뿐이고 그로써 이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속히 탈출하게 만들 뿐인 것이다. 차라리 과감하게 도시의 몰락을 받아들이고 남아도는 주택을 철거하는 것이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뉴욕의 경우에는 의류업의 몰락으로 한 때 위기를 맞았으나 금융업의 발전으로 아직까지 그 명성이 건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도시의 성장은 어떤 사회적 조건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인간이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도시의 성장이 인간을 훨씬 살기 좋게, 깨끗한 물을 얻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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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8-0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