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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웅녀, 유화부인, 소서노, 낙랑공주, 허황옥, 도미의 아내, 우황후, 한주, 미실궁주, 평강공주, 선덕여왕, 선화공주, 문명황후, 연수영, 진성여왕, 신명순성황후, 천추태후, 기황후, 박어우동, 문정왕후,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주논개, 소현세자빈 강씨, 임윤지당, 명성황후...이 27명의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아는가. 황원갑이라는 사람이 자기 소신껏 가려낸 우리 민족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여걸이시다. ㅋㅋ 물론 소신껏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 분들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여기 나온 27명의 인물을 다 알겠지만 역시나 우리것에는 작아지는 -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것에 대해서 강한 건 절대 아니지만 ^^;- 나이기에 거의 반이나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러나 같은 여자라 그럴까. 내 무식이 통통 튀는 증거를 들이대 준 가슴 아린 책이지만 이런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하다.
제일 처음에 웅녀라는 인물을 소개했을 때부터 사실 적잖이 놀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신화에 보면 웅녀는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생활했던 곰이었던 여자인데 말이다. 오호~ 웅녀가 사실 실존 인물이었단 말인가. 황원갑 씨는 그녀가 조상신이며 수호신인 웅신을 믿는 웅족의 씨족장 겸 제사장의 딸이라고 풀이했다. 저자가 서문에도 밝혔듯이 사료가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대체한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전해내려왔던 신화를 토대로 나름 설명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설명은 이렇다. 신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웅신을 숭배하는 웅족과 호신을 숭배하는 호족는 어느 정도 사이 좋은 이웃 부족이었는데 태백산 기슭에 수천 명의 환웅족이 청동기를 들고 나타나서 수적으로도 무기로도 이길 수 없었던 웅족과 호족이 환웅족의 지배 하에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환웅족의 환웅천왕은 종족간의 통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웅족의 씨족장이자 제사장의 딸인 웅녀를 아내로 삼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환웅족, 웅족, 호족 등을 통합하여 최초의 나라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을 가지고 곰을 숭상하는 부족,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환웅족이라는 부족이 있을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정말 새로운 시도라 여겨진다. 상큼한 기분이랄까. 역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 그러나 이 책이 신화를 토대로 가설을 나열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쉬이 읽히리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웅녀] 이 후부터는 아주 어려우니 말이다. 저자가 한국사에 조예가 깊은지 사정없이 여러 문헌들을 소개해 코 앞에 대령해 놓으니 안 먹으래야 안 먹을 수가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일연의 <삼국유사>나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외에도 고려 때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 조선 때 편찬된 <세종실록>, <응제시주>,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을 참고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헌인 <위서>, <고기>, <배구전>, <통전>, <한서>, <예기>, <북사>, <후한서>, <양서>, <주서> 등 여러 문헌을 사정없이 집어넣는다. 사실은 이런 문헌들의 공헌(?) 덕분에 중간 중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읽거나 그래도 안 되면 눈물을 머금고 넘어가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총 621쪽의 분량이니 끝까지 사용되었던 문헌만을 조사해봐도 끝이 없을 듯 하지만(앞서 인용한 문헌은 모두 [웅녀]와 [유화부인] 편에 나온 것만이다. ^^;) 그래도 내게서 읽는 재미를 빼앗아가진 못했다. 이런 문헌들의 무차별 공격에도 불구하고 애틋하고 안타까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사랑이야기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애틋하고 가슴 먹먹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 [낙랑공주]을 소개해 올리겠다. 