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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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수연 작가가 쓴 <-사랑의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 할아버지 손은 약손>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동화책으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까 장기려 박사의 업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위인전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어려서부터 신동이고 항상 1등으로 졸업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남으로 내려와서 여러 업적을 세운 것을 나열하는 등 천상 위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이렇게 대단한 분이 있을까 하는 우러러보는 마음이 앞서서 한동안 멍~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산책방에서 나온 손홍규 작가가 쓴 <청년의사 장기려>란 책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장기력 박사를 말해주었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장기려 박사의 모습이 아니여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ㅋㅋㅋ

 

손홍규 작가가 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청년'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 있다. 고뇌하고 방황하고 그러면서 성장해가는 청년, 그 모습이 바로 그 위대하게만 보였던 장기려 박사의 실체였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중간까지 책을 읽어가면서도 이게 아닌데~ 멋있게 짠!! 하고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은 언제 보여주시지?? 하는 기대감을 버릴 수 밖에 없게 했다.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그가 어떤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 칭찬에도 붕 뜨고 조그만 시련에도 흔들리는 우리네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쓰러지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나약해보이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니 같은 사람으로서 나는 가진 자로서 못 가진 자를 배려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각을 들어 한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내 욕심을 채우자고 항상 힘들고 짜증내고 아귀다툼을 했던 것 같아서 내 모습을 쉽게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거기에 마귀가 있을 것만 같아서...

 

언제부터 내 모습이 이렇게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것인지, 나름 가진 것을 베풀겠다고 다짐하던 나였는데...

 

'같은' 크리스찬이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장기려 박사와 나와의 간극을 보면서 내가 가진 물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병원의 원장이면서 항상 헤어진 양복으로 살고 주머니에 가진 돈이 있으면 항상 거지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비싼 입원비, 수술비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대신 자기가 돈을 내어주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을 보면서 남들보다 조금은 나은 삶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자 했던 내 모든 치기가 아주 미련스런 행동으로 보인다. 책만 해도 그렇다. 요즘 책 때문에 엄마랑 항상 싸우는데... 그 모든 책을 한번 읽으면 족한 것을 싸들고 있는 것도 참 미련하고 지금 당장 못 읽을 상황이면 그만 사면 되는데 끝까지 아둥바둥거리면서 사제끼는 것은 정말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이번에 보너스가 나왔다. 그 돈으로 동생 용돈과 아빠 기름값을 드리고 나선 모조리 책을 사버렸다. 한 일에 비해 적게 나온 보너스도 문제이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서도 그 돈을 가지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이다. 보너스라는 것은 월급 이외에 나온 돈이니 내겐 당장 없어도 되는 돈이다. 그런데도 그것까지도 내 욕심을 채우겠다고 아둥바둥거렸다는 것을 이번 책 때문에 알아 챌 수 있었다. 정말 허무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이 물욕인 것을....어쩌자고. 어쩌자고.....

 

지금 당장 내가 사고로 죽는다면 아무 쓰잘데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항상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후회가 막급이다. 장기려 박사의 위대한 업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 조선인 최초의 간암 수술 성공, 무료진료병원설립, 의료보험제도 시행, 무료진료봉사, 막사이막사이 상 수상 등등 - 그보다도 인간이라면 욕심낼 만한 물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따르고 싶은 예수님을 닮은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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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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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생물은 무엇인가?

 

나는 한 번도 이것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생명체가 갖는 특징 - 예를 들어, 에너지를 섭취하고, 세포분열을 통해 증식과 성장을 하는 것, 신진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 등 - 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의 정의를 내리기엔 너무나 어렵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자신에게 물었던 이 질문, "생명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신이치 교수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생명이 어떤 것인지, DNA는 어떤 식으로 발견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발견 과정에서 숨겨진 영웅들은 누구인지를 천천히 풀어내주어 부담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다 ^^;)

 

조금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머무르고 있던 독서의 세계가 너무 조그맣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한 가지 생긴 소망이었다. 그래서 읽어 본 책의 새로운 세계는 심리학에서부터 한 작가의 연대기까지, 칙릿소설에서부터 스릴러소설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 중 또 한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서이다. 신문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 과학서이면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는 내용과, 작가의 인터뷰 내용 중 생명은 기계처럼 부속품을 끼웠다 뺐다 하면서 만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정말 신선했다. 과학자라고 하면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오만하게 권위를 내세울 것이라는 내 편견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책에는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사진이 나와있지 않지만 신문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은 정말 순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도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마 이런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선택했다.

