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앤드 커맨더 2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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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권 중반부터는 오브리-머투린 콤비의 분위기가 좀 나타난다. 사실 아무런 이유없이 서로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나만 뻘쭘했었다. 언제 나도 모르게 친해진거야~ 뭐, 이런 소외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한데 읽다보니 좀 빨려들어갔다. 1권의 마지막에서 스티븐과 제임스가 과거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푼 다음에 솔직한 제임스의 속내를 들어볼 수가 있었다. 사실은 잭과 제임스가 손발이 맞아야 더 뛰어난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기에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속내를 물어보니 제임스는 남색꾼인 마셜 조함장이 잭을 은근히 연모한다는 것을 잭이 알고 칭찬을 하면서 그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잭이 나포를 목숨처럼 생각하며 돈을 너무 밝히는 것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그때 스티븐이 잭을 정말 좋아한다고 느꼈다. 잭이 남색에 대해 둔감한 것이나 그의 인생 철학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옹호해주었기 때문인데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스티븐은 자기가 좋아하는 잭과 제임스 둘이 서로 가까워지도록 마음을 써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쉽게도 그것이 별로 신통치는 않았지만 말이다.

 

2권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권에서 잭이 선원들을 닥달하며 훈련시켰던 대포발사이다. 전에는 느릿하게 움직였던 선원들이 경쟁심을 유도하고 반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성공적으로 반응하고 완벽히 훈련이 되어 있었다. 그럼으로써 몇몇 적국의 배를 성공적으로 나포했고 그 전리품을 받고 나니까 사기가 생겼다. 다만, 문제는 돈을 가지고 육지에서 흥청망청 써버린 탓에 다시금 기강이 헤이해져 버린 것이다. 계속 이런 과정이 계속되는데 이 와중에 잭과 제임스의 관계도 묘하게 바뀐다. 1권 때 제임스가 가진 불만 외에도 또 하나의 불만이 있었는데 호송업무를 하다가 적국의 배를 만났을 때 호송선 때문에 쫓아가길 포기하고 돌아온 잭의 결정에 대해서 제임스가 겁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그 생각도 잭의 용감한 전투 능력에 의해 없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제임스 딜런은 뭔가 내 마음에 안 들었다.

 

