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왜 난쟁이 집으로 갔을까?
모봉구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모봉구 씨의 전작 <설화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었었다. 그런데 그 때의 내 생각은 뭔 소리인지~ 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좀 어려웠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사실 2년 전에 읽었던 책이라 지금 읽고 있는 책 수준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을 것인데 왜 이해를 못 했을까 의아할 뿐이다. 그만큼 이 책이 너무나 재미있기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열 편의 동화 속에 숨겨진 키워드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신선했고,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반면, 이런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 모봉구 씨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겪었을지는 상상이 안 갈 따름이다.

 

[백설공주]편에서는 [긍정]이란 키워드로 설명한다. 백설공주의 눈처럼 하얀 피부와 피같이 빠알간 입술, 숯처럼 까만 머리칼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편견없이 순수한 마음을 하얀 피부로 나타내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빠알간 입술로 표현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마음을 새까만 검은 머리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그래서 마녀가 여러 차례 백설공주를 죽이려 했던 것도 사실은 긍정적인 생각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란다. 백설공주가 난쟁이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열등감'을 의미하는 난쟁이가 숲속에서 자신을 계발하는 것을 상징하기에 백설공주가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자신을 계발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야 나중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왕자가 상징하는 것은 낯선 새로운 행동과 실천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원만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열등감으로 표현되는 난쟁이에게 벗어나서 덤불을 넘다가 비틀거리는 것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넘어서면 드디어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동화와는 달리 여기선 왕자의 입맞춤이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요렇게 딱딱맞게 설명되는 게 참으로 놀랍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길 이런 동화는 옛날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것을 그림 형제나 페로가 글로 옮긴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라는데 오랜 시간을 통해 이어져내려온 것인 만큼 그 안에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축척되어 담겨있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본 <설화 속의 호랑이>에서도 호랑이가 신성함을, 무섭고 사나운 압제자를, 어리석은 관리를, 정이 많은 이의 모습 등 네 가지의 모습을 담아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때도 딱딱 맞아떨어져서 신선해했던 경험이 있다. 과연 설화나 구전된 동화 속에는 오래 전부터 살아온 조상들의 생각이 축척되어 있을 수 밖에 없나보다. 그래서 이 책은 설화나 동화가 조상들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통로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 것은 틀림이 없다.

 

사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읽어왔고 생각해온 백설공주는 아주 순수하고 아리따운 비련의 공주였는데 '키류마사오'의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나 로렌 슬레이터의 <루비 레드>라는 책들 덕분(?)에 내가 어릴 적부터 생각했던 순수했던 동화가 성적인 게임으로, 모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왜곡된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했었다. 그리고 이런 책을 어린 아이나 청소년들이 멋모르고 읽게 되면 그들이 어렸을 적 느꼈던 순순함이 퇴색되어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게다가 아주 긍정적인 시각으로 동화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책이 나와서 너무나 반가울 따름이다. 이 책을 아이들이 많이들 읽고 동화나 설화에 대해 그저 단순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많은 상징성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성적으로 표현하려는 상업성의 논리에 아이들이 아직은 물들지 않고 그 내면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다른 동화에서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조금 소개해보면,

 

[백설공주]에서는 [긍정]의 선물을,

[금도끼 은도끼]에서는 [결단력]의 지혜를,

[황금 거위]에서는 [잠재력]이란 보물을,

[신데렐라]에서는 [시련]이란 성공으로의 담금질을,

[브레멘 음악대]에서는 [조화]이란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를,

[개미와 비둘기]에서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서는 [양육]이라는 인생의 키워드를,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허위]라는 욕망의 껍데기를,