 

과학자가 어떤 식으로 실험을 하고 가설을 세우고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 어떻게 가설을 바꾸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실수'였다. 매독, 소아마비, 광견병, 황열의 병원체를 밝히고 배양한 것으로 미국에서 세계적인 의학자가 된 위인전 속의 인물인 노구치 히데요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일본에서는 지폐의 주인공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그 인물이 사실은 허상을 쫓고 있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서술해주었다. 그 당시에 그가 사용했던 현미경은 1마이크로미터 정도의 크기인 세균보다 10배나 작은 바이러스를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이 아니였기에 찾아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병원체로 속단하고 그것으로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었다. 그가 한 일이 모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근대 기초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이먼 플렉스너의 제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은,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그가 발표한 논문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졌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본에선 그를 추앙하고 있고 록펠러 대학 도서관에 있는 그의 흉상을 보고 싶어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니 이런 망신이 또 있겠는가. 정말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처음 알게 된 것은 바이러스가 생물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미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도 증식을 하는 자기 복제 기능을 가지고는 있으나 영양을 섭취하지도, 호흡도 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도 않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일도 없단다. 또한 순수한 상태로까지 정제시킨 후, 특수한 조건에서 농축하면 '결정(結晶)'으로 만들 수 있다니 그것을 가지고 생명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신이치 교수가 말하길, 바이러스는 기계들의 세계에서 온 미세한 조립식 장난감 같은 것이란다. 아직까지도 논의가 끝나지 않은 바이러스의 생물 / 무생물 논쟁에서 신이치 교수는 무생물이라고 정의했는데 그것은 생명이 단순히 자기 복제 능력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생명이란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란 말로 설명했다. 우리 몸안에 들어온 단백질이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예전에 구성했던 단백질은 계속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원자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몸은 유기적으로 - 뭔가 하나가 고장이 나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메우는 - 이루어진 것이며 단순히 텔레비전의 한 소자를 빼놓았을 때처럼 고장이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내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 책이 신문에 소개되었을 때도 녹아웃마우스 실험에 대해 나왔는데 어떤 부분을 인공적으로 없앤 후에 생기는 문제점을 보면 그 부분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원리에서 시행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녹아웃마우스에 아무런 이상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점검하면서 드러난 결론은, 생명은 기계가 아니다 였다. 우리 몸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채워가며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명은 정말 신비로운 것, 지금처럼 게놈 지도가 완성되고 유전자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갖다가 막 쪼개고 집어넣어서 결과를 보는 등 기계로만 여기지 않길 바라는 내 생각과 비슷했다. 인간은 좋은 쪽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지만 그것이 인간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지 생각해보면 잘 알 것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나는 전설이다> 에서처럼 인간의 어리석은, 또는 오만한 행동 때문에 생명의 위대함을 소홀히 여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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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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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오락소설이다. 그러나 깊이 면에서 단연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이다.