자연과학 학자로서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스티븐 머투린이나, 진정한 뱃사람으로 약간 실언을 하긴 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 잭 오브리는 성향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태도 때문에 내 마음에 쏙 드는데 - 심지어, 남색꾼인 마셜조차도 마음에 드는데 - 제임스 딜런은 능숙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부하를 다룰 때도 진지하고 엄격하게 하고 성품도 좋아서 특히나 부하들에게 존경까지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항해사인데도 불구하고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숨겨진 과거는 사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저 아일랜드 연맹의 한 사람으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독립투사로 생각하면 될 듯 싶은데 상부에서 잡으라고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아일랜드 독립투사 두명을 순순히 놓아준 것에 대해 심하게 자책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그대로 시행했으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지, 왜 그 내용을 마음에 담아둔단 말인가. 놓아준 두 명이 극도로 혐오스러운 사람이었음에도 생명을 살렸단 기분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 건가. 추악한 협박이라고 했으니 그들을 넘겼다면 제임스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굴복했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과거 열정적으로 몸 바쳤던 국가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벌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한심하다. 물론 그 사람의 성격이겠지만. 스티븐이 걱정했던 것처럼 너무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그의 멋진 모습을 계속 볼 수 없어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중요한 사건은 카카푸에고 호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에스파냐 배를 만나 나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사실 좌절감이 계속 쌓이고 있는 제임스나 잭에겐 돌아설 수 없는 중요한 탈출구가 되었는데 그만큼 장난 아닌 게임이었다. 전에 잭에게 나포되었던 배의 화물 주인인 에스파냐 상인의 보복으로 잭을 잡으려고 나온 배였는데 처음에 속여넘겼지만 다시 한 번 만나버려서 정면 돌파를 했다. 아무래도 선원이 50명 대 300명 정도의 전력 차이를 감안하고 하는 것인 만큼 상당히 위험한 전투였는데 그 만큼 잭의 피해도 컸다. 처음에는 대포로 하다가 더 이상 대포를 맞으면 큰일 날 것 같으니까 카카푸에고 호로 뛰어들어서 총과 칼로 싸웠다. 여기서 잭의 기지가 빛났다. 선원을 반 쯤 딴 데 두고와서 사람이 없었는데 한 번 우르르 몰려가서 싸우다가 밀리니까 에스파냐어로 50명 더~ 란 말을 소리쳐서 상대방의 헛점을 찾는 게 참 대단했다. 사실 이 부분은 나중에서야 이해했을 정도로 못 따라갔던 부분이긴 하다. 결구 카카푸에고 호의 함장을 죽이고 나서 그 큰 배를 나포해왔다. 소피 호가 너무 작은 배였기에 평소 잭을 고깝게 여기던 선임 함장들도 카카푸에고 호를 보곤 모두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아낌없는 축하를 해주었다. 아쉽게도 그런 승리로 인해 승진을 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나쁜 일은 덮쳐온다던가. 승진을 기대했던 잭과 선원들에게 어이없는 호송업무가 떨어졌는데 문제는 그 일을 수행하다가 소피 호가 나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소피 호가 작은 배여서 압도적인 물량공세 앞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였지만 잭은 끝까지 싸워냈다. 모든 대포, 모든 음식 등을 다 버리고 배를 최대한 가볍게 해서 도망가려고 해도 워낙 큰 배라 중앙 돛을 올리지 않아도 훨씬 빠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포는 되었지만 적국의 함장이 상당히 많은 호의를 가지고 포로를 맞았기에 별 무리는 없이 지냈다. 허나 제국의 함대를 나포된 함장들은 모두 군법회의에 소집되는데 싸워보지도 않고 나포된 함장들은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상당히 엄하다고 한다. 잭은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껏 그에게 닥쳐온 사건들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건지 평소보다 상당히 우울해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딜런과 속을 터놔버리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이 아무래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어딜 가나 사람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 말일 게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과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린 알지 않는가. 잭이 스티븐이라는 보물을 손에 넣었던 것은 너무 다행한 일이지만 딜런이란 또다른 보물을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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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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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어떤 모험소설을 읽었냐고 물어본다면 우물쭈물 말을 못할 것이 틀림이 없다. 실제로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요번에 읽은 능동적인 모험 소설이 아니라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의  [나의 산에서]나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같은 수동적인 모험 소설 몇 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딱히 소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남자들의 전유물과 같은 모험 소설은 솔직히 끌리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겠다. 뭐, 무협지도 읽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소설에 내가 끌렸던 이유는 아무래도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방대한 지식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배를 타면 아무리 짧더라도 멀미를 하고야마는 나에겐, 배에서의 모험 자체가 모험이 아닌가 싶지만 그것도 내 무지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번의 모험으로 이것을 깨달았다. 비문학의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문학 중에 나랑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는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문학은 아무래도 작가와 독자가 감정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마스터 앤드 커맨더 1]의 처음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 잭 오브리라는 뱃사람과 스티븐 머투린이라는 학자의 엉뚱한 만남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잭-스티븐의 명콤비라는 문구를 읽고 시작해서 그런지 첫 번째 잘못된 만남이 어째 아슬아슬하고 불안해보였고 또한 그 마음이 소설 속 인물들이 잘 되었음하는 내 바람에 영향을 미쳐 책을 읽는 내내 안달복달하게 했다. 어쨌거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친하게 될 만한 시간적 여유는 어느 때나 필요한 법인데 나는 완전 다 된 밥을 바랐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안절부절 못했다. 잭 오브리와 스티븐 머투린은 음악회에서 매너없는 잭의 행동 때문에 서로를 알게 되었다. 잭이 음악에 너무 심취하는 바람에 잘못된 박자로 음악을 지휘하는 걸 보고 예민한 스티븐이 그것을 제지하게 한 것!! 잭도 이성이 남아있던 상태라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익히 알지만 어디 사람의 마음이 그런가! 자신은 음악에 심취했던 죄밖에는 없다고 항변할 수밖에~~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자 잭은 받은 편지에, 소피 호라는 배를 지휘할 임시 함장이란 직함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잭이 평소에 바라마지 않았던 그런 꿈꾸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음악회에서 어떤 인상으로 헤어졌던 간에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두 번째 스티븐과 만났을 때도 아주 유쾌하게 대할 수 있었다. 내가 불안해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만약 이때 알맞게 편지가 오지 않았다면 잭과 스티븐은 서로 영원히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인연을 만든다는 건 정말 인간인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내심 만약~~ 이란 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그렇게 유쾌하게 스티븐에게 점심을 대접한 뒤, 동물, 식물 등 닥치는 대로 연구하기도 하고 해부를 하는 등 일반외과의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스티븐에게 잭은 군의관으로 같이 소피 호에 승선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정식 군의관은 아니지만 당장 군의관을 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 게다가 대부분의 함선에서도 군의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잭에게는 스티븐이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스티븐이 군의관으로서 소피 호에 올라타고, 소피 호의 원래 대원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려 대원들을 충원하고 대포를 구입하는 등 여러 준비를 하는 과정이 거의 1권의 반을 차지한다. 세심하게 그리고 개연성있게 정리하는 거야 그 상황을 잘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에 작가로서 꼭 필요한 자질이겠지만 이 시대에 실제로 배를 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박학다식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래서 인간은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고 하는 걸까. 처음에 이 책에 끌렸을 때는 작가의 박학다식함에 끌려놓고서 실제로 읽고 나니깐 그 박학다식함 때문에 질려버리다니~~ 실제 작가가 내 꼬락서니를 보았다면 쯧쯧~ 혀를 차지는 않았을런지.