[인어공주]에서는 [성윤리]의 단단한 통제를,

[늑대와 일곱 마리의 양]에서는 [개과천선]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동화에서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로 보이는 것이 그 내면에는 인간의 성욕에 대한 경계[인어공주]를 나타낸다니, 참 어이가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그냥 단순히 애절한 이야기만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거라는 저자의 인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다양한 관점을 알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지 이 책을 들여다보면 아주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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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사전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카트린 파지크.알렉스 숄츠 지음, 태경섭 옮김 / 살림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무지의 사전>은 정말 독특한 책이다. 책이란 건 모름지기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보는 거라 여겼던 나에겐, 특히 더 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모호하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뭐,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히 모르는 것을 주제로 했으니 저자들도 그것에 대해 많은 가설과 막연한 추측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하나의 과학적 사실들이 사실은 여러 가설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 가설이 검증되기 위해서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무지의 사례가 [지각판구조]이다. 우리가 중학교 과학시간에 지진이나 화산을 배울 때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 환태평양 조산대이든가 대륙이동설이라든가 맨틀의 대류 등 여러 과학적 "사실"로 알고 있었던 이것들이 본래는 하나의 "가설"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허~참... 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이런 가설을 뻔뻔하게 교과서에 실어놓고 그게 사실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니... 교과서에 정 실을 내용이 없으면 실어놓고 그 외에 여러 가설이 더 있다는 언급만 해줘도 이렇게 혼란스럽지가 않았아~~ 반평생을 판구조론을 진리로 믿었던 내가 참 바보 같아 보인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내용에서부터 한번도 듣도보지 못한 내용까지 다양한 내용이 여기에 실려있다. [제1부 감각의 무지][제2부 사물의 무지][제3부 인간의 무지][제4부 동물의 무지][제5부 우주의 무지][제6부 현상의 무지]으로 나뉜 항목대로 여러 이야기가 나와있는데 내가 읽기에는 참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온 내용이 전반적으로 내가 모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설명된 내용이 심각할 수준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어려운 걸 나름 즐기면서 - 여기서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ㅋ - 한껏 폼을 내면서 읽어댔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었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이 카트린 파지크인지 알렉스 숄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름의 유머를 구사하는데 나랑 코드가 맞았다. 껄껄껄 하며 웃게 만들지는 못해도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게 해주었기에 상당히 머리가 아플 때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조각조각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이어서 나처럼 통째로 쓸 시간이 없는 사람에겐 상당히 편했다. 그래도 나는 왠지 뒷부분이 재미있어 보여도 앞부터 차례대로 읽어댔지만 말이다.

 

정말 신기한 내용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내가 모르는 내용이란 이야기를 이미 했을거다. 그런데 그런 신기한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간과 문맥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렇게 읽는다고 해서 내게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 이랬겠구나~ 오! 요런 사건도 있었나보지? 하는 숨은 그림을 찾아가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중에 하나가 [퉁구스카 폭발사건]이다. 가만히 읽어보니, 이 내용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하는 인식과 아~ 요래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모르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가 1908년이었고, 주변에 인가가 없었기 때문에 폭발의 원인을 2008년 현재까지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5,000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예나에서도 지진이 기록되었고, 압력파는 영국에서도 기록이 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큰 폭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거기가 인가나 대도시였다면 수천만명의 인명 피해와 수천억원의 재산피해가 났을 때지만 다행히 입은 피해라고는 나무들이 시꺼멓게 타거나 누워있는 정도 뿐이다. 사람들은 이 폭발의 원인을 운석이 떨어진 것이니 혜성이 떨어진 것이니 땅에서 올라온 기체에 의한 것이니 하고 말들이 많지만 해마다 수십 편의 시나리오가 발표된다고 하니 아마도 이것도 '무지'로 남을 것 같다.

 

이 부분에도 피식거리게 하는 유머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요거다. 앞부분에서 폭발 후에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서는 밤 2시 반경까지도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로 환했다는 이야길 들려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끝을 맺는다. 마침내 누군가가 퉁구스카 폭발의 원인을 발견한다면, 사람들은 그 원인을 간단한 형태로 변환시켜 늘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밤 2시 반에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를 치는 일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ㅋㅋㅋ 폭소를 터뜨리게 하진 않지만 피식거리며 실소를 머금을 정도는 되지 않는가. 앞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뒷부분에서 받아서 끝맺는 경우가 많는데, 난 요런 거 좋아한다. 그리고 아주 예전에 일어났던 폭발을 뭐하러 연구할까 했었는데 여기 마지막에 나온 것처럼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판에 와서야 드니 역시 문맥을 꼼꼼히 읽는 것은 중요하다 싶다.

 

도널드 럼즈펠드의 말의 인용하면서 마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알려지지 않은 무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알기 위한 과정의 전초전이 아닌가 한다.

 

알려진 앎(known knowns)이 있다.