라고 쓰여진 소개글이 너무나 날 자극해서 들여다 보게 된 <골든 슬럼버>. 이 책은 내 책장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놓여있는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의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이다. 사실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여서 나도 그의 책을 읽어보려 사긴 샀는데 지금 하는 업무랑 여러 일이 겹치다보니 손도 대지 못한 채 몇 달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이사카 코타로의 책 <골든 슬럼버>는 말 그대로 철저한 오락소설이지만 정말 한 번에 다 읽게 하는 흡인력을 가진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 내가 이 책에 흥미를 가졌던 것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남자의 처절해보이는 얼굴이 찍힌 표지 때문이었다. 그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울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그 표지 하나에 필이 박혀버려서 고르게 되었다. 사실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라고 하는 부제는 보이지도 않았다. 다 읽고 나서야 이 놈이 슬며시 보이는 것은 참...^^; 어쨌든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 같은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 들어 스릴 만점이었지만 <도망자>와는 다른 결말이 어째 음모론이 생각나게 해서 자다가도 왠지 뒤를 돌아봐야 될 것 같은 느낌은 별로였다. 끝맛이 씁쓸했던 아쉬운 소설이라고나 할까.

 

나는 소설의 한 장치인 '복선'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렇다고 복선을 잘 찾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예리하게 찾아낸다만^^) 그렇게 한 치의 틈도 없이 딱딱 맞아 떨어져가는 모양새가 너무 맘에 든다. 그런 점에서는 이 소설은 정말 예리하고도 명석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사카 코타로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마구 마구 든다. 처음에 책을 폈을 때 나는 차례와 머리말을 먼저 보는데 이 소설은 차례에서부터 예사로 보이지가 않았다. 일렬로 나열한 수직선에 1부 [사건의 시작], 2부 [사건의 시청자], 4부 [사건], 5부 [사건 석 달 뒤], 3부 [사건 20년 뒤] 라는 표시를 해두었기에 정말 한눈에 쏙 들어오기도 했고 뭔가 강한 포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주 시간이 많은 때 한꺼번에 읽어버려야지~ 하고 덮어버렸는데 (요즘 내가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어서 조금씩 읽고 덮어놓고 하는 식으로 읽어버리는데 소설을 읽기엔 알맞지 않는 방식이라 싫어한다 ^^;) 정말 바쁜 어느날 이 책이 책장에서 읽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보고 냉큼 들어 읽어버렸다. 그 다음날 무지 일찍 나가야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이 걱정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빠르게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읽어서 일본 총리 암살범으로 추격당하는 한 남자 이야기인 줄도 몰라서 내용 전개가 왜 이리 되냐~ 하며 숨가쁘게 읽어내려갔는데 읽고 나니깐 새벽 5시가 넘었더라~끙 >.< 그날 이 책을 다 읽고 팔에 근육통이 생겨서 무지 고생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느라 읽을 땐 전혀 아프지 않았던 팔이 다 읽고 나니깐 아프더군...

 