사실 무식이 통한 내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러브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느 나라인지, 호동왕자는 정말 나~아쁜 놈인지(낙랑공주가 죽은 이후의 이야기를 몰랐었다..), 호동왕자의 아버지는 누구고 그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전~혀 몰랐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구세주와 다름없다. ㅋㅋ 요즘 한창 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나라>의 주인공인 무휼, 즉 대무신왕이 바로 호동왕자의 아버지였던 것!!! 우와~ 몰랐어!!! 그러니까 낙랑국과 고구려 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란 말씀이군. 대무신왕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이긴 했지만 제2왕비가 낳은 아들이라 서자였던 호동왕자는 용모도 빼어났고 성품도 착한 데다가, 무술과 담력까지 뛰어나 그 당시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런데 서자여서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염려한 대무신왕이 호동왕자가 낙랑국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우면 그 공을 인정받아 왕위에 쉽게 오를 것을 예상하고 왕자에게 친히 지령을 내린다. 낙랑국에 있는 자명고와 자명각의 정체를 알아오라는... 그래서 사냥꾼 차림으로 무사를 거느리고 가는데 낙랑국의 왕도 수려한 호동왕자를 보고 그를 사위로 맞이하면 대강국이었던 고구려가 자기 나라를 어쩌질 못할 거란 속셈을 가지고 호동왕자에게 연회를 베풀어준다. 그때 짠! 하고 아름다운 낙랑공주를 소개하여 호감을 갖게 하는데... 첫 눈에 서로 반해버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첫 만남 때 신혼 첫날을 보내게 된 두 사람은 고구려로 돌아가게 된다. 사랑에 빠졌으니 무엇이 두려울까. 그러나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에게 명령받은 자명고와 자명각의 정체가 점쟁이 부부(이 부분은 저자의 상상력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대무신왕은 자명고, 자명각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큰 수확이지만 낙랑국의 공주와 결혼을 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낙랑국와 고구려가 통합할 수 있을지 낙랑국 왕에게 사신을 보내 의견을 물었지만 길길이 날뛰는 낙랑국 왕 때문에 고구려는 결국 낙랑국을 치러가기로 한다. 그로써 시작되는 비극,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자명고와 자명각 부부를 암살할 것을 명하고 꼭 살아있으라고, 자신이 구하려 가겠다고 약속한다. 호동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낙랑공주는 자신의 나라를 저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이미 호동왕자의 뜻이라면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잘못되었을까. 글쎄다, 쉽다. 이런 모습을 보고선 남자들은 여자들이 감정에만 휘둘리는 동물이라고, 대의를 하지 못한다고들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낙랑공주의 그 결심이 이해가 된다. 고구려가 침략해서 낙랑국을 멸망시킨다면 그것은 국력의 차이이지 않은가. 물론 자명고, 자명각 부부가 살아있었다면 좀더 저항을 할 수는 있을 것일 테지만 이미 고구려는 중원을 누빈 전력이 있던 나라가 아니던가 말이다. 아무리 비옥하고 물자가 많아 살기 좋은 낙랑국이라고 하더라도 군사력이 고구려보다는 약한 것이 당연하다 싶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낙랑공주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낙랑국이 멸망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비난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우호적으로 고구려와 합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낙랑국의 왕이 아닌가 한다. 평생을 살아봐도 낙랑국이 중원을 호령할 날이 있을까 싶은데.. 낙랑국은 국가 안정을 꾀하고 고구려는 국방력에 힘을 기울인다면 삼국 통일은 고구려의 손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쨌거나 성질 급한 아버지를 둔 죄로 낙랑공주는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하염없이 낙랑공주를 부르며 화원으로 뛰어든 호동왕자의 눈에 비친 낙랑공주의 시신은 얼마나 처참했을까. 큰 공을 세웠으면 뭐하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제1왕비의 모함으로 왕위에 오를 기회마저 박탈당했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희생해 제 욕심만 채운 것은 아닌가 했었는데 호동왕자는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였나 보다. 정치에 환멸을 맛본 호동왕자는 자결을 선택했으니... 그런데 이것은 좀 다른 내용인데, 그 이후에 왕위에 오른 해우가 개망나니짓으로 나라를 망가뜨려놨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적자, 서자 구별말고 왕이 될 만한 자질을 검사하고 왕으로 정할 것이지.. 대무신왕은 참...
사랑에 목숨 바쳐 그 뜻을 이룬 낙랑공주는 마지막 낙랑국의 이름 모를 공주이지만 정말 여걸의 이름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