우리가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가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알려지지 않은 무지(unknwon unknowns)가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매년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도널드 럼즈펠드(미국의 전 국방장관,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하는 네오콘 신보수주의자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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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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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웅녀, 유화부인, 소서노, 낙랑공주, 허황옥, 도미의 아내, 우황후, 한주, 미실궁주, 평강공주, 선덕여왕, 선화공주, 문명황후, 연수영, 진성여왕, 신명순성황후, 천추태후, 기황후, 박어우동, 문정왕후,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주논개, 소현세자빈 강씨, 임윤지당, 명성황후...이 27명의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가. 황원갑이라는 사람이 자기 소신껏 가려낸 우리 민족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여걸이시다. ㅋㅋ 물론 소신껏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 분들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기 나온 27명의 인물을 다 알겠지만 역시나 우리것에는 작아지는 -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것에 대해서 강한 건 절대 아니지만 ^^;- 나이기에 거의 반이나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러나 같은 여자라 그럴까. 내 무식이 통통 튀는 증거를 들이대 준 가슴 아린 책이지만 이런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하다.

 

제일 처음에 웅녀라는 인물을 소개했을 때부터 사실 적잖이 놀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에 보면 웅녀는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생활했던 곰이었던 여자인데 말이다. 오호~ 웅녀가 사실 실존 인물이었단 말인가. 황원갑 씨는 그녀가 조상신이며 수호신인 웅신을 믿는 웅족의 씨족장 겸 제사장의 딸이라고 풀이했다. 저자가 서문에도 밝혔듯이 사료가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대체한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전해내려왔던 신화를 토대로 나름 설명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설명은 이렇다. 신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웅신을 숭배하는 웅족과 호신을 숭배하는 호족는 어느 정도 사이 좋은 이웃 부족이었는데 태백산 기슭에 수천 명의 환웅족이 청동기를 들고 나타나서 수적으로도 무기로도 이길 수 없었던 웅족과 호족이 환웅족의 지배 하에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환웅족의 환웅천왕은 종족간의 통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웅족의 씨족장이자 제사장의 딸인 웅녀를 아내로 삼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환웅족, 웅족, 호족 등을 통합하여 최초의 나라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환웅족이라는 부족이 있을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정말 새로운 시도라 여겨진다. 상큼한 기분이랄까. 역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 그러나 이 책이 신화를 토대로 가설을 나열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쉬이 읽히리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웅녀] 이 후부터는 아주 어려우니 말이다. 저자가 한국사에 조예가 깊은지 사정없이 여러 문헌들을 소개해 코 앞에 대령해 놓으니 안 먹으래야 안 먹을 수가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일연의 <삼국유사>나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외에도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 조선 때 편찬된 <세종실록>, <응제시주>,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을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헌인 <위서>, <고기>, <배구전>, <통전>, <한서>, <예기>, <북사>, <후한서>, <양서>, <주서> 등 여러 문헌을 사정없이 집어넣는다. 사실은 이런 문헌들의 공헌(?) 덕분에 중간 중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읽거나 그래도 안 되면 눈물을 머금고 넘어가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총 621쪽의 분량이니 끝까지 사용되었던 문헌만을 조사해봐도 끝이 없을 듯 하지만(앞서 인용한 문헌은 모두 [웅녀]와 [유화부인] 편에 나온 것만이다. ^^;) 그래도 내게서 읽는 재미를 빼앗아가진 못했다. 