어쨌든 일본 총리가 자신의 고향인 센다이에 방문해 퍼레이드를 했는데 무선조종헬기에 달린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죽고, 그로부터 사흘 동안 암살범으로 지목된 주인공이 열나게 도망다니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주인공이 제발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긴 읽었지만 완벽하게 그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준비해둔 어마어마한 함정을 보니 정말 절망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주인공이 죽었나, 살았나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음모를 밝힐 수 있을까, 없을까에 더 집중했는데 영화 <도망자>에서 해리슨 포드가 끝내 누명을 벗었던 것처럼은 못할거라는 아쉬움이 중반부에 들었다. (결말은 각자 사서들 보시길. ^^)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는 지금도 사실 찜찜하다. 온갖 음모설이 그렇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묻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버리는 이러한 작태!! 정말 아쉬울 뿐이다. 사실 얼마 전에 헌책방에 들려 책을 보고 있는데 아주 두꺼운 <음모론>이란 책을 보곤 동생이 좋아할 것 같아서 냉큼 사들고 왔었다. 그러고나선 나는 한 장도 보지 못하고 동생이 탐독을 하고 있는 상태인데 (자격증을 비롯한 여러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 동생이 읽으면서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다는 등 자신 나름의 평가를 곁들여 정리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도 암살사건에 대해 읽어내려가는데 범인으로 의심되는 단체를 여러 개 나열해놓고 실제 지목된 용의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내용을 보니 머리만 더 복잡해지고 괜히 으스스해져서 나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못 볼 책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플롯을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정말 그를 죽인 사람들도 이렇게나 조직적으로 함정을 파두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섬뜩했다. 다 읽고나서 찜찜한 소설이라 누군가에게 권해주고픈 생각은 안 들지만 사실 이런 위험천만한 내용을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한 사회가 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것은 정말 쉽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상황에서 멋지게 한방 먹이는 소설은 어디 없나~ 하는 바람도 들지만....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멍하니 당하기만 하는 것은 정말 짜증난다. 산드라 블록이 나온 영화 <네트>에서도 정보화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가 조작을 하면 완전히 당할 수 있겠구나~를 잘 보여주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센다이라는 도시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카메라가 장착되어서 요즘 우리 사회도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사는 옆 동네가 동탄신도시인데 거기가 그런 장치를 해두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라고 설치한 것인 하지만 그것이 악용될 가능성도 무시를 못하니깐 정말 걱정이 된다. 관찰자의 입장이면 한시름 놓겠지만 누명을 써서 추격당하는 것이 바로 나라면, 바로 내 가족이라면 그렇게 끔찍한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철저한 오락소설이긴 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오락소설이라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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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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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은 어딘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볼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어서 어른이 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즐겨 읽는 장르다. 그런 책들이 오히려 내 감성을 흔들어놓고 내 눈물샘을 많이 자극한다. 내가 이번에 읽은 청소년 소설은 열두 살 때 이미 <가출일기>라는 소설을 펴냈을 정도로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세헤라자드의 운명을 타고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의 이름은 김혜정. 나이도 나랑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작가라 내가 열두 살 때는 뭐 했지? 하는 부끄러움을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세상에 어린 나이에 글을 써서 발표하는 천재 같은 작가가 있다면 뒤늦게 책을 끌어안으며 뒹굴고 사는 바보 같은 독자도 있어줘야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작가가 쓴 이번 소설의 소재는 바로 도보여행이다. 아는 오빠 하나도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얼마나 자랑을 해대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장장 4박 5일이나 16박 17일 정도를 걷기만 한다니... 아무리 내가 걷는 걸 좋아해도 그렇지, 그렇게 묵묵히 오랫동안 걷기만 한다는 거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도 1박 2일(무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안 거의 못 자고 80km를 걷기만 하는데 그 정도는 나도 해보고 싶지만 70일 정도로 기나긴 시간은 절대 사양이다.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도보여행을 소년원을 가지 않는 대신 하는 거라니 정말 짜증났을거다. 오랫동안 말썽은 있는대로 다 부리면서 애들만 패고 다니는 이은성과 도벽이 있는 주보라가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이 소재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비행 청소년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도보 여행을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차용했다고 한다. 짧은 소견을 가진 내 생각에도 걷기만 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자제력과 인내심, 끈기를 키우는데는 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정말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라니까. 이런 작은 부분도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갱생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법이지 않은가.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더 생산적이고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우리도 그런 좋은 방법은 배워와서 따라하면 안 될까. 물론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겠지만 범죄자를 재생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냔 말이다.

 

어쨌든 두 문제아와 인솔자 미주가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출발했다. 태양이 너무 뜨거운 것, 목이 너무 마른 것, 모래가 많아 걷기 힘든 것, 베낭이 너무 무거운 것, 음식이 입에 안 맞은 것 등 사사건건 불평하고 투정부리는 은성과 어떤 일에든지 미주의 지시를 따르고 힘들어도 묵묵히 이겨내려고 하는 보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 셋이 알콩달콩 토닥토닥 잘 지내오다가 보라가 은성의 죄목을 알게 된 순간, 평화롭게 보이던 도보여행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성이 하는 말이라면 못 들은 척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한 마디 말을 하거나 은성이를 생각해주는 행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70일 간의 실크로드 도보여행이 끝나기 2주 전에 보라가 도망을 치는 게 아닌가.

