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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더 데레사 지음, 이창희 옮김 / 마음터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마더 테레사라고 하면 정말 봉사와 희생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책을 보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79년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던데... 그녀의 말을 짜깁기해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그런 분이 한 말은 설득력이 100%가 넘어서 사람의 마음에 울리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지만 이 책에 간략하게 소개된 글을 보면, 그녀는 1910년에 오늘날 마케도니아에 속하는 스코프예에서 아녜스 곤히야 브약스히야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셨단다. 그런데 그녀가 인도에서 봉사를 하다보니, 그리고 인도에서 주목을 받다보니 서양인이겠거니 했었는데 스코프예가 어딘지는 몰라도 약간 동양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28년 아일랜드의 로레토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1년이 안되어 수련수녀로 인도로 파견되었다고. 거기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콜카타에 있는 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서 20년 이상을 교사로 근무한 후 1946년에 피정(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을 떠나는 길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빈민가로 들어가 가난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에게 봉사하라"는 부름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948년에 로레토 수녀회를 떠나 콜카타 대주교의 감독 하에 빈자들 사이의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사실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그리고 봉사와 희생은 본받을 만하지만 그것을 배운다고 내게 득이 되는 뭔가를 남겨주지 않는다고 그녀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다. 그냥 유명인이라는 인식 정도밖에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아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정말 위대한 일을 한다고, 나 같은 사람은 따라갈 수도 없을 거라고 지레 겁 먹고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는데 이 책으로 그 인식이 바뀌어 버렸다.
나눔, 배려......
이러한 것들이 공동체 생활을 받쳐줍니다.
서로를 위해 작은 일을 하면 큰 사랑이 태어납니다.
미소 한 번,
물 한 양동이 들어주기,
식탁에서 베푸는 작은 배려,
이렇게 작은 일들...... 작은 일들.
이런 작은 일들로 봉사를 할 수 있음을, 봉사나 배려라는 것이 그렇게 위대하고 큰 것이 아님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봉사나 배려라는 것을. 어머니께, 아버지께, 언니나 동생에게, 직장 동료에게, 지나가다가 마주 치는 사람들에게, 버스 기사에게... 이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마더 테레사가 해왔던 일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 옆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낮추어 바라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다니...
그리고 마더 테레사는 사랑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아픈 거라고...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따지지도 않고 재지도 않고 아무 조건 없이 아프도록 베푸신다고... 단순히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 말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지 않을 때도 너무나 많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지만, 가끔은 그 진심도 마음이 열려있지 않을 때는 곡해해서 들리거나 아예 진정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는 것을... 그런데 사랑이란 게 단순히 말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사랑을 베푸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픈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그게 진정 사랑이다. 그렇기에 마더 테레사는 아이를 가지고 비유를 든다.
사랑은 진실하려면 아파야 합니다.
3일 동안 사탕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 어린이는
아프도록 사랑하는 어린이입니다.
라고... 정말 아름답고 쏙쏙 들려오는 비유가 아닌가...? 그리스도는 아프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런 외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도 아프게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아주 확실한 비유로 알 수 있었다.
예수님도 비유의 대가였지만 예수님의 모습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마더 테레사도 그런 비유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