이런 문헌들의 무차별 공격에도 불구하고 애틋하고 안타까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사랑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애틋하고 가슴 먹먹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 [낙랑공주]을 소개해 올리겠다. 사실 무식이 통한 내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러브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느 나라인지, 호동왕자는 정말 나~아쁜 놈인지(낙랑공주가 죽은 이후의 이야기를 몰랐었다..), 호동왕자의 아버지는 누구고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전~혀 몰랐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구세주와 다름없다. ㅋㅋ 요즘 한창 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주인공인 무휼, 즉 대무신왕이 바로 호동왕자의 아버지였던 것!!! 우와~ 몰랐어!!! 그러니까 낙랑국과 고구려 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란 말씀이군. 대무신왕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이긴 했지만 제2왕비가 낳은 아들이라 서자였던 호동왕자는 용모도 빼어났고 성품도 착한 데다가, 무술과 담력까지 뛰어나 그 당시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런데 서자여서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염려한 대무신왕이 호동왕자가 낙랑국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면 그 공을 인정받아 왕위에 쉽게 오를 것을 예상하고 왕자에게 친히 지령을 내린다. 낙랑국에 있는 자명고와 자명각의 정체를 알아오라는... 그래서 사냥꾼 차림으로 무사를 거느리고 가는데 낙랑국의 왕도 수려한 호동왕자를 보고 그를 사위로 맞이하면 대강국이었던 고구려가 자기 나라를 어쩌질 못할 거란 속셈을 가지고 호동왕자에게 연회를 베풀어준다. 그때 짠! 하고 아름다운 낙랑공주를 소개하여 호감을 갖게 하는데... 첫 눈에 서로 반해버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첫 만남 때 신혼 첫날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고구려로 돌아가게 된다. 사랑에 빠졌으니 무엇이 두려울까. 그러나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에게 명령받은 자명고와 자명각의 정체가 점쟁이 부부(이 부분은 저자의 상상력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무신왕은 자명고, 자명각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큰 수확이지만 낙랑국의 공주와 결혼을 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낙랑국와 고구려가 통합할 수 있을지 낙랑국 왕에게 사신을 보내 의견을 물었지만 길길이 날뛰는 낙랑국 왕 때문에 고구려는 결국 낙랑국을 치러가기로 한다. 그로써 시작되는 비극,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자명고와 자명각 부부를 암살할 것을 명하고 꼭 살아있으라고, 자신이 구하려 가겠다고 약속한다. 호동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낙랑공주는 자신의 나라를 저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이미 호동왕자의 뜻이라면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글쎄다, 쉽다. 이런 모습을 보고선 남자들은 여자들이 감정에만 휘둘리는 동물이라고, 대의를 하지 못한다고들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낙랑공주의 그 결심이 이해가 된다. 고구려가 침략해서 낙랑국을 멸망시킨다면 그것은 국력의 차이이지 않은가. 물론 자명고, 자명각 부부가 살아있었다면 좀더 저항을 할 수는 있을 것일 테지만 이미 고구려는 중원을 누빈 전력이 있던 나라가 아니던가 말이다. 아무리 비옥하고 물자가 많아 살기 좋은 낙랑국이라고 하더라도 군사력이 고구려보다는 약한 것이 당연하다 싶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낙랑공주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낙랑국이 멸망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비난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우호적으로 고구려와 합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낙랑국의 왕이 아닌가 한다. 평생을 살아봐도 낙랑국이 중원을 호령할 날이 있을까 싶은데.. 낙랑국은 국가 안정을 꾀하고 고구려는 국방력에 힘을 기울인다면 삼국 통일은 고구려의 손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쨌거나 성질 급한 아버지를 둔 죄로 낙랑공주는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하염없이 낙랑공주를 부르며 화원으로 뛰어든 호동왕자의 눈에 비친 낙랑공주의 시신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큰 공을 세웠으면 뭐하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제1왕비의 모함으로 왕위에 오를 기회마저 박탈당했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희생해 제 욕심만 채운 것은 아닌가 했었는데 호동왕자는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였나 보다. 정치에 환멸을 맛본 호동왕자는 자결을 선택했으니... 그런데 이것은 좀 다른 내용인데, 그 이후에 왕위에 오른 해우가 개망나니짓으로 나라를 망가뜨려놨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적자, 서자 구별말고 왕이 될 만한 자질을 검사하고 왕으로 정할 것이지.. 대무신왕은 참...