 

그 현장을 잡은 은성은 따라 오지 말라던 보라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따라다니며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쉽게 수긍하지도,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보라는 이제까지 보여줬던 모습과 완전히 다르게 냉정하게 굴며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얌전한 보라가 원래부터 한국에 돌아가지 않게 이탈할 것을 계획하고 왔단다!! 이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있나. 은성이는 보라를 쫓아오지만 않았어도 무사히 도보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가서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인데 공연히 보라 때문에 모든 것이 망치게 된 것이다. 어쩌냐. 그래도 포기가 빠른 은성이는 소년원은 그렇다치고 길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못산다며 미주언니에게 전화하자고 계속 이야기했으나 보라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위구르인 욜투르네 가족에게서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자신들의 놀이에 같이 끼워주며 즐길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치부여서 아무에게도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어쩌면 가해자였던 은성이도, 피해자였던 보라도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이탈을 했기에 다시 미주언니에게 돌아와도 소년원은 가야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은성과 보라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상처에 매몰되고 만다.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인데 아마도 은성이와 보라는 그런 면에서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할 거라는 걸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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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리더십 - 열린 대화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미래형 문제해결법
아담 카헤인 지음, 류가미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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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뒷면에 아직도 권력자와 사회의 리더들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이 책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더나 권위자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대화이해라는 무기를 가지고,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조율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이나 오랜 독재 속에서 자유를 잃어버린 파라과이의 문제나 퀘백 분리주의자들과 캐나다 연방주의자들의 고질적인 문제, 그리고 두 번의 내전을 치른 콜롬비아의 문제, 2주 동안에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는 아르헨티나 문제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기적을 바라는 것처럼 무모하고 희망이 없는 해결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에서 이뤄낸 일들을 가지고 분석적으로 대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로운 해결방법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담 카헤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간 것으로 이 모든 기적은 시작된다. 그곳은 소수 백인 정부가 이십 년 동안 감금해온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의회를 포함한 다른 흑인 반대세력이 세운 정당들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두 정치세력이 새로운 탈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 전례 없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로운 전환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시나리오가 필요했는데, 아담은 자문 역할로 그 기적적인 역사의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임무는 시나리오 기획팀을 위해 방법론적인 조언을 하고 워크숍이 잘 진행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워크숍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향력 있는 스물두 명의 사람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모았는데, 아프리카민족회의, 급진적인 범아프리카회의, 강력한 조직이었던 광부노조, 남아프리카공산당의 좌파 세력과 그들과 오랫동안 적대해온 백인 사업과와 학자들을 포함시켰다. 이 집단을 작은 모임으로 나누어서 10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래에 대한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게 했다. 그 때 나온 30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시 합치고 간추려 9개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아름다운 몽플레 센터에서 치러진 이 워크숍은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간추리고 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열의를 가지고 임했다. 두 번째 워크숍에서 9개의 시나리오 중 4개를 선택했고 세 번째 워크숍에서 4개에 대한 최종 시나리오를 다시 짰다. 네 번째 워크숍 때는 이 4개의 시나리오를 고위층을 비롯한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시나리오의 타당성을 시험했다. 이 4개의 시나리오 중에서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으로 국민과 대화하기를 원했던 참가자들은 주요 주간지에 이것을 싣고, 미디어 토론회를 개최하고, 만화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배포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시민사회에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를 상대로 100번 이상의 위크숍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상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공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바꾸는데 참여하도록 했으며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하고 있는 정당, 조직 등의 주요 정책들을 실제로 바꿀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왔고 1996년도부터 '성장과 고용과 재건설'이라는 정책을 수행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난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노사 간의 갈등, 환경주의자와 경제주의자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갈등의 연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갈등에 파묻혀 살진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단순히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워크숍에서 무력적인 방법이나 권위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다니 말이다. 정말 기적이 아닐까. 이 모든 기적을 직접 옆에서 지켜 본 아담은, 두 가지의 질문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첫 번째 질문은 몽플레 기획이 왜 그토록 중요하고 특별한가이고 몽플레 기획 참가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나 하는 것이었다. 모든 분석을 거친 후에 그는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알 수 있었다. 낮은 복잡성을 가진 문제는 권위자의 지시에 따르면 완벽하게 풀 수 있지만 복잡성이 높은 문제는 문제의 당사자들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어 조직 전체를 변화시킬 때만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몽플레 기획이 중요하고 특별한 이유는 사회를 창조적으로 혁신하는 데 매우 알맞은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부분에 대해서 다 고려했고 각 정치 지도자나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가했던 워크숍였던 까닭에, 이 현안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까.