 

소설 반 정도의 준비과정이 지나면 소피 호는 항해를 시작하는데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제임스 딜런이란 이 인물은 1등 항해사로 잭의 부관으로 임명을 받고 소피 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와 스티븐에게 묘한 과거가 있었음을 암시를 해주고 마지막에 풀어주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하게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간이 작은 건지 스티븐과 잭이 좋은 관계를 맺는데 제임스가 방해를 할까 봐 어찌나 노심초사했던지..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웬수관계는 아니였다. 그나저나 잭은 소피 호에 빠져있는 기강을 다시 세우고, 적군의 배를 나포하여 전리품을 챙기는 데 가장 중요한 대포 발사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나중 2권에서 그 성과를 볼 수 있는데 1권을 읽을 때는 뭐하는 일인가 했다. 밑에 있는 선원들이 얼마나 불만을 많이 가지는지도 모르고 일을 진행한다고... 이 때가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이 있기 2년 전이었고 한창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 전 승승장구 때였으니 잭의 행동은 영국 함장으로서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 부분은 내 짧은 배경지식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세계사를 좋아하는 데도 이상하게 전쟁은 싫으니, 참... 넬슨 제독의 트라팔가 해전도 검색해보고서야 알았으니... 

 

그런데 말이다. 내가 즐겨보는 만화책 [원피스]에 보면 물론 위대한 해적을 꿈꾸는 루피 일당의 이야기가 전혀 해적같지 않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 만화 속에는 이상이라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서라든가, 친구와의 의리, 나라를 위한 애국심 등 여러 이상적인 이야기를 무리없이 그려내고 있어 그들의 행동이 단순히 폭력을 휘둘러서 돈이나 빼앗는 것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소설 속에서 스티븐이 한 번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지만 도대체 적국의 배를 나포해서 그 전리품을 가져가는 게 뭐 그리 대단한 행동일까 싶다. 물론 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희나 의리나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대포나 펑펑 쏘아대며 자기 욕심을 차리기 위해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빠른 판단력에 존경을 받을 만한 인품이 뒷받침되는 넬슨 제독 같은 함장이 대단한 인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 한 둘 있다고 해서 다른 모든 어리석은 함장까지도 봐줄 순 없는 노릇 아닐까! 마치 하트 함장처럼 말이다. 고지식하고 사사건건 눈엣 가시처럼 여기는 그런 상관이 있으면 정말... 안된 일이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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듕귁과 오렌지 :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
고운기 지음 / 샘터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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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로만 보자면 살며시 보푸라기가 일어야 제 맛이 날 것만 같은 - 바로 한지 같은 - 느낌의 표지이지만 아쉽게도 실물을 만나면 매끄럽게 잘 빠진 표지와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쓰다가 남은 노트나 분해된 책을 이 책처럼 구멍을 뚫어서 옛날 책 모양으로 만드셨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표지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떡 하니 봐도 이 책은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그래서 당연스레 연상할 수 있듯이 옛날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현재의 기준으로 비추어 보아, 과거의 사실 - 즉, 역사 - 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내가 장르를 분류하길, 역사 수필이라고 해놨는데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저자나름의 개똥철학을 풀어내는 터라 나름 붙여보았다. 부제로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이라고 나와있으니 그리 틀린 제목은 아닌 것 같다.
 