 

사랑에 목숨 바쳐 그 뜻을 이룬 낙랑공주는 마지막 낙랑국의 이름 모를 공주이지만 정말 여걸의 이름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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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영성작가들, '예수님의 비유'를 말하다 기독교 영성작가 시리즈 1
존 파이퍼.헨리 나우웬 외 영성작가들 지음, 최은미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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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번쯤은 들어봤던 영성작가들, 즉 헨리 나우웬, C. S. 루이스, 마르틴 루터, 제임스 패커, 빌리 그래험, 데레사 수녀, 디트리히 본회퍼, 존 칼빈, 브레넌 매닝... 이런 작가들이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생각한 한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예전부터 막연하고 모호하고 심지어는 신비하게 다가왔던 터라 그런 책이 있으면 읽고 싶었었다. 그 이유인 즉슨,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선생 노릇을 하면서 생긴 고민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비유를 잘 들어가며 설명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는데 막상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려니까 비유라는 놈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던 탓이다. 이제서라도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같은 비유도 읽어 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되기 때문인지 이 책에는 같은 비유를 여러 작가들이 설명해놓은 것이 많았다. 처음엔 같은 말이 반복되네? 하며 식상하게 생각되었는데 계속 곰곰히 읽으니까 하나의 비유로 다양한 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것을 말한 의도와 목적, 시대적 배경, 주변 환경까지 꼼꼼히 고려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총 12개의 항목에 따라 나뉘어서 비유를 이야기하는데 주제별로 묶어서 비유를 한 번에 훑어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은 출퇴근 길에 짬짬히 읽을 만한 것으로는 추천해주지 못할 것 같다. 한 번 쭈-욱 읽고 먼 산을 보며 곰곰히 자신의 상황과 과거의 경험을 생각해봐야 하기에 골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나을 듯 싶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을 땐 힘들었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단 머리가 아팠다고나 할까. 사람 중에 자신의 잘못을 들쑤시는데 안 아플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읽는 중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건 염두에 두도록 하자. 나만 그런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경건 서적은 왠지 다른 책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나라][예수를 따름][섬김과 순종][우리의 이웃을 사랑함][기도][겸손][재물][하나님의 사랑][감사][하나님의 통치][영적 생활][그리스도의 재림].. 이렇게 총 12개의 주제로 엮어졌는데 정말 감동적인 구절이 많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사실 정확히 알지 못하고 대충 지내는 부분이 간혹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도 말끔하게 설명해주기도 해서 좋았다. 왜 전도를 해야 하는지, 왜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의 이웃은 누구이며 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면서 왜 그러는지 이유를 정확히 몰랐던 물음에 대해서 해소가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이웃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면 당연히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천하다 멸시했던 사마리아인이 될 것이다. 이것을 보며 우리는 이웃이란 우리가 만나는 누구든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일어났던 이교도는 마구 죽였던 십자군 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분쟁, 옛날 중세 때 일어났던 마녀 재판 등 사람들이 행했던 행동 중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된 행동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제일 의아하고 이치에 맞지 않게 여겼던 것은 중세시대의 기독교이다.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 물론 중세시대의 신학자들 중에도 대단한 분들, 존경해야 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중세시대에 자행되었던 잘못된 교리들을 생각해보면 어찌 같은 예수를 믿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이교도에 한해서는 당연히 죽여도 된다는 사상을 가진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서 종교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진 많은 전쟁들을 보면 어찌 앞 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할 때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원주민의 문화를 다 갈아엎었던 것도 정말 말도 안 된다. 내가 그 시대에 살아보지 못해서, 내가 침략자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던 것이 아니라 돈과 명예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이었을 테니. 지금 내 행동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가끔 나도 눈이 시뻘게져서 돈을 쫓곤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과거, 그리고 이 순간에도 뭔가에 씌여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된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일어난 게 종교개혁이지만 지금은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어언 5세기가 지난 후라 그런지 그런 개혁이 한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은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같이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창조에 바탕을 두고 그렇게 행해야 한다.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장 큰 대가를 치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핵심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랑받아야 한다.  

- 프란시스 쉐퍼

 

이 글귀를 읽고 다시금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아, 내 생각이 맞았어.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고 귀히 여김을 받아야 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로 이거였어. 아무리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기독교가 그것을 믿는 인간 대신 욕을 먹어도 그 가르침은 절대 변하지 않아. 거짓이 아냐. 결단코 바른 진리야. 이런 마음을 말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기독교에 욕을 먹게 만드는 사람들처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부분을 말끔히 해소한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어렵다. 이것은 단순히 머릿속으로 알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삶에 체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계속 틈틈히 읽고 내 마음과 생각과 삶을 제대로 찾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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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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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별을 백만 개나 주고 싶다. 정말 올 2008년도에는 대박책들만 만나는 것 같아 행복할 뿐이다.

 

