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사전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카트린 파지크.알렉스 숄츠 지음, 태경섭 옮김 / 살림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무지의 사전>은 정말 독특한 책이다. 책이란 건 모름지기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보는 거라 여겼던 나에겐, 특히 더 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에 대해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모호하게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뭐,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히 모르는 것을 주제로 했으니 저자들도 그것에 대해 많은 가설과 막연한 추측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하나의 과학적 사실들이 사실은 여러 가설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 가설이 검증되기 위해서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무지의 사례가 [지각판구조]이다. 우리가 중학교 과학시간에 지진이나 화산을 배울 때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 환태평양 조산대이든가 대륙이동설이라든가 맨틀의 대류 등 여러 과학적 "사실"로 알고 있었던 이것들이 본래는 하나의 "가설"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허~참... 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이런 가설을 뻔뻔하게 교과서에 실어놓고 그게 사실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니... 교과서에 정 실을 내용이 없으면 실어놓고 그 외에 여러 가설이 더 있다는 언급만 해줘도 이렇게 혼란스럽지가 않았아~~ 반평생을 판구조론을 진리로 믿었던 내가 참 바보 같아 보인다.

 

이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내용에서부터 한번도 듣도보지 못한 내용까지 다양한 내용이 여기에 실려있다. [제1부 감각의 무지][제2부 사물의 무지][제3부 인간의 무지][제4부 동물의 무지][제5부 우주의 무지][제6부 현상의 무지]으로 나뉜 항목대로 여러 이야기가 나와있는데 내가 읽기에는 참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온 내용이 전반적으로 내가 모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는 것을 전제로 해서 설명된 내용이 심각할 수준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어려운 걸 나름 즐기면서 - 여기서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ㅋ - 한껏 폼을 내면서 읽어댔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었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이 카트린 파지크인지 알렉스 숄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름의 유머를 구사하는데 나랑 코드가 맞았다. 껄껄껄 하며 웃게 만들지는 못해도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을 수 있게 해주었기에 상당히 머리가 아플 때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조각조각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이어서 나처럼 통째로 쓸 시간이 없는 사람에겐 상당히 편했다. 그래도 나는 왠지 뒷부분이 재미있어 보여도 앞부터 차례대로 읽어댔지만 말이다.

 

정말 신기한 내용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내가 모르는 내용이란 이야기를 이미 했을거다. 그런데 그런 신기한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자간과 문맥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렇게 읽는다고 해서 내게 그것에 대한 배경지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 이랬겠구나~ 오! 요런 사건도 있었나보지? 하는 숨은 그림을 찾아가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중에 하나가 [퉁구스카 폭발사건]이다. 가만히 읽어보니, 이 내용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하는 인식과 아~ 요래서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모르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가 1908년이었고, 주변에 인가가 없었기 때문에 폭발의 원인을 2008년 현재까지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5,000km도 넘게 떨어져 있는 예나에서도 지진이 기록되었고, 압력파는 영국에서도 기록이 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큰 폭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거기가 인가나 대도시였다면 수천만명의 인명 피해와 수천억원의 재산피해가 났을 때지만 다행히 입은 피해라고는 나무들이 시꺼멓게 타거나 누워있는 정도 뿐이다. 사람들은 이 폭발의 원인을 운석이 떨어진 것이니 혜성이 떨어진 것이니 땅에서 올라온 기체에 의한 것이니 하고 말들이 많지만 해마다 수십 편의 시나리오가 발표된다고 하니 아마도 이것도 '무지'로 남을 것 같다.

 

이 부분에도 피식거리게 하는 유머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요거다. 앞부분에서 폭발 후에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서는 밤 2시 반경까지도 골프를 칠 수 있을 정도로 환했다는 이야길 들려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끝을 맺는다. 마침내 누군가가 퉁구스카 폭발의 원인을 발견한다면, 사람들은 그 원인을 간단한 형태로 변환시켜 늘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밤 2시 반에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를 치는 일이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ㅋㅋㅋ 폭소를 터뜨리게 하진 않지만 피식거리며 실소를 머금을 정도는 되지 않는가. 앞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뒷부분에서 받아서 끝맺는 경우가 많는데, 난 요런 거 좋아한다. 그리고 아주 예전에 일어났던 폭발을 뭐하러 연구할까 했었는데 여기 마지막에 나온 것처럼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판에 와서야 드니 역시 문맥을 꼼꼼히 읽는 것은 중요하다 싶다.

 

도널드 럼즈펠드의 말의 인용하면서 마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무엇을 모르는지부터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알려지지 않은 무지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알기 위한 과정의 전초전이 아닌가 한다.

 

알려진 앎(known knowns)이 있다.

우리가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가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알려지지 않은 무지(unknwon unknowns)가 있다.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매년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도널드 럼즈펠드(미국의 전 국방장관,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우하는 네오콘 신보수주의자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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