 

두 번째 질문은 그가 다른 성공했던 워크숍과 실패했던 워크숍을 두루 경험해보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워갈 수 있었다. 그것은 크게 말하기듣기로 나눌 수 있다. 일단 말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발도 양보하지 않고 맞서는 방식지시하는 방식, 예의바르게 말하는 방식은 절대 화합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스크 민족주의자와 스페인 정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날아간 곳에서는 서로 한 발도 양보하지 않고 맞섰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담과 이야기하는 것은 환영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주저했고 서로 말할 수 있는 통로조차 만들어 두지 않았다. 또한 오랫동안 독재자의 지배를 받아온 파라과이에서는 지시하는 방식이 익숙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곳이었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 경험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말했던 것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어느 누가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아담의 고향인 캐나다 연방주의자들과 퀘백 분리주의자들은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예의를 갖춰 말하기에 그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들은 좀더 상황이 무르익어야 풀릴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좀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었다.

 

그래서 크게 말하는 방식으로만 서로의 상황과 현실을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군대, 불법 마약상, 좌파 게릴라 반군, 우파 자경단원들이 판을 치는 콜롬비아에서의 워크숍이 성공적일 수 있었다. 아직 성공한 워크숍처럼 그들의 사회에서 폭력을 근절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것이 하나의 시작이지 않을까. 그랬기에 그 워크숍을 후원한 국제연합이 그들의 시나리오를 '미래를 예언한 보물'이라고 평가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단순히 말하기만을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듣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들을 때에도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한데, 그것은 열린 마음으로 듣기, 반성하며 듣기, 감정이입하며 듣기 방식이다. 휴스턴에서 열렸던 워크숍에서 열린 마음으로 듣는 방식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휴스턴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은 반면, 정부와 정치가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기업가들이 문신을 한 사람들의 집회에서 그들을 인터뷰하고나선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느껴본 경험이 그들에게 열린 마음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대 기업의 백인 사업가들이 공동체를 이끌어가게 해선 안되고 소수민족 사업가, 영성 사업가, 규모가 작은 회사의 사업가들을 포함시키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과 정치가와 공무원, 시민사회 지도자들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과제를 정할 수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반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례는 아담이 전에 몸담은 적이 있었던 회사, 쉘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대 석유 회사였던 쉘은 전세계를 주무르는 힘이 있었지만 수명이 다한 대형 시추선 브렌트스파호를 북해에 버리려다 들킨 사건 때문에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다. 그 사건이 지난 후 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 반성을 하지 못했는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반성의 시간이 없다면 아무리 말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감정이입하며 듣기방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스 대학에서 있었던 워크숍에서 일어났다. 서로에게 악감정이 있는 흑인 학생과 백인 교수진 그리고 행정부의 갈등이 상당히 심했는데 거기에서 아담은 한 명씩 일대일로 만나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리하게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드러내게 도와주는 것과 상대방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감정이입이라는데... 너무 바쁜 나머지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기도 쉽지 않고 더군다나 감정이입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내가 뭔가 하고 있을 때 누가 말을 시키면 그를 보지도 않고 대답을 하는 아주 나아쁜 버릇이 있다. 그런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정말 기분이 나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다시 그런 순간이 오면 바쁘다는 이유로 항상 넘어가버린다. 상대방도 나만큼 바쁘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난 상대방도 인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ㅋㅋ) 꼭 누가 말을 시키면 하던 것을 멈추고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러면 생길 만한 갈등도 이미 예방해버릴 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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