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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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은 어딘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볼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어서 어른이 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즐겨 읽는 장르다. 그런 책들이 오히려 내 감성을 흔들어놓고 내 눈물샘을 많이 자극한다. 내가 이번에 읽은 청소년 소설은 열두 살 때 이미 <가출일기>라는 소설을 펴냈을 정도로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세헤라자드의 운명을 타고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의 이름은 김혜정. 나이도 나랑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작가라 내가 열두 살 때는 뭐 했지? 하는 부끄러움을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세상에 어린 나이에 글을 써서 발표하는 천재 같은 작가가 있다면 뒤늦게 책을 끌어안으며 뒹굴고 사는 바보 같은 독자도 있어줘야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작가가 쓴 이번 소설의 소재는 바로 도보여행이다. 아는 오빠 하나도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얼마나 자랑을 해대는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장장 4박 5일이나 16박 17일 정도를 걷기만 한다니... 아무리 내가 걷는 걸 좋아해도 그렇지, 그렇게 묵묵히 오랫동안 걷기만 한다는 거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도 1박 2일(무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안 거의 못 자고 80km를 걷기만 하는데 그 정도는 나도 해보고 싶지만 70일 정도로 기나긴 시간은 절대 사양이다.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도보여행을 소년원을 가지 않는 대신 하는 거라니 정말 짜증났을거다. 오랫동안 말썽은 있는대로 다 부리면서 애들만 패고 다니는 이은성과 도벽이 있는 주보라가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이 소재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비행 청소년들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도보 여행을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차용했다고 한다. 짧은 소견을 가진 내 생각에도 걷기만 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자제력과 인내심, 끈기를 키우는데는 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정말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라니까. 이런 작은 부분도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갱생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법이지 않은가.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더 생산적이고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우리도 그런 좋은 방법은 배워와서 따라하면 안 될까. 물론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겠지만 범죄자를 재생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냔 말이다.

 

어쨌든 두 문제아와 인솔자 미주가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출발했다. 태양이 너무 뜨거운 것, 목이 너무 마른 것, 모래가 많아 걷기 힘든 것, 베낭이 너무 무거운 것, 음식이 입에 안 맞은 것 등 사사건건 불평하고 투정부리는 은성과 어떤 일에든지 미주의 지시를 따르고 힘들어도 묵묵히 이겨내려고 하는 보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 셋이 알콩달콩 토닥토닥 잘 지내오다가 보라가 은성의 죄목을 알게 된 순간, 평화롭게 보이던 도보여행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성이 하는 말이라면 못 들은 척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한 마디 말을 하거나 은성이를 생각해주는 행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70일 간의 실크로드 도보여행이 끝나기 2주 전에 보라가 도망을 치는 게 아닌가.

 

그 현장을 잡은 은성은 따라 오지 말라던 보라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따라다니며 돌아가자고 설득하지만 쉽게 수긍하지도,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보라는 이제까지 보여줬던 모습과 완전히 다르게 냉정하게 굴며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얌전한 보라가 원래부터 한국에 돌아가지 않게 이탈할 것을 계획하고 왔단다!! 이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있나. 은성이는 보라를 쫓아오지만 않았어도 무사히 도보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가서 소년원에 들어가지 않을 것인데 공연히 보라 때문에 모든 것이 망치게 된 것이다. 어쩌냐. 그래도 포기가 빠른 은성이는 소년원은 그렇다치고 길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못산다며 미주언니에게 전화하자고 계속 이야기했으나 보라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위구르인 욜투르네 가족에게서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자신들의 놀이에 같이 끼워주며 즐길 수 있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치부여서 아무에게도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어쩌면 가해자였던 은성이도, 피해자였던 보라도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이탈을 했기에 다시 미주언니에게 돌아와도 소년원은 가야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은성과 보라는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상처에 매몰되고 만다.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을 믿고 의지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인데 아마도 은성이와 보라는 그런 면에서 앞으로 더 많이 성장할 거라는 걸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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