요즘에는 역사에 대한 책에 붐을 일으켰는지 한창 잘 나오고 있다. 특히 사극드라마가 대세였던 작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역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지만 '역사'란 단어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나는 '역사'라는 말을 하면 뭔가 심오하고 특별한 사람만 볼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뭐, 전적으로 많이 파고들지 않는 내 불찰이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라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냥 단순히 시를 읽다가도, 국경일에 대해 생각만 하더라도 역사랑 엮어서 그만의 개똥철학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쉽구나 한다.
 
정말 새롭게 보였던 것은 조기 유학의 원조인 최치원에 대한 일화이다. <삼국사기>에 "최치원이 돌아왔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려 있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참 신선했다. 먼저 최치원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중국의 과거에 합격하고서는 중국 관리로 10년을 지냈고, 황소의 난을 평정할 때는 <토황소격문>까지 써서 그 이름을 드높이기까지 했던 해외 유학파였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던 거라 그리 신선하진 않았는데 -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어찌나 신선했었는지~ - 그 이후가 참으로 놀라웠다. <삼국사기>에는 28살에 돌아오고도 9년이나 지난 후에야 진성왕 8년에 겨우 한 마디 보일 뿐이라는데.... "최치원이 시국과 정무에 관한 의견 10여 조목을 올리자, 왕이 좋게 여겨 받아들이고 그를 아찬으로 임명하였다" 꼴랑 이게 다다. 이런 짤막한 기사를 끝으로 그의 이름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원래 중국의 과거인 빈공과에 합격하면 그것만으로도 신라에서는 대단한 영예를 가지는 거라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데 최치원은 중국에서 자그만치 10년이나 벼슬을 하고 온 사람이란 말이닷!! 해외 유학파라면 지금도 알아주는 세상인데 과거 신라 때도 그랬다는 것도 좀 우습고 또한 마지막 말은 좀 아프기까지 한다.
 
성공한 조기 유학생이 그 정도였다. 물론 중국이건 신라이건 크게는 시절 탓이었다. 오늘 우리는 잘 키운 인재들을 적절히 쓸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조기 유학생이 최치원처럼 우울하게 지낸다는 소식은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당시엔 증국과 신라라 망해갈 징조를 보이고 있어서 그랬다 치지만 지금은 어쩐 일인지... 현실이 아프도록 날카롭게 꼬질 수 있다니 역사를 배우는 것이 바로 이것을 위함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과거 신라처럼 망해갈 징조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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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더 데레사 지음, 이창희 옮김 / 마음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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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라고 하면 정말 봉사와 희생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책을 보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79년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던데... 그녀의 말을 짜깁기해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그런 분이 한 말은 설득력이 100%가 넘어서 사람의 마음에 울리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 책에 간략하게 소개된 글을 보면, 그녀는 1910년에 오늘날 마케도니아에 속하는 스코프예에서 아녜스 곤히야 브약스히야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셨단다. 그런데 그녀가 인도에서 봉사를 하다보니, 그리고 인도에서 주목을 받다보니 서양인이겠거니 했었는데 스코프예가 어딘지는 몰라도 약간 동양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28년 아일랜드의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1년이 안되어 수련수녀로 인도로 파견되었다고. 거기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콜카타에 있는 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서 20년 이상을 교사로 근무한 후 1946년에 피정(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을 떠나는 길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빈민가로 들어가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에게 봉사하라"는 부름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948년에 로레토 수녀회를 떠나 콜카타 대주교의 감독 하에 빈자들 사이의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사실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그리고 봉사와 희생은 본받을 만하지만 그것을 배운다고 내게 득이 되는 뭔가를 남겨주지 않는다고 그녀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그냥 유명인이라는 인식 정도밖에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아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정말 위대한 일을 한다고,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갈 수도 없을 거라고 지레 겁 먹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는데 이 책으로 그 인식이 바뀌어 버렸다.

 

나눔, 배려......

이러한 것들이 공동체 생활을 받쳐줍니다.

서로를 위해 작은 일을 하면 큰 사랑이 태어납니다.

미소 한 번,

물 한 양동이 들어주기,

식탁에서 베푸는 작은 배려,

이렇게 작은 일들...... 작은 일들.