내가 책을 읽고 기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작년 11월 정도이다. 이제 일 년정도 되어 가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 그나마 행복했던 건 한 권을 가지고 지지부진하게 읽지 않고 읽어야 할 책들은 재깍재깍 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책이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120여 권이나 되었다. 예전에도 책을 좋아했고, 읽는다고 읽었었지만 그 때는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음에 더 말해봐야 무엇하랴. 하지만 지금은 책을 읽고도 다시 머릿속을 정리하여 서평을 쓰는 시간까지 합한다면 확실히 과거에 책을 읽었던 시간보다도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해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120여 권이란 수치는 모두 서평을 썼던 것만을 말한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에는 책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시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은 지금까지도 기억나지만 그것은 재미있게 읽은 한 두권의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었던 탓일 뿐 절대 다독은 아니었다. 사실 내 성격상, 집에 틀어박혀 노는 것을 좋아하기에 집에서 책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님의 관심 부족이라고 해야 할까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텔레비전이란 영상에 열광하는, 다시 말해서 시각적인 정보에 너무나 약한 내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내 모습은 책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런 내가 책을 손에 들었던 것은 대학 졸업 후, 독서와 관련된 학원에 다니고부터이다. 입시학원에서는 책 읽기는 꿈도 못 꿀 일이었고, 그나마 좀 여유롭고 자기 계발이 가능했던 독서 관련 학원과의 조우는 내게 생각지 못했던 선물을 안겨주었다. 학원에 항상 좋은 책이 구비되었던 것도 한 몫을 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점차적으로 할 수 있게 한 활기찬 학원 분위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 너무나 부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항상 내 이야길 들려준다. 내가 하루에 몇 번이나 책을 보는지, 한 달이면 얼마나 책을 읽는지, 책이 왜 좋은지, 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너희들이 부러운지.... 내가 어릴 적 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온 사람들과 말을 섞을 수 있을 만큼 아직은 내공이 쌓여지지 않아서 어디가서 책을 읽는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다는 건 나만의 만족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책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김열규 교수님은 내게 신처럼 위대한 분이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와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으로 책 읽기를 하고 계셨으니... 그 분도 이제 이 연세(1932년생)가 되신 후에야 그 때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옛날이야기가 자신의 책 읽기의 시작이었음을 아셨을 테지만 엄마의 동화책 읽어주는 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하였던 나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어쩌면 나는 우리 가족 중에 돌연변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가족 중에서 책에 이렇게 파고드는 사람은 나 밖에는 없으니...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책을 읽었다고 하는 분들의 책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기도 했지만, 내용이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전문적이여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지 못한 상황이 계속 되자, 이제는 덮어놓고 겁부터 집어먹고 보는 나인지라 이 책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뻔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사실은 띠지에 붙어있는 '어머니의 <언문 제문>에서 소로의 <월든>까지! 독서, 그 짜릿한 지식의 쾌락'이란 말이 나에게 크나큰 두려움을 주었다. 소로의 <월든>이야 읽다가 포기했을 만큼 어려웠지만 들어는 봤던 책이었는데 내게 문제가 됐던 것은 "어머니의 <언문 제문>"이었다. 여기서 어머니란 내게 젖을 물려주고 빨려주는 그 어머니를 말하는 게 맞을 터인데 <언문 제문>은 무엇이야~ 하는 생각에 또 내 무식이 들통이 났음을 아프게 인식하면서 도망가려 했었다. 그러나 이젠 절대 도망가지 않았음을 하늘에 대고 감사하다. 언문 제문이란 한글로 쓴 제문인데 '출가외인'인 딸이 친정 부모의 초상에 와서 상청에서 읽는 글을 경상남도 중서부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한단다. 아이고~ 아주 명쾌하게 알려주는 김열규 교수님의 설명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열심히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렇게 [서 _ 책, 내게로 오다][독 _ 읽기의 소요유]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것부터가 내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보통 라고 읽기에 '독'이 먼저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이 단순하지만 일상적이지 않는 표현에 나는 뻑~ 갔다. 참, 난 단순해~ ㅋㅋ 어쨌거나 김열규 교수님께 어렸을 때는 책이 먼저 다가왔고, 그 후 나이가 들어서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풀이해주셨는데 아직 나에겐 책이 다가오는 수준이니 김열규 교수님의 내공을 쌓기 위해서라도 절대 책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단 생각이다. 책은 처음엔 듣기로 오고, 그 후엔 보기로, 소리내어 읽기로, 마지막으론 외우기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들려줘야 한다는데 정말 아쉬울 뿐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었다면 천재가 되었을지 누가 아랴. 이 부분은 나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직장이 독서 관련 학원이다 보니 이런 것은 이제 도가 텄다.

 

두번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시를 읽는 방법, 소설을 읽는 방법, 논설을 읽는 방법을 알기 쉽게 제시해주었는데 시 읽는 방법이 역시 어려웠다. 내가 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는, 아니 전혀 읽지 않고 좋아만 하고 있는 터라 그런지 몰라도 어렵게 느껴졌다. 시 읽는 방법 중 두 번째 방법, 뜯어보고 헤쳐보고 다시 한데 묶어 보고_ 에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최근 유행하는 기호론에서 나오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설명한다. 세 연은 같은 패러다임이니까 공시적으로 볼 수 있고, 그 세 연이 실제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되니 통시적으로도 볼 수 있단다. 맞나? 정말 어렵다. 같은 묶음 속에 속해있는 단어들을 옆으로 벌려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도통 모르겠다.

 

어쨌던 간에 김열규 교수님의 책 읽는 여정을 죽 따라왔는데 정말 멋있고도 아름다웠다. 나에겐 동경 그 자체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려놓을 수 없으니 그 분과 같은 경험을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만의 책 읽기 여정을 만드는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나도 열심히 책 읽기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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