듕귁과 오렌지 :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
고운기 지음 / 샘터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로만 보자면 살며시 보푸라기가 일어야 제 맛이 날 것만 같은 - 바로 한지 같은 - 느낌의 표지이지만 아쉽게도 실물을 만나면 매끄럽게 잘 빠진 표지와 만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쓰다가 남은 노트나 분해된 책을 이 책처럼 구멍을 뚫어서 옛날 책 모양으로 만드셨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표지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떡 하니 봐도 이 책은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이다. 그래서 당연스레 연상할 수 있듯이 옛날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현재의 기준으로 비추어 보아, 과거의 사실 - 즉, 역사 - 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내가 장르를 분류하길, 역사 수필이라고 해놨는데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저자나름의 개똥철학을 풀어내는 터라 나름 붙여보았다. 부제로 <고운기의 유유자적 역사 산책>이라고 나와있으니 그리 틀린 제목은 아닌 것 같다.
 
요즘에는 역사에 대한 책에 붐을 일으켰는지 한창 잘 나오고 있다. 특히 사극드라마가 대세였던 작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그만큼 역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지만 '역사'란 단어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나는 '역사'라는 말을 하면 뭔가 심오하고 특별한 사람만 볼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뭐, 전적으로 많이 파고들지 않는 내 불찰이기도 하겠지만 아직까지도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라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할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냥 단순히 시를 읽다가도, 국경일에 대해 생각만 하더라도 역사랑 엮어서 그만의 개똥철학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쉽구나 한다.
 
정말 새롭게 보였던 것은 조기 유학의 원조인 최치원에 대한 일화이다. <삼국사기>에 "최치원이 돌아왔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려 있는데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참 신선했다. 먼저 최치원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중국의 과거에 합격하고서는 중국 관리로 10년을 지냈고, 황소의 난을 평정할 때는 <토황소격문>까지 써서 그 이름을 드높이기까지 했던 해외 유학파였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던 거라 그리 신선하진 않았는데 -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어찌나 신선했었는지~ - 그 이후가 참으로 놀라웠다. <삼국사기>에는 28살에 돌아오고도 9년이나 지난 후에야 진성왕 8년에 겨우 한 마디 보일 뿐이라는데.... "최치원이 시국과 정무에 관한 의견 10여 조목을 올리자, 왕이 좋게 여겨 받아들이고 그를 아찬으로 임명하였다" 꼴랑 이게 다다. 이런 짤막한 기사를 끝으로 그의 이름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원래 중국의 과거인 빈공과에 합격하면 그것만으로도 신라에서는 대단한 영예를 가지는 거라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데 최치원은 중국에서 자그만치 10년이나 벼슬을 하고 온 사람이란 말이닷!! 해외 유학파라면 지금도 알아주는 세상인데 과거 신라 때도 그랬다는 것도 좀 우습고 또한 마지막 말은 좀 아프기까지 한다.
 
성공한 조기 유학생이 그 정도였다. 물론 중국이건 신라이건 크게는 시절 탓이었다. 오늘 우리는 잘 키운 인재들을 적절히 쓸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조기 유학생이 최치원처럼 우울하게 지낸다는 소식은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당시엔 증국과 신라라 망해갈 징조를 보이고 있어서 그랬다 치지만 지금은 어쩐 일인지... 현실이 아프도록 날카롭게 꼬질 수 있다니 역사를 배우는 것이 바로 이것을 위함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과거 신라처럼 망해갈 징조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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