 

이런 작은 일들로 봉사를 할 수 있음을, 봉사나 배려라는 것이 그렇게 위대하고 큰 것이 아님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봉사나 배려라는 것을. 어머니께, 아버지께, 언니나 동생에게, 직장 동료에게, 지나가다가 마주 치는 사람들에게, 버스 기사에게... 이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마더 테레사가 해왔던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 옆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낮추어 바라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다니...

 

그리고 마더 테레사는 사랑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아픈 거라고...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따지지도 않고 재지도 않고 아무 조건 없이 아프도록 베푸신다고... 단순히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 말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지 않을 때도 너무나 많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지만, 가끔은 그 진심도 마음이 열려있지 않을 때는 곡해해서 들리거나 아예 진정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는 것을... 그런데 사랑이란 게 단순히 말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사랑을 베푸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픈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게 진정 사랑이다. 그렇기에 마더 테레사는 아이를 가지고 비유를 든다.

 

사랑은 진실하려면 아파야 합니다.

3일 동안 사탕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 어린이는

아프도록 사랑하는 어린이입니다.

 

라고... 정말 아름답고 쏙쏙 들려오는 비유가 아닌가...? 그리스도는 아프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런 외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도 아프게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아주 확실한 비유로 알 수 있었다.

 

예수님도 비유의 대가였지만 예수님의 모습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마더 테레사도 그런 비유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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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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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책을 보기 전에 서문을 보는 것은 물론이러니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것을 쓴 사람, 즉 저자에 대한 소개이다. 우선 이렇게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궁금하게 여긴 탓도 있고, 어떻게 하면 이런 배경지식을 가질 수 있는지, 또한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저자의 다른 작품 중에 더 좋은 책이 있는지, 혹여 내가 본 책은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저자의 약력을 꼼꼼히 본다. 그래서 저자의 약력에 꼴랑 이름 하나만 소개되어 있거나 아예 없거나 하면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샤를로테 케르너란 저자에 대한 약력을 보니 다른 건 모르겠고 딱 하나 내 눈을 끈 게 있었다. <블루 플린트>를 쓴 저자라는 것!! 몇 년 전에 그 책을 읽었었는데 정말 유쾌하고 행복한 내용은 아니지만 생명체를 복제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화제가 될 만한, 꽤 민감한 사항을 다룬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속에서는 인간 복제가 시행될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있고 인간 복제에 따른 도덕적인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에서 시작되는데, 인간 복제에서 파생될 수 있는 위험들을 어느 정도 잡아내서 참 기억에 남았다. 그 책을 읽은 지 꽤 지난 지금에서도 그 소설의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인물 간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데 이 소설도 그럴거라 기대가 되었다.

 

의사인 레나가 주인공인데 그녀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세심하게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 어떤 때는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의 괴벽 같은 몇몇 습관들이 귀여워보였고, 의사라는 직업을 천성으로 여기며 항상 노력하는 모습도 멋져보였다. 안타까운 그녀의 메마른 사생활 부분에서는 좀 아쉽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끝까지 가면 좀더 나아질 거야~ 첫 장면은 레나가 18세인 요제프라는 소년이 뇌사했음을 어머니께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요제프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가 딱 한 군데 뇌만 다쳤다. 그래서 몸은, 완벽할 정도로 아름다운 몸은 살아있지만 뇌만 죽어버렸다. 당연히 그날 뇌사 판정이 되어야 하지만 레나는 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72시간의 유예를 주게 된다. 그 순간부터 레나는 자신의결정 때문에 요제프의 장기수혜자들이 죽지는 않을까, 요제프의 몸이 72시간 사이에 돌연 사고사하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며 잠을 설친다. 그러면서 의식 저편에서 어렴풋이 깨닫는다. 자신이 아름다운 요제프의 몸을 보고선 그런 유예 시간을 주었음을. 허나 그 다음 날이 되었을 땐 도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후이다.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 깨달았을 거로 믿는다. 절제가 몸에 배어 있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여자!!

 

그런데 운명이 어떻게 이끌었는지 한 남자가 나타난다. 32살의 게로라는 화가... 그는 화가로서 이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유망주이나 교통사고로 온몸이 상해버렸다. 특히 오른손은 절단이 되어 화가로서는 재기할 수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데다가 신장도 고장났고 전신에 화상을 입어버렸다. 그에게 멀쩡한 것이라고는 뇌 뿐이었다. 운명의 날, 요제프의 엄마아 게로의 아내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들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그래서 요제프의 몸에 게로의 머리를 이식한다는 상상이상의 아이디어를 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레나는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전뇌이식을 이룰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찾아온 것에 흥분도 되었다. 마치 일이 이렇게 일어나도록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요제프와 게로의 상태가 딱딱 맞아떨어져 갔다. 뇌를 이식한다고 해서 나는 머리통을 열고 뇌를 꺼낼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고 머리를 뎅강 잘라서 이어붙이는 식으로 수술을 했다. 온갖 복잡한 수술 용어들이 나오는데 정말 저자는 그쪽으로 상당히 많은 자료를 준비를 했는가보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읽으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인지 허구인지가 상당히 궁금했었다.

 

상이함은 비교를 낳고, 비교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놀라움을 낳고, 놀라움은 경탄을 낳지만, 경탄은 교환과 결합에의 갈망을 낳는다.

 

어찌됐건 수술이 잘 이루어지고 레나의 감독 하에 그는 재활치료를 받고 1년 동안 게로의 아내, 이본느와 같이 살게 되었다. 아주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런데 뇌와 몸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수술을 시작했을 때 게로가 레나에게 물었던 질문, 괴물개 - 러시아에서 한 큰 개에게 작은 개 머리를 이식한 결과 - 중 자기는, 그러니까 머리는, 큰 개인가요? 아니면 작은 개인가요? 레나는 직접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생각하길 육체가 더 큰 영향을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참고로, 여기에서는 요제프가 좋아했던 초콜릿을 요제프/게로가 보면 입에 침이 고이진 않지만 위가 반응해서 마구 먹게 되었었다. 심지어는 무드가 조성이 되어서 이본느랑 수술 후 처음으로 부부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도 요제프의 몸이 반응을 해주지 않아서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걸 보면 정말 육체의 힘이 더 강한 것 같은데 말야... 실제로는 어떨까?

 

여기에서는 요제프의 호르몬이 게로의 호르몬보다 훨씬 많이 있어서 그랬을까?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모르겠지만 여기선 정말 육체의 힘이 더 큰 것으로 보여졌다. 이본느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오히려 이본느를 싫어하는 게로는 어쩌다 요제프의 애인이었던 리타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눈다. 아마도 요제프의 몸이 시켰던 것이겠지만... 사실 리타는 요제프가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조각조각 나뉘어서 기증되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을 알고 요제프를 기억할, 요제프를 이 세상에 남길 뭔가를 얻길 원했던 것!! 그러나 그것을 보게 된 이본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과의 연결고리가 점차 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내쳐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친다. 이제는 게로가 이본느와 이어주었던 그림마저 그릴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중요한 건 이것이다. 한 인간을 그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뇌인가? 몸인가? 처음 수술을 마치고 나서 요제프/게로가 자신의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럴까 싶지만, 그때 의사가 코를 잡으세요~ 했었는데 요제프/게로는 당연히 너무 쉽다고 하면서 오른쪽 눈을 찔렀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이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실제로도 그런지 알고 싶어졌다. 전뇌 의식이라는 게 실제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으나 소설로 보아도 정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하기가 어려울 듯 싶다. 요제프/게로가 18살의 몸에 32살의 머리가 만난 처음엔 사진으로 찍으면 너무나 차이나는 피부의 색조 덕에 너무나 경계선이 뚜렷해 어색했는데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개성이 잘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실제 나이 32살에서보다 조금 젊은 27살 정도로 추정하면 될 이 신인간은 점차적으로 게로으로부터, 요제프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의식을 키워가게 되었다는 것만 알려주겠다.

 

여기선 역시 주인공이 레나였다. 정말 멋진 여의사~ 그런 그녀가 이런 독보적인 수술에 성공을 하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재조정했는데 요제프/게로 즉, 요르게의 등장이 그녀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신인간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요르게라는 이름으로 지어준 것도 레나였는데 그 이름을 주었을 바로 그 때가 요제프와 게로에서 완전히 벗어났던 때였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자의식을 가진 인간이 한 명 탄생했는데 정말 무리없이 인간에 대해 많은 사고를 한다. 끊임없이~ 하지만 이런 수술에서 뭔가 잘못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수술 중 사망하는 것이야 그렇다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인격이 아예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심 그런 험악한 상상을 했더랬다. 하지만 내 상상대로 가지 않아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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